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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45화 (245/424)

10권 20화

7. 내 거 하자

만남은 바로 이뤄졌다.

장소는 상해에서 유명한 중식당이었다.

"소형제!"

유쾌한 인상의 여가위 감독이 홀에 앉아 손을 붕붕 흔들고 있다.

그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자 진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오랜만이에요, 감독님."

"소형제도 잘 있었나! 실제로 보니 몸이 더 탄탄해졌군! 그런데 이쪽 분은?"

"아, 안녕하십니까! 이진호 씨 스케줄 매니저 정구호입니다!"

"오. 반갑습니다, 여가위입니다."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 실장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솔직히 여가위 감독 정도의 네임드라면 다미앙이 오는 게 맞지만, 그는 무슨 일인지 정 실장을 보냈다.

그래서 그는 막중한 부담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소형제, 이분 너무 떠는 것 같은데? 괜찮나?"

"감독님 영화를 보면서 연예계일을 꿈꾸셨대요."

진호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고, 화들짝 놀란 정 실장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오! 이렇게 젊은 사람이 내 영화를 보다니!"

여가위의 얼굴이 활짝 폈다.

"아, 이쪽이 어제 말한 쉔수쉐이 형님일세."

"안녕하십니까 , 이진호입니다. 황제의 딸은 정말 재밌게 보았습니다."

쉔수쉐이는 중국 어디에서나 볼법한 평범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몸을 감싸고 있는 아우라는 분명 거장의 그것이었다.

"쉔수쉐이입니다. 이렇게 만남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악수를 나눈 뒤 자리에 앉자 음식이 나왔다.

코스 요리인 듯 스프부터 나왔다.

진호의 얼굴이 활짝 폈다.

"와, 제비집과 삭스핀의 콜라보 스프라니."

"아니, 소형제. 그냥 보기만 해도 아는 건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정도는 기본이죠. 이거 오늘 제 입이 호강하겠네요. 잘 먹겠습니다!"

우렁차게 외친 진호는 스프를 한 스푼 크게 떠서 입에 가져갔다.

호로록! 오물오물.

"……하아아."

얼굴이 느슨하게 풀린 진호는 이쪽을 보는 여가위와 쉔수쉐이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최고네요, 여기."

"……으하하하핫! 많이 들게! 내가 사는 건 아니지만!"

"잘 먹겠습니다. 쉔수쉐이 감독님!"

대접받은 사람의 환한 미소는 대접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칭찬이었다. 쉔수쉐이는 흐뭇이 웃었다.

"많이 드십시오."

"옙! 정 실장님도 얼른 드세요."

"어? 어어. 자,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일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하나도 꺼내지 않은 채 웃고 떠들며 먹기만 했다.

그래서 정 실장은 갈수록 초조해져 갔다.

"어떻습니까?"

"인성까지 좋은 것 같군."

"웨이양 형님이 아무나 손자로 삼을 것 같습니까?"

진호와 정 실장이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쉔수쉐이와 여가위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연기력도 훌륭합니다. 솔직히 저 나이에선 나올 수 없는 연기 내공이죠."

"확실히…… 흠, 급해서 나오긴했지만 느낌이 괜찮아."

두 번의 거나한 연속된 실패는 황제의 딸이라는 대작을 만든 감독이란 위상조차도 깎아 내리기에 충분했다.

두 작품 모두 제작비만 3억 위안 이상이라서 더 그랬다.

이젠 투자는 물론이고 그의 부름이라면 무조건 섭외에 응했던 배우들도 이젠 연락을 받지 않는 상황이라서 자존감이 밑바닥을 친 상태였다.

"그런데…… 저런 인재가 내 드라마에 출연해 줄까?"

여가위는 그의 위축된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왜 CG를 남발해서……"

"허흠흠."

그는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CG를 쓴 것뿐이라고 변명하곤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황제의 딸이라는 대작을 만든 이후 그가 느낀 중압감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였고, 어떻게든 성과를 올리기 위해 관객의 눈을 사로 잡으려 화려한 CG를 쓴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해 버렸고, 결국 두 번의 연이은 실패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역시 늙으면 죽어야 하는데……'

그놈의 욕심이 문제였다.

"그래도 이번 대본은 훌륭하니, 예전 형님의 연출력이라면 충분히 먹힐 겁니다. 아니, 웨이양 형님이 그렇게 되도록 적극 도와주실 겁니다."

이미 진호가 섭외를 허락한 순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로 약속된 상황인 것도 모자라, 출연할 배우들과 투자자까지 모두 웨이양이 섭외해 주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기관장님과 연결시켜 주어서 정말 고맙네. 내 이 은혜는 꼭 갚지."

"흐흐. 말한 겁니다?"

"아무렴."

"흐흐흐. 그럼 이제 소형제가 승낙하는 일만 남았군요."

"부디 내 이야기에 흥미를 가졌으면 좋겠군."

"그럴 겁니다. 이것 역시 소형제에겐 처음일 테니까요."

"음?"

"소형제는 꽤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아, 옵니다."

둘은 화장실을 다녀온 진호와 정실장을 향해 싱긋 웃어 주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후룩!

"하, 진짜 여태까지 먹어 본 것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맛있는 코스였어요."

"허허허. 잘 먹었다니 기분이 좋군! 그런데 소형제 매니저는……"

"중국 문화를 잘 몰라서요. 한국은 식사를 하며 동시에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많거든요."

"아, 그런 것이었군요."

"허헛. 나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건가 싶었습니다."

여가위와 웬수쉐이는 굳어 가던 미간을 풀었고, 진호는 싱글싱글 웃던 미소를 지웠다.

"그러면 이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진지해진 그의 모습에 쉔수쉐이는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줄거리를 들은 진호는 생각에 잠겼다.

"시골의 촌부가 공주를 여황제로 만드는 판타지 사극이라……"

측천무후는 아니다. 측천무후는 공주가 아니라 후궁이다.

가상의 왕조에 가상의 인물, 그리고 무협.

진호는 여기서 모든 동물에게 사랑을 받는 시골의 촌부 역할이었다.

'이거 제작비가 어마어마하겠는데?'

왕가 이야기에, 무협이다.

얼마를 생각하건 그 두 배가 들터였다.

줄거리도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진호는 두 시간 후에 할 스케줄을 떠올리며 속으로 웃었다.

"CG는 거의 배제할 생각입니다. 그럼 생각해 보고……"

"아뇨, 할게요."

오늘은 진호와 안면을 익힌 것만으로도 만족할 생각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일어서던 쉔수쉐이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쉽게 정해도 되는 겁니까? 아직 대본도 보지 않았잖습니까?"

"여기 여가위 감독님께서 제가 잘못되라고 쉔수쉐이 감독님을 소개시켜 주신 건 아닐 테고, 이제 얼굴이나 조금 알린 저를 괜히 쉔수쉐이 감독님께 소개시켜 준 것도 아닐 테니까요. 하겠습니다. 하게 해 주세요."

여가위는 웨이양과 진한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분명 여가위가 먼저 대본을 읽어 보고 추천한 것일터였다.

그렇다면 굳이 대본을 보지 않아도 된다.

이런 진호의 마음을 모른 채 그의 성급한 결정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여가위는 깜짝 놀랐다.

지금 진호는 여가위 자신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

쉔수쉐이는 입이 찢어져라 웃는 여가위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진호를 번갈아 보며 탄식을 터트렸다.

"허……"

"허헛. 축하합니다, 형님."

고개를 끄덕인 웬수쉐이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그 결정이 후회되지 않는 드라마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려야죠. 그런데……"

"음?"

"홍보하실 거죠?"

"당연히 해야죠."

이미 기자들이 스탠바이를 한 상태다.

웨이양에게 연락만 하면, 중국 전역에서 이 캐스팅 뉴스를 보게 될 터였다.

이를 모르는 진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그 홍보를 조금만 미뤄 주실 수 있을까요?"

"왜……"

'설마.'

이 잠깐, 1초 사이에 마음이 변했나 싶었다.

그러나 진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제가 이번에, 아니 오늘 디올 옴므 화보를 찍거든요. 그런데 그 컨셉이 감독님께서 말하신 주인공과 꽤 비슷해서요."

"예?"

"야생에서 야생 동물과 뛰어놀만큼 활동적이면서도 편안한 슈트. 어떤가요? 정말 비슷하지 않나요?"

쉔수쉐이와 여가위 감독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진호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 * *

촬영장소는 상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나무 숲이었다.

높고 곧게 솟은 대나무들이 가득한 대나무 숲은 너무 시원한 나머지 약간 춥기까지 했다.

"이모!"

"아들-!"

달리다시피 빠르게 걸어간 진호가 미영을 와락 껴안았다.

환하게 웃은 미영도 진호를 힘주어 껴안았다.

지사장이 강림한 것에 잔뜩 긴장해 있던 직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미영은 디올 차이나에서 냉혈마녀로 불릴 만큼 차갑고 냉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보지 못한 채 미영의 팔을 쓸어내리며 반가움을 표하던 진호는 순간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응? 이모 살쪘어?"

"뭐?"

퍽 화들짝 놀란 미영이 재빨리 물러났다.

그녀의 낯빛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지, 진짜? 나 살쪘니?"

"응. 한 3킬로그램 찐 것 같은데?"

"어, 어쩐지 요새 옷이 좀 낀다 싶더니만……"

"아니, 하이패션 브랜드 지사장이 자기 몸 상태조차 모르면 어떡해요."

"시, 시끄러워! 이건 다 중국 음식 때문이야! 싹 다 기름지잖아!"

"기름 안 쓴 음식도 많은……"

"시끄럽다고 했지!"

찰싹! 찰싹!

"악! 악! 미안! 살려 줘! 잘못했어요!"

그러나 미영은 짜증이 풀릴 때까지 진호의 등을 두드렸다.

말실수를 한 죄가 있기 때문에 순순히 맞았던 진호는 그녀가 물러나자 그제야 등을 벅벅 긁으며 몸을 비틀었다.

"아오, 안 닿아!"

"흥! 한 번만 더 그래 봐라!"

"죄송합니다……"

입맛을 다신 그는 대나무 숲을 바라봤다.

"저기 안에 길은 있어요?"

야생 대나무 숲이라면 자칫 크게 다칠 수가 있다.

"응, 있어. 안전하니까 마음껏 뛰어놀면 돼."

"……엥? 실제로 뛰라고요?"

"그럼 안 뛰려고 했니? 역동감이 다른데?"

"그건 맞지만……"

"걱정 마. 크게 힘들지는 않을 거야. 아들은 그냥 동물이랑 엎치락뒤치락 놀기만 하면 돼."

진호는 이번에도 놀랐다.

"CG가 아니었어?"

"실사가 낫잖니."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모델 경력은 아들보다 더 긴 동물들이니까 걱정은 하지 마. 아, 그보다 아들!"

"응?"

"그런 능력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내가 리얼정가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알았으면 이미 옛날에 이 컨셉으로 찍었지!"

순간 진호의 눈이 짜게 식었다.

"나 그런 모습 많이 보여 줬는데…… 하양이도 그래서 데려올수 있었던 건데……"

미영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난 이모한테 관심이 많은데, 이모는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 그랬구나……"

짜아악!

결국 미영의 손바닥이 진호의 등을 다시 때렸다.

"아아악!"

"시끄러워. 얼른 메이크업이나 하고 와."

"끄으응."

입술을 삐죽 내민 진호는 한쪽에 마련된 간이 대기실로 했다.

사방이 막힌 간이 대기실 안에는 두 명의 중년 여성과 많은 스태프들이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실장님. 메이 실장님도 잘 계셨죠?"

"어서 와요, 진호 씨."

미영이 디올 차이나 지사장이 되면서 몇 번이나 같이 작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디자이너.

진호는 그들에게 몸을 맡기며 큐시트를 확인했다.

"중국엔 왜 이렇게 자주 안 와? 앨범 냈으면 중국에서도 콘서트좀 하고, 응?"

"흐흐. 그렇지 않아도 콘서트 일정 잡혔어요."

"진짜?"

"별당신 끝나면 투어 콘서트 할 거예요."

"정말? 그래, 우리 자주 좀 보자. 만날 일본만 가지 말고!"

"아니, 일본도 잘 안 가는……"

진호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바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컹! 커형!"

'아, 동물이 도착했나 보네. 늑대인가? 근데…… 저기 있다?'

늑대로 추정되는 동물의 외침은 굉장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 먹이 이야기인가?'

"으헉! 얘,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쉬쉬, 자자. 진정해야지? 악!"

"꺄아악!"

"앗! 자, 잡아! 거기 비켜요!"

"으허 억!"

타다다다다다! 펄럭!

"응?"

뭔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과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것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린 진호는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잿빛 늑대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꺄아……!"

그리고 그 늑대가 사람들이 비명을 다 지르기 전에 자신을 향해 뛰어드는 모습도 말이다.

"커형!"

후우웅!

"엥? 억?"

쿠당탕!

진호는 왜인지 '내 거 하자!'라고 크게 짖은 늑대와 한 몸이 되어 대기실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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