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 19화
'이진호, 아파트 광고 계약! 20억! 나도 이제 톱스타!'라는 제목의 기사가 포털 사이트 연예란에 실리자 대중들은 놀라고 축하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기와 질시를 보냈다.
그것은 의혹이 되어 커뮤니티 사이트를 떠돌기 시작했다. 진호가 과연 20억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의혹이었다.
-당연히 받을 만하지! 이진호가 런웨이 한 번 걸으면 받는 금액이 얼만지나 알고 씨불이는 건가? 세계 2위인데? 솔직히 20억도 너무 적다.
┗ㅇㅈ. 하, 패알못들 너무 많네.
-그건 해외의 인지도고, 한국은 아니지.
┗아니라고? 천 년의 노래와 The J 시청률 얼마였는지 모름? 우리들의 1987은? 그때 그 시절은 천만을 가볍게 돌파하지 않았음?
┗밀리언셀러 노래가 몇 곡인 줄은 앎?
┗그 밀리언셀러 객관적인 건 맞나? 이진호 팬클럽이 사 준 거 아니었음?
-우리들의 1987 ㅍㅎㅎㅎ 그거다른 배우들이 다 한 거 아님? 표정 없이 바둑만 두는 것도 연기였나?
-ㅋㅋ그때 그 시절. 거기서 이진호가 한 게 뭐 있는데? 학교 잘다니는 여대생을 외모로 꼬드긴 대학생?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이 대한민국 민주화가 앞당겨졌던 거다. 네가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되는 대로 씨불일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분들 덕이야.
┗인성 참…… 꼭 영화를 안 본놈들이 이런 말하지.
이렇게 시기와 질시가 만든 의혹과 팩트가 서로 부딪치면서 하루면 사라졌을 이슈를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진호의 차기작이자 최은수 작가의 신작 제작 발표회가 열리며 그 불꽃이 튀는 논란에 기름을 부어 버렸다.
회사회의실에 앉은 진호는 스크린에 투영되는 포털 사이트 뉴스들과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진호, 지상파 드라마 주연 과연 타당한가. 케이블은 케이블일뿐, 지상파는 다르다. 외모로 만든 시청률을 연기력으로 봐야 하나? 와…… 이 사람들은 뒤가 없는 건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예상보다 더 크게 타오르고 있었다.
"타이밍을 뺏겨서 그런지 발악을 하고 있군요."
제작 발표회만 기다리던 그들에게 진호의 아파트 광고 계약은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대기업이 미치지 않은 이상 자격이 되지 않은 이를 광고 모델로 세우진 않을 테니 말이다.
"선을 넘고 있어요."
다미앙의 말에 진호를 비롯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까지 건드리고 있었다.
"케이블 방송국의 자존심과 진호씨가 출연한 드라마 영화의 연출자와 작가들의 능력을 의심하다니……."
본질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건 진호의 연기력이지만, 그걸 지적하기 위해 케이블을 깎아내렸다.
이건 케이블 방송과 연관된 모든 이들을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까득!
회의실을 울리는 섬뜩한 소리에 돌아본 진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보안을 위해 팀 이진호의 회사를 찾은 최은수 작가의 눈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기 때문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김태유 피디의 눈빛도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제 예상보다…… 많군요. 그렇지 않나요, 최 작가?"
"그러네요. 몹쓸 것들이…… 수면 아래에 참 많이 숨어 있었네요."
그녀가 여태까지 보고 들어온 것보다 배 이상은 많았다.
"그동안 입이 근질거려서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참았는지 몰라."
"그래도 다행이군요. 이제라도 살생부를 작성할 수 있어서."
믿고 걸러야 할 언론사들이 추려지고 있다.
방송국과 언론사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라지만, 굳이 이들이 아니라도 대한민국에 언론사는 많이 있었다.
김태유 피디는 핸드폰을 들었다.
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에 한 번 더 기름을 끼얹어야 했다. 치명적인 독이 섞인 기름을 말이다.
"어, 최 편집장. 나야. 응, 이제 기사 내줘. 그래, 다 검거하고 나면 소주 한잔하자고. 껍데기? 좋지."
그렇게 전화를 끊은 김태유 피디는 스크린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기사 올라왔습니다. 스크린에 띄우겠습니다."
김태유 피디, 이진호 직접 뽑았다. 불만이 있으면 내게 말해라.
최은수 작가, 이번 논란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와우, 센데?'
그리고 교활했다.
현재 진호에게 일어나고 있는 자질 논란을 이 사태를 만든 주범들에게 옮겨 놓고 있었다.
실력도 안 되는 것들이 괜한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엄한 사람을 비하하고 있다는 논조의 기사 내용.
그러면서 논란의 중심과 이유를 슬그미니 김태유 피디와 최은수작가에게로 옮겨 놓고 있었다.
즉, 이제부터 진호를 욕하거나 업신여기는 이들은 모두 진호를 뽑은 김태유 피디와 최은수 작가를 욕하는게 된다는 소리다.
진호는 다시금 혀를 내둘렀다.
'이거 반응 좀 있겠는데? 하지만…….'
분명 이로 인해 겁을 먹고 물러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물러나지 않을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게 분명했다. 그동안 침묵하던 김태유 피디와 최은수 작가가 처음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것처럼 현재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반응이었다.
그러니 이것이 최후 통첩임을 모르고 더욱 신나서 달려들 터였다.
그것이 호랑이 등에 오르는 치명적인 행동임을 모른 채 말이다.
그리고.
'한 명도 남김없이 징계를 당하겠지.'
김태유 피디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다른 지상파 방송국 두 곳에도 출입시키지 못하게 만든다고했다.
방송국에 출입하지 못하는 기자.
언론사는 그들을 징치하고 김태유피디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내밀터였다.
'이미 그때는 너무 늦은 것일 테지만…….'
기사는 기자가 썼어도, 결국 그것을 허락한 건 언론사였다. 이번 일로 인해 약점이 잡혀 꽤 오랜 시간 동안 방송국에 우호적인 기사만 쓰게 될 터였다.
"이제 최후통첩도 던졌으니…… 3시간 후쯤 뒤집으면 되는 건가? 그렇다고 했지, 장 실장?"
"그렇습니다, 최 작가님. 3시간이면 쳐내야 할 종자들을 다 고른 후일 겁니다."
"진호야?"
"옙?"
"들었지? 3시간 남았대. 기다리는 동안 목마르지 않을까?"
"……포트넘 앤 메이슨을 구했는데 드릴까요? 영국 왕가에만 납품되는 특급 홍차예요."
최은수 작가뿐만 아니라 김태유피디도 놀랐다.
"아니, 그 귀한 걸 어떻게 얻은거야?"
진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앨리스 루이스라는 팬분께서 주방을 터셨대요.'
어서 와서 디저트를 만들어 달라는 뇌물이었다.
"아무튼 콜?"
"콜! 김 피디님은요?"
"허흠. 그런 진귀한 거라면 독이라도 마셔야죠. 부탁드리겠습니다, 진호 씨."
"옙!"
"진호 씨,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탕비실로 향했다.
3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진호는 사람들을 보며 서늘하게 웃었다.
"이제 기사를 내보내야겠죠?"
* * *
달칵!
어느 한 기사를 클릭한 구정경이 옅게 웃었다.
"시작하려는가 보군."
구정경은 앞에 놓인 서류를 보았다.
'분양률이…….'
전년도보다 높고 빠르다.
새로 입주해 오는 이들도 분명 많아졌다.
분명 그 수치는 미세하지만, 그 미세한 차이에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단위의 돈이 움직인다.
"광고와 CM송도 호평이고."
고급스러움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시장 반응이었다.
"정말 내가 영재 놈 덕을 볼 줄이야……."
타 그룹 브랜드 아파트보다 분양률과 입주율이 높았다.
구성건설이 오랜만에 그들을 누른 것이다.
피식 웃은 그는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네, 사장님.
"지금 이진호, 아니 진호를 펌하하는 언론사 있지? 광고 다 뺀다고 해. 허위 사실로 기사를 쓰는 언론사를 통해 광고를 할 이유 따윈 없다고."
-……그룹 차원으로 움직일까요?
"아니, 건설 광고만. 그 정도만 돼도 경고는 충분히 되겠지."
-네, 알겠습니다.
"김 비서가 직접 움직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타이밍 잘봐서."
-알겠습니다, 사장님.
전화를 끊은 구정경은 다시 모니터 화면 속 기사를 보았다.
"아버님, 아버님 하는데 아버지로서 도움을 줘야지."
그의 입가엔 미소가 맺혀 있었다.
* * *
톡톡톡.
볼펜이 하얀 책상을 빠르게 두드린다.
볼펜을 든 주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증거다.
"……씁! 이거 센데. 역시 구성건설까지 스폰서 12개를 들고 온 놈은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건가?"
"선배, 이러다 나가리 되는 거 아니에요? 구성건설이 저희 네 번째잖아요. 위에서도 말 많아요."
소속 언론사에 네 번째로 광고비를 많이 주는 기업.
"괜찮아. 주연 바뀌고 나면 그때 물고 빨아 줘도 돼. 그 윗선이랑 합의됐어. 내 조회수 봤지?"
"다 악평이잖아요. 이러다 진짜나가리 돼요."
"안돼. 걱정 마. 내가 기자 짬밥이 몇 년인데."
안경을 쓴 40대 중년인 기자는 핸드폰을 보고 혀를 찼다.
'거 더럽게 겁 많네. 벌써 몇 번째야?'
"나 전화하고 온다."
옥상으로 향한 그는 그제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 기자님! 왜 이렇게 통화하기가 힘듭니까?
"바빠서 그래요, 바빠서.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이거 문제 안 되겠습니까? 이거 걸리면 나…….
"안 걸려요. 내가 말하지 않으면 그쪽에서 어떻게 알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보다 주연 되고 나 잊으면 안 됩니다."
-제가 어떻게 기자님을 잊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전화가 끊기자 김 기자는 피식 웃었다.
"경쟁자가 많아서 주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배우가 스폰서로 붙은 기자는 김 기자뿐만이 아니다. 그의 정보에 따르면 진호의 자격 논란을 다루는 모든 기자들 중 다수에게 배우들이 붙어 있다.
'나야 대가만 받으면 되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어디선가 이슈가 튀어나오는 거 아냐?"
이슈의 천사라 불리는 이진호.
"에이, 이번엔 아니겠지."
진호의 활동 반경을 모두 뒤져봐도 연기 쪽으로 이슈가 튀어나올 구멍이 없다. 노래나 피아노 쪽으로 이슈가 나와도 현재 상황에 영향은 끼치지 못한다.
"자, 그럼 이제 시간도 됐으니 최 작가 물 먹이러 가 볼까?"
김태유 피디와 최은수 작가가 기사를 올린 지 3시간 정도 됐다.
강력한 경고로 사태를 진정시켰다고 생각할 그들에게 커다란 물폭탄을 안겨 줄 시간이었다.
그렇게 희희낙락거리며 사무실로 들어간 그는 의아해했다.
사무실이 무척이나 조용했다.
'뭐야? 왜 이래…… 음?'
"헉! 사장님?"
그 옆에서 있는 상사이자, 연예부 부장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김 기자를 발견하자마자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달려왔다.
"너 이 새끼!"
퍼억!
부장의 구듯발이 김 기자의 정강이뼈를 강타했다.
"억!"
"확실하다며! 괜찮다며, 이 새끼야! 판 안 뒤집힌다면서!"
"무, 무슨?"
"BBC에서 최 작가 드라마 수입한다더라! 그것도 네가 지랄해 놓은 이진호 연기력에 반해서-! 거기다! 거기다-!"
"……예?"
김 기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하나는 깨달았다.
'판이 뒤집혔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됐습니다, 최 부장."
다가온 사장이 싸늘한 눈으로 김기자를 노려봤다.
"누구야?"
"예?"
"네가 물주로 삼은 배우 새끼가 누구냐고."
"사, 사장님?"
"……아니, 됐다. 이제부터 내 직원도 아닌데 말해 뭐할까. 이보세요, 김기범 씨. 내가 충고 하나 하자면, 당신 뒤에 있는 배우 데리고 김태유 차기 부국장에게 가서 비세요. 삼류 찌라시에서라도 방송국 드나들며 기레기 짓거리 하고 싶으면.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으니까 구성건설 광고 계약 철회 건에 대한 손해배상은 청구하지 않겠습니다. 씨발, 이걸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 거야?"
'차, 차기 부국장? 김태유 피디가? 구성건설은 또 왜!'
"자, 잠깐, 사장님?"
"뭐해요? 이 사람 끌어내세요. 그리고 최 부장은 구정경 사장과 이진호 배우가 어떤 관계인지 파 보고. 일개 광고 모델을 깠다고 바로 광고 빼는 게 이상하니까. 아무리 구성건설 모델이라고 해도, 여태껏 구성에서 말도 없었잖아요?"
"사, 사장님! 사장님-!"
그렇게 김 기자뿐만 아니라 이번사건에 얽혀 있는 많은 기자들이 회사에서 내쳐졌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