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17화
6. 더 큰 파도를 만들어 내다
사람들은 진호가 운동 신경이 좋다는 PD의 말에 의구심을 가졌다.
하이패션 모델인 진호의 몸은 무척이나 호리호리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심의 눈을 단 진호는 핸디캡으로 인해 몸을 풀지 못하는 쑤린펑에게로 향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진호는 그 시선들을 무시했다.
스킬 해금을 하기 위해 선 쑤린펑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여쯤고 싶은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져 줄 수 있겠냐, 그런 거 말입니까?"
"네?"
뜬금없는 말에 의아했던 진호는 그가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을 알리게 도와 달라 그런 거……."
"아뇨, 아뇨!"
진호는 급히 손을 저었다.
"그런 게 아니라, 축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은 거예요!"
'누구야! 그딴 말을 한 인간은!'
"축구?"
차갑게 굳어 가던 쑤린펑의 얼굴이 펴졌다.
"네, 축구! 이왕 겨루는 건데 이겨 야죠."
순간 뿜을 뻔한 쑤린펑은 진지한 진호의 눈빛을 보곤 깜짝 놀랐다.
'진심이잖아?'
그는 그제야 알게 됐다.
진호의 승부욕이 자신 못지않다는 걸 말이다.
'적이라 할 수 있는 이에게까지 서슴없이 조언을 구하려는 승부욕이라……. 이 사람, 순수하네.'
아니다.
스킬 해금을 위해서다.
"축구라…… 축구를 잘하기 위해선 여러가지 요건이 필요하지만, 저는 공과 한 몸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뛰어난 슈팅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연습 끝에 익혀지는 감각에서 나오는 거다…… 데이비드 베컴이 한 말이죠. 이 명언을 알고 계실지 몰랐습니다."
이렇게 축구에 대해 물어온다는것 자체가 축구를 모른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제 친구가 스포츠 마니아거든요. 그래서 강제적으로 들은 말들이 많다 보니, 하하."
머리를 긁적인 진호는 이내 쪼그려 앉으며 투덜거렸다.
"그럼 오늘 이기긴 글렀네요."
"하하. 즐기면서 하는 거죠."
순간 진호의 눈빛이 빛났다.
1차 해금을 하기 위해 들어야 하는 말, 그것을 끌어내기 위한 단서가 나왔다.
진호는 억지로 우울한 척 말했다.
"재밌어야 즐기는 거죠."
"재밌습니다."
'됐다!'
진호는 태연히 쑤린펑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재밌어요?"
"네. 해 보면 알겠지만, 축구는 무척 재밌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을 하는 것이겠죠."
'오케이! 해금!'
철컹 하는 소리 같은 게 들려온건 아니지만,
'축구는 무척 재밌다.'라는 말로 1차 조건은 확실히 해금시켰다.
초등학생 어린 주인공이 방과 후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축구부원들을 보며 '저런 공놀이가 재밌나?'라고 생각할 때, 다가온 축구부 감독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말을 듣게 되면서 축구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다.
"흐응. 그렇군요……."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쑤린펑의 눈과 꿈틀거리는 입가를 보자니, 별생각 없던 진호도 축구에 대해 관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래서 어린 주인공이 축구를 해볼까 생각한 거구나.'
하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바로 축구부원이 되지 못한다.
"그럼 조금이라도 축구공과 한 몸이 되려면 볼 트래핑을 하는 게 좋을까요?"
"그다음은 드리블을 해 보는 게 좋습니다."
'네, 그것도 할 거예요.'
3차 해금 조건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잠시 후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진호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쑤린펑은 그런 진호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재밌는 친구네."
자리로 돌아온 진호는 제작진이 연습하라고 출연자들에게 하나씩 안겨 준 축구공을 들고 2차 해금 조건인 무릎 볼 트래핑을 시작했다.
영상이나 친구 재준이 하는 모습을 봐도 쉬워 보였던 볼 트래핑.
'어디?'
툭!
한 번 무릎으로 공을 튕긴 진호는 공이 이상한 방향으로 튕기자 식겁하며 양손을 뻗어 잡았다.
진호를 힐끔거리던 사람들은 순간 풋 웃음을 터트렸고, 진호의 얼굴은 살짝 발개졌다.
"이거 어렵네."
설마하니 단 한 번 만에 공이 요상한 방향으로 튈 줄은 생각도 못했다.
'분명 쉬워 보였는데…….'
진호는 긴장하며 공을 몇 번 더 튕겨 보았고, 그때마다 공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튀었다.
'어렵다, 어려워. 그런데…….'
"흐음."
진호는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번엔 무릎만 몇 번 쳐 올린 진호는 한 번 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지?'
무릎과 공이 만날 때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해져 갔다. 아직 2차 해금 조건을 해금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걸 해금해야 공에 익숙해지는……아, 육체 관련 스킬들 때문이구나.'
[스킬: 테니스의 황태자]를 비롯한 많은 육체 관련 스킬들의 시너지가 만든 균형 감각.
거기다 축구공은 테니스공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눈을 감고도 중심을 잡을 수 있을 만큼 크다.
"테니스 라켓이 아니라 발로 튕긴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체력이 허락된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테니스 라켓 헤드 옆면으로 공을 튕길 수 있는 진호. 비록 크기와 탄성이 다르더라도 공을 다루는 감각은 이미 프로에서도 랭커 수준에 오른 진호다.
이제 곧 은퇴할 테니스 플레이어 박현이 인정한 감각.
물론 손과 발은 다를 테지만, 스킬들이 보조해 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다.
진호는 다시 공을 떨어트리며 무릎을 들어 올렸다.
"이렇겐가?"
턱! 튕긴 공이 수직으로 치솟자 진호는 공을 끝까지 바라보며 무릎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턱! 공은 다시 수직으로 치솟았다.
아주 안정적으로 말이다.
"되네?"
'……그럼 쉽지.'
2차 해금 조건인 '볼 트래핑 연속으로 100개.'
'얼른 해치우자.'
진호는 씩 웃으며 다시 무릎을 쳐 올렸다.
리시시는 얼굴이 발개진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호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건 진호 팀이 된 다른 출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좋아도 운동 신경은 딱히 좋지 않나 보네."
"그렇다면 저 멱살 잡아도 시원치 않을 감독이 이번에도 사기를 쳤다는 건데……."
진호 팀 패밀리들은 이마를 붙잡았다.
한숨을 내쉬며 체념한 그들은 쑤린펑을 보며 눈을 빛냈다.
"역시 어쩔 수 없나?"
"그렇죠. 어쩔 수 없죠."
"감독이 편집 잘해 주겠죠. 언제나처럼."
가늘게 떠진 그들의 눈은 무척이나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사고를 치기 전의 악동과 같은 눈빛.
음흉한 웃음마저 흘리던 그들은 자신들의 말에 어울려 주지 않는 리시시를 의아해하며 보았다.
"시시, 지금 작전 회의하잖아. 대체 뭘 보는 거…… 응?"
"그래, 뭘…… 어?"
사람들은 눈을 껌뻑였다가 비벼도 보았다.
그러나 진호의 무릎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사라지지 않았다.
"응? 어?"
"저게?"
"오십이, 오십삼, 오십사."
사람들은 급히 카운트를 세는 리시시를 보았다가 다시 진호를 보았다.
안정적으로 떠올랐다가 안정적으로 떨어지는 축구공에 그들의 눈은 점점 커져 갔다.
그리고 공터 안에 침묵이 번져 갔다.
'아흔 둘, 아흔 셋. 아흔…… 웃?'
"엇차!"
카운트가 거의 끝나가서 방심해서 그런지 여차 한순간 이상한 방향으로 튄 공에 급히 발을 뻗어 정강이로 쳐올린 진호는 다시 무릎으로 받아 내며 툭툭 툭 튕겼다.
'백!'
"배액!"
움찔! 화들짝 놀란 진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 때문에 공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고, 진호의 진기명기에 집중하던 사람들은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야!"
"끄아!"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와! 진호 씨, 예전에 축구했어요?"
"공에 줄 묶어 놓은 거 맞죠? 그렇죠?"
"하하."
머리를 긁으며 그들의 말에 대답해 준 진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전 몸 좀 더 풀어도 될까요?"
"그럼요. 그럼! 얼마든지! 몸 다 풀어요! 촬영 시작은 우리가 막아줄게!"
"쑤린펑, 너도 이제 끝났어!"
쑤린펑에게 킬 사인을 보내는 출연자들을 보며 다시 어색하게 웃은 진호는 발치 앞의 공을 툭 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3차 해금 조건인 '드리블 5분 하기'를 위해서다.
그런데.
'오?'
진호는 발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축구공이 착 달라붙다 못해 마치 입안의 혀처럼, 신체의 일부분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2차 해금 조건은 볼에 익숙해지는 단계일 뿐인데…….'
볼을 한 몸처럼 다루는 감각은 3차 해금 조건으로 얻는다. 즉, 2차해금을 해서는 이 정도 감각을 얻지 못한다는 거다.
'이것도 시너지 효과 때문인가?'
그럴 확률이 99퍼센트였다. 나머지 1퍼센트는 진호 자신이 리셋라이프에서 이 스킬의 스토리를 진행할 당시 텍스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아, 이러면 자신 없는데."
질 자신이 없어졌다.
앞으로 일어날 몸의 변화와 얻을 축구 천재로서의 감각.
정말 질 자신이 없어졌다.
* * *
뻥!
진호의 발등을 떠난 공이 오른쪽으로 날아가려고 하다 허공에서 커다란 호선을 그리며 골대의 좌측 하단을 향해 내리꽂혔다.
철썩!
'캬. 이것도 되네. 이런 감각이구나.'
4차 해금을 하니 이제 슛을 어떻게 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라, 라보나 킥?"
"저, 저 정도면 UFO라고 불러야 하지 않아?"
진호 팀의 패밀리들의 입가가 꿈틀거릴 때, 제작진은 당황하고 있었다.
"누구 이진호 축구 선수였는지 확인해 봐!"
"프로필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그럼 엔터테인먼트에라도 전화해 봐!"
제작진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들이 원한 그림은 이게 아니라 압도적인 클래스를 보여 주는 쑤린펑과 젊음으로 어떻게든 이겨내려 노력하는 진호였다.
여기에 쑤린펑을 잡고 늘어지며 대놓고 반칙하는 패밀리의 모습이 가미되어야 그들이 원하는 그림이 완성된다.
이후 제작진 축구 올스타에게 져서 바깥에서 자든가, 이겨서 술을 마시는 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그런 계획이 시작 전부터 꼬여가고 있었다.
"어, 어떡하죠?"
혼란스러워 하는 제작진과 달리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PD가 이번엔 무회전 슛을 쏘는 진호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보기에는 어때? 정말 축구선수였던 것 같아?"
"당연히! ……음."
크게 긍정하려던 조연출은 입을 다물었다.
PD는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 아니야. 너도 봤지?"
트래핑을 할 때, 드리블을 할 때, 슛을 쏠 때 모두 처음에는 어설프다 못해 정말 공을 처음 만져 본사람 같았다.
그러다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린 후 다시 했을 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것도 일정 횟수가 넘어가자 프로 선수만큼 능숙해졌다.
방금 전 라보나 킥의 각도와 속도는 세계 정상급 선수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았다.
"그냥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거야. 다만, 여태까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인 거지. 그렇지, 린펑?"
범상치 않은 실력에 혹여 과거를 숨긴 걸까 의심되어 제작진을 찾아왔던 쑤린펑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예, 그냥 타고난 것 같군요. 몸 역시도."
더운 건지 어느새 상의 재킷을 벗어서 더 확연히 드러나는 진호의 근육들. 긴 바지를 입고 있어서 다리 근육은 볼 수 없지만, 슛만 봐도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가 있다.
"한국 테니스 플레이어 박현이 언젠가 한국에도 진심으로 테니스를 시작하면 세계 1위를 노려 볼수 있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적 있어."
"그게…… 저 이진호라는 말입니까?"
"난 그렇다고 생각해. 둘이 테니스 클럽에서 찍은 사진을 종종 SNS에 올리는데, 만날 내 천재 동생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거든."
"……."
"그런데 만약에 말이야. 정말 만약에 그 재능이 알고 보니 테니스가 아니라 축구에 특화된 것이었다면? 그걸 이제 알게 됐다면? 그리고 그게 하필이면 내 가족이 간다에서 발현됐다면?"
뒷배가 심상치 않다는 말들이 방송국을 떠도는 진호.
…… 꿀꺽.
쑤린펑과 조연출은 그제야 PD가 하고픈 말을 알 수 있었다.
"난 이런 호재를 놓칠 수 없는 직업이야. 알지?"
"……망신당하지 않도록 진심으로 해야겠군요."
"부탁해."
PD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지는 쑤린펑을 보며 눈을 매섭게 빛냈고, 그 머릿속에선 수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곧 일어날 일을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보물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까.
'은퇴한 세계적 선수들을 불러 모아 자선 대회를 열어 봐? 아니, 일단 그 전에…….'
"이번 편, 돌아가면 바로 편집에서 이번 주에 내보낼 테니까 준비해."
"예?"
PD는 깜짝 놀라는 조연출을 무시하며 크게 외쳤다.
"자, 이제 몸들은 다 푼 것 같으니 시작합시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