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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90화 (190/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15화

"잘 계셨습니까, 지 실장님."

"아이구. 오셨습니까, 투자자님."

진호는 눈을 껌뻑거렸다.

"안 본 사이에 많이 능글맞아지셨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마음이 편안하니 그렇나 봅니다. 물론 700억짜리 프로젝트라는 건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진호는 넓은 건물 내부를 둘러보았다.

모던하면서도 감각적으로 꾸며진 공간은 마치 IT기업을 보는 듯했다. 면적이 무척이나 넓었고, 내부 공기도 맑았다.

"이쪽으로."

지경철 실장은 진호는 사무실로 안내했다.

달그락.

"잘 마시겠습니다."

진호는 앞에 놓인 차를 마시곤 살짝 놀랐다.

"보이차네요?"

그것도 맛이 아주 깊어서 굉장히 오래되었음을 알게 해줬다.

후발효차인 보이차는 연식이 깊어질수록 값이 비싸진다.

"명품이네요."

"연습생 부모들이 이것저것 보내 주더군요."

"하핫. 그런가요?"

진호는 그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학구열이 한국 못지않게 치열한 중국이다. 최고의 강사들을 데려다가 공짜로 공부를 가르치니 부모의 입장에선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애들은 좀 어때요?"

"다들 공부만 해서 그런지 착하고 성실합니다. 개인적인 성향이 두드러지지만, 진땀을 쏟아 내는 연습을 같이 하고, 또 같이 혼나다 보니 팀워크도 생기더군요."

그 말도 참 다행이었다.

"한국은 좀 어떻습니까?"

지경철이 은근히 묻자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만날 똑같죠, 뭐. 어디선가 스캔들 터지고, 그게 확대되고. 또 어떤 연예인은 이슈를 끌고."

"진호 씨처럼 말이죠?"

"……하하. 그리고 PJY는 신입 사원과 배우, 모델들을 대거 영입 했어요."

지경철이 입술을 비틀었다. 그렇지만 그의 눈은 '다행'이라는 감정을 미약하게 머금고 있었다.

"역시 박 대표답군요. ……아, 연습생들 좀 보시겠습니까? 다들 좋아할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처음 봤을 때, 그리고 종종 디올 차이나 화보를 위해 중국에 들렀을 때만 해도 서로 데면데면했었다.

"음. 뭐랄까…… 진호 씨가 워너비라고 하더군요."

"네? 그 애들이요?"

"만나서 이야기해 보시면 압니다."

진호는 의아해하며 지경철을 따라나섰다.

복도를 오가던 사람들이 그들에게 인사를 했고, 지경철은 한창 교과 수업이 진행 중인 강의실의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들어간 진호는 순간 몰리는 시선에 주춤 거릴 수밖에 없었다.

'얘들 눈빛이 왜 이래?'

마치 진호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듯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뭐, 뭐지?'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한 소년이 손을 번쩍 들며 크게 말했다.

"…….나?"

"네, 이진호 선생님!"

"……어, 뭐. 그래. 왜?"

"정말 어려서는 게임만 했는데, 한국 최고의 대학에 전체 수석 입학하셨던 것 맞습니까?"

진호는 그제야 이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피식 웃은 그는 강사에게 양해를 구하며 한쪽 벽면 다 차지한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너희도 나처럼 될 수 있냐고 묻는 거지?"

"……예!"

"전교에서 몇 등이야?"

"5등입니다."

"댄스나 노래, 연기를 배우는 지금도 여전히 5등이지? 아, 떨어진 건가?"

"네! 원래는 2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될 수 있어. 현재 배우고 있는 모든 걸 진심으로 공부하고 체득한다면. 너희도 천재잖아. 거기다 여긴 중국이지. 벌어들이는 부와 명예의 단위가 다른 나라. 혹여 세계적인 아이돌이나 배우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중국 국민들은 너훨 기억할 거야. 어쩌면 수백만 명일 수 있는 미래의 너희 팬들도. 이만하면 대답이 됐을까?"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자 진호도 미소를 지었다.

"더 질문할 사람 있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강의실 안에 있던 아이들 모두 손을 들어 올렸고, 진호는 한 소녀를 지목했다.

그렇게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되었다.

* * *

온통 대리석으로 꾸며진 커다란 거실.

탁. 탁. 탁.

백발이 성성하지만 그 두 눈은 형형한 노인이 진중한 눈으로 바둑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저우양은 진지한 표정으로 바둑돌을 매만지고 있었다.

"대회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선생. 이번엔 그 일본 선생을 이길 수 있겠나?"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전력을 다해도 감히 도달할 수없는 분을 형님을 모시게된 이후부터 진심으로 바둑을 대하고 있으니 곧 좋은 결과를 낼 겁니다, 할아버지."

노인은 손자의 대답에 흡족해했다.

바둑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도 모자라 승부욕까지 생겼고, 그러면서도 천천히 나아가겠다는 인내심과 진중함까지 갖추게 되었다. 조부로서 이보다 기쁠 일은 없었다.

"역시 이진호 선생은 양 선생의 귀인인 것 같구만."

노인은 이런 이유 때문에 진호를 집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타다다다다!

"다녀왔습니다!"

저우양은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않고 올라가는 남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공부 하나만 매진해도 부족할 시기에…… 쯧."

그래도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진이 모두 빠진 모습으로 집에 오던 동생이 오늘은 무척이나 발랄했기 때문이다.

"놔두시게. 비록 성적은 떨어졌어도 자기가 후에 쓸 무기들을 알아서 늘려 가고 있지 않나. 내 다 조사해 봤으니 걱정 마시게."

저우양은 의뭉스런 할아버지의 눈빛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혹 제가 모르는 무언가라도 있는 겁니까?"

"곧 알게 되실 거네."

"으음.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늦으시군요."

곧 진호가 올 시간이었다.

"오늘 일이 있어서 좀 늦을 거네."

"……아쉽군요."

"어차피 집안에 들이게 된 가족같은 손님이니 또 기회가 있지 않겠나."

"그래도 아쉽습니다."

타악!

"음?"

바둑판을 보며 놀란 노인이 다급히 저우양을 보았다.

"세, 세 수만 물러 주시게."

"차라리 다시 두시죠."

"……에임. 됐다. 치워라."

대국이 끝나자 바로 본모습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의 귀여운 모습에 저우양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핫."

저벅저벅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이 다가오자 저우양이 몸을 일으켰다.

"오셨나 보네요."

"조심히 모셔라."

"예!"

저우양이 씩씩하게 걸어나가자 노인은 바둑판을 보며 흐뭇이 웃었다. 진심이 된 자신의 손자는 이렇게 날카로운 기력을 갖추고 있었다.

* * *

-잘 하고.

"네, 걱정 마세요."

웨이양이었다.

저우양의 조부와 부친이 웨이양과 같은 곳에 몸을 담고 있다기에 진호가 미리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래. 그렇다고 해서 굽힐 필요는 없다.

"의동생 할아버지, 아니 제 새로운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것뿐인데 뭘 굽혀요. 가족인데요."

-하하하하핫! 그래, 그래야 내 손자지! 언제 넘어올 테냐? 네 할미가 보고 싶어 해.

"곧 시간 낼게요. 그땐 장칭 할아버지도 함께 낚시 가요."

-낚시 좋지. 알았다. 그때 보자.

힘차게 대답하며 전화를 끊은 진호는 웨이양의 저택과 맞먹는 크기의 거대한 저택을 보며 혀를 내 둘렀다.

"중국은 부자가 진짜 많네."

아무리 외각이라지만, 한 나라의 수도에 이만한 크기의 저택을 세울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거기다 진호 자신의 키 두 배만한 높이의 거대한 문 앞엔 정장을 입은 경비들도 있었다.

"정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특수부대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스킬: 갓 오브 워]가 반응을 하며 온몸의 근육을 팽팽하게 당겼다.

움찔!

진호의 기질이 바뀐 순간 반응하여 안주머니를 향해 손을 가져가는 경비들의 모습에 아차하며 손에 든 커다란 꾸러미를 보여 주었다.

"오늘 이 댁에 식사 초대를 받은 이진호입니다."

"……예?"

"어? 통보가 오지 않았나요?"

"아니,  오신다고는 들었지만……."

경비들은 무언가를 살피듯 진호의 뒤를 살펴보았다.

"차를 타고 오지 않으신 겁니까?"

"타고 왔는데요? 택시. 여기까지는 못 온다고 해서 저 앞에서 내렸어요."

택시기사는 저택의 담벼락이 보이자마자 질겁했었다.

"아, 예……."

경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저택에 오는 사람들 중 차를 타지 않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들은 문을 열어 주었다. CG처럼 생긴 외모가 진호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 길을 통해 쭉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아, 예예!"

황급히 따라 고개를 숙이는 그들을 지나친 진호는 저택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 여기도 사각이 없네."

웨이양의 저택이나 아르노 베르 베우의 저택처럼 보안에 빈틈이 없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설치 해 놓은 보안카메라 때문이었다.

'거기다…….'

"허헛. 공기청정기다."

진호 자신의 키만한 커다란 공기청정기들이 길 양옆에 있는 정원에 숨겨져 있었다. 마치 정원의 나무나 조각상 같은 구조물처럼 자연스럽게 말이다. 상쾌한 공기가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돈질의 급수가 다르네!'

"혀, 형님!"

"응? 왜?"

"아, 아니…… 어……."

저택의 현관에 선 저우양이 진호의 뒤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차를 찾는 듯했다. 진호는 짓궂게 웃었다.

"너희 할아버지, 아니 할아버님이 무서운 분이신가 보더라. 더블을 준다고 하는데도 택시기사님이 어서 내리라고 하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보내 드릴 걸 그랬습니다."

"손발 멀쩡한데 조금 걷는 게 뭐 어때서? 그만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덥다."

"아, 예! 어서 들어오십…… 아니지. 저희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건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가져온 거."

"뭘 이런 것까지……. 어서 들어 오세요."

안으로 들어온 진호는 집을 둘러 보며 탄성을 토해 냈다.

"오! 집 좋네."

'안쪽 보안은 더 철저하……에브브.'

진호는 더 이상의 쓸데없는 생각을 관두기로 했다.

그렇게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부엌으로 향하니 황금용 여덟 마리가 그려진 둥근 원탁에 앉아 있던 노인과 중년 여성이 일어나 반겨 주었다.

"내 집에 온 걸 환영하네. 저우지 엔일세."

"양의 엄마인 펜밍이에요."

진호는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저우양과 형제 관계를 맺게 된 이진호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할아버님. 그리고 어머님."

노인, 저우지엔은 눈을 빛냈다.

정중하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은 인사였다. 거기다 목소리까지 담담 하면서 당당했다.

'웨이양이 분에 넘치는 손자를 얻었군.'

"우리 양 선생과 형제 관계를 맺었다니 나도 편하게 손자처럼 대하겠네."

"호호. 이렇게 훤칠한 큰 아들을 얻게 되었네요."

저우양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조부와 모친을 보았다. 중국에서 손자처럼 대하겠다는 말은 정말 친 손자처럼 여기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호는 은은히 웃었다.

'장칭 할아버지, 웨이양 할아버지 처럼 호탕한 분이시네.'

"그렇다면 저도 친할아버지, 어머니처럼 모시겠습니다."

저우양은 이젠 식겁하며 진호를 보았다.

'뭐야? 뭐지? 정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사람이 꽌시, 아니 가족이 되어 버렸다.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호오. 이렇게 쉽게?"

"이렇게 훤칠한 손자를, 그리고 아들을 이토록 반듯하게 키우셨잖습니까."

"……으하하하핫! 다른 사람들에게 매번 듣는 말이긴 하지만, 자네에게 들으니 왠지 각별하군. 앉으시게."

"호호호. 저도 그래요, 아버님."

"말 편히 하십시오."

"차차 그렇게 하세나."

저우지엔이 권한 자리에 앉자 차가 나왔다.

진호의 옆에 앉은 저우양은 겨우 정신을 차리며 부엌 입구를 보았다.

"이놈은 왜 이렇게 안 와? 분명 손님이 온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 동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형님."

"오, 그래? 동생이 있었어?"

"예. 요새 반항기인지 이상한 짓을…… 오는군요. 쉔! 늦다!"

"씻느라 좀 늦었어…… 어?"

이제 열여섯이나 됐을 법한 미소년이 진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엥?"

"서, 선생님이 여긴 왜 계세요?"

미소년은 지경철 아래서 크고 있는 중국 연습생이었다.

"그러는 저우쉔 넌 여기 왜 있어?"

"저야 여기가 집이니까요. 선생님 은요?"

"나야 여기 네 형한테 초대를 받았으니까."

"네?"

"응?"

저우양은 다급히 조부와 모친을 보았다. 그 둘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것이었나!'

비록 성적은 떨어졌어도 단체 생활을 하며 사회의 수많은 것을 배우고, 세상에 스스로를 알릴 준비를 해 가는 자신의 기특해진 동생 저우쉔.

엄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잘난 형 때문에 언제나 기죽어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동생이 소속된 곳이 바로 진호와 연관된 곳이었다.

'이러니 두 분이 형님을 보자마자 손자와 아들로 삼았지!'

진호는 저우쉔에게도 은인이었다. 저우양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을 감쪽같이 속인 조부와 모친을 원망스럽다는 듯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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