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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91화 (191/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16화

진호는 이번에도 내온 음식을 모두 해치운 후 숙소로 돌아갔고, 저우양과 저우쉔이 배웅을 위해 따라나섰다.

2층 테라스에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우지엔은 핸드폰을 들어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달칵!

-그래, 내 손자를 만나 본 소감이 어떤가?

"그 60년짜리 보이차. 자네가 들려 보낸 건가?"

-나도 도움을 주긴 했지. 한 5퍼센트? 나머지는 모두 진호 그 아이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구했네.

"하루 만에?"

-그래, 하루 만에. 그러게 좀 빨리 말해 주지 그랬나. 그 못된 버릇 좀 고치게.

"허허허."

헛웃음을 터트리는 저우지엔의 귀엔 웨이양의 질책이 들리지 않았다.

60년짜리 보이차는 돈과 권력이 있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늘의 도움까지 있어야 구할 수 있는 귀물이었다.

그런 귀물을 선물로 가져왔음에도 진호는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우지엔 자신도 사색이 된 요리사가 달려온 방금 전에야 알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자네 손자 미쳤나?"

-자네 큰손자에게 감사하게. 자네 큰손자가 자신을 형으로 여기니, 새 가족에게 최고로 좋은 걸 먹여 주고 싶다는 이유로 그 귀물을 찾은 거였으니까.

"……뭐 도자기나 시계, 술 같은 것도 있잖은가. 우리들이 흔히 주고받는 그런 선물."

-방금 말했잖나. 좋은 걸 먹여 주고 싶다고.

"……선물에 마음을 담았다는 소리군."

-진호는 그런 아이일세. 사소한 것이라도 생각나서 보냈다는 예쁜 말을 할 줄 아는.

"그래…… 그렇게 보이더군."

진호는 저우지엔 자신과 자신의 며느리, 그리고 저우양과 저우쉔을 정말 가족처럼 대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얼마나 대단하게 느껴졌는지 몰랐다.

'내게 바라는 게 하나도 없었지. 이 저우지엔에게 말이야. 허헛!'

-그래서 무슨 일인가? 이런 걸 말하기 위해 전화한 건 아닐 테고.

"자네들이 추진하는 그 일. 외국 연예인 완화 정책. 자네가 자랑스러워 하는 손자가 혹여 피해를 입을까 조심스러워 이번에 찍는 그 드라마를 수입하지 않는 정책."

-흥. 어차피 성공할게 뻔하니 그때 수입해도 되네. 아마 한국에 돌풍을 일으키겠지.

"나도 지지하지."

-……호오? 자네가? 쇄국 정책에 찬성하는 거 아니었나?

"손자를 위한 일인데, 당연히 발 벗고 나서야지."

-……뭣?

"근 시일 내에 자리를 만들도록 하세."

-자, 잠깐! 진호가 왜 자네 손자야! 내 손자야-!

"끊겠네."

전화를 끊다 못해 아예전원을 꺼 버린 저우지엔은 모처럼 맑은 밤하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움직여 봐야겠군."

* * *

"후우."

의자와 식탁이 하나도 없는 커다란 연회장.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진 진호가 창밖을 보며 희뿌연 담배 연기를 뿜고 있다.

벌컥!

"은택아! 이제 나갈…… 시간이래."

진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담배를 보며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는 김세연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자신의 집중을 깬 사람이 아직까지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짜증 나게도 말이다.

"나가 줄래?"

"어? 어, 으응."

문은 다시 닫혔고, 진호는 다시 담배를 입에 가져가려다가 멈칫 몸을 굳혔다.

"……빌어먹을."

집중이 깨졌다.

그리고 눈앞에 김세연의 충격받은 얼굴이 아른거렸다.

담배를 끈 진호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보고 어쩌라고……."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를 좋아하는 은선. 그것도 어려서부터 은택 자신과 함께 자라 온 소꿉친구를 말이다.

진호는 결국 무너졌다.

진호는 숨을 길게 내쉬며 다시 정신을 날카롭게 벼려 갔다.

일단은 대국이 먼저였다. 바닥에 꿇은 무릎을 편 진호는 무릎을 툭툭 털며 대기실로 쓰는 연회장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달칵!

"오케이 컷! 좋았어-!"

"……후아!"

재빨리 은택의 잔재를 털어 낸 진호는 나연석에게 다가갔다. 밖에서 대기하던 김세연도 재빨리 들어 왔다.

모니터에서 방금 전의 연기가 재생되었다.

"……크. 이 조용한 박력 봐라. 완전 나쁜 남자네. 나쁜 남자야! 어후, 죽인다. 진짜 보듬어 주고 싶네! 이대로 가도 되겠다, 그치?"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세연도 불만이 없는 듯 보였다.

대신 그녀는 진호는 노려봤다.

"너 담배 펴?"

"아니?"

"그런데 담배 피는 모습이 왜 그렇게 자연스러워?"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화들짝 놀란 진호는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김세연의 눈동자에 든 장난기에 이를 드러냈다.

"넌 그걸 어떻게 아는데?"

"어?"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김세연에게로 넘어갔다.

이번엔 그녀가 당황했다.

"나, 나야 옛날부터 촬영장에서 담배 피는 어른들을 봐 왔으니까 아는 거지! 나 담배 안 펴!"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데……."

"아니라고! 야-!"

진호는 김세연이 주먹을 들자 재빨리 몸을 날렸고, 그녀는 진호를 죽일 듯 쫓았다.

"쟤네 둘은 어떻게 만나기만 하면 싸우냐?"

"저러다 정들면 사귀겠죠."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이지?"

사람들은 둘을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한편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놀리 듯 도망치다 연회장의 문을 열고 나간 진호는 밖에 있는 사람을 보곤 깜짝 놀랐다.

"우밍 삼촌! 저우양!"

티앙우밍 6단이 있었다.

"허헛. 잘 있었는가, 조카."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형님!"

"삼촌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물론 잘 오셨지만!"

"나연석 감독이 조카의 오늘 결승 상대이자 저우양의 스승 역으로 출연해 줄 수 있나 제의를 하더군. 그래서 냉큼 수락했네."

저우양은 진호가 맡은 은택의 4 강 상대였다.

"아, 이쪽은 곧 열릴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서 시간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내 형님이자, 중국 바둑계 원로인 티앙우징."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나이 대의 사람들이 티앙우밍의 뒤에 있었다. 그들은 티앙우밍과 저우양을 부럽다는 듯 보고 있었다. 진호는 새치가 보이는 60대 노인을 보며 깜짝 놀랐다.

"이진호입니다, 큰 삼촌."

"허헛. 조카를 뵙네. 혹시 실례가 된 것인가?"

"아니에요. 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티앙우밍 씨와 티앙우징 씨 조카인 이진호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얼떨결에 마주 고개를 숙인 중국 바둑계 관계자들은 이젠 존경하는 눈으로 티앙우밍과 티앙우징, 저우 양을 보았다.

"그럼 잠시 뒤에 보기로 하지."

"하하. 예. 먼저가 계세요. 양, 너도."

"옙! 형님!"

사람들이 그렇게 물러나자 진호는 다시 나연석에게 다가가 그의 뒤에 숨어 김세연을 향해 혀를 내 밀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화를 가라앉혀야 했던 김세연은 다시 이를 갈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바둑판을 중앙에 둔 채 진호와 마주 보며 앉은 티앙우밍이 입을 열었다.

"흠. 그래서 어떻게 두면 되는 건가. 저우양 초단처럼 어느 기보를 정해서 그대로 두면 되는 건가?"

저우양과의 신은 방금 전에 찍었다.

"아, 그건…… 음?"

나연석이 다가왔다.

"진호야, 저분께 실제 대국을 하는 것처럼 두실 수 있냐고 물어봐 줄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찍을 생각이거든."

"어? 그래도 돼요? 필름은요?"

"넘치는 게 예산인데 몇 시간 대국이 문제겠니? 진호 너도 제대로 은택에 빙의돼서 실력 발휘해 봐. 결승전이니까 결승전답게, 응?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더 좋은 그림을 만들 것 같고."

"……아."

바둑은 지켜보는 게 무척이나 지루한 스포츠다.

즉, 기다리는 사람의 피곤해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흠. 그런데 괜찮겠어요? 여기선 져야 하잖아요. 그래야……."

극중 김세연이 맡은 역할인 은선이 죄책감을 가지면서 은택을 신경 쓰게 된다. 여태껏 언제나 챙겨 줘야 했던 동생 같은 존재로만 봤던 은택을 말이다.

즉, 이 내용은 이 드라마에서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오, 뭐야. 자신감이 넘치는데?"

"……하핫. 이길 수도 있다는 거죠."

진심으로 두는 대국이라면 질 생각이 없었다.

"이겨도 돼. 최 작가님에게 허락 맡았다."

"그렇다면야……."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티앙우밍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그는 눈을 빛냈다.

"호. 작은 이 선생의 수제자인 조카와 진심으로 두는 대국이라……. 재미있겠군."

그의 날카로운 미소에 진호도 옅게 웃었다.

"저도요. 아, 바둑을 두는 동안은 다른 사람이 될 예정이니까 놀라지 마세요."

"하핫! 그 정도 마음 수양도 쌓지 않았을까 봐. 걱정말게, 조카."

"촬영 시작 5분 전!"

진호는 눈을 빛내며 다시 은택을 연기했다.

마치 유리로 만든 칼을 보는 듯 날카로우면서도 위태하게.

그 급작스런 변화에 티앙우밍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 * *

티앙우밍의 턱 끝에 걸린 뜨거운 땀이 바지 위에 떨어졌다.

자신의 반 정도밖에 살지 않은 진호이기에 승부보다는 가르침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여유롭게 늘어져 있던 목은 어느새 바둑판 위를 파고들 듯 굽어져 있었다. 진호는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좁힌 채 입술을 깨물며 바둑 판 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수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나오는 은택의 습관.

이런 둘의 몸에선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경기장 밖에 따로 만들어진 룸에 모인 사람들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해설자의 해설에 얼음장보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웅성웅성.

"티, 티앙우밍 6단이 지고 있어?"

"이, 이거 진짜야?"

해설자들은 어디에 어느 돌이 놓이는지만 설명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둑판 위의 형세를 머릿속에 그리지 못하는 어설픈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사전에서로 진짜로 두기로 했다는 설명을 들은 그들이기에 더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급히 티앙우징을 보았다.

그러나 그도이 놀라운 일에 경악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 수만 잘못 둬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런 중국 바둑 관계자들의 모습에 기자 역할을 맡은 단역들도 동요를 드러냈고, 나연석은 카메라 앞에 있는 김세연을 보았다. 은선에게 빙의된 그녀는 양손을 깍지 낀 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혹여 자신 때문에 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은선의 모습이었다. 나연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쳤어!'

자신이 원하는 자연스런 모습이 나오고 있는 것도 있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호와 티앙우밍이 대국을 시작한 지 벌써 2시간이나 지났다. 그럼에도 김세연은 몰입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식은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데도 말이다.

나연석은 모니터를 보았다.

이 방의 옆방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진호의 낯빛도 나빴다. 아니, 너무 하얗게 질려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진호도 계속 배역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무전기를 들었다.

'이 멍청한 놈들.'

"나 피디, 계속 이럴래? 몰입한 배우는 방해하는 거 아니라니까."

최은수 작가가 사나운 눈빛으로 나연석을 말렸다.

나연석은 콧방귀를 뀌었다.

"좋은 장면 찍는 것보다 사람이 우선이야. 그리고 쟤네 둘이 여기서 얼마나 더 좋은 장면을 만들 수 있는데? 진호랑 세연이가 각자 있는 공간을 잡아먹은 거 안 보여?"

지금 이 광경을 카메라에 담은 것만으로도 나연석 자신에게는 축복이었다.

"……."

치익!

결국 나연석은 무전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30분간 휴식-!"

"……아."

몰입이 깨진 김세연은 나연석을 원망스럽다는 듯 보았다가 이내 몸을 축 늘어트렸다. 다른 사람들 도 한숨을 내쉬며 몸을 풀었다. 나연석은 무전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진호야, 좀 어때? 괜찮아?"

-……죽을 맛이죠. 어후.

만날 샐러드만 먹는 상태에서 최은택을 연기하며 바둑까지 두고 있다. 체력 소모가 그냥 바둑을 두거나 연기를 하는 것보다 열 배 가까이 소모되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진호는 순간순간 눈앞이 검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흠칫!

"음, 좀 더 쉴……."

-쪼꼬바를 먹으면 좀 더 힘을 낼 수도?

……피식.

"그래, 오늘 저녁은 최 작가가 말려도 북경 최고 중식당에서 너 먹고 싶은 거 다시켜 줄게.

-아싸-! 사랑합니다!

"나도! 누구 진호에게 그 쪼꼬바 좀 가져다주세요."

그렇게 부산한 쉬는 시간이 지나자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진호와 김세연의 표정이 좀 전보다 더 나빠지고, 중국 바둑 관계자들이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섰을 때, 비명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악!"

나연석이 급히 중국 바둑 관계자들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설마하며 초조해하던 그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지, 진짜 졌어!"

"이런 미친!"

스피커에서도 해설자가 탄식을 토하고 있었다.

최은수는 거의 반사적으로 나연석의 옆구리를 찔렀고, 정신을 차린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단역들에게 신호를 주었다.

"와아!"

"으아아! 그렇지! 은선아! 최선생님이 이기셨다! 이겼다고!"

"지, 진짜요?"

세연은 믿기지 않는 듯 같이 온 기자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다.

그 순간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어깨가 축 처진 티앙우밍과 낯빛이 하얗게 질렸지만 눈빛은 형형한 진호가 걸어 들어왔다.

대국의 압박에서 벗어난 진호는 세연을 찾았다.

바둑을 둘 때 외에는 언제나눈 앞에 두어야 안심이 되는 은선을 습관적으로 찾는 최은택처럼 말이다.

'이제 이것만 연기하면 진짜 끝이다. 이후에 짜장면 곱빼기에다가 꿔바로우 먹고, 북경 오리도 먹고……'

꼬르륵!

진호는 느릿하면서도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순간 둘의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진호는 눈앞이 다시 깜깜 해지는 걸 느꼈다.

'어?'

"은택아-!"

진호를 발견하고 미소를 짓던 세연은 갑자기 경악하며 몸을 날렸다.

진호가 무너지듯 주저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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