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9권 14화
여대생 강경미는 어느 순간부터 초조하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건 점심을 먹기 위해 봄날의 벤치로 이동을 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경미, 네가 웬일이야? 도시락을 다 싸 오고? 남자 친구 주려고 연습하는 거야?"
"곧 군대 가는 그 남자 친구?"
"이늠의 자식! 도시락 싸 주고 무슨 짓을 하려고?"
경미는 고개를 저었다.
"용돈을 아끼는 중이라서……."
"남자 친구랑 여행 가?"
"꺄아! 드디어 승부 속옷 쓰는거야?"
그녀의 친구들이 눈을 빛내며 물어 왔지만, 경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진호 오빠가 만든 게임에 현질 해야 돼."
'문제는 얼마나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지만…….'
그녀의 친구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너도 참…… 연예인이 그렇게 좋냐?"
"말도 제대로 나눌 수 없는 사람을 왜 좋아하는 거야?"
"물론 다들 잘생기긴 했지만……. 잠깐, 게임을 만들었다고? 아, 네 그 오빠가 게임에 등장하는 거야?"
"아니? 게임을 만든 건데?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연예인이라며."
"그런데?"
"연예인이 어떻게……."
"수능 유일 만점, 한국대 전체 수석 입학. 됐지?"
"하, 한국대 전체 수석 입학?"
경미는 놀라는 친구들을 외계인보듯 응시했다가 이내 이해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놀러 다니기 좋아했던 그녀 자신과 달리 공부에 인생을 바쳤던 친구들이었다.
연예계 일을 잘 모를 수 있었다.
'흐음. 포교를 해 볼까? 아니다, 관두자.'
진호의 모든 굿즈나 앨범을 단번에 사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 든다.
"그 외에도 약력이 아주 많은데, 시간 관계상 여기까지만 할게. 게임 다운받을 시간이거든."
12시가 지나자 경미는 앱 스토어에 접속해서 게임을 다운받았다.
'용량이 많네?'
300메가바이트를 약간 넘겼다.
멀티 플레이가 안 되는 게임치고는 꽤 많은 용량이었다.
이윽고 다운을 다 받고 실행 화면을 켠 경미는 깜짝 놀랐다.
♩♩♩♬♩
마치 번개가 몰아치듯 강렬한 피아노 소리.
로딩 중에 튀어나온 그 소리에 경미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구들마저 놀랐다.
그리고 이내 다른 의미로 놀랐다.
"와, 좋다. 어느 피아니스트의 연주 곡이지?"
"이렇게 강력하고 묵직한데, 왠지 심장이 뭉클해……."
"모차르트? 아냐, 너무 격해. 베토벤?"
아주 어렸을 적 교양으로 피아노 학원을 다닌 그녀들은 미간을 좁히며 원곡자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 했다.
"이진호."
경미의 친구들은 급히 경미를 보았다.
"진호 오빠가 작곡한 곡일 거야."
"연예인이라며?"
"피아노 작곡도 해. 그 유키 구라모토가 인정한 피아니스트야."
"……."
"어? 그림이다. 유화 그림이네."
검은색 로딩 화면이 끝나자 그림이 튀어나왔다. 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유화그림이었다.
"브금도 바뀌었어!"
"……아, 달달하다."
경미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오빠 부모님이다! 진호 오빠 부모님이 연애할 적 모습이야!'
경미의 예측대로 두 남녀는 곧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 순간 경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와, 그림 좋다."
"응. 특히 이 병상에 누워 초췌한 모습으로 아이를 안아 드는 엄마의 모습을 담은 이 장면이 가장……."
핸드폰 속 사진, 아니 게임 속 사진일 뿐이지만 왠지 뭉클했다.
이제 엄마가 된 여성이 아이를 바라보며 짓는 미소는 성스럽기까지 했다.
"이 작가는 누굴까? 한 작가 작품 같은데……."
"진호 오빠."
경미의 친구들은 다시 소스라치게 놀라며 경미를 보았다.
"그림도 잘 그려. 내가 올해부터 들고 다니는 이 텀블러 디자인도 오빠가 한 거야."
"……."
"아, 시작한…… 흡!"
하얀 벽지와 책장만 있는 방안에 선 채 이쪽을 뚱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작은 소년. 돈값을 하는 퀄리티는 둘째 치더라도 그 표정과 토실토실한 볼이 경미의 심장을 직격했다.
'이, 이게 오빠 어릴 적 모습! 아니, 살이 빠졌다고 쳤을 때의 어릴적 모습!'
경미의 숨소리가 절로 거칠어졌다.
"귀, 귀여워……."
"어머머."
경미는 다급히 친구들을 보았다.
몽롱하게 풀린 친구들의 모습에 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캐릭터를 가렸다.
"야, 치사하……."
-싫어요.
"……응?"
순간 얼어붙은 그들은 경미의 핸드폰을 보았다.
슬그미니 손을 땐 경미는 조심스럽게 진호를 눌렀다.
그 순간 뚱한 진호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마치 경미의 손가락을 치우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안돼요.
"흡!"
경미는 본능적으로 다시 진호를 연타했다.
-싫다니까요? 아, 진짜! 대체 누군데 날 만져요!
싫어하는 목소리가 경미의 심장을 계속 타격했다.
-저리 가! 싫어! 으아아앙! 엄마!
"어? 우, 운다! 진짜 운다!"
"어머머. AI 구현해 놓은 것 좀봐."
"야! 애를 왜 괴롭혀!"
다시 그 순간이었다.
게임이 멈추며 화면 정중앙에 하나의 창이 떴다.
진호를 울렸습니다.
달래시겠습니까?
Yes / No
이미 괴롭히는 것에 맛이 들려 버린 경미는 '노!'를 외치려고 했지만, 일단 Yes를 눌렀다.
그러자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어린 진호를 달래기 위해선 막대사탕이 필요합니다.
산수 문제를 풀어 막대사탕을 습득하세요.
(막대사탕은 캐시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5+3=?
1. 492921 2. 8 3. ……
"……내가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왜 게임에서까지 공부를 해야 돼?"
'당연히 게임 하는 초딩 팬들 공부시키기 위해서겠지! 누구 오빤데?'
"조용히 해 봐! 우리 오빠 울잖아."
경미는 답을 눌렀다.
이후 창이 사라지고, 눈과 코가 발갛게 달아 오른 진호가 커다란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훌쩍! 그래서 누구?
그와 동시에 이름과 나이, 국적과 성별을 입력하라는 창이 떴다. 나이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는 문구와 함께 말이다.
그제야 숨을 돌린 경미와 경미 친구들은 조용히 탄식했다.
"……아, 이거 위험해."
"응. 다시 울리고 싶어."
"아, 심장."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프로필을 작성한 경미는 상점을 눌러 보았다. 상점 내 캐시템 가격을 봐야 얼마나 용돈을 절약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 안 비싸다."
"아까 말한 특별한 막대 사탕이 100개에 100원밖에 안 해."
"와, 우리 오빠는 캐시템 한 번지르는데 몇 만 원씩 쓰는데……."
그 외에도 방이나 어린 진호를 꾸밀 수 있는 듯한 캐시템들도 개당 300원을 넘기지 않았다. BGM 파일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우리 오빠! 이 정도면 용돈을 절약하지 않아도 되겠어! 소년용 꾸미기 아이템은 몇 개 안돼!'
"저기, 경미야?"
"응?"
"이 게임 이름이 뭐라고?"
경미는 깜짝 놀라 친구들을 보았다.
여태껏 게임의 게 자도 모르고 살아온 친구들.
만화조차 보지 않고 살아온 그녀들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 * *
대표 이사실에 앉은 양진혁이 맞은편에 앉은 진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진호야, 우리도 게임……."
"한 명당 50억이면 생각해 볼게요."
"야, 그건 너무한 거 아니냐?"
"현재까지만 해도 게임 판매 수익이 70억인데요?"
"야, 그건 네 팬 숫자가 160만을 넘겨서 그런 거고! ……그런데 진짜냐?"
"이것저것 떼면 그보다 적어질 테지만, 아무튼 현재는 그 정도예요. 아직 캐시템 수익은 집계하지도 않았고요."
50억이라는 말에 거의 포기했던 양진혁은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레오의 개인 팬이 한 20만 정도 되니까, 개당 5천원에 팔면……거기다 캐시템 수익까지 생각하면…….'
"허어. 이거 돈 되네."
"게임 하나 잘 만들면, 수십 억은 우습게 벌죠. 물론 잘 만들었을 때 이야기지만."
"그러게. 난 왜 이걸 몰랐을까?"
양진혁은 티 테이블에 놓인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레오가 소속된 그룹이자, 이제 슬슬 해체할 준비를 하는 더 원이 음반을 내면 앨범과 음원 수익이 진호가 말한 70억 정도가 나온다.
"굳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돈을 잘 벌었으니까요?"
"……맞아. 그랬지."
더 원이 한 해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수백 억이다. 최고 전성기에는 한 해에 천 억도 넘게 벌었다.
굳이 게임에 눈을 돌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수익이 예전 같지 않아서요?"
"그것도 맞지만, 새로운 홍보 수단임과 동시에 팬들 응집도와 충성도를 높일 수 있어서. 네 팬들 지금 그 게임 가지고 포교 중이라며?"
"……그건 또 어떻게 아셨을까요?"
"우리 회사에도 네 팬 많다."
"아, 기획 1팀의 이 실장님, 성대리님. 기획 2팀의……."
진호는 JH에 있는 자신의 팬들을 떠올렸다.
이미 사진도 같이 찍고 사인도 하고, 밥도 같이 먹은 적이 있어서 모두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썩을 것들이지. 소속 연예인 좋아할 생각은 안 하고 말이야. 만약 걔들이 퇴사해도 절대 받아주지마라."
"사장님이 잘 잡으셔야죠."
"잘해 주고 있어, 인마! 요새 직원들 월급으로 돈이 얼마나 나가는데! 내가 아주 너한테 안 뺏기려고, 어?"
"일 잘하는 직원들을 그에 맞게 대우해 주는 건 당연한 일인 거고요."
"……그러니까. 쯧, 이놈이 할 말없게 만드네."
"흐흐흐. 아, 그보다 업무 통합 시스템은 좀 어때요?"
진호는 JH에 업무 통합 시스템을 팔았다.
업무를 위해 팀 이진호에 들른 양진혁이 업무 통합 시스템을 보더니 팔아 달라고 졸랐기 때문이다.
"어떻긴 호평이지. 다들 편해졌다고 좋아하더라. 부서간 정보 교류도 원활해지고. 나도 언제든 원하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돈값 제대로 하던데?"
양진혁은 업무 통합 시스템을 20억에 구입했다.
제법 큰 지출이었지만, 직접 사용해 보니 진호가 개발한 시스템은 그 이상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호의 생각은 좀 달랐다.
'당연히 제값을 해야죠. 거저 드린 건데.'
상대가 양진혁이 아니라 PJY의 박 대표였다면 그 다섯 배를 불러도 모자랐다.
"흐흐. 다행이네요. 그러면 게임툴도 사실래요? 30억 콜?"
"……그거 사면 네가 만든 게임처럼 똑같이 만들 수 있냐? 똑같이는 아니라도 거의 비슷하게는 만들어야지."
"그러려면 최소 그 세 배는 주셔야 하는데요?"
"……뭐가 그렇게 비싸냐."
"어쩔 수가 없죠. 그래도 최대한 따라 해 보세요."
"끙……. 오케이. 30억 콜."
내부 방침상 진호가 하는 건 무조건 따라 하기로한 상태라지만, 고작 게임 하나에 그 정도 돈을 투자할 수는 없었다.
JH의 많은 아티스트들을 생각하면 이 30억의 열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라도 JH의 지분을 가진 사람들은 진호가 말한 90억 예산을 용납할 수 없을 터였다.
'열 배가 뭐야? 굿즈나 인형 같은 2차 판권 수익을 생각하면…… 에휴.'
"크. 역시 대범하셔! 30억을 바로 쏘시네!"
"시끄러워. 내가 너 때문에, 어?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어?"
"흐흐흐"
우우웅! 우우웅!
"아, 잠시만요."
"그냥 여기서 받아."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확인한 진호는 깜짝 놀랐다.
'웨이양 할아버지가 왜?'
그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할아버지."
-진호야, 섭섭하다.
"……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