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9권 9화
툭!
버튼을 누르는 진호의 눈에 호선이 그려졌다.
"네, 다 됐습니다. 이제 나오시면 돼요."
-……나 이제 세 번 불렀는데요?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이열 삼촌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어? 으응."
정신을 차린 나이열이 이내 볼을 발갛게 붉히며 방방 뛰었다.
"아니, 형님! 이렇게 달달하게 부를 수 있었으면서도 왜 그동안 그토록 애절하고 처절하게만 불렀어요! 이건 역시 형수 때문이야. 그렇죠? 맞아, 아니면 이런 감성이 나올 수 없어."
김재범은 호들갑을 떠는 나이열을 보며 머리를 긁었다.
'아닌데…….'
부부 사이의 일이라서 말을 아낀 그는 이번엔 진호를 보았다.
진호가 악보와 함께 가이드 곡을 보내왔을 때, 김재범은 망설였다. 그동안 자신이 구축한 이미지와 맞지 않은 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응했던 건 그 가이드 때문이었지.'
일단 들어나 보자 했던가이드가 너무 친절하다 못해 밥에 반찬을 올린 숟가락을 입 앞까지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발성, 감성, 쉬는 곳까지 그 모두 김재범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져 있었다.
'목소리만 다를 뿐, 그건 완전히 내가 부른 가이드였지.'
그래서 한 번 불러 봤는데, 그의 내면엔 그동안 그조차도 몰랐던 스타일의 감성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완전히 맞춤 제작한 최고급 양복이었다.
'음. 그런데 이걸 발표하면 난 화사한 옷 입고…….'
-굳이 화사한 옷을 입으실 필요는 없어요.
흠칫!
김재범은 헤드셋으로 들리는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선배님의 스타일링대로 입으시고 노래하셔도 충분합니다. 그조차도 멋이 될 테니까요. 아, 헤어스타일은 모던하게 하시면 돼요.
김재범은 생각해 봤다.
머리를 모던하게 뒤로 넘긴 채 가죽점퍼를 입고 의자에 앉아 읊조리듯 편안하게 사랑 노래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그 엄청난 캡에서 오는 몰입감.
'아니, 노래랑 스타일링이 딱 맞아!'
노래 가사가 자존심 강한 상남자의 툭툭 던지듯 사랑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놀랐던 대중은 이내 곧 빠져들게 될 터였다.
'거기다 노래 자체도 아주 편안해서 부르는 동안 미소가 떠나지 않을 것 같아. ……좋은데?'
-일단 녹음하신 것부터 들어 보실래요?
"그럽시다."
김재범은 이내 귓가를 울리는 편안한 노래에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역시 좋아.'
진호는 그런 그를 보며 옅게 웃었다.
'진짜 맛있게 만든 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법이지. 그걸 그 자신이 만들었다고 해도.'
"와, 진짜 이 형님에게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은 몰랐네. 넌 대체 이 걸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스킬 때문에요.'
그동안 얻은 음악 관련 스킬을 비롯해 [스킬: 셜록 홈즈]와도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스킬: 재생사]가 그렇게 말했다.
김재범은 이런 곡도 부를 수 있다고 말이다.
"흐흐. 이미지 변신을 좀 하실 것 같지 않아요?"
"그걸 말이라고 해? 재범이 형 여성 팬들은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할 거다. 꺄악! 꺄악! 오빠-!"
"중년 아저씨들도 좋아하는 분들에게 불러 줄 노래 레퍼토리가 늘어 났고요?"
"그렇지! 이건 60대 형님들도 부를 수 있는 곡이야!"
그러면서도 10대까지 모두 아우르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자존심에 사는 동물이다. 안 그래도 자존심이 강한 10대와 20대들은, 아니 아무리 소심한 사람도 이 노래를 부르면 절로 상남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터였다.
"와-. 넌, 뭐 어떻게 볼 때마다 실력이 발전하냐?"
"흐흐흐."
-허허, 내가 이렇게 불렀군요. 왜 이 이상 더 좋게 나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지 알겠습니다. 나도 이 이상 잘 부를 자신이 없네요.
나이열이 냉큼 버튼 하나를 눌렀다.
"아직 믹싱이나 마스터링 등이 남아 있지만, 여기서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형님."
- 그래?
김재범은 이진호를 보았다.
나이열의 말이 맞냐는 것이다.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기본 뼈대가 완전히 완성됐으니까 얼마든지 넣을 수 있습니다."
김재범은 고개를 저었다.
-무대에서 부를 것까지 생각하면 이게 가장 베스트일 것 같군요. 괜히 있어 보이고 싶어서 악기 같은 걸 들었다가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요.
'크-. 역시 연륜이 깊으셔!'
진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넵! 그럼 잠시 쉬었다가 미니 앨범에 들어갈 두 번 째이자 마지막 음원을 녹음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허허. 알겠습니다. 작곡가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김재범의 컴백 미니 앨범이 제작되었다.
그의 화려한 복귀를 알릴 미니 앨범이 말이다.
* * *
얼어붙은 겨울을 녹이는 달달한 노래!
김재범의 충격 변신!
원조 상남자 김재범도 사랑할 땐 새침데기였다!
서버 다운! 음원 사이트를 찾는 중년인들!
이진호, 이번에도 작곡가로서 밀리언 노려 보나!
한국이 무척이나 시끄럽다.
그만큼 김재범의 변신이 놀라운 것이었다.
이런 한국의 이슈에 진호가 출연 하기로 한 일본 드라마 제작진은 다시 만세를 외쳐야 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방송국 입구까지 마중을 나온 드라마 스태프는 진호를 보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외모도 외모지만, 성공한 자로서의 아우라가 마치 후광처럼 빛을 내뿜는 것 같아서 눈을 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감독님이 왜 극진히 모셔 오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그럼에도 진호에겐 왠지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저 선한 미소 때문일까?'
같은 남자라도 반해 버릴 것 같은 선한 미소. 거기다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 특유의 오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스태프는 약간 안심할 수 있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진호는 앞장서는 스태프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부터 할 대본 리딩은 1차 리딩처럼 우에토 유리와 함께 둘만 했던 리딩이 아니라, 모든 배우가 모여 하는 리딩이었다.
'아 이거 긴장되네. 배척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동안 수많은 한류 스타들이 일본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렇기에 이제는 일본 드라마에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게 어색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었다.
우에토 유리라는 든든한 아군이 있다지만, 일단 타국이고 다 모르는 사람들이다 보니 한국 드라마 촬영장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기대하긴 어려울 터였다.
'흐음…….'
눈을 가늘게 뜨던 진호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분위기가 나쁘면 좋게 만들면 되는 거니까."
그를 위한 뇌물도 잔뜩 준비했다. 진호는 뒤에서 따라오는 정 실장이 든 커다란에코 백을 보며 히죽 웃었다.
"한국 배우라…… 일본어를 잘하면 좋겠는데……."
누군가의 읊조림에 대본 리딩장에 먼저 도착해 있던 배우들이 입 맛을 다셨다.
아무리 비주얼이 멋지고, 출연한 드라마마다 대박을 터트렸다고는 하지만, 일본어를 못하면 난처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진호가 맡은 배역이 순수 일본인이기에 더더욱 그러 했다.
"아, 그건 걱정 마세요. 그 사람 우리나라 사람같이 잘해요."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한 30대 미남 배우의 말에 사람들은 놀라워 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아, 맞아. 류헤이, 너 한국 영화 많이 찍었지?"
"그래서가 아니라, 그 사람 일본 토크쇼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했어요."
"어, 그래? 성격도 알아?"
사람들은 살짝 긴장했다.
진호는 이른 나이에 성공한 톱스타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오만 해지고 까칠한데, 타국의 배우이다 보니 자국 스타들보다 같이 촬영 하기가 힘든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저도 만나 보지 못해서 뭐라 말 할 수는 없지만, 듣기로……."
쿵쿵쿵!
"이진호 배우님 입장하십니다!"
'벌써?'
리딩이 시작되기까지 무려 1시간이나 남았다.
주연 배우가 이렇게 일찍을 줄 몰랐던 사람들은 재빨리 입을 다물며 열리는 문을 응시했다.
'읏?'
'오?'
후광이 비춘다는 게 이런 걸까. 사람들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비주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진호 입니다!"
'……일단 인사성은 좋네.'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미지로 인하여 경직되었던 마음을 풀 수 있었다.
'그런데 뭔 간식을 저렇게……. 대식가인가?'
에코 백을 가득 채울 만큼 담긴 빵과 초콜릿들을 보며 사람들이 의아해할 때, 진호는 속으로 연신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집에서 일본 드라마를 시청할 때 자주 봐 왔던 일본 배우들.
'와, 이분들을 실제로 뵙게 될 줄 이야!'
한국으로 치면 감초조연, 씬 스틸러 조연 등 주연 같은 조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진호는 다시 한번 이 드라마의 배우 라인업이 좋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진호는 그중 한 사내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안녕하세요, 이진호입니다! 명량해전, 아니 출연하신 영화들 모두 진짜 감명 깊게 봤어요! 와, 그 오타니 류헤이 씨를 여기서 될 줄이야!"
"아, 네……."
너무 격한 인사라서 순간 당황했던 오타니 류헤이는 이내 옅게 웃었다.
"역시 듣던 것처럼 성격이 좋으신 것 같네요."
"흐흐. 감사합니다. 아,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진호는 초콜릿과 빵이 담긴 작은 봉지를 그에게 내밀었다.
"풋. 이게 그건가요? 한국 연예계에서 유명한 마성의 간식? 만날 촬영장에 가져오신다는?"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죠. 입 맛에 맞으시면 좋겠네요. 헉! 우타다 타카시 씨! 안녕하세요! 이진호 입니다! 출연하신 작품들 모두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허, 흠. 우타다 타카시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시다 마리코 씨! 이진호입니다! 출연하신 작품들 정말 감명 깊게 봤습니다."
"제 작품을 알아요?"
"알다 뿐일까요."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진호의 모습에 많은 부분에서 안 도할 수 있었다. 걱정처럼 성격이 까칠하지 않았고, 일본어도 마치 일본 아나운서처럼 매끄러웠다. 진호는 그런 그들의 표정과 몸짓의 변화를 보며 속으로 활짝 웃었다.
'됐다!'
사람들 모두의 턱과 가슴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첫인상을 아주 좋게 남겼다고 봐야 했다.
사람들은 자신들 모두에게 인사 한 후 지정된 자리에 앉아 대본을 펼치는 진호를 호감 있게 보며 그가 준 간식 봉지를 열었다.
바스락. 부스럭.
빵이나 초콜릿 중 손에 잡히는 대로 입안에 넣었던 사람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맛있어!"
"아니, 이게?"
"이 무슨?"
일본에서 유명하다 할 수 있는 곳에서 판매되는 빵이나 초콜릿의 레벨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맛.
'이,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거짓말아냐?'
너무 뛰어난 맛이다 보니 도리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오타니 류헤이 옆에 앉은 배우가 입을 열었다.
"류헤이, 이거 진짜야?"
"한국에서 아주 유명해요. 이진호 씨의 디저트 만드는 실력은. 와, 이런 레벨이었구나."
"그, 그러니까 이런 걸 매일 만들어서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나눠준다고?"
"자기 촬영날에는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허."
사람들은 경이롭다는 듯 진호를 보았다.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외국어도 잘하고, 디저트까지 잘 만드는데, 성격까지 그렇게 좋아?'
그들의 눈에 어린 호감은 더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음?"
진호는 여러 스킬들로 인해 예민해진 청각 덕분에 그들의 모든 말을 들었음에도 모른 척 고개를 들었고, 사람들은 진호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흐흐흐. 그렇지. 분위기가 나쁠 것 같으면 좋아지게 만들면 되는 거야.'
단것은 그 어떤 사람이라도 성질을 누그러트리게 만드는 마약 같은 성질의 것이었다.
의도대로 됐다고 생각하던 진호는 리딩 장소의 문을 보았다. 누군가 왔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에토 유리 배우님 입장하십니다!"
문이 열리며 우에토 유리가 들어 오자 진호는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