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18화
'이제 해금 조건도 마지막이네.'
5차 해금 조건은 '경기에서 10분 뛰기'다.
그렇게 되면 [스킬: 달려라 황금발]을 온전히 얻는다.
공터의 중앙에 선 진호는 공격이 아니라 수비에 치중하려고 하는 쑤린펑을 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흐음?'
"진호 씨, 정말 진호 씨만 믿을게?"
"크흐! 오늘은 해볼 만하겠구나!"
이런 육체적 게임에선 언제나 쑤린펑에게 참패를 당했던 패밀리들.
진호의 어깨를 주무르는 그들은 쑤린펑뿐만 아니라 상대 팀에게 킬 사인을 보내며 전의를 다졌고, 진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발밑에 깔린 공을 이리저리 움직일 뿐이었다.
상대 팀도 킬 사인을 보내서 진호는 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질 생각은 없지만.'
삐익!
이윽고 심판을 맡은 카메라 감독이 휘슬을 불자, 진호는 툭 옆에 있는 리시시에게 공을 넘기며 앞으로 달렸다.
'축구경기를 보면 대충 이됐었지?'
재준과 함께 축구경기를 보다 보면 대부분의 공격수들은 옆 사람에게 공을 넘기고 앞으로 치고 나가서 공을 받을 준비를 하였다.
"받아요, 진호 씨!"
펑!
공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좀 멀다.'
[스킬: 테니스의 황태자]로 인하여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난 진호는 공이 떨어질 지점을 정확하게 캐치하고는 그대로 달려나가며 받을 준비를 했다.
예측한 지점에 공이 정확히 떨어지자 이미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진호는 이마를 가져다 대며 톡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 순간.
화륵!
'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타인의 발.
퍼스트 터치된 공을 노리는 듯 바닥에 깔려 들어오는 그 발에 진호는 반사적으로 발을 들어 올려 정강이까지 떨어진 공을 툭 쳤다.
'잉?'
방금 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제야 알아차린 진호는 이번에도 반사적으로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옆으로 느리게 튕겨지는 공을 쫓아 몸을 날렸다.
'에라, 모르겠다!'
좌르르르륵!
깔끔하게 공을 빼는 것으로 기선제압을 하려고 했던 쑤린펑은 미끄러지는 와중에 경악하며 그런 진호를 바라보았고, 앉아 있던 피디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나 축구 지식이 크게 없는 패밀리들은 달랐다.
"뭐, 뭐야! 린펑 태클이 실패했어?"
"쟤는 왜 태클을 하고 그런대! 진호 씨 막아!"
진호는 자신을 향해 사방에서 달려드는 당황한 사람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슛?'
그 단어가 마음에서 강하게 외쳐졌다.
골대가 훤히 보여서 그런 것 같았다.
'아, 저기로 때리면 되겠구나.'
진호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오른발을 강하게 내디디며 왼발을 휘둘렀다.
시속 200km/h가 넘는 서브가 오가는 테니스에 비하면 생각할 시간도 많아서 신중히 노리고 쏠 수 있었다.
'아, 근데 나 오른발잡이……'
뻐엉!
'제대로 때렸다?'
마치 발등에 구멍이 뚫린 듯한 시원함에 진호는 빨랫줄처럼 날아가는 공을 빤히 바라봤다.
생에 처음으로 넣는 골.
뚫어지게 공을 바라보던 진호는 철썩 골네트가 크게 흔들리자 주먹을 꽉 쥐었다.
찌릿찌릿!
"이런 느낌이구나."
박현과 기나긴 랠리 끝에 겨우 포인트를 따내었을 때 느꼈던 그 쾌감. 진호는 씩 웃으며 몸을 돌렸다.
"……오오오오오오!"
"고오올!"
"진호 씨-!"
진호는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더 크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달렸고, 이제 막 몸을 일으킨 쑤린 펑은 망연자실 진호를 응시했다.
'타고난 골잡이…….'
축구 선수들 가운데서도 인종이 다르다 말하는 이들이 순간 진호와 겹쳐 보였다.
진호는 정말 축구 재능을 타고난 것이었다.
'……하지만 질 수 없지!'
쑤린펑의 눈이 화륵 타올랐다.
* * *
이를 악문 쑤린펑은 날아다녔다.
"여기!"
"받아!"
패밀리에게 리턴으로 공을 받은 쑤린펑은 그대로 공을 치며 달렸다. 아니, 달리려고 했다.
그 순간.
덥썩!
"으?"
누군가 등을 업어 타 듯 끌어안았다.
"린펑! 못 가!"
"야 이씨! 이건 반칙이잖아! 제일 큰형이 이래도 돼?"
쑤린펑은 본능적으로 심판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진호를 보곤 눈빛을 굳혔다.
"난 이거라도 해야지! 못 가-!"
"……흥!"
불끈! 허벅지에 힘을 준 쑤린펑은 그대로 사람을 매단 채 골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등에 업힌 이는 나이는 제일 많지만, 몸무게는 리시시만큼 가볍고 완력은 제일 약한 패밀리의 큰 형이었다.
"어? 어?"
"저 미친?"
"으헉? 으악!"
폭주하는 기관차가 따로 없는 모습.
등에 매달린 채 비명을 지르던 패밀리의 큰 형은 곧 떨어져 버렸고, 짐을 벗어 던진 쑤린펑은 그대로 달려가다 각이 나오자 윽박지르듯 공을 때렸다.
뻐엉!
공이 레이저처럼 날아갔고, 수비수나 골키퍼 모두 눈을 부릅떴다.
"으헛!"
"맞으면 죽는다! 피해!"
사람을 매단 채 10미터나 달린 쑤린펑이다.
수비수나 골키퍼 모두 몸을 날리며 피했고, 공은 당연히 네트를 갈랐다.
"……이에에! 1 대 1이다!"
"린펑! 린펑!"
"야, 이 괴물아!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했냐!"
"그래! 맞았으면 너 신문에 났어!"
"하! 그거 맞는다고 안 죽거든!"
"우린 죽어!"
"……흥!"
코웃음을 치며 자리로 돌아온 쑤린펑은 어떠냐는 듯 진호를 보았고, 진호는 그 눈빛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거 어디 부러지는 거 아냐?'
물론 쑤린펑이 방금 전 사람을 매달고 달린 것은 진호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의 우람한 근육이 슬쩍 몸을 위축시켰다.
"진호 씨, 방금 전처럼. 오케이?"
"……오케이."
진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심판을 보았다.
삐익!
툭 넘겼다가 공을 다시 받은 진호는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상대팀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야앗!"
"죽어라!"
'아니, 죽이는 건 안 되죠.'
눈동자를 좌우로 굴린 진호는 퍽공을 대각선으로 치며 달려나갔다. [스킬: 테니스의 황태자] 때문에 길러진 순간 가속 능력이 빛을 발했다.
"안돼!"
"잡아!"
그들은 뒤늦게 외쳤지만, 이미 진호는 그들보다 세 발 앞선 뒤였다.
그렇게 골대를 향해 달리던 진호는 옆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세에 흠칫 놀랐다.
쑤린펑이 선불 맞은 맷돼지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태클일…… 어?'
몸을 낮추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
'서, 설마?'
퍼억!
"억?"
진호는 갑자기 붕 떠 버린 몸과 빙글 도는 하늘에 순간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퍼억!
"윽!"
몸이 한 차례 밀린 진호는 어느새 몇 발 앞서 달려가며 이쪽을 향해 손을 드는 쑤린펑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벌써 3번째 패배다.
이번엔 그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몸의 중심을 낮췄는데도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온 쑤린펑의 부딪침에서 공을 지켜 내지 못했다.
"……아, 이거 오기 생기게 만드네?"
체급과 테크닉이 압도적으로 차이 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럼에도 몇 번 튕겨 나가니 머리에 열이 올랐다.
처음 몸싸움에 땅바닥을 뒹굴었을 때, 당황한 쑤린펑이 일으켜 주며 사과하는 신사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스킬: 사상 최강의 제자]를 이용해 반칙을 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물론 몸싸움 테크닉을 익히지 못하는 이상 계속 질 테지만! ……아오오! 이놈의 승부욕, 진짜!'
그 순간이었다.
"어라?"
진호는 공터를 보며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시야가…… 넓어졌다?"
공터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그냥 이해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떻게 움직이려는지도 마치 머릿속에 그려지듯 선명하게 보였다.
"벌써 10분이 지난 건가?"
스킬을 얻은 거다.
축구에 몰입했던 진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피식 웃었다.
'셜록의 후예 스킬도 보조하고 있네?'
상대나 같은 편이 어떻게 움직이려는지까지 선명히 느끼게 되는건 [스킬: 달려라 황금발]의 주인공이 EPL에 진출하며 온갖 경험을 쌓은 뒤에야 가능해지는 일인데, 지금은 그냥 느껴졌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모든 포지션을 완벽하게 소화했던 주인공의 시야.
진호는 상대편 골대가 있는 방향을 보며 입술을 더욱 비틀었다.
쑤린펑 팀이 한 골을 더 넣으며 스코어가 1 대 3이 되었다.
진호는 중앙선으로 걸어가며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부탁드릴게요."
"히히. 맡겨 둬요. 린펑 오빠에게 축구 엄청 배웠으니까."
"……더 뼈아프겠네요. 그런데 왜 계속 거기에 있는 거예요?"
"예전에 제가 몸이 아플 때, 아프면 뛰어다닐 생각 말고 한곳에 박혀 있으라고 했어요."
"아아."
'더 뼈아프겠구나.'
진호는 축제 분위기인 쑤린펑 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굳이 몸싸움을 하지 않아도 이기는 법은 많지.'
몸싸움 테크닉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몸싸움을 하는 건 승부욕이 강한 게 아니라 미련한 것이었다.
쑤린펑은 다시 중앙선에 선 진호와 그 앞에서 있는 자신의 팀원들을 보며 발목을 풀었다.
진호가 그들을 피해 달려나오면 다시 달려가 몸싸움을 하기 위해 서다.
'환장하겠지. 축구 초보는 이걸 파훼할 방법이 없으니까.'
특히 이런 골목 축구라면 더 그렇다. 아무리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애송이 보다도 못한 병아리일 뿐이었다.
뻑!
"진호 씨를 막…… 어?"
진호에게 달려들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건 쑤린펑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여태까지와 달리 앞이 아닌 뒤로 달린 진호를 멍하니 보다가 그가 갑자기 몸을 돌리며 발을 휘두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뻐엉!
모든 이의 시선이 공을 좇아 움직였다.
자신들의 머리 뒤로 넘어간 공.
'슛?'
"설마?"
"어?"
사람들은 자신들 골대 근처에 있는 여성을 보곤 눈을 비볐다.
'리시시가 언제…… 어?자, 잠깐.'
"어? 어?"
툭.
가만히 서 있는 리시시의 발 앞에 공이 떨어져 멈췄다.
그 경악스런 힘 조절에 쑤린펑이 한 번 더 경악할 때, 리시시는 냅다 골대를 향해 공을 찼다.
다른 사람들처럼 어? 어? 하던 골키퍼는 반응도 하지 못했다.
철썩!
"……우아아아아악!"
"와아아아악! 시시-!"
쑤린펑 팀원들은 리시시를 향해 달려가는 진호와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축구를 아는 사람들은 진호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삐익! 삐익!
"우와아아아아!"
"이겼다-!"
7 대 5. 정말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다.
폭주하는 기관차 쑤린펑과 택배 크로스의 재림을 보여준 진호.
이 중 승리는 진호 팀에게로 돌아갔다.
"진짜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다 반칙이잖아! 심판-!"
사람들과 얼싸안고 방방 뛰던 진호는 억울해 씩씩거리는 쑤린펑을 보며 미안해했다.
이쪽은 사람이 다가오기 전에 패스를 날렸지만, 혼자서 거의 다 했던 쑤린펑은 매번 간질이기라든지 똥침 같은 적나라한 반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을 못 받은 적도 많았다.
"오케이-! 끊어 갑시다-! 6밀리만 찍고 다닐게요!"
만족이 가득한 PD의 외침이 터지자 사람들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흐억! 헉!"
"주, 죽을 것 같아."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듯 힘들어하던 사람들은 아차하며 진호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진호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기쁨을 함께했다.
그런 그에게 쑤린펑이 다가왔다.
"정말 축구 처음 한 거 맞습니까?"
"아, 네. 처음입니다."
"……허어."
진호는 허탈해하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솔직히 나 같아도 이러겠다.'
"그보다 죄송합니다. 저희 팀이 아니었다면……."
피식 웃은 쑤린펑이 손을 저었다.
"저 사람들이 반칙하는 거 한두번도 아니고, 됐습니다. 괜찮아요."
'……와. 쿨하시네.'
"그보다 자기 재능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네? 솔직히 제가 잘한 건지도 잘 모르겠어서……."
"이건 잘한 정도가 아닙니다! 정말 천부적으로 타고난 거예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와, 진짜! 이건 그렇게 반응할만한 재능이! ……어후우."
답답함에 가슴을 치던 쑤린펑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축구를 정식으로 배워 봐라 강권하고 싶지만, 진호는 이미 세계 정상급 축구 스타들만큼 , 아니 그보다 더 벌고 있다. 잘 닦인 길을 가는 사람에게 괜히 헛바람을 넣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 쑤린펑입니다. 이제 와 이런말 하는 것도 우스운데, 그래도 친하게 지냅시다."
진호는 살짝 놀랐다.
쑤린펑이 인정을 해 준 것이었다.
'정말 성격 좋으시네.'
"흐흐. 이진호입니다. 말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네. 제가 한참 어리잖아요."
"푸하하핫! 좋아! 그렇게 말해 주면 고맙지! 그런데 운동은 어떻게 해? 중량은 얼마야?"
'저, 정말 종국이 형님과 똑같아!'
친해진 순간 수다쟁이가 되는 것마저 이렇게 똑같을 수 없었다.
진호는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꽃을 피워 갔다.
"너 진짜 성격 좋구나?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
"예, 형!"
"흐흐흐! 아, 그런데…… 어휴. 좋은 동생을 얻어서 좋기는 한데, 저녁은 어떻게 하나 몰라? 분명다른 사람들 손 하나 까딱 안 할텐데. 어떻게하게 만들지?"
오랜만에 식사를 진두지휘하는 거라 눈앞이 깜깜했다.
진호가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자 진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입을 열었다.
"형이 저녁은 왜 신경 쓰세요? 제작진에게 이기면 되잖아요."
"응? ……아!"
그랬다. 이 복불복 게임 다음에는 제작진과의 축구 대결이 있었다.
마침 그걸 알아차린 듯 이쪽을 보며 낯빛을 어둡게 굳히는 제작진을 향해 씩 웃어 주었다.
택배 크로스와 폭주 기관차의 결합.
제작진은 하얗게 질리며 이 말도 안 되는 미션을 만든 PD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스킬: 달려라 황금발]
[이젠 내가 전설이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