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12화 (212/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9권 12화

역시나 다음 날부터 부장이란 사람이 촬영장에 슬그미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진호가 쉬는 시간마다 이야기를 나누었고, 진호도 그가 들려 주는 관리 노하우를 비롯한 프로그래밍 관련 이야기를 주의 깊게 경청했다.

관리직만 20년째라는 그의 지식과 지혜는 굉장했고, 부장은 진호의 젊은 발상에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얻어 갔다.

이렇게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 받는 훈훈한 모습은 드라마 홍보를 위한 메이킹 필름에 쓰일 카메라에 생생하게 찍혔다.

이에 감독과 광고 회사 경영진들은 서로 좋은 거래라며 악수를 나눴다.

타다닥!

"……됐다! 으아아아아!"

몸속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며 [스킬: 코딩의 신]이 습득됐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정말 만들었냐……."

숙소 거실의 소파에 앉은 정 실장이 질렸다는 듯 말했다.

"한 달 만인가?"

"정확히 36일 만에 만든 거죠."

진호는 재빨리 코딩창을 열어 보았다.

[스킬: 코딩의 신]의 시야로 봤을 때, 36일 동안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이 어떻게 비춰질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와, 이건 뭔 쓰레기지?"

버그투성 이에 오류투성이였다.

4살짜리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도 이보다 낫다 싶을 정도였다.

"왜 작동된 거야, 이건?"

프로그래머들이 가끔씩 놀란다는 그 상황이었다.

작동이 되는데 그 이유를 모르는 그 식겁한 상황.

물론 코드들을 읽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됐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처참하게 찢어졌다.

'지난 36일간 노력의 결과물이 이런 쓰레기라니.'

"정말 감독님이 말한 다마고찌 같은 걸 만들 걸 그랬나……."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이걸 수정할 생각을 하니 더욱 그랬다.

"다 수정하려면 10일 정도 걸리려나……."

한숨을 길게 내쉰 진호는 다시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손가락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뭐하냐? 곧 스케줄인데?"

"스케줄? ……아."

야라시라는 일본에서 레전드라 불리는 보이그룹이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했다. 2주 후가 드라마 첫 화 방영일이다 보니, 그 홍보차 미리 예능에 출연하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수정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

"그 프로그램에서 제가 요리를 해야 된다고 했죠?"

"맞아. 야라시 멤버들도 네게 요리를 만들어서 대접할 거야."

"어…… 그렇다면 기교를 자제해야겠네요?"

"불 쇼?"

"플레이팅도요."

무엇이든 엄청나게 비교될 터였다.

"……괜찮으니까 해도 돼. 걔들이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니거든. 시청자들도 알아."

"아, 그래요?"

'그렇다면 그 김치찌개 만들어도 되겠네.'

씻고 나와 움직인 진호는 스튜디오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정 실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질렸다는 듯 진호를 보았다.

그러다 의아해했다.

"어? 너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

검은 화면에 써진 글자의 양이 무척이나 적었다.

"아뇨? ……아니, 맞나? 게임 하나 만들고 있어요. 먼저 만든 프로그램은 각 잡고 수정해야 돼서요."

"게, 게임?"

"팬들에게 배부할 이진호 육성 모바일 게임."

[스킬: 코딩의 신] 주인공이 스토리 초중반에 만든 모바일 육성 게임을 약간 변형시키기만 하면 되기에 쉬엄쉬엄해도 10일정도면 충분히 만들 수 있을 듯싶었다.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전액 기부할 생각이고요."

"아, 유료로 팔 거야?"

"그것도 있는데, 제가 여태까지 발표한 노래나 연주곡 같은 것들을 버프 효과가 부여되는 캐시템으로 사게 만들려고요. 물론 굳이 캐시템을 사지 않아도 퀘스트만 잘 수행하면 엔딩을 볼 수 있지만."

"……어라, 그거?"

"괜찮은데?"

"그렇죠?"

직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젠 하다하다 굿즈용 게임도 만드는구나.'

'너란 아이는 정말…….'

'팬들을 위한 게임이라서 그런지 키보드 두드리는 속도도 빨라졌구나.'

분당 타수 증가는 [스킬: 코딩의 신]의 영향이었다.

빠르고 정확한 입력은 작업 시간을 줄이는 아주 중요한 요소니 말이다. 현재 진호는 웬만한 속기사 보다 더 빠르게 타자를 친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수익이 얼마나 발생할까?'

지금도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는 150만 명 이상의 팬.

'그들이 만 원짜리 캐시템을 하나 씩만 산다고 해도…….'

정 실장은 조용히 핸드폰을 들어 장경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호가 또 사고를 치고 있었다.

그 순간 벌컥 문이 열리며 우에토 유리가 난입했다.

"나왔어요-! 응? 분위기 왜 이래요?"

진호는 사정을 설명했고,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나도! 나도 만들어 줘!"

"천만 엔만 주세요."

"비, 비싸!"

"유부녀는 천만 엔 이상! 제작자의 마음입니다!"

"치사하다!"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정도 돈이 아니라면 아무리 친구인 우에토 유리라도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다.

'솔직히 천만 엔도 거저주는 거지.'

이 게임에 쓰일 코드들의 가치를 생각하면 천만 엔은 생산가 수준도 안 되었다.

"그런데 진 짱은 팬들을 위해 이런 것도 만드는구나. 팬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이유가 있네."

"감독님이 드라마 끝나기 전까지 게임 하나 만들어 볼 생각 없냐고 말한 것도 있고요."

"응? 그건 타마고찌 아니었어?"

"이왕이면 다홍치마죠."

"다홍치마가…… 많이 크네."

우에토 유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스케일이었다.

"그보다 오늘 무슨 음식 만들 거야?"

"김치찌개에 냄비 밥, 계란말이?"

"소박하네?"

우에토 유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호가 아무리 요리를 잘한다지만, 유부녀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과연 그럴까요……."

남에게 대접하는 요리, 그것도 일본 TV에 나와 만드는 요리인데 허투루 만들 수는 없었다.

진호는 한국의 맛을 제대로 보여 주기로 했다.

"아냐, 하지 마! 유부녀로서의, 엄마로서의 자존심을 지켜 줘! 아야 짱이 볼 거란 말이야!"

"……괜찮아요. TV는 냄새가 나지 않잖아요."

"진 짱-!"

* * *

MC는 한국에 일본 F4 중 한 명으로 유명한 마츠다 준과 배우로 서도 꽤 성공을 거둔 아이바 마사히 키였다.

일본에서 꽃미남이라 불리는 그들이지만, 집처럼 꾸며진 세트장의 현관문을 열며 등장하는 진호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됐어. 준의 외모도 나처럼 평범해졌어!"

"허! 내가 평범해진 거면, 넌 못 생겨진 거냐?"

"아차!"

진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이진호입니다."

"우에토 유리입니다-."

"압니다, 이진호 씨!"

아이바가 진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유카 누님을 성공리에 복귀시킨 마술사! 유키 구라모토 씨가 인정한 피아니스트! 네드 시런과 함께 작업한 뮤지션! 저희도 곡 좀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역시도!"

"에? 뭐야? 난 소개 안 해 줘?"

"시끄러워요."

"그래요. 우에토 씨는 잠깐 빠져 봐요. 영업 중이잖아요."

"……진 짱, 그냥 가자. 나 기분 나빠졌어."

"오오오! 일본 최고의 미녀 스타 우에토 유리 씨가 아닙니까!"

"너무 빛이 나서 계신지 몰랐어요!"

'아, 좋아한다.'

기분이 나빠졌다가 금세 좋아지는 우에토 유리의 모습에 진호는 피식웃으며 안을 향해 발을 옮겼다. 그렇게 세트 중앙으로 안내된 그들은 가벼운 자기소개와 함께 드라마 홍보도하며 근황을 이야기 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진호 씨가 그렇게 요리를 잘하신다고……."

"보통 잘하는 게 아니지. 정말 최고. 지금 당장 식당을 오픈해도 미슐랭 투스타 이상은 받을 정도일 걸? 진 짱이 만드는 디저트는 정말…… 하아."

진호 대신 우에토 유리가 대답했다.

"……에이, 전문적으로 요리를 하는 게 아닐 텐데."

"친구라고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니에요, 우에토 씨?"

"진짜라니까? 진 짱! 해 버려!"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진짜요? 아까 대기실에서는 실력 발휘하지 말라면서요."

마츠다 준과 아이바가 휙 우에토 유리를 보았다.

"괘, 괜찮아. 난 평범한 아줌마니까!"

"흐음, 뭐…… 알았어요."

진호는 세트장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오? 재료들이 좋은데?'

진호는 도마 위에 올려진 나이프 백을 열었다.

진호의 전용칼들이 들어 있는 나이프 백이었다.

화르륵!

"……전문가셨어요?"

진호를 따라온 아이바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요리를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수집하게 되더라고요."

"그 느낌 뭔지 알아요. 우리 리더도 낚시용품을 막 사더라고요."

"아, 그분은 오늘도?"

야라시의 리더는 낚시 때문에 피부가 흑인처럼 새까매진 일화가 있을 만큼 엄청난 낚시 마니아였다.

아이바는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뭐, 어딘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고생하시네요."

진호는 쌀을 불리기 위해 물을 부은 후 중식도를 꺼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앞다리 살을 가져왔다.

'김치찌개는 앞다리 살이지.'

"뭘 만들려는 건가요?"

"김치찌개요."

"김치찌개! 오, 그거 맛있죠!"

"그래요? 어디서 먹어 보셨는데요?"

진호는 아이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칼질을 시작했다.

아이바나 카메라 감독은 그 기예에 깜짝 놀라 호들갑을 떨었지만, 진호의 칼질은 어긋나지 않았다. 그렇게 먹기 적당한 크기로 고기를 자른 진호는 미리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냄비에 고기를 넣었다.

치이이이익!

"어어? 그, 그러면 눌어붙어요! 어서 기름을!"

"아, 이건 데글라세라는 프랑스 요리기법인데, 그 눌어붙는 게 오늘 만들 김치찌개의 포인트예요. 여기서 최소 6시간 이상 끓인 육수를 구할 수 없으니까 그 대체용으로 이런 기술을 이용하는 거죠."

진호는 그러며 소금과 후추를 조금 뿌려 고기의 풍미를 더욱 돋웠다.

그렇게 고기가 냄비에 들어붙어 쩍쩍 갈라지고 냄비도 더러워지자 진호는 그제야 맛술을 부었다.

"어라? 어어어?"

실패한 것 같아서 걱정을 했던 아이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째서!"

냄비에 들어붙어 있던 고기들이 너무 말끔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건 무슨 마술인가요!"

"고기육수 내기 귀찮을 때 쓰는 마술?"

싱긋 웃은 진호는 다시 냉장고에서 김치가 담긴 통과 여러 식재료들을 꺼내 왔다.

달칵!

"큭!"

"헐?"

아이바는 기겁하며 물러났다. 푹 익은 김치의 냄새가 갑자기 코를 찔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호는 눈을 빛냈다.

"이거 한국 김친데?"

그것도 제대로 된 환경에서 2년 동안 묵힌 전라도 김치였다.

"이걸 어떻게 공수해 왔지? 이 정도면 거의 명품이라서 식당에서도 잘 안 팔 텐데……. 이거 어떻게 공수했어요?"

"이진호 씨가 한국인이라서 제작진이 한국에서 공수해 온 겁니다!"

"와-."

제작진의 정성에 감동받은 진호는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아이바의 모습에 아쉬워했다.

'이거 진짜 맛있는 김친데……. 이 김치에 계란프라이만 곁들여도 밥 세 공기는 뚝딱인데…….'

진호는 안타까워하며 김치를 씻었다.

"어? 김치를 씻는 건가요?"

"네. 어차피 김치찌개는 여기 김치에 묻은 양념이 아니라 김치 국물이 진짜 비법이니까요."

실패한 김치찌개에서나는 오묘한 군내는 모두 이 김치에 묻은 양념 때문이다.

"……어쩐지! 아무리 한국산 김치로 만들어도 한국에서 먹은 그 맛과 색깔이 나오지 않더라니!"

옅게 웃은 진호는 살짝 씻은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냄비에 넣고, 김치 국물도 넣은 후 강한 신맛을 잡기 위해 여러 조미료를 뿌렸다. 그러자 김치찌개 맛집의 혀를 아리게 만드는 그 냄새가 스튜디오에 퍼졌다.

……꿀꺽.

"응?"

옆에서 들려오는 침 넘기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진호는 실소를 짓고 말았다. 어느새 우에토 유리와 마츠다 준이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부엌 앞에 몰려 있는 거 아닙니다. 어서 돌아가세요."

"하, 하지만……!"

"찌개 뜰 때 고기 안 넣어 드려요?"

사람들은 재빨리 몸을 돌렸고, 진호는 한 사람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아니, 아이바 씨는 저와 있어야죠."

"아차!"

목젖을 쿡 때리는 칼칼하면서도 시큼한 맛. 그리고 거친 육즙이 가득한 탱탱한 고기가 탱글하면서도 단맛까지 나는 냄비밥과 함께 어우러져 입안을 농락했다.

"맛있어!"

"허억!"

눈을 동그랗게 뜬 마츠다 준은 진호와 김치찌개를 번갈아 보며 맛을 표현했다.

진호는 흐뭇하게 웃으며 계속 먹으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사람들은 밥상 위의 반칙 반찬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조미 김까지 야무지게 싸 먹으며 소박한 한 상 차림을 허겁지겁 비워 갔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어떻게 입맛에 맞으셨나 모르겠네요."

"이진호 씨,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저와 사업하실래요?"

"아이바 짱! 나도 동업하고 싶어!"

진호는 호들갑을 떠는 아이바와 그녀를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마츠다 준은 그런 진호를 보며 눈을 빛냈다.

"진호 씨."

"네."

"정말 재주가 많으시네요. 여태까지 먹어 본 모든 한식 중 이게 가장 최고였던 것 같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게다가 프로그래밍에도 재능이 있으셔서 팬들을 위한 모바일 게임을 만들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네? 그걸 어떻게?"

진호는 화들짝 놀랐다. 일단 완성 되기 전까지는 비밀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에토 유리를 보았다.

"에헤헤."

'어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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