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40화 (240/424)

10권 15화

진호에게 호재가 터진 순간 장영진은 자는 시간까지 줄여 가며 편집에 몰두했고, 진호는 중국에서 방영된 '별에서 찾아온 당신'이 2화만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중국을 찾았다.

"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상해 홍차오 국제공항이 마비될만큼 몰려든 인파에 진호는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튼 죽어라 말을 안 듣……응?"

진호는 약간은 이상한 광경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 지르는 팬들이 공항 경찰과 사복 경찰이 만들어 놓은 바리케이드를 넘어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바리케이드가 높고 두꺼운투명한 벽인 것처럼 제자리에 서서 피켓을 흔들며 울 듯 환호성만지를 뿐이었다.

다시 고개를 모로 기울인 진호는 가까이에 있는 상해 지부장에게 다가갔다.

상해 지부장인 여성은 배시시 웃으며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상해를 다시 찾아 주셔서 감사해요, 진호 님."

"……갑자기 웬 존댓말이시래? 우리 관계가 그것밖에 안돼요?"

"일종의 예의? 이제 완전한 한류 스타잖아."

"예의는 무슨.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그보다……."

'이 모습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질서 있지?"

"네, 그거."

너무 질서가 있어서 마치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제 팬들 맞죠?"

"응. 리얼 정글에 가다와 별당신을 통해 새로이 진호 네 팬이 된 애들이야."

진호는 새로 유입된 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지부장을 보며 다시 의아해했다.

"때렸어요?"

"……무, 무슨! 나 그런 여자 아니거든!"

"하지만 지부장 누나 아버님 직업이……아, 그렇구나. 저분들이 그분들이구나."

진호는 사복 경찰들을 보며 놀라워했다.

저들은 일반 경찰이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래도 괜찮은 거예요?"

"원래 이 정도 인파가 모이면 언제나 이래 왔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보다 축하해. 중국 지니어스 백만 돌파야."

"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구십만 언저리 였잖아요."

"오늘 아침에 백만 돌파했어."

"와……."

머릿속이 하얗게 물든다는 게 이런 걸까.

"축하해."

"…… 고마워요. 절 좋아해 줘서."

더 좋은 말을 하고 싶은데 이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데……."

겨우 정신을 수습한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스케줄 아시죠? 저 쉬는 날에 신청해 주세요."

"응!"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다치니까 따라오지는 마시고요."

싱긋 웃은 진호는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여유롭게 공항을 빠져나가 미리 준비해 둔 차량에 올랐다.

입국 게이트를 넘기 전, 팬들이 많이 몰려 있다는 공항 직원들의 말에 긴장을 했던 팀 이진호의 직원들은 얼떨떨한 모습을 보였다.

"역시 진호 네 팬들이라고 할 까……."

공항이 마비될 만큼 인파가 모였는데, 마비될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혀를 내두르는 정 실장의 모습에 진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건 아닐걸요."

"응?"

직원들은 의아해했지만, 진호는 말을 아꼈다.

중국인에게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그들은 외국인에게도 저승사자였다.

그들에 대해서는 그냥 모르는 게 신상에 좋았다.

* * *

한 달이라는 시간을 중국에 투자 하기로 한 진호는 토크 쇼, 인터뷰 등 제법 바쁘게 움직였다.

물이 들어온 이상 노를 저어야 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캬! 우리도 이번엔 제대로 된밥을 먹겠구나!"

중국의 옛 정취가 가득 묻어나는 어느 작은 마을의 제법 커다란 집.

출연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들어와 수십 대 카메라 앞에 선 진호는 볼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꼬집!

"아픈데요."

진호의 볼을 꼬집은 40대 남성이 화들짝 놀랐다.

"정말요?"

"네. 그러니 이 손을 놓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같이 꼬집기 전에."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된 내용이라 당황하지 않은 진호는 다시 볼을 꼬집으려 드는 메인 MC를 향해 장난스럽게 이를 드러냈고, 주위에 있던 연예인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뒤로 물러난 MC가 카메라를 보며 크게 외쳤다.

"일단 여기 외계인님은 인간과 똑같은 신경 체계를 갖춘 것 같습니다!"

"푸하하하하!"

"크크크크크 I"

진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몸을 돌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전 이만 가볼게요."

"어허, 어딜!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당신 이대로 가면 내가 징계 먹는다고! 그, 그럼SNS 가-!"

"제가 알 바는 아니잖아요."

"오늘 설거지 면제 시켜 드리겠습니다! 살려 주세요!"

"……아니, 그건 아니지!"

"그걸 왜 당신이 결정해!"

"어흠."

진호는 슬그미니 몸을 다시 돌렸고, 그렇게 예능 촬영이 시작되었다.

진호가 이번에 출연한 예능은 옛날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족이 떴다'와 복불복이라는 게임을 합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제목도 '가족이 간다'인 이 예능은 중국 남부 지방에서 거의 국민 예능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 파워가 크네.'

The J와 우리들의 1987때에는 받지 못했던 섭외다.

물론 그 두 개의 드라마로 인해쌓은 인지도에 이번 '별당신'을 통해 얻은 인기가 더해져서 이렇게 섭외를 받은 것일 테지만, 감회가 꽤 남달랐다.

'그리고 장 실장님과 직원들이 일을 잘해줬어.'

중국 진출을 위해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면, 이틀이나 촬영을 하는 이 프로그램의 섭외를 고사했을지도 몰랐다.

"흐랏차!"

"하앗!"

진호는 미션 때문에 요란을 떨며 장작을 패는 두 명을 보곤 속으로 웃고 말았다.

'가족이 떴다 출연자들과 성격까지 비슷하네.'

당시 까불이라 불렸던 김재석과 허세형, 이수로.

그 두 명이 중국인이라는 탈을 쓴 채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아, 나도 장작 패고 싶다.'

오늘 하루 운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힘을 쓰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지금의 흐름은 중국 김재석과 이수로의 삽질 개그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기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대나무로 만든 긴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 것으로 비주얼을 채우기로 했다.

"……와."

'좋네.'

차조차 다니지 않은 한적한 중국 시골의 정경은 한국의 시골과 또 다른 멋이 있었다. 방금 전 청소를 하며 집안 곳곳을 둘러봐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이제야 이국에 왔다는 느낌이 물씬 난다고 할까…….'

빌딩과 차들이 많은 상해에서는 크게 느낄 수 없는 감상이었다.

진호는 이내 진심으로 중국 시골의 풍광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아래로 늘어트린 손을 할는 새끼강아지들이 마음을 더욱더 평온하게 만들어 갔고, 제작진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이거지!'

시청자가 눈살을 찌푸릴 만큼 작위적이거나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진호의 동물 교감 능력이 확연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니, 넋 놓고 볼 만큼 아름다웠다.

"이거 마셔요."

"아, 감사합니다."

콧속을 파고드는 국화꽃 향기에 진호의 표정이 느슨하게 풀렸다.

호록!

"와."

"부엌에 말린 국화꽃이 있어서 한번 만들어 봤는데 입에 맞아요?"

"입맛에 맞는 정도가 아닌 데요?"

진호는 30대 초반의 여성 출연자 리시시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고, 흐뭇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영화도 찍었다면서요?"

"어? 그건 어떻게?"

중국 연예인이 한국 연예인의 사정을 알고 있기에 더욱 놀라웠다.

"제가 한류에 관심이 많아서요. 얼마 전까지 떠들썩했잖아요. 그래서 어떤 내용의 영화를 찍은 거예요?"

"아."

진호는 영화 내용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을 했다.

그녀의 눈이 순간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와, 재밌겠네요. 난 그런 소소한 이야기가 좋더라. 그러면 중국에도 상영하는 거예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한국에는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거든요."

"아아, 이해했어요."

진호는 고개를 주억이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 영화, 느낌이 좋네.'

진심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라서 더 기분이 좋았다.

리시시는 입가가 꿈틀거리는 진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역시 멋있어.'

진호는 나름 패셔니스트라 불리는 중국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디올을 비롯한 10개 패션브랜드의 메인 모델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CG라고 해도 이런 얼굴을 만들수 있을까?'

새끼 강아지들과 노는 모습은 정말 영원히 보관하고 싶을 정도로 힐링 그 자체였다.

그렇게 눈을 정화하던 그녀는 피디가 소리만 요란하게 내는 둘을 향해 손짓을 하자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일하자.'

그렇게 두 남자에게 다가간 그녀는 둘이 만든 결과물에 그럴 줄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아니, 남자 두 명이서 한 시간 동안 겨우 이것만 팬 거야? 내가 진짜 게스트 보기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어디 가서 남자라고 하지 마!"

"부끄럽다니! 너 도끼로 장작 패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그래. 우리니까 이 정도나 팬 거야. 저기 곱게 자란 것처럼 보이는 진호 씨는 도끼조차 제대로 들지 못할걸?"

허세형, 이수로 같은 배우가 손짓을 하자, 피디가 리시시에게 손짓을 할 때부터 들어갈 타이밍을 보고 있었던 진호는 여유롭게 몸을 일으켰다.

'듣던 것처럼 성격들이 좋으시네.'

그들의 대화는 진호를 깔아뭉개려는 게 아니라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다. 중국에 이름을 알리러 온 한국 연예인에게 매력을 발산하라고 말이다.

"괜찮다면 제가 장작을 패 봐도 될까요?"

"어휴. 안돼요. 그런 몸으로 장작 패다가는 다쳐요."

"괜찮아요. 저 운동 많이 하거든요."

"그래도……."

"오우! 남자! 그래, 한번 해 봐요. 남자라면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지!"

한 명은 말리고, 한 명은 부추긴다. 물러서지 못하도록 말이다.

분량을 만들기 위한 둘의 기가 막힌 합에 순간 웃음이 터질 뻔한 진호는 중국 이수로가 넘겨주는 도끼를 받아 들며 자세를 잡았고, 가족이 간다 출연자들은 살짝 물러나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듯한 눈빛을 지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느낀 진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도끼를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내려 쳤다.

부웅! 쩍! 텅텅!

"어?"

"응? "

진호는 반으로 갈라져 바닥을 뒹구는 장작과 이쪽을 번갈아 보며 불신 어린 표정을 짓는 그들을 향해 씩 웃어 주었다.

"쉬운데요?"

판이 깔렸으니 제대로 놀아 봐야했다.

* * *

"아니, 이게……."

세 명의 출연자들은 눈을 껌뻑였다.

성인 남성 허벅지만한 두께의 장작이 쩍쩍 갈라지더니 순식간에 미션으로 처리해야 할 장작을 모두 해치워 버렸다.

'이게 이렇게 빨리 끝날게 아닌 데?'

"으휴.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힘들기는 무슨……."

리시시의 핀잔에 두 배우는 억울함에 몸부림치며 소리 없이 항변했지만, 당연하게도 묵살되었다.

"진호 씨, 저 바보 둘은 내버려두고 이리 와요."

유구무언인 두 남자는 등을 돌리는 리시시를 보며 입을 뻐끔거렸고, 촬영장엔 웃음이 터졌다.

"푸하핫! 좋았어! 끊어갑시다!"

피디가 외치자 두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진호 씨 감각 있는데? 던지니까 바로 받네?"

진호는 김재석 포지션인 배우를 향해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기회를 주셨는데 바로 받아야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는 진심이었다. 진호는 이들의 배려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아니, 이건 진호 씨가 잘한 거야. 이렇게 줘도 받아먹지 못하는 애들이 많거든. 역시 원조의 나라는 다른 가 봐."

"그러게. 그런데 힘이 얼마나 좋은 거야? 린펑보다 좋은 거 아냐?"

쑤린펑. 전직 축구 선수 출신 방송인으로, 힘이 좋고 승부욕도 강해서 '가족이 간다' 내에선 한국의 이종국 같은 포지션이다.

'장 실장님이 말하길, 사람은 좋은데 승부욕이 강해서 가끔 곤란 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던데…….'

잠시 걱정이 들었던 진호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도전해 오면 받아 주면 되는거지.'

승부욕은 진호도 만만치 않았다.

"흐흐. 오늘 저녁엔 맛있는 거 해드릴까요? 아까 부엌 보니까 식재료가 좀 있던데. 상하이 차이판과 성지옌빠오, 샤오롱빠오 어떠세요?"

상하이 차이판은 상해식 볶음밥이라 생각하면 편하고, 성지엔빠오는 돼지고기호빵, 샤오롱빠오는 한국사람도 잘 아는 소룡포다.

"아니, 그런 것도 만들 줄 알아요?"

"상해와 홍콩, 마카오 요리는 대부분 만들 줄 알아요."

"와…… 진짜 재주 많네."

"정말 외계인인 건 아니죠?"

"아닙니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야채를 캐러 갔던 출연자들이 복귀했다.

그 순간 리시시는 진호에게 다시 차를 권했고, 두 남자는 척척 걸어들어오는 쑤린펑을 향해 달려갔다.

"린펑!"

"진짜 너 어디 갔었냐! 시시 쟤가 너 없다고 우리를 얼마나 무시한 줄 아냐?"

"뭐? 시시가? 왜?"

두 남자는 손과 발을 다 써 가며 방금 전의 상황을 설명했고, 쑤린펑은 깜짝 놀랐다.

"뭐? 벌써?"

거의 반사적으로 장작이 쌓여 있는 곳을 보았던 쑤린펑은 '진짜네'라고 중얼거리며 진호를 응시했다.

'아, 승부욕 타올랐나 보네.'

진호는 활활 타오르는 그의 눈을 보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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