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10화 (210/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9권 10화

4.일본 드라마

리딩을 무사히 마친 진호의 입가엔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리딩이었기 때문이다.

'걱정했는데, 잘됐다.'

과장된 톤의 연기가 많은 일본 드라마.

그래서 진호는 이 드라마도 그런 식으로 연출될까 걱정했었다. 진호 자신과 우에토 유리가 정극을 연기해도 조연 배우들이 우스꽝스런 톤으로 연기를 해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대본만 봐서는 모를 다른 이의 연기 방식.

그에 진호는 그들의 연기가 이상 하다면 욕을 먹더라도 하차할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약간 과장되게 연기를 하긴 했지만, 분명 허용선 안이었고 또 그건 그것만의 맛이 있었다.

'특히 유리 씨 연기가…….'

이 드라마는 비정규직 파견 사원으로, 언제나 구직 중인 여성이 샐 러리맨 프로그래머의 가정부로 들어왔다가 서로 간의 사정으로 인해 계약 결혼을 하는 러브 코미디다.

툭!

뒤를 보니 환한 얼굴의 우에토 유리가 서 있었다.

"어때? 이 정도면 20대 여성 특유의 발랄함이 느껴지지?"

진호가 우려했던 또 다른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20대 여성을 연기하기에는 그녀의 나이가 많다는 것.

"최고던데요? 캐릭터 설정이 바뀌면서 훨씬 더."

본디 처음 대본을 받을 때, 우에 토 유리가 연기할 배역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애를 쓰는 20대의 비정규직 파견 사원이었다. 그랬는데, 우에토 유리가 출연을 승낙하자 어렸을 때 한 번 결혼을 했지만 실패해서 더 정규직에 목을 매는 20대 여성이 되었다. 시청자들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 짱도 연기 좋았어! 어찜 그렇게 태연하게 잘 연기해?"

진호가 맡은 배역은 연애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여태껏 단 한 번도 연애를 하지 않은 프로그래머다. 연애세포가 단 하나도 없는 무심하고 이성적인 성격.

"뭐, 흐흐."

"리딩도 끝났는데, 이제 뭐 할 거야? 한국으로 돌아가?"

"아뇨. 일본에 숙소 얻었어요. 프로그래밍 책을 볼 거예요."

'정확히는 만화책이지만…….'

프로그래머 관련 만화였지만, 진호는 그것까진 말하지 않았다.

"……와, 연기를 위해 그런 노력 까지 기울이는 거야?"

놀란 그녀의 눈이 양심을 콕콕 찔러 왔지만, 진호는 애써 무시하며 태연하게 웃었다.

"그래야 디테일이 사니까요."

'스킬도 얻을 수 있고.'

얻는다고 해도 아주 나중에, 연예계를 은퇴할 쯤에나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프로그래밍 관련 스킬.

'회사업무용 프로그램이나 만들어 볼까? 직원들 편하게?'

각 파트별로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써서 그런지 가끔씩 정보 교환이 잘 되지 않는 직원들.

진호는 이를 통합해서 서로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 볼 생각이었다.

'만드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때 그는 이 프로그램이 후에 어떤 일을 불러올지 모르고 있었다.

* * *

진호가 숙소로 얻은 집은 난방 시설을 한국처럼 갖춘 주택이었다.

띠리링!

"으아아! 춥다! 한국보다 더 추워!"

진호는 머리에 묻은 눈을 터는 정 실장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러게 내가 안주 만들어 준다니까 괜히 편의점을 간다고 해서……."

"편의점은 편의점만의 맛이 있는 법! 거기다 일본 편의점에 맛있는 게 좀 많냐?"

"그건 인정. 그건 뭐예요?"

정 실장은 편의점 봉투 말고도 제법 큰 박스를 들고 있었다.

"너한테 왔는데? 마침 벨을 누르려고 하더라. 이 동네도 택배 기사 님들은 저녁까지 일하나 봐."

"나한테? 아……!"

진호는 재빨리 일어나 박스를 받아 들어 포장을 뜯었다.

"오오!"

"응? 그래픽 카드네?"

"저기 컴퓨터에 넣을 마지막 부품이죠!"

거실에 놓인 TV 옆에는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잉? 다 완성한 거 아니었어?"

"무슨 소릴! 앙꼬 없는 찐빵도 있던가요?"

진호는 재빨리 다가가 본체를 열어 그래픽 카드를 조립시켰다.

달칵!

그래픽 카드가 본체와 맞물리는 소리가 나자 몸속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오케이. 3차 해금 조건 해제.'

1차 해금 조건인 '프로그래밍 관련 만화 한 작품 정독하기'와 2차 해금 조건인 '프로그래밍 관련 전문 서적 10권 독파하기'.

이 '컴퓨터 조립하기'는 3차 해금 조건이었다.

'이제 간단한 프로그램 하나만 만들면 스킬 습득이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이 되는 스킬의 주인공은 이렇듯 직접 컴퓨터를 조립 하는 것으로써 그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한다.

양손을 비빈 진호는 얼른 컴퓨터 전원을 켰다.

정 실장은 의자에 앉아 어떤 프로그램을 다운받기 시작한 진호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거 쓸 줄은 알고 다운받는 거냐?"

"디테일!"

"……에휴."

더 이상 말해도 듣지 않을 것 같은 진호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정 실장은 몸을 돌렸다.

'쟤가 아무리 머리가 좋다지만 프로그래밍까지 할 수 있을까.'

이과는 아예 다른 영역이었다. 예체능에 특화된 진호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곤 볼 수 없었다.

'그냥 감만 익히고 말겠지.'

"일찍 자라. 내일부터 촬영 시작인 건 알지?"

"옙!"

진호는 다운로드 퍼센트를 뚫어 지게 쳐다보며 다리를 떨었다.

띠디디! 띠디디!

알람 소리에 번쩍 눈을 뜬 정 실장은 급히 핸드폰을 확인했다가 안도 했다.

"……어으. 어제 술을 잘못 마셨나?"

겨우 맥주 4캔 먹고 잤을 뿐인데 뒷골이 욱신거렸다.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물을 마신 정 실장은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리고 거실을 보며 굳어 버렸다.

타다다다다다다닥 !

검은 화면 속에서 빠르게 올라가는 하얀 글자들.

안 그래도 아픈 뒷골이 망치로 얻어맞은 듯 아파 왔다.

"허억!"

기겁하며 고개를 돌린 진호는 흉 악하게 일그러진 정 실장의 얼굴을 보자 필사적으로 변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잠잤어요!"

"자긴 뭘 자! 눈곱이나 떼고 말 해, 이 자식아!"

진호는 반사적으로 눈가로 손을 가져갔다가 멈췄다.

"씻었는데요?"

[스킬: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하루 정도 씻지 않는다고 사람을 추레하게 만들지 않는다.

"늦었어, 짜샤"

"……사랑합니다?"

"까드득! 컴퓨터 부셔 버리기 전에 얼른 씻고 와!"

"네, 넵!"

진호는 화장실을 향해 달렸고, 정 실장은 이를 갈며 컴퓨터로 다가갔다.

"……뭐야, 이건?"

모든 프로그램 언어가 그렇듯 일반인은 전혀 알아보지 못할 외계어였지만, 뭔가 아주 그럴 듯해 보였다.

"진짜 만들 줄 아는 건가?"

그냥 꺼 버리기 위해 다가왔는데, 왠지 저장조차 안 하고 꺼 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이건 대체 저장을 어떻게 하는 거야?"

그는 결국 진호가 씻고 나올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주 한 번만 더 그래 봐라. 다 부셔 버릴 테니까."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진호 너 피부 엎어졌으면 나한테 죽었어."

정 실장과 최 실장의 목소리에서 체념이 느껴지자 겨우 웃을 수 있었던 진호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아, 이거 어렵네.'

스토리를 진행할 때도 머리가 박살 나는 줄 알았는데, 직접 해 보니 뇌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 버리는 것 같았다.

'전국수석 스킬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포기해 버렸을지도 몰라.'

"그냥 홈페이지나 만들까?"

[스킬: 참 쉽죠?]와의 시너지 효과를 생각해 본다면, 현재 쓰이고 있는 홈페이지보다 훨씬 더 멋진 비주얼이 나올 듯했다.

'아냐. 여태까지 한 게 있는데!'

완성까지 최소한 달은 걸릴 듯 했지만 시작이 반이었다.

반 이상 만들었는데 지금 엎어버리기에는 성격상 맞지 않았다. 한 번 손에 잡았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을 봐야 했다.

'일단 구동만 되면 돼!'

어설퍼도 상관없다.

버그가 넘쳐도 상관없다.

일단 작동만 하면 스킬을 습득할 수 있고, 이후 그 스킬의 힘으로 디버깅 작업을 하면 된다.

"근데 저건 또 언제 만들었냐?"

정 실장은 트렁크에 실린 에코백 속 쿠키들을 가리켰다.

"틈틈이?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힘들어서?"

"……에휴. 그래, 내가 널 어떻게 말리냐."

"에이, 왜 그러세요. 제가 사랑하는 거 알면서."

"시끄러. 세트장 다 와 가니까 준비나 해. 기자들 많이 왔다더라. 한국에서도!"

"오, 그래요?"

1차 대본 리딩 이후 진호의 일본 진출이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40만 명을 넘긴 지니 어스 일본 지부의 성화 때문에 기자들이 관심을 드러냈고, 한국에서는 진호의 신작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일부는 너무 쉼 없이 일하는 거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도착했다."

"오오."

선팅이 된 차창 밖을 본 진호는 살짝 놀랐다.

세트로 쓰일 어느 회사의 입구에 기자들이 가득했다.

갑작스럽게 붙은 10개의 후원사로 인해 제작비가 넘쳐나게 된 드라마 제작진이 보다 더한 리얼리티를 위해 섭외한 어느 광고 회사.

'이거 괜히 민폐 끼치는 거 아닌가 몰라.'

비어 있는 공간을 개조했다지만, 그래도 걱정이 앞섰다.

미간을 좁히던 진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노트북 가방을 챙겼다.

'내가 신경 쓸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내가 감독이라면 몰라도.'

다만 확실하게 양해를 구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내리죠."

"오케이. 스타일링 괜찮아. 정 실장, 문 열어도 돼."

"예!"

스르륵 차 문이 열리자 플래시 세례와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 * *

"안녕하세요!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안녕하세요!"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인사한 진호는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이 자리가 앞으로 진호 씨가 일 할 자리입니다."

"그래요?"

여느 회사의 회사원처럼 좌우로 칸막이가 쳐진 자리는 제법 아기 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소품 담당인 것 같은 여자 스태프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왔다.

"죄송하지만, 아뇨."

'날 좋게 본 건 알겠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무심한 성격의 주인공이라면 이런 팬시 용품을 쓰지 않을 것 같아요."

"아, 죄, 죄송합니다! 얼른 치우겠습니다!"

"이 선인장 화분은 좋을 것 같아요. 성격 때문에 대인 관계가 썩좋지 못할 것 같은 인상인 그가 회사 직원들과는 의외로 잘 어울리잖아요. 그걸 시청자들에게 납득 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킬: 유리가면]의 무대 연출력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거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센스 있네요. 아, 이 팬시 용품들은 주인공이 여주를 좋아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심경 변화를 보여 줄 장치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은 자책하고 있는 그녀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덕분에 그녀의 뒤에 있던 감독의 표정도 한결 누그러졌다.

"호호.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얼른 치울게요."

"컴퓨터도 같이…… 아니, 같이 치우죠."

"네? 아, 아뇨!"

"같이 치우는 게 빠르잖아요. 얼마 되지 않는데."

"그, 그러실 필요가……."

"컴퓨터는 왜 치우려는 겁니까?"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고 컴퓨터 부터 분리하려던 진호를 감독이 멈춰 세웠다.

'가져온 노트북에 만들던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게 합리적이니까요. 귀찮게 파일을 옮길 필요도 없고, 언제든 집에 들고 가서 일할 수 있잖아요."

"화, 확실히……. 고지식한 주인공 성격상 법적으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않는 야근보다는 편한 환경에서 잔업을 하려고 하겠군요.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의자도 이런 보급품이 아니라 인체공학적인 의자였으면 좋겠어요. 색상은 어두운 걸로."

"으음. 그런 부분도 있었군요."

'맞아. 인터뷰해 본 프로그래머들 모두 좋은 의자를 가지고 있었지.'

감독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캐릭터 이해력이 아주 좋은데?'

소문보다는 직접 보고 판단하는 걸 원칙으로 삼는 감독은 굉장히 흡족해했다.

'이런 배우였다니! 그저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었군!'

배역을 이토록 깊게 이해하고 연구하는 배우는 감독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노트북은 제 걸 쓸게요. 프로그래밍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놨거든요."

"으하핫! 정말입니까? 그런 준비력이라면 게임을 하셔도 눈감아주겠습니다!"

"흐흐. 감사합니다."

이젠 연기를 하면서도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겠다.'

진호는 이 드라마가 끝나기 전에는 완성시킬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활짝 웃었다.

이윽고 같이 연기할 배우들이 도착하면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스킬: 코딩의 신]

[세상은 0과 1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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