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17화 (217/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9권 17화

6. 대기업 광고

영국에서 무슨 소식이 날아오는 지도 모른 채 아침 운동을 마친 진호는 개운한 기분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진호 씨! 나 아침 먹는 중인데 같이 먹을래?"

되돌아오는 인사들이 밝았다.

완연한 봄, 화사한 옷차림처럼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오늘 금요일인 거 알지? 일감 물어 오면 죽여 버릴 거야."

"오늘은 진호 씨도 쉬어. 응?"

"그래, 바빠도 월요일부터 바쁘자. 알았지?"

진호는 반쯤 진지한 그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내 표정을 굳혔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분명 밝은 모습들이었지만, 미묘한 어둠이 그들 사이에 있었다.

움칫 몸을 굳힌 직원들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진호는 자신을 부르는 장경아 실장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컴퓨터로 하나의 기사를 보여 주었다.

가십거리만을 다루는 삼류 언론사인 듯 팝업창이 가득한 기사는 진호로 하여금 실소를 터트리게했다.

"재밌네요."

기사 내용은 진호가 지상파 주연을 맡는 게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심도 있는 의문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래서 장 실장님이 절 부른 거군요."

그저 진호를 깎아내리는 기사였다면, 홍보부 선에서 커트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진호라는 사람을 모르는 대중들이 이 기사를 본다면 꽤 선동될 만한 내용들이었기에 기획부까지 연결된 것이다.

"알아본 결과, 제법 많은 언론사들이 제작 발표회만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섬뜩한 말이었다.

"모두 저를 탐탁지 않아 하는 곳 들이겠죠? 흠, 결국 불거지려나보네요."

수면 아래에서 이런 말이 떠돌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 나름의 조치를 취했는데, 결국 예고편 격인 기사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장경아 실장의 말처럼 제작 발표회가 끝나면 수많은 언론사들이 진호의 자질 논란을 두고 엄청나게 떠들어 댈 터였다.

"죄송합니다. 저희의 불찰입니다."

"불찰은 무슨 불찰이에요."

이런 성질의 기사는 처음부터 막지 않는 이상 대응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의혹일 뿐이기 때문이다.

"절 노리는 언론사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어떻게 막아요. 여러분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장경아 실장은 이를 악물었다.

"누군가 기자들을 부추기거나 부추김을 당한 것 같습니다."

진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 삼십대 배우일 확률이 높겠죠."

이제 뜨려고 하는, 또 떴다가 가라앉은 배우들. 그런 그들에게 최은수 작가의 작품은 스타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그러니 작품이 아니라 저를 비롯한 배우들만 저격한 걸 테고요."

김주아를 비롯해 출연이 확정된 배우들 중 몇몇에게도 의혹이 생기고 있었다.

"작품을 건드렸다가 걸리면 김 피디님과 최 작가님에게 미움을 받을 테니까."

김태유 피디는 수많은 드라마를 성공시킨 피디이고, 최은수 작가는 말할 필요도 없는 대작가다.

그 둘을 건드렸다가는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일은 제대로 작정한 것 같은데?'

예고편 격이나 다른 없는, 그것도 망상 소설 같은 기사지만 제법 세다.

'참 정글이다, 정글이야.'

호시탐탐 물어뜯을 기회만 노리는 그 모습들은 정글 속 짐승들 같았다.

"알아보겠……."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다들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떤 의혹이든 연기로 박살 내면 되니까."

"……크-. 역시 우리 진호!"

"그래, 진호 씨는 연기만 해! 나머지는 우리가 할 테니까!"

"160만 명 지니어스도 도울 거야!"

"맞아, 지니어스! 개들도 있었지?"

"160만 명? 어후. 그러다 기사폭파되는 거 아니야?"

"아예 그 언론사 서버가 날아갈수도?"

직원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 자 진호도 웃을 수 있었다.

"진호 씨."

"네?"

"정말 일감 물어 오면 안돼? 알았지?"

"그래. 언론에서 뭐라고 해도 우리가 타이밍 잡을 때까지 입 꾹다물고 있어."

"걱정 마세요. 최소한 다음 주 월요일까지 집에만 있을 거예요."

"진짜지? 나 그거 믿고 여자 친구랑 여행 가도 되지?"

"그러세요. 전 그림 그리고, 프로그래밍도 해야 돼서 바빠요."

직원들은 훌륭한 선택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고, 진호도 옅게 웃었다.

'이번엔 사고 안 칠 거예요. 사고 칠 것도 없어요.'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모두의 시선이 몸을 떨기 시작한 진호의 핸드폰을 보았다.

식겁한 진호도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예, 영재 형!"

경영학과 선배였던 구영재였다.

'살았다!'

정말 일감을 물어 오는 전화였으면 직원들에게 잡아먹혔을지도 몰랐다. 진호는 탕비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직원들도 안심하고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여, 잘 지냈냐?

"군인이 이 시간에 핸드폰 써도돼요?"

-난 부사관이니까 괜찮아.

"이거 어떤 법 위반으로 신고하면 되는 거죠?"

-시끄러워.

"흐흐. 무슨 일이세요?"

-맞아. 다음 주 월요일 즈음해서 아버지가 연락할 건데 괜찮지?

"아, CF."

건설업도 하시는 걸로 예상되는 구영재의 아버지가 아파트를 짓는 다고 했었다.

'그래서 CM송도 만들었지.'

친한 형 아버지 회사가 지은 아파트 광고라서 한번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영재 형, 그 CF 말이에요."

-네가 이번 드라마에 주연할 자격이 없다는 그 기사 때문이라면 그냥 입 다물어.

"……아버님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어요. 아파트 같은 건 이미지가 중요하잖아요."

-잘 들어. 너 만약 우리 아버지가 정육식당 같은 거 개업하면 거기서 사인회 안 해 줄 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요. 그런 건 부탁하지 않으셔도 당연히 가서 해 드려야죠."

-나도 마찬가지야, 새끼야. 의혹이고 나발이고 다 꺼지라고 해. 우리가 고작 그런 사이밖에 안돼?

"…… 고마워요, 형."

-시끄럽고. 그보다 네가 맡은 역할이 엄청난 부자라면서? 잘 표현할 수 있겠어? 형 집에 한번 가볼래?

"아, 그건 괜찮아요. 아는 분들 계세요."

아르노 베르베우도 있고, 웨이양도 있다.

부자의 삶이나 마인드는 이미 꿰고 있었다.

-그래? 다행이네.

그렇게 말한 그는 약간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왜 그러세요?"

'역시…….'

진호의 낯빛이 흐려졌다. 호기롭게 말했어도 후회가 된 것 같아보였다.

'역시 디메리트가 크지?'

그러나 구영재가 뱉기 시작한 말은 진호의 예상과 달랐다.

-그 뭐냐…… 너 대기업 광고를 찍지 않는 이유가 있냐? 대기업이 싫어? 아니면 아버님이 대기업 다니시니까 조심했던 거야?

"아, 아니에요. 그냥 단순히 돈이 안 맞아서 그런 거예요. 알잖아요. 제가 하루가 다르게 몸값 치솟는거. 한 달 전의 저와 지금의 제가 몸값이 다르고, 돈도 많이 버는데 굳이 싼값에 대기업 광고를? 뭐, 그런 거죠."

-아, 그랬던 거야? 알았다. 수고해!

"예, 형도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은 진호는 개인용 컵에 커피를 따르며 볼을 긁적였다.

'참 고마운 형이야.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그나저나 영재 형 아버님이 운영하는 사업체 규모가 엄청 큰가 보구나. 거의 대기업 수준으로."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물어 올리가 없었다.

"뭐 그래도 영재 형 아버님인 건 변함이 없지만."

어깨를 으쓱인 진호는 탕비실을 나섰다.

그 순간 다시 우우웅 핸드폰이 울었다.

"후, 오늘 바쁘네."

발신자는 최은수 작가였다.

"네, 작가님. 기사 보시고……."

-그래, 그 개소리만 지껄인 기사는 봤어. 그딴 것보다 너니?

"뭐가요?"

-BBC.

"BBC가 왜요?"

-거기서 연락 왔어. 우리 드라마 수입하고 싶다고.

"……아, 몰래카메라 찍는 중이세요?"

-내가? 굳이?

"역시 우리 최 작가님. 연기력도 발군……."

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몰래카메라가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진짜예요?"

-진짜.

"헐?"

목소리가 컸던 것일까.

직원들이 시선이 탕비실을 나서는 진호에게로 몰렸다.

그들의 눈빛은 놀람으로 굳어 있는 진호를 보자마자 살의를 띠기 시작했다.

'자, 잠깐?'

정신을 차린 진호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이, 이번에는 나 아닌데?'

그는 무척이나 억울했다.

* * *

BBC가 수입하려는 건 최은수 작가의 신작뿐만이 아니었다.

진호가 주연으로 출연한 일본 드라마도 함께였다.

그것도 모자라 영국의 게임 유통회사에서 '진호 키우기'를 사겠다고 연락을 해 왔다.

심적 고생을 모두 날려 버릴 호재.

덕분에 일본에 갔던 다미앙이 급히 복귀해야 했다.

"묻죠."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장경아실장을 보았다.

다미앙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곧 수면 위로 튀어 오를 소문을 확산시키자는 말입니까?"

"예, 그래서 일망타진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지 못하게."

"흠…… 진호 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야 상관없지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우리도 상관없어."

"헉!"

몇몇 직원이 음료를 가지러 가는 사이 열어두었던 문을 통해 들어오는 두 남녀를 본 진호와 직원들은 벌떡 일어났다.

김태유 피디와 최은수 작가였다.

"오셨어요?"

"이슈의 천사가 또 이슈를 만들었네?"

"하하."

빈자리에 앉은 최은수 작가가 눈을 빛냈다.

"장 실장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도 감히 내가 캐스팅한 배우들 물먹이려는 놈들 면상 좀 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태유 피디의 낯빛도 살기등등했다.

사람들은 그에 의문을 가졌다.

성격이 뾰족한 최은수 작가와 달리 김태유 피디는 NG가 거듭돼도 화를 내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색을 알아차린 김태유 피디는 사정을 설명했다.

깜짝 놀란 진호와 직원들은 그제야 이해를 하며 축하할 수밖에 없었다.

호재가 겹치고 있었다.

"관리직인 부국장이 되기 전에 싹수가 노란 것들을 골라내고 싶군요.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록 기자들을 부추기거나 부추김을 당했을 배우들은 알기 힘들지라도, 그 기자들만큼은 방송국출입을 금지시키고 싶었다.

그 기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이들도 말이다.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일어나겠습니다. 카메라부터 다시 골라야 할 것 같아서 이만."

사람들은 다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최은수도 몸을 일으켰다.

"나도 이만 가볼게. 다른 배우들은 걱정 마. 내가 대충 진정시켜 놓을 테니까. 자기들은 일본 쪽이나 신경 써."

그렇게 최은수 작가마저 떠나자 진호와 직원들은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태풍이 지나간 느낌이네요."

"풋."

"푸흐흐흐흐흐!"

딱 진호의 말 그대로였다.

두 사람이 있던 시간은 너무도 짧았지만, 혼이 쏙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든든한 아군을 얻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웃을 수 있었다.

"그럼 전 이번 영국발 호재에 대해 알아보면서, 일본 드라마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다미앙 씨."

진호도 왜 이런 행운들이 겹쳤는 지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했다.

고개를 끄덕인 다미앙이 일어서며 직원들도 모두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진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제 구영재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됐다.

"그나저나 대체 얼마나 큰 사업체인 거야? 100대 기업 아니야?"

'……풋! 에이, 설마.'

그 설마가 사람을 잡기도 한다는 걸 아직 깨닫지 못한 진호는 콧노래를 부르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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