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24화
휙!
주방안으로 한 발 내딛자마자 모든 요리사들이 이쪽을 보았다.
움찔!
'……뭐지?'
깜짝 놀랐던 진호는 약간 의아해했다.
몇몇 젊은 쉐프들을 제외한 모든 쉐프들의 눈에 온기가 어려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물품을 감별하는 듯한 무기질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그 바탕은 분명 장성한 손자를 보는 듯, 기다리던 손님을 반기는 듯 흐뭇한 온기였다.
'왜지? 난 굴러온 돌인데?'
이렇게 주방을 담당하는 팀이 있는데, 외부에서 쉐프를 데려왔으면 응당 적대를 해야 맞았다. 고용인 이 그들의 실력을 미덥지 못해 하거나 의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오를 하고 왔는데 반응이 예상과 달랐다.
"여기 이분이 웨식스의 디저트를 책임지시는 파티쉐이십니다."
"아스터 체셔입니다."
팔뚝, 아니 몸 전체가 여느 보디 빌더 못지않게 커다란 70대 노인이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진호는 그의 몸에서나는 빵 냄새에 방금 전 의문도 잊은 채 재빨리 그의 손을 잡았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진호입니다!"
"……날 압니까?"
"아뇨. 하지만 쉐프께서 빵을 어떻게 만들어 오셨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진하고 향기로운 빵 냄새라니…… 정말 존경합니다."
갑작스런 칭찬 때문인지 멍해졌던 아스터 체셔는 이내 곧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곧 정색했다.
"아부를 참신하게 할 줄 아는군요."
부리부리한 두 눈이 그의 얼굴을 뭉갤 듯 노려봤지만, 그 속에는 온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상해.'
그냥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아주 이상했다.
그래도 적대를 하지 않으니 진호는 긴장을 풀고 웃을 수 있었다.
"환심을 사기 위해 아부를 할 만큼 실력이 떨어지진 않습니다."
아스터의 뒤에 있던 다른 파티쉐들이 '이것 봐라?'라는 듯 눈을가 늘게 떴다.
'……아, 몰라. 몰라.'
진호는 이해하기를 그만두었다.
"호오-. 그 입담만큼 실력이 되는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아스터는 해 보라는 듯 철제 조리 테이블을 가리켰고, 진호는 재료를 찾아 눈과 코의 감각을 집중 시켰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다미앙 씨도 나가 주세요."
집중하기 시작한 진호의 얼굴을 본 다미앙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아스터 씨, 식자재 창고는 어디 있죠? 아, 저기인가?"
[스킬: 불을 지배하는 자]와 [스킬: 나는야, 자연의 왕자], [스킬: 셜록의 후예] 등으로 예민해진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진호는 뒷문처럼 생긴 곳을 향해 발을 성큼성큼 옮겼고, 파티쉐들은 화들짝 놀랐다. 식자재 창고가 맞았기 때문이다.
눈을 가늘게 뜨던 아스터가 진호의 뒤를 쫓았다.
문을 연 진호는 '역시'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늘한 공간엔 온갖 식재료들이 있었다.
그는 그중 밀가루를 모아 놓은 곳으로 향했다.
"……미쳤다."
손끝에서 매끄럽게 부서지는 밀가루에서 나는 고소한 향기와 혀 끝을 무겁게 울리는 맛.
"극상품이야."
밀가루뿐이 아니다.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식재료 창고 안에 있는 모든 식재료가 최상품을 넘어 극상품이었다.
"진짜 좋은 물건들은 최고급 식당에나 수출된다고 하더니……. 와, 여기가 천국인가? 대체 뭘 만들어야 하지?"
무얼 만들어도 최고의 요리가 나올 것 같았다.
'기본은 됐군.'
아스터 체셔는 식재료를 확인하는 진호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요리사라면 응당 자신이 쓸 식재료는 스스로 검수해야지. 거기다…….'
식재료를 보자마자 마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해졌다.
요리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모델 겸 배우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라고 했던가?'
"여기 있는 걸 모두 이용해도 됩니다."
"정말요!"
비명을 지르듯 기뻐서 반문한 진호는 아스터가 고개를 끄덕이자 재빨리 식재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인가? 이러면 생각해 뒀던 레시피 레벨을 올릴수밖에 없잖아!'
이곳에 있는 재료들이라면 [스킬: 태양여왕의 황금손]의 주인공이 만든 레시피들 가운데 최상위권에 있는 작품들을 충분히 구현해 낼 수 있다. 아니, 그 이상의 맛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치즈 스콘?"
아스터는 진호가 챙기는 재료들을 보곤 살짝 놀랐다.
"스콘이 영국 빵의 기본이잖아요. 진짜 후회하시면 안돼요. 정말 아낌없이 쓸 겁니다."
진호는 각기 다른 치즈 덩어리 다섯 개를 마치 보물처럼 품에 안으며 경계하듯 말했고, 아스터는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예스!'
주먹을 불끈 쥔 진호는 나머지 식재료들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나무로 만든 도마와 볼을 가져와 그 위에 챙겨 온 세 종류의 밀가루를 때려 부었다.
'저, 저!'
'무식한!'
젊은 쉐프들은 계량조차 안 하고 밀가루를 쏟는 진호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지만, 나이 든 사람들을 달랐다.
"호오."
"고작 저 나이에 손으로 계량하는 스킬을 갖춘 건가?"
"양이 절묘하군. 아니,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해."
"거기다 나무로 만든 볼을 써서 쇠의 맛을 배제하고 있어."
"기본기는 확실하게 갖춘 것 같군요, 아스터 치프."
"계속 지켜보지."
이런 사람들의 감탄은 진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신경을 손 전체에 집중하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콱! 콱! 콱!
손바닥에 뭉개지는 반죽에 스며 드는 공기의 양.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려는 반죽이 머금은 공기의 양.
그렇게 공기가 섞이며 뭉쳐지기 시작하는 반죽의 탄력에 진호는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이 최고의 스콘을 만들기 위한 황금의 탄력을 만들어 내려면 잡 생각 따위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신경을 손에 집중했던 진호는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그러나 이제 1차 반죽이 완성 됐을 뿐이다. 1차 휴지를 하는 동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진호는 다시 움직여 냉동고에서 얼음을 가져와 랩으로 두껍게 감 싼 볼의 주둥이 위에 뿌렸다.
"호오. 냉장고에 넣지 않는 건가?"
"냄새가 섞이니까요. 잠시만요."
아스터의 질문에 대충 대답한 진호는 가져온 치즈 다섯 덩어리 중두 개는 볼 위의 얼음에 올려놓고, 두 개는 중탕에 녹일 준비를 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의아함을 드러냈다.
"이 한 개의 치즈는 그냥 상온에 둘 건가?"
아스터가 다시 궁금한 점을 물었다.
"아뇨, 저기 화덕에서 구울 거예요."
"굽는다고?"
웅성웅성.
그들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방식의 조리법.
"사기로 된 접시……아, 저기 있네. 잠시만요. 지나가겠습니다."
쉐프들은 분분히 비켜서며 길을 터 줬다.
옛날식 화덕 앞에 선 진호는 치즈와 사기 접시를 들지 않은 나머지 손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헛!"
"위험!"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다가왔지만, 진호는 태연히 한 노인을 바라 보았다.
'약해.'
"이 화덕 불 조절 좀 해도 되나요, 주방장님?"
"……내가 이 주방의 수장인 건 어떻게 아셨소?"
"여기 계신 분들 중 가장 다채로운 음식 냄새가 나니까요."
"……허헛!"
사람들은 경악하며 진호를 봤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인가?'
'에이, 우연이겠지.'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게요."
진호는 화덕 옆에 있는 숯들을 화덕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근처의 도마가 놓인 테이블에서 들고 온 치즈를 잘게 잘라 도자기 그릇에 뿌리듯 평평하게 펼쳤다.
동시에 시선은 화덕에 고정시키며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금!'
진호는 재빨리 피자주걱 위에 접시를 올려 화덕 안에 집어넣었다.
'지금!'
녹아든 치즈가 굳으려 들기 반 보 직전, 접시를 뺀 진호는 다시 재빨리 움직여 중탕에 두 가지 치즈를 녹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조리 방법에 더 이상 이해하기를 관두며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 그들의 시선 속에서 1차 휴지가 끝난 반죽에 다섯 가지의 치 즈를 넣고 다시 반죽을 한 후 2차 휴지까지 마친 진호는 반죽 모양을 잡는 와중에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라?'
치즈 냄새와 빵 냄새가진하게 풍기는 주방은 조용했다.
입을 다문 사람들은 자신들의 앞에 놓인 노릇하게 구워진 사각의 스콘을 보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대체…….'
스콘은 참 못생긴 빵이다.
이리 터지고, 저리 갈라지고.
결코 100퍼센트 똑같은 모양이 나올 수 없는 빵이 스콘이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스콘은 달랐다.
아니, 일반적인 스콘처럼 똑같은 모양은 없다.
그런데 진호의 스콘은 못생기지 않았다.
갈라져 솟구친 틈을 윗면을 매끄럽게 덮으며 번들거리는 계란의 윤택, 층층이 쌓인 듯하면서도 현무암처럼 구멍이 생긴 옆면들 모두 계곡을 걷다가 본 예쁜 돌처럼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스콘인데?'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과 달리 진호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여왕의 황금손이 참 쉽죠? 와 시너지를 일으켰어.'
빵 모양을 잡는 순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빵을 만들 수 있을지, 이 반죽이 다 구워졌을 때 어떤 형태가 될지 말이다. 그다음은 너무도 쉬웠다.
"한번 드셔 보시죠."
진호의 낭랑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아스터 체셔를 보았다. 그가 파티쉐의 치프였으니 말이다.
"……어흠."
어쩔 수 없이, 아니 눈을 빛내며 나선 아스터는 뜨거운 스콘을 거침없이 입안에 가져가며 크게 깨물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흡!"
'이, 이건?'
다섯 가지의 치즈 맛이 모두 존재감을 내뿜으며 입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세 명의 형제 같은 세 가지 밀의 고소한 맛이 그러지 말라는 듯 달래며 난동을 부리는 치즈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며 콧속을 슬그미니 스며드는 계란의 묵직한 맛.
"……이것의 이름이 뭡니까?"
"오중주 치즈 스콘이에요."
[스킬: 태양여왕의 황금손]의 주인공이 만든 레시피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최상급의 빵.
"오중주가 아니라 털색이 각기 다른다섯 마리 아기 치즈 늑대가 야생 밀밭에서 뛰논다라는 게 더 어울리겠군요."
'와, 감수성이 넘치시네.'
참 덩치에 어울리지 않다 싶었다.
"다들 먹어 봐."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군침만 삼키던 쉐프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아스터 체셔처럼 굳어 버렸다.
* * *
똑똑똑!
"들어오세요."
문이 열렸지만 눈앞에 서류만 쳐다보던 에드워드는 콧속을 파고드는 진한 빵 냄새에 고개를 들었다.
"벌써 티타임 시간인가?"
"오늘은 새로운 빵입니다."
"그래?"
한숨을 길게 내쉬며 몸을 이완시킨 에드워드는 언제나처럼 빵부터 집어 들었다.
퍼석!
"……."
에드워드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후 말없이 스콘을 씹어 삼킨 그는 홍차를 입에 가져갔다가 내려놓았다. 조금 더 스콘의 맛을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대단하군. 아니, 훌륭해."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어머니, 아니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에게 진상하고 싶을 정도의 진미였다.
'아니, 내일 입궁할 때 가져가야겠군.'
"아스터는 괜찮나?"
에드워드는 이런 엄청난 빵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신경을 기울였을 아스터 체셔의 몸 상태가 걱정 되었다.
내일도 부탁하고 싶으니 말이다. 그는 이것을 미모로 자신의 딸을 꼬드겼다고 알고 있는 진호가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진호 리가 만든 것입니다."
"……뭣?"
에드워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집사장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