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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96화 (196/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21화

대기실을 나선 진호는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여느 한국 축제에서든 볼 수 있는 그런 무대로 오르는 계단에 섰다.

그와 동시에 사회자가 진호를 소개하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아, 이 사람을 제가 소개할 줄은 몰랐군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남자 모델 1위! 동양의 프린스!"

"……서, 설마 진호 리?"

"응? 진호 리가 누구야?"

웅성거리는 소리가 진호의 귓가에 들려왔다.

"하핫. 여성들은 모두 아는 것 같네요. 진호 리, 어서 올라오세요."

피식 웃은 진호는 무대를 향해 오르며, 무대 아래에서 있는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여성들의 비명과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까아아아아아악!"

'우왁!'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함성이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흐흐흐. ……응?'

환하게 웃으며 사회자와 네드 시런이 있는 무대중앙으로 걸어가던 진호는 무대 아래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그녀도 이쪽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앨리스 루이스?'

"……헐?"

우연이라면 정말 공교롭다고 할 수 있는 우연이었다.

"어…… 잠시만요, 네드. 방금 당신이 한 말을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요?"

관객들도 웅성거리며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의 새 앨범이 지금 발매를 시작했다는 거죠?"

"네, 제대로 들었네요."

"그러니까 누구나 기다리던 당신의 새 앨범을. 지금. 이 시간에. 여태껏 단 한 번의 홍보도 하지 않은 채 발매를 했다고요?"

"역시 노튼.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온 사람다운 훌륭하고도 명확한 정리예요."

"……정말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당신 미친 거 아니죠?"

관객들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기묘한 침묵 속에서 크나큰 웃음소리가 퍼졌다.

"푸하하하하핫!"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구르는 진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눈가를 매만지며 일어난 진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사람들은 스피커를 통해 퍼지는 진호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그건 사회자도 마찬가지였다.

"지, 진짜?"

진호는 그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은 진실이에요, 노튼. 여기 이 인간이 자신의 팬들을 위해 서프라이즈로 기획했다고 하네요. 즉, 이 프로그램의 디렉터께서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을 네드 시런이 불쌍해서 용돈이라도 벌라고 섭외 했던 게……."

결국 새 앨범 발매 홍보를 위한 첫 방송이 됐다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나오지 않아서 수 많은 사람을 애달프게 했던 네드 시런의 새 앨범을 말이다.

"……왓 더 퍽!"

"우와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악!"

관객들은 양팔을 번쩍 들거나 방방 뛰며 좋아했지만, 네드 시런은 미간을 좁혔다.

"내가 할 말을 네가 다 해 버리면 어떡해, 진."

"누가 먼저 하면 어때요. 어차피 할 이야기는 많은데."

"끙. 그것도 내가 할 말이잖아."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던 사회자의 눈이 번뜩 떠졌다.

"서, 설마 에피소드가 있는 겁니까? 마치 영화와 같은?"

네드 시런이 진호를 원망스럽다는 듯 보았고, 진호는 항복이라는 듯 양팔을 들었다.

네드 시런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영화라면 영화라고 할 수 있죠. 타이틀 곡이 여기 진과 저의 이야기니까요."

"자, 잠깐?"

진호는 순간 하얗게 질렸다.

"그건 아니죠. 난 이성애자라고요!"

네드 시런의 타이틀곡은 이별한 남녀의 이야기였다.

"……아, 실수. 정확히는 타이틀 스토리의 모티브가 된 게 진과 저의 만남입니다."

그러며 그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진호와 만나게 된 이야기를 풀어 갔고, 사람들은 감탄을 토했다. 그러다 경악했다.

"이, 이번에도 잠시만요. 그, 그러니까 진호 리가 당신의 앨범 제작에 참여를 했다는 건가요? 그것도 작곡과 편곡, 프로듀싱을? …… 모델인데?"

"여기 영국이나 미국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은 정말 엄청난 뮤지션이에요, 노튼."

사회자는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진호와 네드 시런을 보았다.

그건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네드 시런은 보여 주라는 듯 자신의 옆에 놓인 기타를 내밀며 윙크를 했고, 진호는 그의 엄청난 배려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빌보드를 정복하기 위한 여정의 첫 걸음이 그의 배려로 인해 아주 쭉 뻗을 것 같았다.

자세를 잡은 진호는 기타 줄을 가볍게 훑었다.

디리링!

사회자는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고,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며 당황해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호의 연주와 노래가 시작되었다.

♩♬♩♪♩

"아……."

"음……."

첫 음을 듣는 순간 놀랐던 사람들은 눈을 감았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비가 온 다음 시원해지는 공기를 더 시원하게 식히는 듯한 기타의 선율과 감미롭게 귓가를 어루만지는 목소리를 들으니 눈을 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네드 시런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뮤지션…….'

'엄청난 뮤지션이 맞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노래에 빠져들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자연스레 미소를 지은 그들은 노래에 더 흠뻑 빠져 갔다.

그런데 그들과 약간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아."

혜성처럼 등장해 패션계를 정복한 모델 이진호.

처음 그를 실물로 봤을 때, 앨리스 루이스가 느낀 감정은 '사진과 영상은 진호의 미모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였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머릿속에 인식된 이미지는 '족쇄를 채워 저택 주방의 오븐 앞에 고정시켜 놓고 싶은 최고의 파티셰'였다.

'진호 리가 만들었던 그 한조각의 케이크와 그것을 장식했던 감미로운 초콜릿을 다시 먹어 보고자 저 택에 고용된 파티쉐를 닦달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10년이 넘도록 저택 주방의 파티쉐를 맡아 왔던 이조차 진호가 만들었던 케이크의 맛을 반절조차 따라 하지 못했다.

루이스 자신의 신분이 아니었다면, 바로 한국으로 날아가 제발 케이크와 초콜릿을 만들어 달라고 애걸복걸했을지도 몰랐다.

'분명 그렇게 대단한 파티쉐이자, 쇼콜라티에였는데…… 왜 모델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만큼 대단한 실력이었는데…….'

이젠 알 것 같았다.

진호는 그저 언제나 불공평한 저 하늘이 지상에 내려놓은 불합리의 집합체였다.

"나, 나 지금 사랑에 빠진 것 같아, 공주…… 아니, 루이스. 분명 사진으로만 봐 온 동양의 미남일 뿐인데…… 이런 내가 이상한 걸까?"

"……전혀. 지금 나도 같은 감정을 느끼는 중이거든."

듣는 것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는 게 이런 걸까.

"어머?"

앨리스 주위에 있던 여성들이 놀랐다.

그러나 앨리스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채 진호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소유하고 싶어."

"어머머!"

여성들의 양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그 두 눈이 호기심으로 불타 올랐다.

"그래서 꼭……."

"그래서 꼭?"

"내가 원할 땐 언제든 과자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싶어."

삐끗!

"응?"

앨리스는 휘청였다가 옷매무새를 바로잡는 친구들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무례를 용서해 줘, 앨리스."

"뭘……."

앨리스는 입을 다물었다.

안쓰러운 표정을 지은 친구가 갑자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에휴. 이 천연기념물을 어떡하면 좋지?"

"그래도 다행이잖아. 이제라도 남성에 대해 눈을 떴으니까."

"하지만 그 첫 대상이 너무 나빠. 저 진호 리잖아."

"아…… 하아, 우리가 너무 벽을 세웠나?"

"응? 응? 뭐야? 나 왜 갑자기 너희한테 위로받는 거야?"

"조용. 넌 지금 위로받는 시간이야."

앨리스는 왠지 기분이 나빴지만 입을 다물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들의 말이었으니 말이다.

비록 친구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음흉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불만을 토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진호 리가 만든 케이크를 먹어 보고 싶어?"

"당연하지! 그걸 다시 먹을 수 있다면 난 내 영혼마저도 팔 수 있어!"

딱!

"아얏!"

"그게 영국에서 가장 고귀한 핏줄 중 하나인 네가 할 말이니?"

"……."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지……."

"바, 방법이 있어?"

친구 메리는 가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있지. 초대하면 되잖아. 정식으로."

"……응?"

"윈저로서 정식으로 초대하라는 거야."

앨리스 루이스, 그녀의 진실된 이름은 앨리스 루이스 엘리자베스 메리 마운트배튼-윈저. 영국 왕실 계승서열 8위의 공주였다.

"……에엑?"

진호의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새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진호입니다."

"여기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있지만 얼굴도 무척이나 자유로운 네드의 아버지인 아담 시런입니다. 왜 하필이면 자기 증조부 얼굴을 닮았는지…… 다른 잘생긴 분도 참 많은데…… 후우."

"……아하핫."

참으로 유쾌한 분 같았지만, 옆에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네드 시런 때문이라도 진호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도 굉장히 자유스러워요. 옷이 그게 뭐예요?"

그의 옷차림은 굉장히 유니크했다.

정장 바지에 청자켓, 그리고 워커. 정체불명, 아니 괴악한 패션 센스를 지니고 있었다.

"아들, 원래 예술이란 이런 창조적인 옷차림에서 나온단다."

"그걸 보고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거예요."

"우매한 대중의 우매한 말이란다."

"내가 이러니 일찍 독립했지."

"그 자립심을 키워 준 건 나와 네 엄마지."

'우와.'

진호는 네드를 존경한다는 듯 보았다.

이런 화법을 가진 부친 밑에서 자란 사람치고는 너무 얌전한 말투와 몸짓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 아버지가 저랬다면?'

일찍이 속 터져 죽었을지도 몰랐다.

진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을 끌어 올렸다.

잘못했다가는 지금 네드 시런처럼 속 터져 죽으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잘생겼군. 신화 속 아프로디테가 이럴까, 아님 비너스가 이럴까. 아, 맞아. 아폴론도 있군. 인계로 치자면 줄리앙? 카사노바?"

'우, 우와. 이 아저씨 진심으로 말하고 있어!'

잘생겼다는 소리는 지겹도록 들었어도 언제나 새롭지만, 이건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너무 과한 칭찬이었다.

"어떤가. 누드화, 아니 누드 조각상의 모델을 한번 해 보는 게! 자네 같은 사람은 역사의 증거로 남겨야 해! 최고의 조각가를 구해 주지!"

"큽!"

"아버지!"

진호는 하마터면 뱉을 뻔한 홍차를 억지로 삼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제 모델비를 감당하실 수 없을 걸요."

"흥. 천 유로? 만 유로?"

"5만 유로요. 시간당."

"……그래, 예술에 돈이 중요한 건 아니지. 얼마나 예술을 사랑하느냐 그 마음이 중요한 거지. 그래서 그런데 한 달 정액제 같은 건 없나?"

"푸하하하하핫!"

진호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버지, 제발……."

"……쯧. 저녁에 보지. 아내의 음식 솜씨가 제법이니 기대해도 좋을 거야."

"하하, 옙!"

비행기는 내일 새벽에 출발하는 걸로 잡아 놓았기에 시간은 많았다. 오랜만에 만난 네드와 충분히 회포를 풀 만큼 말이다.

"가자. 얼른."

네드는 진호의 등을 떠밀며 공간을 나섰다.

타악!

등 뒤로 문이 닫히자네드 시런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미안. 우리 아버지가 좀 많이 괴팍하지?"

"아뇨. 많이 유쾌하신데요, 뭘. 즐거웠겠어요."

"겉에서 지켜볼 때만 재밌는 거야. 고작 선 몇 개 그려진 이상한 그림을 10만 유로에 사 와서 이 선의 굴곡은 르네상스를 표현했느니, 바로크를 표현했느니...."

"아……."

"엄마는 저녁 식사를 세공된 보석처럼 아름답게 플레이팅을 한다고 3시간이나 걸리지…….후우. 그래서 내가 음악을 한 거잖아. 저 인간들의 속편한 말에 뒤집어진 속을 치유하고자."

진호는 조용히 그의 등을 두드렸다.

"후. 그래서 어디가 보고 싶은 곳 있어? 영국 음식이 끔찍한 거야 너도 알테니 식당은 패스하고……. 아, 내 작업실 갈래?"

"음…… 미술관?"

"응?"

"내셔널 갤러리부터 일단 들러 보죠. 세계의 모든 예술품을 모인 곳이 영국이니만큼 뭔가 색다른 영감을 주지 않겠어요?"

대체 미술이 뭐기에 사람을 저렇게 광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스킬도 1차 해금하고.'

영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스킬이 몇 개 있었다.

언제 또 올지 모를 영국이기에 하나라도 얻어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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