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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08화 (208/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9권 8화

눈물의 시상식이 끝나고 며칠이 흐르자, 진호는 이번엔 연말 가요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움직였다.

올 봄에 발표한 앨범이 결국 200 만 장을 달성하면서 초대된 것이다.

연기나 예능 시상식처럼 시상식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호는 자신을 사랑해 준 팬들을 위해 출연을 결정했다.

"이쪽입니다, 진호 씨!"

"아, 예!"

빠르게 달려온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개인용 대기실에 도착한 진호는 의아해했다.

스태프가 우물쭈물거렸기 때문이다.

"저, 그…… 최우수 연기상 타신 거 축하드립니다."

"아! 흐흐. 감사합니다."

"그런데 남우주연상을 타지 못한 것은 아쉬웠어요!"

드라마 부문 최우수상 때문인지 남우주연상은 다른 이에게 돌아갔고, 여우주연상은 김세연이 받았다.

정말로 '우리들의 1987'이 상을 싹쓸이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이견이 없는 결과여서 시상식은 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완전히 연말행사로 안착할 수 있었다.

'이제 지상파와 영화만 남았지.'

예능 쪽도 있지만, MC나 메인이 아니기에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시, 실례가 안 된다면 사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완전 팬입니다!"

"사진도 같이 찍을까요?"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스태프와 사진을 찍고 사인도 해 준 진호는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인들을 찾아 바로 다시 나왔다.

"헉! 이, 이진호!"

"허억!"

분분히 비켜선 가수들이나 기획사 관계자들이 질시와 욕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지만, 진호는 모두 무시하며 대기실 문에 붙은 이름들을 훑었다.

'눈 마주쳤다가는 잡힌다!'

그래도 그는 연말 시상식이라서 그런지 무대 의상을 더 화려하고 과감하게 입은 걸그룹 여신님들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아, 여기다."

진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저 왔습니다!"

"오, 진호! 내가 제일 사랑하는 진호 왔니?"

갑자기 열린 문에 살짝 놀랐던 양진혁이 환하게 웃었다.

그에 진호도 활짝 웃으며 문을 닫았다.

"아, 잘못 찾아왔구나."

쿵!

진호가 나타나자 거의 반사적으로 양손을 들었던 대기실 안 사람들은 뻘품해졌다.

"잘 찾아왔어, 인마! 들어와!"

다시 문을 연 진호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축하드려요!"

"축하합니다!"

"흐흐흐."

뒷목을 긁적이며 안으로 들어온 진호는 양진혁을 향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사장님이 왜 여기 계세요?"

"아, 그게……."

양진혁은 진호의 양손을 살폈고, 진호는 그제야 이유를 알아차렸다.

'암튼.'

'우리들의 1987' 팀은 팀 존스와 마리나가 직접 만든 드레스를 입었다. 그걸 찾는 듯 싶었다.

철없는 아이 같은 그 모습에 진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흠. 자, 작업 한 번 하자는 거지. 진아랑 작업하자. 진아도 오리콘 보내게."

JH, 아니 국내에서도 소울 하면 따라올 가수가 없다는 감성보컬인 이진아. JH에도 폴륭한 작곡가가 많아서 양진혁의 제의가 의아했던 진호는 순간 훅 끌렸다.

진호의 눈에 흥분이 서리기 시작 했다.

"아, 그건 끌리네. 일단 그 전에 듀엣곡 콜?"

"콜! 대신 진아 비주얼에 맞춰서 우월남과 짝사랑녀로 하자."

"어, 저야 괜찮지만…… 괜찮으시겠어요?"

진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설마 소속 가수가 소속사 사장을 때릴까…… 아니, 잠깐."

양진혁은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진아 씨라면 때릴 수도…….'

4차원을 넘어 6차원에 가까운 이진아. 어디로 될지 모르는 그녀를 제단하는 건 진호조차도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할 땐 하는 성격이기에 같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레오 형은요?"

"대원이랑 이열이에게 인사하러 갔지."

"어? 두 분 모두 벌써 도착하셨어요?"

가을과 겨울을 겨냥한 곡을 발표 해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그들. 진호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러나 손을 붙잡는 양진혁의 말에 일어설 수 없었다.

"그래도 아쉽다. 그 시상식에 대상이 있었으면 네 거였을 텐데."

"……흐흐. 올해가 안 되면 내년에 노리면 되죠, 뭐."

최은수 작가의 차기작은 지상파에서 방영되기로 했다.

내년 연말에는 지상파 연기대상을 노릴 수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열심히 해야지!'

"그래, 그 마음 좋다. 그래도 대상 하나는 타겠네."

"네? 제가요? …… 아!"

"그래, 망고 뮤직 어워드."

"흐흐흐. 안 그래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 최대의 음원사이트인 망고가 주관하는 망고 뮤직 어워드는 특이하게도 음력으로 12월 31일에 시상식을 연다.

양진혁은 웃는 그를 보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드에 참석 했다면 대상이 두 개였을 텐데……."

"AAA는 좀……."

"하긴 거기가 상을 좀 남발하기는 하지?"

좀 남발하는 게 아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상까지 합하면 거의 백여 명의 아티스트와 관련 관계자가 상을 받는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 숫자까지 모두 포함하면 그 이상이었다.

"네. 이왕 대상을 받을 거면 제대로 된 대상을 받고 싶어요."

그래서 진호는 처음부터 참석을 고사했고, 대상은 다른 이에게 돌아갔다.

그 때문에 말이 제법 많았다.

"여기 지상파들이 옛날처럼 시상식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쩝."

"……어쩌겠냐. 모두 자업자득이지. 방송국이나 우리 기획사들 모두 "

정확히는 광적인 팬덤 때문이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가수가 대상을 타지 못하면 게시판 테러를 일으키는 팬들 탓에 지상파 3사는 더 이상의 가요 시상식을 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엔딩 무대잖아. 그게 사실상 대상이지, 뭐."

"흐흐. 그것 때문에 참석한 겁니다. 안 그랬으면 참석 안 했죠."

'크-. 대상!'

생각만 해도 입술이 절로 꿈틀거렸다.

그러나 양진혁은 진저리를 쳤다.

"어후! 네 팬클럽을 적으로 돌리느니 엔딩 무대를 고사하는 게 백 배 낫지!"

"웃기는…… 아무튼 진아랑은 언제 작업할래?"

"음. 5월 이후?"

"왜? 최은수 작가 신작 첫 미팅이 4월이라며!"

"그것도 있지만, 할 일이 있거든요."

"할 일? 뭔데?"

"지켜보시면 알아요."

일본 드라마 때문이 아니다.

'진태를 서울로 불러온 이유!'

진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고, 양진혁은 또 무슨 사고를 치려는 거냐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 * *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날은 더 추워져 갔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움츠렸다.

그건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최 봄도 마찬가지였다.

-지이잉! 징! 징징징!

노트북 안에서 진호가 구슬땀을 흘리며 일렉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진호가 올 봄에 발표한 앨범의 타이틀곡을 팬들을 위해 락 버전으로 편곡한 것이다.

"역시 진호 오빠. 최고야."

작고 서늘한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노트북으로 연말 가요 축제를 보는 봄의 눈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똑똑똑.

"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중년 여성은 방안의 냉기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다 이내 곧 울상을 지었다.

"따뜻하게 하라니까……."

"연습이야, 연습! 콩쿠르장은 춥잖아."

봄은 더 일그러지는 엄마의 얼굴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무슨 일이에요?"

"아! 진호 씨가 소포 보내왔어!"

"오빠가?"

이불을 던지다시피 벗은 봄은 다급히 작은 소포를 받아 들었다.

"진호 씨가 이번에도 새해 선물을 보낸 것 같더라."

"에휴. 이러지 않으셔도 된다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두 눈에는 기대감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얼른 소포를 뜯어 열어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USB?"

그 외에 다른 건 없었다.

"어휴, 다행이다. 이번에는 작년 처럼 큰 선물을 보내지 않은 것 같네. 딸, 얼른 확인해 봐."

"……응!"

선물의 크기나 값이 아니라 진호가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한 봄은 얼른 USB를 노트북에 꽂았다.

USB 안에는 MP3 파일과 여러 장의 문서 파일이 있었다.

그에 더 의아해한 그녀가 MP3 파일을 여는 순간이었다.

♩♬♬♩♪♩♬♬

방안을 크게 울리는 피아노 소리.

마치 봄의 숲을 연상케 하는 듯 선선하면서도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곡이었다.

봄이의 어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정작 봄은 낯빛을 굳힌 상태였다.

"어머머. 우리 딸이 딱 좋아할 만한 곡이네. 화창한 봄!"

이름처럼 봄과 같은 곡만 좋아하는 최봄.

취향이 너무 확고하기에 어두운 곡을 연주해도 밝은 봄의 느낌을 담아 버리는 그녀이기에 콩쿠르에서 썩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아니야, 엄마.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봄 그 자체였다. 때론 비도 오고 어둡기도 하며 자연의 모든 게 여름이라는 성장의 때를 기다리는 봄.

그동안 그걸 표현한 곡이나 표현 할 방법이 없어서 화창한 봄만 연주했던 것이다. 어두운 것보다는 밝은 게 낫기 때문이다.

그 순간 곡의 느낌이 변했다.

"어?"

"왜?"

"아, 아니……."

'어두워졌어! 하지만 마냥 어둡지가 않아!'

어두운 하늘과 단비를 기다렸던 새싹의 기쁜 마음이 모두 담겼다.

아니, 봄의 모든 자연 현상이 7분의 곡 안에 모두 담겼다.

'맞아! 이런 거야!'

완전한 취향 저격.

그녀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좋아 했지만, 이내 곧 입술을 깨물었다.

'진태다. 이거 진태가 친 거야!'

그 어떤 때조차 묻지 않은 수백 년 전의 봄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더 질투가 났다.

봄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히잉. 왜 오빠는 진태만……."

최봄은 진호가 후원을 하는 예술인 중 한 명이다.

그런 최봄에게 있어서 진호는 너무도 고맙고 평생 빚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인이지만, 지금만큼은 야속했다.

이 곡을 진태가 먼저 쳐서 더욱 더 야속했다.

"따, 딸?"

"안 울어!"

이를 악문 그녀는 악보가 그려져 있을 첫 번째 문서 파일을 열었다. 야속한 건 야속한 것이고, 좋은 곡은 좋은 곡이었다.

"어? 편지다."

"응?"

재빨리 다가와 편지를 읽기 시작한 봄의 모친은 이내 곧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푸근히 웃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안심이 돼? 진호 씨가 딸을 진태만큼 사랑하는 게 느껴져서?"

편지에는 봄이를 위해 작곡한 곡 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이 곡으로 꼭 콩쿠르에서 우승하라는 말도 있었다.

"……엄마, 나."

"응? "

"여권 만들어 줘."

"……응?"

"이 곡이면 국제 콩쿠르에서도 우승할 수 있어."

'아니! 우승할 거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돼서 진호 오빠한테 꼭 보답할 거야!'

대회 우승보다는 피아노 치는 게 좋고, 그걸 다른 이에게 들려주는 것이 좋아서 콩쿠르에 참가했던 최봄.

그녀가 상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건 진호에게 곡을 받은 다른 피아니스트들도 마찬가지였다.

* * *

새해 벽두부터 진호는 바빴다.

춘자 할머니를 비롯한 그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온천 여행을 다녀왔고, 10개 브랜드의 새해 특집 화보를 찍었다.

일본으로 넘어가 드라마 관계자들과 1차 대본 리딩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던 진호는 1월의 중순이 되어서야 겨우 여유를 가질 수 있었지만, 그건 완전한 여유가 아니었다.

음향 설비가 제대로 갖춰진 스튜디오의 의자에 앉은 진호는 말라 가는 입술을 핥으며 출입구를 응시했다.

"으-"

"너도 긴장을 하긴 하는구나."

나이열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진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은 긴장 안돼요?"

"당연히 되지. 어후, 이 형님은 왜 이렇게 안 와?"

"그러니까요……."

'오셨다!'

진호와 나이열이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수염을 멋지게 기른 50대의 중년인이 들어 왔다.

"내가 많이 늦었죠?"

두 눈에 미안함이 가득한 그의 이름은 김재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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