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92화 (192/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17화

6. 패션 위크

티앙우밍 6단! 이제돌의 그림자에 굴복하다!

한국 작은 이 선생의 수제자 이진호! 티앙우밍 6단 격파!

한국의 배우 겸 가수 이진호! 그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중국 바둑계가 떠들썩해졌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단역들 사이에 진짜 기자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라벤다 향이 풍기는 병원의 특실 안, 환자복을 입은 채 병상 위에 앉은 진호가 티앙우밍과 전화를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중국 현지에서 모집한 엑스트라들 가운데 기자가 끼어 있었다. 한국 연예계 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자였다.

-그러게 말이다. 허허, 거참.

"……괜찮으세요?"

진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지고 끝난 거라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정당한 승부 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일이 기사화가 된 게 문제였다.

진호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님에도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는 진호 네가 더 걱정이지. 몸은 정말 괜찮은 것 맞지?

"그럼요. 기절한 것도 아니고, 잠깐 힘이 풀려 주저앉은 것뿐인데요. 나 피디님이 유난을 떤 거예요."

'마지막에 음식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어!'

그 때문에 위장이 격렬하게 반응을 하며 겨우 한 톨 남아 있던 체력을 빨아들여 버렸다.

-흥! 우리 조카님에겐 그 정도 대우가 당연하지. 그렇게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내가 크게 화를 냈을 거야.

"아하하."

-허흠. 그보다 어쩔 셈이냐?

"음."

현재 여론은 진호를 마치 한국에서 극비리에 준비한 비밀 병기처럼 몰이를 하고 있었다. 대한바둑 협회도 그에 편승해서 마치 재야의 고수처럼 만들고 있었다.

이곳 북경에 있는 병원에 실려와 링겔을 다 맞은 4시간 사이에 아주 많은 일이 벌어져 버렸다.

"그냥 이 기회에 초단을 획득할까 생각 중이에요. 그래야 우밍 삼촌과 우징 삼촌 면도 설 테고."

-흐하핫! 이거 잘하면 응씨배에서 볼 수 있겠구나.

응씨배 국제바둑대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 높은 국제바 둑대회이자, 한국을 바둑 최강국으로 만든 대회다.

-그땐 이번처럼 지지 않을 거다. 이번엔 너희 감독이 너무 집중을 깼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승부는 좀 더 빨리 결착 지어졌을지도 몰랐다.

그 속내를 숨긴 진호는 조금 더 대화를 나눈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진호는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김세연의 모습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한국은 뒤집어졌는데, 넌 만사태평이구나."

진호의 입원 소식은 포털 사이트 연예란을 뒤집어 놓으며 실시간 검색어에도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오, 김세연. 오빠 걱정하는 거야?"

"지금 내 표정이 널 걱정하는 것 같아?"

"……아니."

진호는 다시 고개를 돌렸고, 세연은 그런 그를 더 한심하다는 듯 보았다.

"이건 뭐 속 빈 강정도 아니고……."

울컥!

'너랑 난 칼로리 소모가 다르다고-!'

다리를 지탱하는 케이블 같은 근육은 하루에 소모하는 칼로리 양이 어마어마했다. 어젯밤 저우양의 집에서 대접받은 음식을 모두 먹지 않았다면 정말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건 모두 변명에 불과한 지라 진호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 그래도 좋은 장면 나왔잖아! 저도 날 은택이라고 불러 놓고는!"

"그럼 그 좋은 걸 그냥 날려? 넌 나한테 평생 누나라고 해야 돼. 인생 샷건지게 해줬잖아."

할 말이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몰입해 있었어.'

그냥 몰입했으면 모르되 그 상태로 바둑까지 두었다.

순간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지 않았다면, 오늘 하루 종일 최은택이 되어 돌아다녔을지도 몰랐다.

'쩝, 조절하자.'

그 배역이 되어 연기하는 건 좋지만, 그 배역에 잡아먹히는 건 싫었다.

그래도 좀 더 배역에 깊게 몰입 할 수 있는 노하우나 배역에 잡아 먹혔을 때 바로 벗어날 수 있는 요령을 획득할 수 있어서 오늘 일 이 마냥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배역에 잡아먹혀도 바로 벗어날 수 있는 요령…….'

이는 진호 자신의 연기를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 터였다.

"웃기시네! 네가 오빠라고 해야지!"

드륵! 쾅!

"너흰 또 싸우니?"

"작가님! 세연이 말하는 것 좀 보세요!"

"셔럽."

짜증이 가득한 최은수의 말투에 진호는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 피디님은 좀 어떠세요?"

"어떻긴. 죽을 맛이겠지."

배우를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니냐며 기자들이 달려들고 있어서 먼저 한국으로 넘어간 나연석은 무조건 사죄만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도 다른 드라마 같으면 하나 있어도 다행인 호재가 이렇게 겹겹이 쌓여 있으니 액땜한다는 셈 친다더라. 진호 네가 강력하게 변호해서 방송국 내외부의 징계도 벗어났으니까 액땜으로는 딱이지."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뭐랄까, 마치 이런 악재만 기다렸다는 듯 방송국 내외부에서 바로 나 피디님을 징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

앰불런스에 실려 가던 중 전화를 해온 다미앙을 통해 그것을 알아 챈 진호는 재빨리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나연석을 옹호했었다.

"……후,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변호를 안 했다면?'

정말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다미앙과 장칭, 웨이양 할아버지, 그리고 미영 이모.

화가 잔뜩 난 그들을 진호가 어르고 달래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연석은 곱게 중국을 떠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드륵!

다시 병실의 문이 열리며 양손 가득 음식이 담긴 봉지를 든 월터와 정 실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흐응."

환한 얼굴로 맞이하려고 했던 진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최은수 작가를 보았다.

"……오늘만이야.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어."

"감사합니다! 어서 가져와요! 어서!"

재빨리 비닐봉지들을 받아든 진호는 포장용기 뚜껑을 열었고, 세상 그 무엇보다 밝게 웃었다. 김세연과 최은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 * *

진호는 다음 날 피부에서 윤기를 뿜어내며 귀국할 수 있었다.

-아들, 정말 괜찮지?

미영 이모였다.

"괜찮다니까. 덕분에 북경 최고 중식당 요리를 배 터지도록 먹을 수 있어서 가끔씩 쓰러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더라고요."

-그게 말이니, 방구니! 한 번만 더 그래 봐, 아주 그냥!

"하핫. 정말 괜찮아요."

-……그 나 피디라는 놈팡이는 진희랑 형부한테 사과했다니?

"직접 집에 찾아가서 무릎 꿇고 사과하셨대요. 엄마는 그냥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셨고. 이모도 알잖아요. 엄마가 정말 화나면 어떤 모습 인지."

어머니 나진희는 정말 화가 나면 입을 꾹 다문 채 무심하게 쳐다보기만한다. 몇 시간이고 자신의 화가 풀릴 때까지 말이다.

차라리 악을 쓰고 때리는 게 낫다 말할 정도로 피가 마른다고 봐야 했다.

-……몇 시간?

"다섯 시간. 겨우 배우 한 명을 위해 집까지 찾아와 사과하셨잖아요. 그러니 이모도 이제 화 풀어. 응?"

-……흥, 몰라. 끊을게.

전화가 끊기자 진호는 고개를 저으며 정 실장을 보았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밖에 기자들이 몰려 있다더라."

"오. 얼마나요?"

"……야."

"흐흐. 뭐가 그렇게 심각해요. 일은 다 잘 풀렸구만."

혼절까지 할 만큼 혼신의 연기를 한 배우라는 것 때문에 연기파 배우라는 이미지가 한층 더 좋아진 상태였다.

최은수 작가가 하루에 한 번은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비도 베풀었다. 의사에게서 진호의 근육이 소모하는 칼로리 양을 들은 이후다.

"에휴. 세상 착한 놈."

"안 착한 거 알면서."

피식 웃은 진호는 입국 게이트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지이잉!

"이진호다!"

촤라라라라라라!

"이진호 씨! 몸은 어떻습니까!"

"이진호 씨-!"

'……와우.'

한국에 있는 모든 연예부 기자들이 몰려온 듯한 광경에 진호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 * *

삐리릭

"다녀왔습니다!"

일부러 크게 외치며 집으로 들어 오던 진호는 집안 가득한 냄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매운 갈비찜?"

그 외에도 여러 냄새가 섞여 있었다.

진호는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앞치마를 입은 어머니 나진희가 불 앞에서 있었다.

"와, 이게 다 뭐야?"

부엌의 식탁 위엔 잡채와 전 등 온갖 음식들이 있었다.

"왔니?"

몸을 돌려 맞이하는 어머니의 얼굴에 감정이 없었다.

덜컥!

"죄송합니다!"

진호는 다급히, 하지만 진심을 다해 허리를 숙였다.

"……."

어머니의 침묵이 내려앉은 심장을 쥐어 왔지만, 진호는 이 이상변명을 하지 않았다. 이미 북경에 있을 때 전화로 사과를 한 것도 있지만, 여기서 변명하는 건 최악의 수였기 때문이었다.

"……."

"……뭐가 미안한데?"

'됐다!'

진호는 재빨리 허리를 펴며 활짝 웃었다.

"몸 관리 못한 것!"

"또?"

"……없는데?"

"진짜?"

"진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본 진호는 고개를 털 듯 저었다.

"없어."

"……아주 한 번만 더 그래 봐라."

"흐흐흐. 사랑해요."

진호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힘껏 끌어안았고, 윽 소리를 내뱉은 그녀는 진호의 등을 강하게 쳤다.

"씻고 와."

"옙! 아, 그런데 아버지는?"

"퇴근하고 계시대."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방으로 들어가 짐을 푼 후 씻었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나오니 현관에서 삐리릭 소리가 들리며 아버지 이형만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 왔다.

"다녀오셨어요."

멈칫 몸을 굳혔던 이형만은 진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몸은?"

"괜찮아요. 이제 하루 한 끼는 제대로 먹을 수 있어요. 제 한 끼가 다른 사람의 한 끼와 다르다는 거 아시죠?"

아버지 이형만의 얼굴에 다행이라는 감정이 번져 가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사고 친 놈이 웃기는……. 이거나 받아."

"옙!"

"그런데 이건 뭔 냄새야?"

"고생하고 돌아온 아들을 위한 엄마의 사랑?"

"갈비찜 냄새가 많이 매운데?"

"아들을 더 사랑하신다는 거죠."

아버지 이형만은 매운 걸 잘 드시지 못한다.

"……여보! 내 거는?"

"당신 건 따로 했어요! 얼른 씻고 와요!"

"봐라. 네 엄마가 이 아빠를 사랑 하지 않을 것 같으냐?"

"캬! 이걸 안 속으시네!"

"이놈이?"

"사랑합니다!"

진호는 아버지가 손을 들자 재빨리 거실로 달렸다.

픽 웃은 아버지 이형만도 느긋이 걸음을 옮겼다.

"이 아빠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또 생겼다면서?"

커다란 갈비찜을 한 입 베어 물던 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모시고 중국으로 넘어가든가, 아니면 그 세 분을 한국으로 모셔 와야 할 것 같아요."

"어떤 분이시냐?"

"음…… 공무원?"

정치인도 공무원은 공무원이었다.

"흠, 공무원 쪽은 이 아빠가 잘 모르는데……."

영업맨인 아버지는 젊었을 적 중국 중동 일본 등 세계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좋은 분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은 무슨. 네게 할아버지라면 내겐 아버지가 되니 얼마라도 용돈을…… 윽?"

"호호. 네 또래 애는 없고?"

어머니 나진희가 용돈은 무슨 용돈이냐며 아버지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런 그녀는 눈을 빛내며 진호를 보았다.

아버지의 말에 터질 뻔한 웃음을 겨우 참은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분들에게 용돈을 줬다가는 뭐가 어떻게 얼마가 되어 돌아올지 몰랐다.

"남자만 둘. 제 연애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여사님."

"고자는…… 아니었지, 참."

"엄마!"

"밥이나 먹어. 갈비찜 식는다."

"……어휴."

진호는 고개를 저으며 TV를 보았다.

마침 힐링 뮤직여행이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눈을 빛낸 진호는 티비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그건 그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세 가족이 모인 밤이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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