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13화 (213/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9권 13화

5. 은퇴

예능에 출연한 이후, 진호는 중요한 스케줄을 제외하면 게임 개발과 업무 통합 프로그램 디버깅에 집중했다.

진호가 개발하는 게임을 본 감독과 제작진은 만세를 외쳤고,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흥미를 드러내며 자신을 등장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에 진호는 배우 본인 또는 그들 소속사에게 자신이 만드는 게임과 콜라보를 진행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들과 그들 소속사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예상치 못했던 수익이 되는 것도 있지만, 진호가 그린 2D 캐릭터가 너무 귀여워서 배우를 위한 홍보 수단과 굿즈로 쓸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무척이나 기뻐하며 촬영 기간 내내 진호의 술과 식사를 책임지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업무 통합 시스템이 완성 되었다.

-대체 뭘 만든 겁니까, 진호 씨.

"말씀드린 대로 업무 통합 시스템이에요. 인터페이스는 편한가요?"

-편한 정도가 아닙니다만…….

편한 정도가 아니라 원숭이라도 이해할 만큼 쉽다.

거기다 디자인은 세련됐고, 기능적으로도 정보 처리 속도나 검색의 정확함 등 훌륭했다.

글로벌 대기업인 HU 에이전시에 서조차 보지 못한 프로그램이었다.

"다행이네요."

-이건 혁명입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죠. 그리고 다미앙 씨와 모든 부서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만들 수 있었던 거고요."

[스킬: 코딩의 신]에는 이보다 더한 업무용 프로그램들도 많았다.

"불편하거나 오류가 나면 말하세요. 고쳐야 되니까."

-그렇게 말하시면 두렵습니다만…….

"흐흐. 개임 발매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죠?"

진호는 디버깅을 하는 동안 게임도 개발을 마쳤다.

-3화가 방영되는 날에는 판매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빨리요?"

-모두 진호 씨 덕분입니다.

"흐흐. 빈말이라도 기분이 좋네요."

-빈말이 아닙니다만…….

진호의 이름값이 아니었다면, 스토어에 등록되기까지만 해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터였다.

-그런데 정말 유지비를 제외한 수익 전액을 기부하실 생각입니까?

"그 이야기는 마무리된 게 아니었나요?"

진호는 수익 전부를 기부하려고 했지만, 다미앙을 비롯한 직원들이 유지비는 제하자고 적극 건의했다.

'수익이 꽤 많이 나오긴 하겠지만…….'

진호의 연간 수익과 비교하자면 얼마 되지 않았고, 이미 통장에 쌓인 돈만 해도 너무 많아 처치 곤란인 수준이었다.

쓰지 않을 돈이라면 차라리 좋은 곳에 쓰이는 게 좋을 터였다.

-그 기부할 수익의 일부를 인재 육성에 투자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여태까지 진호 씨가 인재들을 지원해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흠? 누구 아이디어예요?"

-기획부 아이디어입니다.

"좋아요. 그렇게 하시고, 이 내용은 지니어스에 공지해 주세요."

-……호오? 현질에 정당성을 부여하자는 겁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자는 거죠."

-알겠습니다. 기획안을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후 길게 대화를 나눈 진호는 전화를 끊으며 시끌벅적한 술집안으로 들어갔다.

드라마 첫 화 방영일이라서 제작진과 출연 배우 모두가 회식 겸 모니터링을 위해 모인 것이다.

"오오! 정말입니까?"

"와-!"

사람들은 3화가 방영되는 날 게임이 발매된다는 말에 꽤 신기해하면서도 기뻐했다.

"크흑! 전 정말 행운아인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감독님 취하셨네. 누가 술을 준 거야?'

맥주를 한 잔만 마셔도 취하는 감독.

분명 전화를 하기 위해 나가기전까지만 해도 물이 들어 있었던 컵에서 사케 냄새가 나고 있었다.

진호가 주위를 둘러보자 맞은편에 앉은 우타다 타카시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하아…….'

"아니에요. 제가 행운아죠. 이렇게 좋은 분들과 작품을 찍을 수 있었으니까요."

"크흐윽! 당신은 정말 천사입니까!"

난처해진 진호는 살려 달라는 듯 다시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두 외면하고 있었다.

그건 우에토 유리도 마찬가지였다.

'이 나쁜 사람들!'

"아, 시작한다!"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은 급히 술집안에 있는 커다란 티비를 응시했다.

그들이 찍은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방금 뭘 본거지? 방금 TBS 드라마 본 사람 있어?

┗일본 기술력이 여기까지 발전하다니! 전혀 어색하지 않은 CG였어!

┗사람이고, 한국에서 온 이진호라는 배우입니다.

┗거짓말!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지금 저 남자 주인공 실제로 코딩을 짜는 것 같은데?

┗실제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튜브와 드라마 게시판에 메이킹 필름이 업로드되어 있어요.

┗보고 온 사람으로서 말한다. 왜 배우가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건데! 그걸 왜 저 정도 기업전산실 부장이 조언을 받고 있는건데! 저 배우 대체 정체가 뭐냐! 외계인이냐!

┗사람이고, 한국에서 온 이진호라는 배우입니다. 이진호 님은 뭐든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입니다.

┗너 지니어스지!

-원래 사람은 잘생기면 끝 아니었냐? 왜 다른 것도 잘하는데! 나같이 못생긴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하. 저런 남자도 연애를 못해 봤구나.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겁니다. 당신과 달라요.

┗너 누구야! 아키하바라역 앞으로 나와!

드라마 게시판과 커뮤니티 사이트가 시끄럽다.

그다음 날은 일본 포털 사이트의 연예란이 시끄러웠다.

1화 시청률 13.1 퍼센트.

역사를 쓴 것까지는 아니지만, 훌륭한 스타트였다.

한국인이 출연한 드라마로서는 거의 제일 가는 시청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배우들과 제작진은 다시 한번 만세를 외쳐야 했다.

* * *

서울한복판의 높은 빌딩.

무언가가 많이 들어 있는 박스를 든 채로비를 걷는 이형만의 발걸음이 왠지 무겁다.

로비 입구를 나서서 조금 더 걷다가 뒤를 돌아보는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후우우."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감정.

절로 담배가 몰렸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형만은 로비 입구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아버지."

"고생 많았어요, 여보."

화들짝 놀란 그는 자신을 부른 주인공을 확인하곤 환하게 웃었다.

"진호야! 여보!"

"이리 주세요."

"아니,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어?"

"아버지 뵈러 왔죠."

"바쁜 거 아니었어?"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이럴 시간은 있어요."

진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듯 얼굴이 일그러진 어머니 나진희를 툭 쳤고, 그녀는 이형만에게 다가가 꼬옥 끌어안았다.

"그동안 수고 많았고 고생했어요, 여보."

"내가 고생하기는……. 없는 살림으로 여기까지 꾸역꾸역 이끌어온 여보가 더 고생했지. 그동안 나와 내 동생들 때문에 수고 많았다, 진희야."

"으흐흑!"

"어이구, 이 좋은 날 울기는 왜울어. 난 정말 시원하구만."

"전 차 가지고 올게요. 여기 계세요."

이형만은 손을 저었고, 진호는 히죽 웃으며 돌아섰다.

그 순간 진호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은퇴식조차 안 해 주다니.'

신입 사원, 아니 대리라면 또 모튼다.

그러나 아버지 이형만은 영업부를 이끌었던 부장이었다. 이 기업에 젊음과 열정을 바친 시간이 30년이 넘었다.

그런 사람에게 상패 하나는 주지 못할망정 퇴직 기념 회식조차 안해 주었다.

그것도 본래라면 1월 시무식을 시작하자마자 퇴직해야 됐을 아버지를 3월인 지금에야 퇴직시키면서 말이다.

아버지의 부하 직원 중 누군가의 연락이 아니었다면 까마득히 몰랐을 사실.

'나 때문이겠지.'

영업부 부장으로 있으면서 단 한 번도 기업이나 계열사 CF를 찍어달라 말하지 않았던 아버지.

가슴이 찢어진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여기 광고는 절대 안 찍는다.'

계열사뿐만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연관된 기업의 광고를 찍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체에서조차 언급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차를 가져오는 동안 화를 겨우 다스린 진호는 차창을 열며 환하게 웃었다.

"거기 달달한 중년 커플 두 분! 보기 좋으십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제주도까지 가는데 태워 줍니까?"

"어이구, 마침 가는 길이네요. 그런데 부산항까지 차로 갈 생각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이형만과 나진희은 움칫 몸을 굳었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얻어 타고 가는 건데, 운전자분 마음에 따라야지요."

"어서 타세요. 보조석은 짐이 있으니까 뒷좌석에 타세요!"

"어이구, 감사합니다. 진희야, 타자."

"이이가? 왜 계속 내 이름을 불러요?"

"그래서 싫어?"

"아니, 싫다기보다는……."

"애기야, 타자!"

'컥!'

"아버지! 그건 좀! 엄만 또 왜 부끄러워 하는데!"

"부러우면 너도 여자 친구 만들어, 짜샤! 자, 타자."

"네, 오빠."

'으아아아아!'

괜히 장난쳤다 후회하던 진호는 이내 피식 웃었고, 이형만과 나진희 둘도 웃음을 터트리며 차에 올탔다.

그렇게 셋은 차를 타고 부산항으로 향했다.

이형만과 나진희, 단칸방에서부터 시작하신 부모님 두 분이 겨우겨우 신혼여행을 갔던 그 루트대로 말이다.

가는 길에 그 당시 들렀던 휴게소에서 그 당시 먹었던 음식도 사먹고, 비싼 값을 치러 배에 차를 싣고 제주도에 도착한 세 가족은 이형만과 나진희가 신혼여행 코스로 다녔던 곳을 구경했다.

"제주도도 많이 변했네."

"그래요?"

진호는 아버지의 잔에 술을 따르며 눈을 빛냈다.

그들의 앞에는 온갖 조개들이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이 아빠랑 네 엄마가 신혼여행올 때까지만 해도 다 허허벌판이었지. 그렇지 않아?"

"말해 뭐해요. 찍을 거라곤 유채꽃과 용대가리 바위밖에 없지, 숙소라고 잡은 민박집은 거지 움막같지. 내가 왜 이 남자랑 결혼했나 싶었다니까요?"

"잉? 그땐 그런 말 없었잖아."

"그럼 신혼여행인데 화내요?"

샐쭉한 그녀의 시선에 이형만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봐라. 네 엄마가 젊었을 때부터 이렇게 속이 깊었다."

"푸하하하핫!"

"웃지 마, 인석아."

"하아아. 그래서 신혼여행 땐 뭐 사 주셨는데요?"

"……안개꽃 섞인 유채꽃 한다발?"

"그것도 네 아빠가 첫날밤 일치르고 새벽에 몰래 나가서 꺾어다가 만들어 준 거다. 그게 아니었으면 진짜 삐졌을 거야."

상황을 설명해 주지 않아도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눈 뜨고 일어났는데 옆에 놓여있던, 전날 보지 못한 유채꽃 한다발.

"어? 그거 알았어?"

"그럼 몰랐겠어요? 신문 포장지를 당신 구두끈으로 감았는데? 신문은 또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

"……어흠흠."

"그냥 두 분 다 완전 천생연분이셨네."

가난했지만 부인을 사랑할 줄 알았던 아버지.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음에도 속이 깊으셨던 어머니.

진호는 이런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게, 아니 태어나게 해 주셔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맞아. 여기요."

"음?"

이형만과 나진희는 진호가 내미는 하얀 봉투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 이건 뭐니?"

"크루즈 여행권이요. 두 분이서 오붓하게 세계 여행 다녀오시라고요. 3일 후에 출항이에요."

"비쌀 텐데……."

"이런 건 1년 전부터 예약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 회사가 1년에 몇 십 장씩 HU 에이전시에 보내 주거든요. 그거 양도받았어요. 그리고 엄마한테 있는 내 카드, 한도 1억으로 올려놨으니까 부족함 없이 쓰고 오세요."

이형만과 나진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방치하다시피 키워서 언제나 미안했던 아들이 이렇게 잘 자라 준것도 모자라, 차마 바랄 수 없었던 효도를 계속 해 주고 있었다.

그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받으세요, 아버지."

"그, 그래. 우리 아들이 주는 술 한번 받아 볼까?"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감사했습니다."

"나도 건강히 잘 커 줘서 고맙다."

"흐흐. 엄마도 날 잘 키워 줘서 감사해요."

"그, 그래. 우리 아들도 잘 자라줘서 고마워.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세 가족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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