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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24화 (224/424)

9권 24화

짹짹짹!

어스름히 떠오르는 해가 높이 솟은 나무들을 비집으며 세상을 밝히려 노력하는 새벽,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새소리가 아늑한 집안에 흘러 들어오자 대나무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있던 진호가 눈을 떴다.

"……어 그그그그!"

머리맡에 놓인 물로 지난밤의 갈증을 채운 진호는 코를 고롱고롱 골며 꿀잠을 자는 서정문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스읍! 하."

온몸을 정화시키려는 듯 깨끗한 물기를 머금은 새벽의 서늘한 바람이 작은 동물들과 함께 다가왔다.

"찌직! 찍?"

잘 잤냐고 물어 오는 다람쥐를 닮은 작은 동물 아구티들. 진호는 그들의 접근이 익숙하다는 듯 집입구 옆에 매달아 놓은 바나나들을 떼어 잘게 뜯어 던졌다.

"찌지직!"

"……이 자식들이 벌써부터 편식하려고 하네? 혼날래?"

"찌익……."

콧방귀를 뀐 그는 집 근처에 따로 지어 놓은 커다란 움막으로 향했고, 아구티들은 다급히 바나나를 입에 욱여넣으며 진호의 뒤를 따탔다. 지붕만 올려놓은 움막 안에 대나무로 만든 선반들 안에서 말라 가는 수백 장의 점토 벽돌들과 점토 기와들.

툭툭.

"내일이면 다 마르겠네."

어제 하루 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 진호는 움막 옆에 놓인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강가로 향했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강에 도착하니 원색의 앵무새들과 나비들이 진호를 반겼다.

"꾸엑! 꽥!"

"꽤에엑!"

"……아냐. 그러지 마. 너희 자식들을 포기하지 마."

알을 넘겨주려는 앵무새들을 겨우 말린 그는 강 안으로 들어가 팔을 집어넣어 휘휘 저었다.

그리고 이내 몸통만 한 크기의 대나무 통발을 들어 올렸다.

"으랏차!"

푸드덕, 퍼드득!

"크으. 오늘도 만선이네."

통발 주둥이를 걷어 내자 피라니아와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미안하다. 먹일 입이 꽤 많다."

강가에 쪼그려 앉은 그는 들고 온 대나무 바구니 안에 있는 작은 돌칼을 이용해 내장과 비늘을 제거해 갔고, 아구티들은 진호가 던져 주는 내장을 넙죽넘죽 받아먹었다.

"진짜 나 한국 가면 너희들은 어떻게 살래?"

한숨을 폭 내쉰 진호는 이번엔 물고기 몇 마리를 토막 내 강가에 던졌다.

그러자 수면 위로 새끼 악어들의 머리가 드러났다.

물으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온 새끼 악어들은 배가 부르도록 배를 채운 후에야 흩어졌고, 진호도 그즈음 해서 모든 물고기 손질을 마칠 수 있었다.

남은 내장과 토막 낸 물고기들을 통발 안에 집어넣어 원래 자리에 다시 설치한 진호는 오직 물고기로 반절 가량 채운 바구니를 어깨에 올린 채 생존지로 복귀했다.

그와 동시에 생존지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지이익!

여정호 피디가 부스스한 얼굴로 텐트를 열며 나왔다.

"일어나셨어요?"

여정호 피디는 맑게 웃고 있는 진호가 들고 있는 묵직한 대나무 바구니를 보며 수많은 말들을 떠올렸지만, 결국 내뱉은 건 한 마디였다.

"굿모닝."

"오늘 아침 메뉴는 바나나를 베이스로 한 샐러드와 직화로 고소하게 구운 피라냐예요. 씻고 오세요."

"탕은 없어?"

"든든하게 옥수수죽은 어떠세요? 어제 간식거리 찾으러 돌아다닐때 옥수수를 발견했는데."

"아니, 그건 또 언제 본 거야?"

"피디님께서 주의력이 부족하신거죠."

"단언하건대 그건 아니야. 내가 정글 경력이 몇 년인데."

"그렇다고 해요."

씩 웃은 진호는 집 앞에 만들어놓은 화덕에 불을 피웠다.

30인분의 식사를 만들고 다 먹기까지 1시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배가 부른 사람들은 파이팅하며 오늘 촬영 준비를 시작했고, 진호와 서정문도 얼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노, 내일 아침부터는 무조건 날 깨워. 알았지?"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따라온 월터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얼굴에 자외선차단제를 펴바르던 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글에서는 월터보다 내가 훨씬 낫다는 거 알죠?"

진호가 [스킬: 갓 오브 워]를 얻은 당시, 월터를 비롯한 다인코프 훈련소 교관들은 서로 쫓고 쫓는 추격 및 생존 훈련의 장소인 정글에서 결코 진호를 찾지 못했다.

아니, 전멸을 당했다.

월터는 짜증마저 내비추며 얼굴을 구겼다.

"……알지. 아는데, 이건 다른 문제라고."

"알았어요. 내일부터는 깨울게요."

아무리 안전한 섬이라지만 무엇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정글에 들어와서 그런지 감각과 신경잔뜩 곤두서 있는 월터.

아마 이대로 방치한다면 그는 오히려 더 힘들어할지도 몰랐다.

이런 진호의 걱정을 느낀 월터는 얼굴을 더욱 구겼다.

"……빌어먹을. 옛날이었다면 이정도 긴장감 따윈 웃으며 넘겼을텐데!"

"큭큭. 아침식사는 먹을 만했어요?"

"현역시절에 네가 동료였다면 난 결코 퇴역하지 않았을 거야."

극찬에 환하게 웃은 진호는 마저 얼굴을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어우, 개운하다."

어젯밤 증류한 물로 씻고 온 서정문의 얼굴에선 피로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물은 얼마나 쓰셨어요?"

"두 컵?"

"내일까지는 쓸 수 있겠네요."

고개를 끄덕인 서정문은 진호 근처에 있는 아구티 한 마리를 안아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은 뭐 한다고 해?"

"글쎄요……."

촬영 스케줄을 제대로 알려 주지 않은 여정호 피디다.

어제 집을 지을 벽돌과 기와를 만들었어도 당장 오늘은 이 섬을 떠나 아마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미지가 가득한 아마존으로 말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촬영 일자가 무려 20일이다.

비행기를 타는 것까지 합하여 오늘까지 총 5일을 소요했으니, 아마존 횡단은 무리더라도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하긴…… 알았어. 난 옷 갈아입고 나올게."

"넵!"

서정문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진호는 돌연한 곳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음?"

무언가, 아니 무언가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물들도 그렇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왜 그래? 맹수라도 다가오는 거야?"

긴장한 월터가 슬그미니 허리 뒤춤으로 손을 가져가자 진호는 신경을 더 집중했다.

"……아니에요. 그냥 관광객인 것 같아요. 꽤 숫자가 많아서 반응한 것뿐이에요."

[스킬: 갓 오브 워]와 [스킬: 나는야, 자연의 왕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 섬에 고작 이틀 반나절만 있었을 뿐인데, 벌써 내 영역처럼 생각했나 보네.'

"아, 그래?"

긴장을 푼 월터는 습관적으로 물었다.

"숫자는?"

"5명? 5분 거리. 아, 비켜 간다."

"……네 그 말도 안 되는 감각은 진짜."

"흐흐. 내가 괜히 타잔이라고 불렸겠어요?"

'방금은 저렇게 나 여기 있어요, 하고 기척을 내뿜기에 알아차린 것이지만.'

정글에 숨어 있는 월터를 비롯한 다인코프 훈련소 교관들을 찾는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껌이나 다름없었다.

월터는 웃고 있는 진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최고의 용병에 버금가는 감각이라는 말이지. 전투 한 번 겪어 보지 못한 일반인이 말이야…….'

"지노, 너 정말 네가 찍는 그 드라마 주인공처럼 외계인 아냐? 아니, 난 그냥 이제부턴 너를 외계인이라고 부르겠어!"

"아, 그건 좀……."

하지만 뱉은 말을 결코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진호는 촬영 준비가 한창인 여정호 피디를 가리켰다.

일반인인 진호가 알아차렸다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인탓에 대신 이야기를 전달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 오케이."

월터는 여정호 피디에게 다가갔다.

"디렉터."

"음? 왜 그러십니까?"

"여기 섬, 저희가 빌린 거 아니었습니까?"

"아뇨…… 아마존은 그 누구라도 일정 구역을 전세 낼 수 없습니다."

이권이 여러 갈래로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까지는 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양해를 구할 수는 있지만, 아예 통째로 섬의 출입을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관광객들이 들어온 것 같군요."

"아……."

순간 여정호 피디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미 특수부대출신으로 다인코프라는 걸출한 민간군사기업의 용병으로 활동한 월터의 예민한 감각이 뭐랄까 남자의 로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유념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월터는 진호를 보며 끄덕였고, 진호는 다시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잠시 뒤 서정문이 집 밖으로 나오면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아.'

낯빛을 미세하게 굳힌 진호는 등에서 덜렁거리는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를 고쳐 메며 진로를 틀었다.

"오, 럭키. 카사바다."

현지 가이드와 안전 팀은 카사바군락을 발견한 진호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들보다 실력이 좋은데?'

'정말 할 일이 없군.'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찾는 건 진호가 한 수 위였다.

아니, 아마존의 악몽이나 다름없는 콩가 개미를 비롯한 벌레가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비법 등을 생각하면 진지하게 가르침을 청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씨알이 굵은 카사바를 채취해 옥수수들이 담긴 바구니에 던져 넣던 진호는 돌연한 숨을 내쉬었다.

'얼마 못캤는데……."

"쩝."

'진짜 아마존 안쪽으로 들어가자고 하던가 해야지, 원.'

고개를 저은 진호는 바구니를 짊어졌다.

오늘 아침 느낀 관광객들로 보이는 이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과 마주치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

'아, 그런데 그쪽엔 뱀이…….'

"꺄아아아악!"

'에라이.'

한숨을 푹 내쉰 진호는 당황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비명이 터져나온 곳으로 향했다. 이미 오디오가 물려 버린 것도 있지만, 사람의 도리상 가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진호는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이리 펄쩍 저리 펄쩍하며 난리를 피우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엥? 방송?"

그것도 어디서 한 번 본 듯한 얼굴들이었다.

'아, 공항에서. 리얼정가 플랫폼을 사 갔다던.'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통보를 못 받았나? 아, 그보다…….'

몸통을 꼿꼿이 세운 채 위협을 하고 있는 점박이 구렁이가 문제였다. 독은 없는 개체라지만, 잘못하면 크게 다친다.

'대체 누가 쟤 꼬리를 밟은 거야?'

사람에게 잘 다가오지 않는 아마존 트리 보아의 꼬리를 밟았다는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돼. 그만."

"츄릅?"

뱀의 고개가 돌려지자 호들갑을 떨던 사람들도 화들짝 놀라 진호를 보았다. 그리고 그 미모에 잠시 넋을 놓았다.

진호는 그런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아마존 트리 보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지금 가까이 다가가는 건 아무리 진호라고 해도 위험했다.

중국인들 뒤에서 언제든 튀어나오려 도구를 꺼내든 채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안전 요원들처럼 말이다.

"지노!"

손을 뻗어 말린 진호는 아마존 트리 보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손을 까딱였다.

"……츄릅."

살짝 울상을 지은 뱀은 빠르게 진호에게 다가왔고, 진호는 뱀이 내보이는 꼬리를 쓰다듬었다.

"어이구. 그랬쪄요. 많이 아팠쪄요. 자, 호-. 아이, 안 아프다. 됐지? 이제 네 집으로 돌아가."

"츄릅."

"찍-!"

진호의 머리 위에 있던 아구티가 털을 세우자 진호는 아마존 트리 보아의 머리를 톡 쳤다.

"아냐. 이건 너 줄 먹이가 아니야. 돌아가."

"치-."

뱀은 머리를 돌려 수풀 속으로 사라졌고, 진호는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중국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한국 리얼 정글에 가다에 출연 중인 이진호입니다."

그들이 이 능력에 의구심을 가지기 전에 화제를 돌려야 했다.

그에 진호는 세상에서 가장 환하고 선한 미소를 지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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