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9권 11화
우에토 유리가 비정규직 파견 사원에서 다시 백수가 되는 장면은 진호의 직장 신을 찍는 촬영장인 광고 회사 내에서 촬영했다.
"어째서죠? 전 야근도 불평 없이 했고,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요."
"비정규직을 줄이라는 상부의 지침이야. 그동안 수고했어. 아, 이 컵 좀 씻어."
부장이란 자는 우에토 유리에게 컵을 밀며 일어서 회의실을 빠져 나갔고, 우에토 유리는 그 컵을 부셔져라 쥔 채 파르르 떨다가 이내 체념하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컷!"
감독의 뒤에 있던 진호는 그제야 참았던 말을 뱉어 냈다.
"와, 때리고 싶다.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그냥 들이박았다, 진짜."
"……푸하하하하핫!"
"웃기지 말라고, 진 짱! 심각한 신이잖아!"
다가온 우에토 유리가 진호의 팔 뚝을 때리며 나무랐다.
그런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 했다.
어느새 들어온 부장 역할의 카메오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진호를 비롯한 세 배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장면을 다시 확인한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해. 비정규직의 애환이 모두 담겼어. 역시 우에토 씨야."
"호호, 고마워요. 진 짱이 보기엔 어때? 이 컵 씻으라는 아이디어를 진 짱이 낸 거잖아."
"방금 말했잖아요. 때리고 싶다고. 진짜 얄미웠어요."
진호는 카메오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고, 감독은 그제야 오케이 사인을 냈다.
이후 우에토 유리가 컵을 씻는 신을 끝으로 그녀의 촬영분이 끝나자, 진호는 자신이 맡은 배역인 프로그래머의 직장 생활을 찍는 촬영장로 향했다.
"어이, 거기!"
"음?"
엘리베이터 앞에서 있던 진호는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자 속으로 한숨을 내 쉬었다.
'괜히 혼자 이동했나.'
"자네 이름은 뭐지? 부서는?"
진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슴께에서 흔들리는 사원증을 매만졌다. 디테일을 위해 이 광고 회사의 사원증과 똑같이 만든 사원증이었다.
"안녕하세요. 귀 회사에서 촬영중인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 이진호입니다."
"……아! 이거 미안합니다. 뛰어난 외모를 지닌 분이 저희 회사 사원증을 달고 다니기에 싼값에 광고에 출현시킬까 했는데, 한류 스타 이진호 씨였군요. 어디서 봤다 싶었습니다. 하하하! 아, 전 마츠야마 겐시로입니다."
'네, 그러시겠죠.'
어디서 본 듯한 게 아니라 작정 하고 다가왔다는 걸 이미 눈치천 진호는 속내를 숨기며 옅게 웃었다.
"저런, 많이 아쉬우시겠어요."
"가슴이 쓰리도록? 하하하. 그런데 어디 가시는 겁니까?"
"촬영하러 가죠.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촬영하고 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그것 참 기쁜 말이군요. 그런데 맡으신 배역이 ……."
"프로그래머 입니다."
"프로그래머……. 힘든 직종이죠. 애로 사항이 많겠습니다."
'흠? ……호오?'
어떤 생각을 한 진호는 씁쓸히 웃었다.
"확실히 그런 면이 없잖아 있죠. 프로그래머와 인터뷰를 하긴 했어도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건 아니니까요."
"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렇지!'
의도한 대로였지만, 진호는 속내와 다르게 손을 저었다.
"아뇨, 아뇨. 그런 민폐를 끼칠 수는 없죠."
"민폐라니요. 저희 회사를 돈까지 주면서 홍보를 해 주시는데, 이 정도는 해 드려야죠."
"……음, 그래도 될까요?"
전산 정보나 보안 등 프로그래머를 필요로 하는 분야는 제법 많다. 하나 이 모두 보안이 필수인 곳들이라서 제아무리 진호라도 쉽게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아무리 의도하고, 또 마츠야마 겐시로라는 사람 또한 무슨 일을 해서든 진호 자신과 계약을 맺고 싶어 한다지만 양심이 콕콕 쑤실 수 밖에 없었다.
'바이럴 광고 한 편은 이 사람을 통해서 찍어야겠다.'
흔히 인터넷 광고라는 바이럴 광고. 그 정도면 이 일에 대한 충분한 값이 될 것 같았다.
"그럼요! 아,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군요."
"이거 죄송해서 참……."
"하하. 자, 어서 타시죠."
진호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현장에 있을 정 실장에게 조금 늦는 다고 문자를 보냈다.
타다다다다다다다 !
몇 명의 사람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곳이 저희 회사의 전산 정보 관리실입니다."
마츠야마 겐시로가 작게 말하자 진호도 기척을 최대한 줄였다. 그러나 그 눈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됐다-! 완료했습니다, 부장님!"
"……으아아아!"
"드디어 끝났다!"
"그래? 작동되는지 확인해 봐!"
"예!"
사람들이 됐다고 외친 직원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직원은 재빨리 프로그래밍 창을 종료하고,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부장이라 불린 이와 직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부디……."
"신이시여."
지난 2개월간의 노가다. 정시 퇴근은 커녕 저녁 11시 퇴근조차도 사치였던 지난날을 다시 반복할 수 없는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빌며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아악, 왜! 왜 안 되는 거야! 5번이나 확인했잖아!"
"헉! 깨, 깨진다!"
"안돼! 꺼! 얼른 꺼!"
겨우 수습한 부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장님, 어쩌죠?"
"어쩌긴. 다시 처음부터 확인해 봐야지. 한자, 한자."
지독한 노가다의 재시작을 알리는 말이었다.
"아아…… 음?"
그들은 그제야 이 공간에 이질적인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응? 마츠야마 상무님?"
마츠야마 겐시로의 얼굴은 터질 듯 붉어져 있었다.
진호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왔는데, 이런 실패한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노가다를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던 직원들은 심상치 않은 그의 모습에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안 풀리는 건가?"
"아, 그게……."
"어? 거기 숫자로 영을 써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이 진호를 보았다. 그건 다시 코딩창을 띄운 후 마우스 스크롤을 느릿하게 긁던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네?"
"여기요, 여기. 숫자가 아니라 영어잖아요."
"……아! 아아! 아아아!"
같은 기호나 0과 O의 차이로 인해 프로그램의 작동 유무가 판별 된다는 건 [스킬: 코딩의 신]의 스토리를 진행하며 아주 뼈저리게 느꼈던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부분만큼은 스킬을 얻지 않아도 잡아낼 수 있었다.
재빨리 고친 직원은 다시 코딩창을 종료한 후 프로그램을 테스트 했다.
"된다……."
사람들의 시선이 급히 직원에게로 몰렸다.
"되, 됩니다! 부장님! 작동이 됩니다!"
"호, 호환은! 기존 버전과의 호환은!"
직원은 얼른 몇 가지 작업을 했다.
사람들은 양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 했다.
"호환도 제대로 됩니다!"
"……으아아아아! 만세! 만세!"
"드디어 집에 가는구나-!"
"어흐흑! 오늘은 정말 잔뜩 마시고 잘 거야!"
"누군지 몰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은 신이 저희를 가엾게 여겨 내린 천사입니다!"
진호는 자신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한 직원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프로그래머들은…… 이런 성격이구나.'
진호는 이 부분을 연기에 참고할까 말까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런데 누구신지……."
"아, 이분은……."
진호 대신 마츠야마 겐시로가 대신 대답했다.
"……배우요?"
전산실 직원들은 믿지 못했다.
0과 O의 차이는 웬만한 경력의 프로그래머라도 단번에 잡아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 제가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어서요. 업무 통합시스템도 개발 중이고요."
"업무 통합시스템? 전산까지 함께하는?"
"네. 개념이……."
진호는 이쪽에 경력이 많아 보이는 그들에게 조언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기본 개념을 비롯해 알고리즘 등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호오!"
"오. 참신한데요?"
"그러게. 그런 방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구나."
"흐흐. 그런가요?"
"그런 방식이라면……."
그때부터 진호와 전산실 직원들간에 외계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전산실 직원들은 연신 탄성을 질렀다. 그러다 이내 경악했다.
"아니, 그걸 혼자 개발하고 있다는 겁니까?"
"말도 안돼."
"일단 기본적인 뼈대만 만들어 놓은 후에 기술자들을 불러야죠."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호 자신이 할 생각이었다.
"음……."
눈을 반짝인 부장이 갈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호는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했다.
"네?"
"……아, 아뇨. 아닙니다. 부디 꼭 무사히 완성시키길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촬영 시간이 다 돼서 이만. 수고하세요."
부장과 전산실 직원들은 몸을 돌리는 진호와 그를 어두워진 낯빛으로 따르는 마츠야마 상무를 보며 아쉬워 할 수밖에 없었다.
쿵!
문이 닫히자 그들은 입을 열었다.
"부장님, 저 사람이 말한 것 중 그 알고리즘……. 범용성이 대단했죠?"
"음."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가 말한 알고리즘은 어느 관리 시스템에 가져다 붙여도 될 정도로 범용성이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알고리즘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작은 회사 수준이라면 거의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관리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 회사 정도의 규모라면 글쎄……..버그 잡다가 날 샐 확률이 99퍼센트라고 할 수 있지."
"그래도 따올 수 있으면 우리가 쓰는 시스템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말해서 뭐해. 방금 들은 것만 적용시킬 수 있어도 9시 전에는 퇴근할 수 있을걸?"
"하지만 썼다가는……."
"큰일 나지."
거기다 진호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도 많아서 그대로 차용할 수도 없었다. 글자 하나, 숫자 하나에 달라지는 게 프로그램이니 말이다.
"아, 괜히 들었다."
사막을 걷던 중 발견한 오아시스가 알고 보니 신기루였다는 것처럼 극심한 갈증이 들었다.
그들 같은 프로그래머에게 잔업의 시간이 줄어드는 건 정말하늘 이 허락한 게 아니라면 힘든 일이니 말이다.
그건 부장도 똑같았다.
"으음……."
"왜 그러세요, 부장님?"
"분명 그 사람, 뼈대는 자기가 직접 만든다고 했지 않았나?"
"아아! 역시 부장!"
"……그런데 어떻게 접근하시려고요?"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가끔 들러 도움을 주면서 친해지면 배울 기회가 있지 않겠어? 아니면 정당한 대가를 주고 구입 해도 되고. 어차피 우리 회사에서 촬영한다잖아. 드라마 측에서도 써 먹을 뉴스가 생길 테니까……."
"……크아! 역시 부장! 저희완 접근법이 달라요!"
"이런 것까지 생각하라고 너희보다 직급이 높은 거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꼭 가져온다."
"파이팅!"
"기대하겠습니다!"
전산실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그럼 전 여기서 돌아가 보겠습니다."
"덕분에 좋은 구경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마츠야마 겐시로는 마지막까지 광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진호가 전산실에서 도움을 줌으로써 전산실을 구경시켜 준 빚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등을 빤히 바라보던 진호는 싱긋 웃으며 돌아섰다.
"무슨 좋은 일 있으십니까?"
감독이 다가와 묻자 진호는 의미 심장하게 웃었다.
"만약에요. 이곳에서 근무하는 전산실 프로그래머들이 저희 촬영장에 찾아와 이것저것 도움을 주려고 하면 어떨것 같으세요?"
잠깐 본 것에 불과했지만, 이 광고 회사의 전산 시스템은 회사의 규모에 비해 레벨이 좀 낮았다. 그리고 그 부장의 눈빛을 떠올리면 찾아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들이 그 알고리즘이나 핵심 코드들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알 리는 없을 테지만…….'
진호는 현재 [스킬: 코딩의 신]의 주인공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알고리즘 중 하나의 일부만 차용해서 업무 통합시스템을 개발 하고 있었다.
또 이것은 아주 먼 훗날 주인공이 개발하는 베타고를 뛰어넘는 인공지능에 쓰이는 알고리즘의 일부 중 일부 중 일부였지만, 제아무리 천재라도 흙 한 톨을 보고 산의 규모를 짐작하지는 못할 터였다.
'그래도 분명 욕심날 테지. 범용성이 높으니까.'
와서 이것저것도와주며 소스를 따 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프로그램을 통째로 훔쳐 가지 않는 이상 그들이 얻을 것은 극소수 불과 할 테니 말이다.
그 극소수정도라면 모두가 윈윈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좋죠. 전문적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테니까."
그림이 상상 이상으로 풍성해지고 디테일해질 터였다.
더불어 드라마를 홍보하는 수단으로도 써 먹을 수 있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회사의 홍보로도 이어 질 테니 이 회사의 경영진들은 승낙할 것이 분명했다.
'여기 진호 씨와 우에토 유리가 출연하는 드라마인데 허락을 안 할 리가.'
이런 이유 덕분에 이 회사도 쉽게 섭외할 수 있었다.
"그렇죠?"
"그렇죠. 음, 그렇다면 정말 프로 그램 하나 만들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를테면 다마고찌 같은 게임?"
"그럼 전 감정 잡고 있을게요."
진호는 재빨리 발을 뗐다. 게임까지 만들 시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