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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28화 (228/424)

10권 3화

달리는 차 안, 뒷좌석에 앉은 웨이양이 서류를 보고 있다.

보조석에 앉은 경호실장은 그런 그의 모습을 백미러로 지켜보며 입술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 기색을 눈치첸 웨이양이 입을 열었다.

"말해."

"……손주 되시는 분이 찍을 영화를 꼭 집어 말하시지 않은 이유가 있으십니까?"

탁!

서류를 덮은 웨이양이 경호실장을 보았다.

"그래, 네가 날 경호하는 것도 몇년 남지 않았지?"

웨이양은 중국 특수부대원이었던 그를 경호실장으로 데려오며, 약속한 기간 동안 일해 준다면 보안국의 제법 높은 자리를 맡게 해 주겠다 약조했었다.

이제 몇 년 뒤면 높은 자리에서 정치를 해야 할 그였기에 이런 질문은 썩 기꺼웠다.

"죄, 죄송합니다."

"좋은 태도인데 죄송은 무슨. 앞으로 궁금한 점이 있으면 계속 묻도록 해. 네가 보안국에서 한자리앉게 되면 그런 걸 물을 틈도 없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손을 저은 웨이양은 턱을 쓰다듬었다.

"이유라……."

그는 한국에 오기 전 보았던 한 영상을 떠올렸다.

외국 연예인 규제 완화에 관하여 한국과 1차 회담을 나눈 후 중국을 대표하는 한 방송국 사장이 보내온 영상.

진호가 정글 속에서 동물을 조종하는 듯한 신비로운 영상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그러며 생각했다.

진호의 중국 진출이 성공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터였다.

그런데 한국의 멋을 아름답게 살리는 영화마저 찍는다고 했다.

그가 진호에게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잘됐다고 생각한 부분이 이 점이었다.

잘만 기획하면 성공적인 중국 진출을 넘어,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는 플랜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래서 일단 중국판 리얼 정글에 가다 아마존 편을 스킵시켜 놓았다.

"내가 그 자리에서 진호의 영화 이야기를 꺼냈으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설마 한국 정부에서 손자분을 마크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 점도 있지."

그렇지 않아도 아슬아슬하다.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으로 이용될수도 있다.

그는 그 점도 우려되었다.

"하나 정말 무서운 점은 진호가 나를 멀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

웨이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놈 성질이 얼마나 드센지 모르지? 자신의 성공에 내 손길이 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분명 아주 크게 화를 낼 게야."

경호실장은 혼란스러워 했다.

"……지, 진심이십니까?"

"그럼?"

"……."

"바보 같은. 그 아이에게 국경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보느냐."

"……."

"언제나 하늘의 뜻을 만드는 아이다. 거기다 능력의 끝을 알 수가 없는 아이지. 한국 정부? 본국? 하! 장담하마. 그 아이는 그런 압박이 들어오는 순간, 그곳에서의 모든 연예계 활동을 털어 버리고 프랑스든 영국이든 미국이든 날아가 버릴 거다."

경호실장은 설마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웨이양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많은 피아니스트를 발굴하고 곡을 주어 성공시켰다. 그 본인의 실력은 그 피아니스트들보다 상위에 있지. 거기다 빵을 만드는 실력은 어떻고? 그 능력 하나로 에드워드 왕자에게 불려 갔어. 거기다. 거기다. 거기다."

"……."

그제야 경호실장은 웨이양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게 됐다.

"연예인은…… 그의 전부가 아니었군요."

'그렇기에 웨이양 님의 그늘이 필요 없다.'

중국 연예계 관계자, 아니 중국을 찾는 세계 각국의 미디어 관계자 라라면 그 누구라도 바라는 그 그늘이 말이다.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전부? 흥."

콧방귀를 뀐 웨이양이 눈을 매섭게 빛냈다.

"진호는 연예인이라는 행복한 족쇄를 푸는 순간 무엇이 될지 모르는 아이다. 물론 그딴 것보다는 날 멀리하는 게 더 두렵지만."

"……하나 손자 분의 영화가 채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편이 나을 수도 있지.'

한국 정부가 진호와 웨이양의 관계를 두고 명확한 확답을 내리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진호에게 물어보기에는 웨이양이 너무 큰 거물이다.

그들은 명확한 확답을 내리기 전까지 결코 진호를 찾지 않을 터였다.

'아니, 확답을 내린다고 해도 찾지 못하겠지.'

진호의 기분이 상해 버리면 손해보는 것은 한국 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 아이는 이번에도 멋지게 해낼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 내고 한국의 상징이 될 게야."

웨이양은 진호의 실력과 운을 믿었다.

그러니 그 전까지 중국판 '리얼 정글에 가다, 아마존' 편을 방영시키지 않으면 되었다.

진호의 성공을 위해서 말이다.

"……."

"챙이 내일 새벽에 들어온다고 했던가?"

"예. 내일 9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광전총국의 대외적인 얼굴인 챙.

웨이양을 대신해 기자들에게 사진이 찍힐 이였다.

고개를 끄덕인 웨이양은 다시 서류를 보았고, 차 안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음 날, 한국이 제법 시끄러워졌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관인 광전총국이지만, 그 힘은 방송통신위원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중국 기관의 장이 한국을 찾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자들은 대서특필을 하였고, 광전총국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도 광전총국을 기억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날 저녁 웨이양과 리즈한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 준 진호는 다음 날아쉬움 가득한 배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 * *

"컷! 오케이-!"

"……끄아아아아!"

"끝났다-!"

모든 촬영이 끝났다.

만세를 외친 스태프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고, 서재같이 꾸민 세트장에 놓인 소파에 일어난 진호와 김주아는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며 아쉬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수고했어요, 누나."

"……크, 아쉽다. 우리 진호랑 키스를 좀 더 해야 했는데! 피디님, 작가님. 우리 키스신 좀 더 넣죠! 나 시간 많은데!"

"네, 안녕히 가세요."

김주아의 헛소리를 가볍게 무시한 진호는 김태유 피디와 최은수 작가에게 다가갔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진호 씨도 수고 많았어. 나 부국장 되면 알지?"

"그럼요. 괜찮은 작품 있으면 오히려 제가 부탁드릴게요."

"크으. 든든하다, 든든해!"

"흐흐. 작가님은 이제 어쩌실 거예요?"

"어쩌긴 뭘 어째. 이젠 푹 쉬어야지. 내년까지 안식년 가질 거야."

"아, 그건 아쉽네요."

"대신 내후년에 작품 쓰면 알지?"

"음. 보고요?"

"뭐?"

"흐흐. 농담이죠. 작가님 작품은 무조건 해야죠."

"흥! 가서 화장이나 지우고 와. 술 마시러 안 갈 거야?"

"옙!"

진호는 냉큼 걸음을 옮겼고, 최은 수 작가는 그런 진호의 등을 빤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김태유 피디도 마찬가지였다.

"푸흐흐. 최 작가가 까일 때도 있네?"

"재는 그래도 돼요."

"그건 그렇지."

진호는 매 작품마다 다른 연기를 한다.

발성이나 몸짓, 그 모든 게 겹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이 작품을 하다 보면 진호가 데뷔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게 아니라 수십 년은 연기를 한 중년 배우를 보는 듯했다.

천재란 단어 말고는 진호를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미친 비주얼에 주연급 연기파 중년 배우의 연기력.

감독이나 작가가 매달려야 하는 이였다.

"이번 작품 어떻게 될까?"

"당연히 대박이죠. 김 피디님이 헛짓만 안 한다면."

"……진짜 그래야겠네."

아마 어벤져스급 편집팀을 꾸리지 않을까 예상되었다.

"……수고했어요."

"그래. 최 작가도 수고했어. 최작가도 나 부국장 되면 알지?"

"몰라요."

"허. 그럴 거야?"

"네, 그럴 거예요. 내가 땜빵을 왜 해요? 진호야 오빠의 영향력을 높여 줄 와일드카드가 되어 줄 테지만, 난 땜빵밖에 더 돼?"

"아, 진짜 좀 살려 주라. 부국장까지 왔으니 국장도 달아야지."

"그건 김 피디님 역량이고요. 흥!"

"최 작가! 은수야! 에이, 진짜! 야, 뭘 지금 치우고 있어! 내일, 아니 모레 치워! 모레!"

"옙-!"

그렇게 촬영장은 조용해져 갔다.

* * *

드라마 촬영은 모두 끝났지만, 진호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OST가 남았기 때문이었다.

틱!

"다시."

-내 지난 기억 속에서 그 아픔 속에서

틱!

"다시. 조금 더 깊게."

-……내 지난 기억 속에서 그 아픔 속에서

틱!

"후. 조금만 쉬었다 합시다."

녹음 부스 안에 있던 진아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걸어 나왔다.

그녀는 녹음실 안에 있는 진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녹음실을 빠져나갔고, 진호는 음향기기 앞에 앉아 있는 50대 중년인을 보며 옅게 웃었다.

"깐깐하시네요."

"당연히 깐깐해야지. 태유 형이 현역으로서 마지막으로 하는 작품인데, 허투루 할 수 있나. 이 배우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든든합니다."

눈앞의 중년인은 진호가 촬영한 드라마의 OST를 담당하는 음악감독이었다.

"그보다 좀 어때요?"

"재 목소리야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상태에다가 누가 딱 맞춤 곡으로 써 놔서 내가 할게 없는데 뭘 물어?"

음악 감독이 계속 '다시'를 외친건 진아가 못 부르는 게 아니라 그녀의 모든 것을 끌어내고 싶어서다.

"진짜 이런 곡은 어떻게 만드는거야?"

답을 하지 않을 듯한 진호의 모습에 음악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좀 아쉽기는 하다. 이곡, 조금만 비틀면 진아 말고도 어울릴 만한 애가 있는데."

"아, 그분을 말하시는 거죠?"

OST의 강자가 한 명 있다. 누구라도 동의할 원탑인 여가수.

"응. 진아 재는 3번 트랙이 더 잘 어울리지 않아?"

"저도 그분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닌데, 나이가 좀……."

"극 전체가 올드해지게 비춰질 수 있다?"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아 이모가 40대다 보니 메인곡만큼은 같은 40대가 좀 꺼려지게 되더라고요."

드라마를 보며 OST를 들을 때는 상관없지만, 그 이후 음원 사이트에서 OST를 찾아 들을 때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올드하게 비춰질 수 있었다.

"그냥 이 배우가 연출해."

"흐흐흐. 그리고 진아 누나랑 약속한 것도 있고요. 일본에 진출하기 전에 진아 누나의 이름값을 높여 두기로 했거든요."

"응? 일본? 영국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사 갈 테니까요."

"그렇지…… 태유 형 드라마라면 무조건 성공할 테니까. 중국에서도 사 가면 좋겠다. 보너스 더 받게."

"그러면 더 바랄 게 없죠."

둘은 곧 있으면 다가올 핑크빛 미래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 맞아. 이번에 장영진 감독님 작품 들어간다면서?"

"……그게 여기까지 소문났어요?"

3일 전 통화했을 때까지만 해도 출연이 확정된 배우는 진호 자신뿐인 상태였다.

"그게 아니라, 요새 영화판이 시끄럽잖아."

"음?"

"몰라? 지금 문체부에서 중국에 상영할 영화를 찾고 있잖아."

"아! 그 한국 연예인의 중국 활동에 관한 규제 완화 등이 있는 그 협약 말이죠?"

"응응. 그 협약의 상징으로 중국에 상영할 한국의 멋을 살릴 영화를 찾는데, 장영진 감독님 작품이 후보군에 올랐어. 지금 문체부 사람들이 충무로 신인들 시나리오까지 훑고 있어."

"오?"

'아니, 그걸 속였어?'

"어쩐지……."

갑자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시나리오들이 쏟아졌었다.

"뭐랄까. 엄청 부담이 되는데요? 꼽히든, 꼽히지 않든."

"아마 전쟁이 벌어질걸?"

"그럴 것 같네요."

아무래도 내년에는 한국의 멋을 살린 영화가 대거 출품될 것 같았다. 독립 영화로도 말이다.

'쉬고 계시는 대선배님들까지 다나오시겠네.'

음악 감독의 말처럼 내년 영화판에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것 같았다.

"흠. 아,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걔 위로해 주려고?"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스킬: 재생사]가 지금은 진아를 건드리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뇨. 한식을 배우러 가야 하거든요."

"한식?"

"네. 한식."

정확히는 스킬을 익히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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