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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18화 (218/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9권 18화

너무 높아서 목을 꺾어 쳐다봐도 꼭대기가 잘 보이지 않는 빌딩 앞에 선 정 실장과 진호가 넋을 놓고 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설마했는데, 그 설마가 맞아 버렸다.

진호는 조용히 핸드폰을 들었다.

-충성. 곧 중사진급할 하사 구영재입니다. 무슨 일이야?

"형, 슈퍼마켓 아들내미라면서요."

-내가?

"건물주 아들내미라면서요. 주유소도 한다면서요."

-그러니까 내가? 언제? 난 그런 말한 적 없는데?

맞다. 구영재는 단 한 번도 집안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다.

모두 진호가 어림짐작했을 뿐이다.

-푸하핫! 너 진짜 모르고 있었구나? 이야, 우리 진호 의리 있네!

"……선배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내가 구 씨인데 모를 리가 있겠냐? 1학년 때부터 아우디 끌고 다녔는데?

"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진호가 입을 뒤틀었다.

"재밌었겠습니다."

-당연히 재밌었지! 우리들끼리 1학년이 언제 알아차리나 내기까지 했잖아! 그런데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더라?

"……기대하세요. 내가 그 부대에 여자 연기자 데리고 찾아가서 형을 어떤 몹쓸 놈으로 만들어 버리는지."

-어? 야? 자, 잠깐?

"끊습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 전원도 끈진호는 다시 빌딩 꼭대기를 바라봤다.

"호재가…… 또 겹치네."

"넌 진짜 하늘의 사랑을 받는가보다."

"그런가 보네요……."

100대 기업은 100대 기업이었다.

다만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이름만 말해도 아는, 대한민국 모든 기업 가운데 당당히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그런 대기업이었다.

"구성그룹……."

가스, 화학, 홈쇼핑, 마트, 편의점등으로 너무 유명한 그 구성그룹이었다.

오늘 진호와 미팅을 하기로 한 구성건설 마케팅부의 김현구 부장과 성현대 대리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지만,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곳이 구성건설의 사장실이기 때문이다.

똑똑똑!

문이 열리며 진호가 들어오자 벌떡 일어났던 김현구 부장과 성현대 대리는 이내 입을 떡 벌렸다.

"하하. 왔나?"

일인용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난 사장의 환한 미소.

그룹 내에서 철혈이라 불리며 공식 행사를 제외하면 결코 그 미소를 볼 수가 없는 구정경 사장의 환한 미소였다.

그리고.

"하아. 진짜 아버님이 왜 영재 형 아버님인 줄 알겠네요."

"푸흐흐흐흐! 그런가?"

'이런 미친?'

진호는 경악하는 둘을 살짝 외면하며 고개를 저었다.

주소만 불러 주고 찾아와 다시 연락해 달라던 그.

주소는 구성건설을 가리켰지만, 그 근처에 있는 회사겠거니 하는 마음에 다미앙이나 장 실장이 함께 따라오지 않았다.

'하아, 이모도 참. 귀띔이라도 해주지.'

이모 미영과 함께 참가해 [스킬: 위대한 언어]를 얻게 된 어느 경매장에서 만난 구영재의 아버지.

당시 미영은 구영재의 아버지를 아는 눈치였다.

"오랜만이에요, 아버님. 그간 격조하셨죠?"

"회사원이 별일 있겠나. 자네도 잘 지냈고?"

"그럼요. 아, 이쪽은 제 스케줄 매니저인 정구호 실장님이세요."

"아, 그런가? 처음 뵙겠습니다. 구정경입니다."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구호입니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앉으시죠."

진호와 정 실장은 구정경이 가리킨 소파에 앉았다.

잔뜩 얼은 정 실장은 마치 자대에 첫 배치를 받은 신병처럼 딱딱하게 굳었지만, 진호는 사장실을 둘러봤다.

"어떤가? 내가 일하는 곳은?"

"훌륭한데요? 구성건설이 왜 네임드 브랜드인지 알 것 같아요."

소품 하나하나가 구정경의 인격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난과 분재를 엄청 좋아하시는구나.'

"아, 여기요."

"호, 이게 뭔가?"

"CM송을 한번 만들어 봤어요. 아버님이 지으신다는 아파트 이름을 몰라서 아직 가사는 짓지 못했고요."

"CM송?"

눈을 빛낸 구정경이 진호에게 건네받은 USB를 직원들에게 내밀었고, 그들은 재빨리 가져온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사람들은 순간 눈을 꿈틀거렸다.

맑고 청아한 피아노 선율이 마치 푸른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처럼 가슴을 파고들고, 묵직한 바이올린 선율이 따뜻한 대지에 맨발로 선것처럼 편안함을 안겨 줬다.

그 외에도 여러 악기들이 어울리며 절로 가족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연상시키게 했다.

♪♩♩♬♪

"호오."

"흠."

5분 40초의 긴 연주였지만, 사람들은 그 시간이 결코 길다 여기지 않았다.

"미튜브 광고에 쓰일 곡이로군."

"네. 그건 풀영상 광고에 쓰일 곡이고, 아래 파일들이 CM송들이에요."

구정경은 직원들을 보았고, 그들은 재빨리 다른 곡들을 재생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눈썹을 꿈틀거렸다.

"……중독성이 있군."

가사가 하나도 없지만, 가이드로 흥얼거리는 진호의 목소리가 어우러지자 엄청난 중독성을 선사했다.

귀가 사로잡혀 풀려날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의 중독성이었다.

구정경은 진호를 보며 눈을 빛냈다.

"처음부터 고급 아파트를 타깃으로 삼아 만든 건가?"

"아뇨. 아버님이 어떤 아파트를 짓든 간에 고급 아파트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했죠. 영재 형 아버님이시니 허투루 짓진 않았을 테니까요."

"……푸하하하핫! 그런가?"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자식 놈 덕을 봤구만. 김부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내 눈치보지 말고 진심을 말해 주세요."

"괜찮습니다. 아니, 이 정도면 할리우드 유명 음악 감독 못지않게 훌륭합니다."

처음 진호를 광고 모델로 쓰겠다는 공문이 내려왔을 때, 직원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요새 진호에게 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구성건설이 지은 모든 아파트까지 자격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한 일.

'하지만 이 정도의 중독성이라면……으음…….'

"김 부장님이라고 하셨죠? 현재 마음에 걸리시는 그 일은 곧 해결될 거예요."

화들짝 놀란 그가 진호를 보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해결될 거라 함은?"

"이번에 BBC에서 제가 찍는 드라마를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헛! 정말입니까?"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호재는 제작 발표회 5일후에 발표할 예정이에요."

"5일 후?"

"끌어내야 할 이들이 있거든요."

"……호오."

"흠."

생각에 잠겼던 김 부장이 이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찍고 계신 다른 대기업 광고가 있으십니까?"

그 질문의 요지를 파악한 진호는 씩 웃었다.

"아뇨. 3화가 방영되기 전까지 대기업 광고는 오직 이 아파트 광고만 찍을 생각이에요."

김 부장은 급히 구정경을 보았다.

그는 턱을 긁으며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우리 구성건설은 인재를 미리 알아보는 선지적인 시선을 갖춘 그룹이 되겠군. 거기에 약간의 양념만 버무리면 신뢰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겠어."

"촬영 장소를 제공해 주신다면 더더욱?"

"호?"

진호가 짓궂게 웃었다.

"제가 이번에 맡을 역이 500년 동안 살아온 외계인이거든요."

"……외계인?"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나름의 부를 축적해 온 외계인이죠."

외계인이라는 말에 당황했던 구정경이 다시 눈을 빛냈다.

"그럼 사는 곳이 아주 고급이겠군."

"당연히 그래야죠."

"하, 하지만 전에 연락을 했을 때 협찬은 모두 찼다고 들었습니다만?"

사람들이 김 부장을 보았다.

"연락을 했었나?"

"한국에서 손꼽히는 드라마 작가의 신작이라서 연락을 했습니다, 사장님."

"그렇다는군."

구정경의 시선을 받은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협찬해 주기로 한 곳이 캔슬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증권가 찌라시로 돈 제 자격 논란을 믿으신 것 같더라고요."

김태유 피디와 최은수 작가는 이들 기업과 다신 협찬 계약을 맺지 않을 거라 말했다.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로군."

"섭섭하지는 않으실 거예요, 아버님."

"허허헛."

"그리고 자동차와 가구 등 협찬을 다시 구해야 필요하니 많은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흠?"

구정경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배우가 협찬까지 관여하는 건가?"

"아뇨. 김태유 피디님, 최은수 작가님, 그리고 아버님. 이렇게 좋은 분들끼리 좋은 일만 생겼으면 하는 거죠."

"……프하하하핫!"

진호가 하는 말은 구정경 자신으로 하여금 지인, 즉 다른 대기업사람들에게 작은 빚을 지어두라는 뜻이었다.

"성공에 자신하는가?"

누구나 외면하는 드라마다.

진호의 말대로 되려면 성공부터 해야 했다.

"대박 드라마를 여러 편 제작한 김태유 피디님과 최은수 작가님, 그리고 국민여친 김주아 누나와저. 이외에도 수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포진해 있어요, 아버님."

실패하는 게 이상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진호 씨 팬클럽 회원수가 국내에만 50만 명 정도입니다, 사장님."

'그렇게나 많다고?'

구정경은 깜짝 놀랐다.

50만 팬과 그들의 가족들이 모두 입주할 거란 망상은 하지 않지만, 일부만 하더라도 결코 적지 않은 수였다.

진호는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최소한 드라마를 보지 않은 채 무작정 내뱉는 나쁜 소리들은 사라질 거예요."

"여론을 좋게 형성할 수는 없다는 소리입니까?"

"제 팬클럽이 질책할 때는 질책하는 스타일이라서요. 그래도 최소한 말아먹게끔 연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부장님. 아버님."

진호는 도박을 해 보겠냐는 듯한 눈으로 구정경을 보았다.

"……이 드라마가 실패한다면 자네는 내게 빚을 지겠군."

구정경의 눈이 마치 유리알처럼 차갑게 가라앉자 진호는 싱긋 웃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기름은 구성 칼텍스에서만 넣을게요. 가끔씩은 기를 넣는 사진도 찍고요."

"푸하하하핫!"

'내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얼마만이더라…….'

지금은 부사관이 돼서 휴일에도 잘 오지 않는 아들 구영재 말고는 없었다.

"아주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군. 비즈니스라면 비즈니스만 해야지."

"제가 비즈니스를 할 생각이었으면, CM송을 이렇게 정성 들여서 만들었겠어요? 아버님을 제 아버지나 다름없이 생각하니까 이러는거죠."

"푸흐흐. 것도 그렇구만. 그래서 올 추석에는 올 건가?"

"당연히 찾아봬야죠. 여태껏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영재 형이 잘못한 거예요."

"그건 그렇지. 자기 할아버지 집만 다녀오면 명절이 끝날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그러니까요. 영재 형이 없는데 어떻게 찾아봬요. 아버님, 어머님놀라게."

"변명이야."

"귀여운 애교로 봐 주세요."

다시 웃은 구정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 부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마케팅부에서 아니라 하면 나도 생각을 다시 해 보겠습니다."

"……충분히 해 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확실하지는 않은 소문이지만, 진호의 뒤에 LVMH그룹, 아니 아르노 베르베우가 있다고 한다.

'아니, 거의 확실하지. 그렇지 않고는 한국인이 LVMH 산하 10개브랜드의 메인 모델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

아니더라도 진호가 파리 패션쇼에 설 때마다 크리스찬 디올의 CEO인 피에트로 베타리나 다른 패션 브랜드 CEO들과 사적인 만남을 가지는 건 팩트다.

즉, 혹여 드라마가 실패를 해도 그들로 하여금 공석이나 사석에서 구성건설을 언급시킬 수 있게는 할 수 있다.

이는 진호를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콜라보레이션도…….'

세계 유명 패션 기업과 콜라보레이션.

구성건 설을 세계에 홍보하기에꽤 좋은 소재다.

'절대 손해 볼 일이 아니야!'

이런 확신이 든 그의 눈빛에 구정경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군."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진호는 환하게 웃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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