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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38화 (238/424)

10권 13화

붉은색의 물건과 도자기, 명화가 전시되듯 걸려 있는 화려한 사무실 안, 웨이양이 서류를 보고 있다.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눈빛은 썩 좋지 않았다. 서류에 적힌 내용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똑똑똑!

"들어와."

문이 열리며 40대의 중년인이 들어 왔다.

"무슨 일이지?"

성큼성큼 걸어와 커다란 책상 앞에 선 그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입을 열었다.

"손자분께서 방금 막 크랭크업을 하셨다고 합니다."

크랭크업은 모든 영화 촬영이 끝났다는 소리다.

웨이양의 눈이 빛났다.

"문체부 선정은?"

"훼방꾼들이 있다고 합니다."

"훼방꾼?"

웨이양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졌다.

"한국 대형 제작사나 배급사, 대기업을 등에 업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흠……. 하긴 한국도 우리처럼 인맥이 일의 성패를 가르기는 하지."

물론 그것도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성패를 가를 기회조차 주지 않지만 말이다.

그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런 상관의 변화를 알아첸 중년인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건 손자분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흠?"

"구성그룹, 아니 구성건설이 손자 분의 배경이 되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건 무슨 말이지?"

"구성건설의 사장인 구정경의 아들과 손자분이 같은 학과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호오? 그게 그렇게 된 관계였나? 그렇다면 이번 구성건설의 주가 상승 호재는……"

"손자분의 손길이 닿아 있지 않나 싶습니다."

"허허, 녀석. CM송을 제작했다기에 의아했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

진호가 비즈니스에 들어가면 아주 냉철해진다는 건 웨이양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 진호의 성격상, CM송을 제작했다는 게 의문이었다.

시간 대비 이익이 적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와 첫 경험'을 좋아하는 성격을 봐도 그렇다. CM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었으면 이미 진즉에 했을 진호였다.

굳이 대기업이라는 모험을 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구성건설이 대기업이라서 그 퍼주기 좋아하는 성격과 연관 짓지 못했어. 친한 선배의 아버지였던건가."

"이번 한국 명절인 설에 구정경 사장의 자택을 찾았다는 정보가 입수됐습니다. 손자분이 구정경 사장의 자택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습니다. 팬이 찍었습니다."

진호를 마크하는 것이냐며 화를 내려고 했던 웨이양은 부하 직원이 급히 붙인 뒷말에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밀접한 관계가 맞군. 보통 친한게 아니야."

명절에 가족이 아닌 남의 집을 찾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니 뒷배를 자청한 것일 터였다.

"뒷배의 힘이 비슷해졌다라……."

'그렇다면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겠군.'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던 웨이양이 입을 열었다.

"별에서 찾아온 당신을 수입할 방송사를 어디로 선정했었지?"

"북경 TV와 상하이 TV로 하라 하셨습니다."

"그래. 중앙텔레비전은 아직 이르다고도 했지."

진호는 아직까진 중국인의 대다수가 모르는 한국 연예인일 뿐이었다.

"그리고……."

"흠?"

"마카오 케이블 TV에서도 별에서 찾아온 당신을 수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마카오에서?"

"창 가문이 움직였습니다."

"창이라면…… 테드 창?"

웨이양의 머릿속에 후덕한 인상을 지닌 60대 남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광전총국의 기관장인 웨이양이 기억하고 있을 만큼 대단한 존재인 테드 창.

"……그래, 진호가 예전에 찍은 더 씨프에서 나온 카지노가 테드 창의 소유였지. 그에게 딸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진정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현재 지니어스 마카오 지부의 큰손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The J의 투자자였던 카지노 연합에 그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웨이양은 웃고 말았다.

"창의 여식은 대체 언제 어떻게 꼬셨는지."

"아직 정확한 관계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측근조차 모르는 테드 창과 진호가 연관되었다는 것보다는 그 가설이 더 신빙성 있지 않나?"

맞는 말이다. 신출귀몰한 테드 창의 행적은 중국 내 정보기관도 모르고 있었다.

'아주 세상 모든 여자는 다 흘리고 다니는구만……. 그래, 내 손자 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인 웨이양이 흡족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중국판 리얼 정글에 가다 아마존 편을 방영하라고 해."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진호의 본격적인 중국 데뷔는 말이다.

"그리고…… 아니, 구성건설이 진호를 도와준 보답은 저우지엔과 이야기를 해 봐야겠군."

그렇게 중국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 *

뚝딱뚝딱! 지이이잉!

수많은 인부들이 건축 자재를 자르고 붙이는 어지러운 공간.

안전모를 쓴 진호와 그의 아버지 이형만이 그 입구에서 있다.

진호는 잘하고 있는 건가 의구심을 품고 있지만, 이형만은 넋을 놓고 있었다.

"……아들아."

"네?"

"월세로 하려는 거 아니었냐?"

"아, 그러면 원가가 상승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냥 건물을 샀어요."

"겨우 그런 이유로?"

화들짝 놀란 이형만이 어이없다는 듯 보자 진호는 코웃음을 쳤다.

"겨우가 아니죠. 이 비싼 강남 땅에서 그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요?"

"그렇다고 7층짜리 건물을 사버려?"

그랬다. 진호는 아버지 이형만에게 빵집을 열어 주기 위해 강남 번화가에 있는 7층짜리 건물을 사버렸다.

"좀 비싸긴 했지만, 다달이 들어올 월세를 생각하면 투자를 할 만하더라고요. 아버지와 엄마 노후자금도 되고."

덕분에 작년 한 해 번 수익 중 반절이 날아갔지만, 그 나머지 반절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였다.

'어차피 시스템 트레이딩 프로그램으로 계속 자산을 불려 갈 예정이라서 이것도 곧 복구될 테니 큰부담도 없고.'

"축하드려요. 이제 아버지도 건물주시네요."

"……허허. 출퇴근하며 서울에 높은 건물이 참 많지만, 내 건물은 하나 없다 한숨을 쉬었는데……"

80평대 아파트도 생겼고, 강남에 7층짜리 건물도 생겼다.

모두 아들 덕분이었다.

진호는 아버지의 표정이 오묘하게 일그러지자 뿌듯해졌다.

'아버님께 감사해야겠네.'

이번 설에 구정경의 집을 찾은 진호는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빵집에 관한 이야기도 하게 됐는데, 구정경은 그런 건 잘 알아보지 않으면 사기를 당한다며 직접 이 건물의 주인과 연결시켜 주었다.

아버지 이형만이 건물주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매매 쪽으로 생각하고 있던 진호로서는 참 고마운 제안이었다.

거기다 전 주인이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기 기존에 상주하던 업체들에게 권리금과 이사 비용을 지불하고, 새로 입주할 건물도 알아봐 주며 계약을 해지했기에 계약 문제도 깔끔했다.

'본인 소유의 빌딩들이라고 했지? 그러면서 영화계도 참 인맥이라는 말을 하시긴 했는데……. 역시 그건가?'

올해 영화판엔 문체부 선정 중국상영이라는 상품이 걸려 있다.

그에 진호는 엄청난 각축전이 될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배우와 감독뿐만 아니라 스폰서까지도 말이다.

선정만 되면 부와 명예가 따라오는데 기업이 그걸 놓칠 리가 없었다.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에 기업명만 넣을 수 있다면, 중국 정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이거 큰 빚을 진 것 같은데……."

코리안 쉐프의 스폰서 중 한 곳으로서 힘을 쓴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성격상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제법 심각하게 고민되었다.

"진호야, 대출받았니?"

"네? ……아뇨. 그 이야기가 아니에요."

진호는 현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고, 이형만은 한숨을 내뱉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나 보구나……. 그리고 그런 문제라면 보답을 서운하지 않게 해 드려야 한다. 형처럼 지내는 선배 아버님이니까 더더욱."

예의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지켜야 한다는 게 이형만의 지론이었다.

"당연히 그래야죠."

구정경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도와준 것 같으니 아들의 마음으로 갚아야 했다.

'시스템 트레이딩 프로그램으로 합법적 비상금을 늘려 드릴까? 아님 회계시스템을 하나 개발해서 드릴까? 구성 장학재단에 피아노곡을 보낼까? 엄마 손맛 스킬 주인공이 만든 도시락 레시피를 드려? 아님 빵 레시피?'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 이것도 참 고민이었다.

진호는 천천히 고민해 보기로 했다. 당장이 아니라도 살아가다 보면 갚을 기회가 분명 생길테니 말이다.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그런데 그 아가씨와는 잘 되어가니?"

"아버지 아들입니다."

"잘되어 간다는 소리구나."

"아버지 화법에 엄마 외모를 타고났으니까요. 흐흐흐."

"나중에, 아주 나중에 소개시켜줘. 이 아빠는 괜히 벌써부터 부담주기 싫으니까. 연애는 본인들 간의 문제지, 부모의 문제가 아니잖아."

"오'"

"이 아빠가 좀!"

둘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시계를 본 진호는 아차 하며 인부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쉬었다 하시죠! 간식 시간입니다-! 오늘 오전 간식은 멜론빵에 직접 만든 감귤 주스에요!"

……텅! 스윽!

"아이고, 우리 사장님 아드님께서 오늘은 멜론빵을 만드셨나 보네!"

"크흐! 내가 진짜 먹을 시간만 기다려진다니까!"

"이렇게 좋은 의뢰인은 얼마 만인지!"

"자, 쉬었다 합시다!"

사람들은 입구로 걸어 나왔고, 진호는 이형만을 바라보았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데이트라고 했지? 외박이냐?"

"봐서요."

짓궂은 아버지의 질문에 씩 웃으며 대답한 진호는 안전모를 벗으며 몸을 돌렸다.

"늦으면 문자만 줘! 안 그러면 네 엄마 삐진다!"

"넵!"

근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진호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타다다다닥!

이서형이 오는 동안 노트북으로 업무 통합시스템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제작하고 있던 진호는 잠시 쉴 겸 해서 시스템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켰다.

"흐음."

'10일 만에 0.5 퍼센트 수익이라…….'

"괜찮네."

저번에 가상으로 구동했을 때와는 달리 설정한 값대로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것도 꽤 재밌단 말이지."

돈이 늘어나는 게 보여서 더욱 그랬다.

'한 반년쯤 돌린 후부터 투자금을 늘려……."

흠칫 무언가를 느낀 진호는 노트북을 닫아 가방에 담으며 뒤를 보았다.

딸랑.

커피숍 문이 열리며 청바지에 구스다운 점퍼를 입은 이서형이 들어왔다. 진호를 발견한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다가 진호의 옆에 놓인 사각 가방을 보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우리 하루 묵고 와요?"

"쿨럭! 그것까진 저야 모르죠. 오늘 데이트 코스는 서형 씨가 짜기로 했잖아요."

"그러면 그 가방은 뭐예요?"

"패션 아이템이요. 서형 씨의 핸드백처럼요."

"아아, 남자도 이런 패션 아이템이 있군요."

"어? 지금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

"일어나요. 배고파요."

"아, 그래요? 여기 카페가 케이크로 유명……"

"먼저 나가 있을게요."

휙 몸을 돌려 사라지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 피식 웃은 진호는 가방을 메며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고 나간 그는 볼이 발개진 채 이쪽을 원망스럽다는 듯 보는 이서형의 눈빛에 절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 어디 가요?"

천연덕스런 진호의 모습에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는 이내 환하게 웃었다. 진호로서는 굉장히 불길한 미소였다.

"동물원이요."

"네?"

"동물원 갈 거예요. 한국에서 제일 큰 동물원."

"어? 잠깐?"

"가요!"

진호는 발을 떼는 그녀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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