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89화 (189/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14화

5. 북경에서

서로에게 대화는 필요가 없었다. 노랫말이, 음정이, 그 안에 담긴 감성이 진호의 모든 의도를 말했고, 네드는 음악을 끊는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말하며 진호의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만들어갔다.

노래라는 위대한 언어가 동양과 서양의 감성을 합일시키며, 서로를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야, 이 변태들아."

"……푸하하하핫!"

"이런 엄청난 노래를 만드는데 어떻게 말한 마디 안 하고 통할 수 있냐? 그러면서 웃어? 너희들은 절대 일반인이 아니야."

"하하하하핫!"

"푸흐흐흐흐!"

노래가 주는 감동에 침묵하던 사람들은 나이열의 한마디에 모두 뒤집어졌다.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녹음 부스를 나오던 진호와 황홀한 표정으로 기기 앞에 앉아 있던 네드도 풀썩 웃고 말았다. 진호는 네드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그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정말 환상적이었어, 진. 마치 꿈만 같아!"

"저 역시도요."

가슴이 벅차올라서 이 이상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네드, 당신의 머릿속에서도 영감이 폭발하고 있지 않나요?"

……씨익.

맞다. 네드 시런은 지금 얼른 영 국으로 돌아가 머릿속에서 화산처럼 뿜어져 나오는 이 영감이 밑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음악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건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면 서로는 다시 만나게 될 터였다.

더 만족스런 음악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둘은 맞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경이롭다는 듯 보았다.

감성이 다른 동양과 서양의 천재들이 노래라는 언어로 하나가 되어 높은 곳으로 향하는 그 모습은 지독한 부러움마저 안겨 주었다.

"이제 내 차례지? 몇 곡 더 남았잖아. 그중에 네가 작곡한 곡으로 가자."

레오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흠칫 놀란 진호와 네드 시런은 이내 환하게 웃었다.

몸을 돌려 녹음 부스로 들어가려던 진호가 아차하며 입을 열었다.

"아, 네드. 그리고 존. 내가 아까 말했죠? 이 기회 놓치지 않겠다고."

진호는 스튜디오 한곳에 세워진 카메라를 가리켰고, 그 의미를 알아차린 네드와 존은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더 해도 돼."

"흐흐. 후회할 거예요."

"시끄러. 얼른 들어가기나 해. 1 시간밖에 안 남았어."

"네이, 네이."

그렇게 세 천재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 * *

빌보드의 제왕 네드 시런! '우리들의 1987' OST 참여!

네드 시런의 진짜 방한 이유! 내 친구 이진호를 도우러 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맺어진 드라마 같은 인연!

"으흐흐."

모든 스포츠 신문 1면이 네드 시런과 진호, 그리고 '우리들의1987' 이야기뿐이었다. 이 모두 네드 시런이 자신의 참여를 홍보로 활용해도 된다고 허락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호가 말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 다는 말의 뜻이 이것이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진호는 입이 귀까지 찢어진 나연석을 어이없다는 듯 보았다.

그의 앞에 놓인 스포츠 신문만 10부였다. 각기 다른 신문사로 말이다.

"……사랑한다."

"네. 오늘 그 말만 벌써 15번 들었어요."

"사랑한다, 진호야!"

"네, 저도 사랑합니다."

"사랑해!"

"스톱! 더 이상 다가오지 마시고, 거기서 사랑해 주세요!"

진호는 나연석이 덮칠 듯 다가오자 재빨리 물러났다.

하지만 나연석이 달려들면서 그 회피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와락!

"사랑해-!"

"으아아아악!"

사람들은 그런 둘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만족할 때까지 끌어안고 나서야 물러난 나연석은 신문을 신줏단지 모시듯 챙겼고, 진호는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그에게 신연호 피디가 다가왔다.

"고맙다, 진호야."

"뭘요."

"아냐, 고마운 게 맞아. 덕분에 드라마가 편성됐잖아."

인터넷으로 기사가 나간 바로 그 날, 즉 어제 드라마 첫 화 방영일이 확정되었다.

"전 별로 안 좋아요. 덕분에 촬영이 타이트해졌잖아요."

여태까지 반절 이상 찍어서 시간 적 여유가 많다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동인 삼촌이나 정균 삼촌도 좋은 날 다 갔다며 투덜거리시고."

"아하하."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이유였던 거였어요?"

'우리들의 1987엔 진호 자신과 연관된 하이패션 브랜드 6개 회사가 스폰서로 붙었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드라마가 편성조차 되지 않았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영은 약속되었지만, 언제 방영 할 지 날짜가 잡히지 않았다.

"……사람 사는 게 똑같다 정도만 알면 돼."

"아……."

대충 무슨 사연인지 짐작한 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대기업 스폰서가 붙은 드라마였나 보네. 아니면 방송국 고위 관계자와 엮였던가.'

진호는 그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다. 더 알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진호 자신에겐 피해가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OST 미쳤더라."

화제를 돌리기 위해 운을 뗐던 신연호 PD는 이내 곧 흥분했다.

"사람들이 드라마는 안 보고 노래만 들을 것 같던데? 아니, 그걸 대체 어떻게 녹음한 거야?"

"두 시간 만에?"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 뭐? 2시간 만에 세 곡을 녹음했다고?"

"네. 정확히는 1시간 56분 만에요."

"……음원도 대박 나겠네."

녹음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 곡은 대박을 친다는 속설은 이 바닥에서 거의 정설로 통하고 있었다.

"그땐 전체 회식 콜?"

"콜…… 잠깐, 너 작품 끝날 때까지 다이어트해야 하잖아."

"그러니까요."

"난 힘없다. 최 작가님하고 이야기해."

진호는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리를 꼰 채 의자에 앉아 대본을 살피는 최은수를 보곤 입맛을 다셨다.

"쳇."

"크크큭. 에피소드 같은 거 없었어?"

"왜 없겠어요."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감성파 싱어송라이터, 못생긴 사랑꾼 네드 시런이 헤비메탈을 했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일이었다. 그리고 녹음이 거의 다 끝나갈 때 즈음에 어떻게 안 것인지 PJY의 박재영 대표가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는 끈질기게도 클럽까지 따라 왔지만, 네드 시런과 교류는 나누지 못했다. 네드 시런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진호조차도 무시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네드 시런은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버리겠다는 듯 광란의 클럽파티를 끝으로 어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했다.

"그래?"

"그 내용은 미튜브로 봐 주세요. 업로드 날짜는 저희 드라마 첫 화 방영일 저녁 12시입니다."

"……에이. 아, 여권은 챙겼지?"

"그럼요. 당연하죠. 북경 갈 준비 오케이입니다."

이번 촬영을 마치면 바둑 대결 신을 찍기 위해 바로 북경으로 넘어가야 했다.

"그래.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촬영 시작 5분 전입니다. 배우들 스탠바이해 주세요!"

"……파이팅이다."

"옙!"

목을 좌우로 꺾은 몸을 일으킨 진호는 카메라 앞에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시대의 김포 공항은 이렇게 생겼구나.'

여유가 넘치는 제작비 때문에 제작하게 된 김포 공항 세트장. 신기해하는 진호에게 김세연이 다가왔다. 북경엔 그녀도 함께가게 되었다.

"진호야."

"왔어? 아슬아슬했네?"

"사진 작가님이 좀 깐깐해서. 아, 그보다 너 PJY 박 대표랑 무슨 사이야? 어제 우리 사장님을 통해서 나한테 연락 왔어. 너랑 연락되냐고."

예상치도 못한 질문에 잠시 굳었던 진호는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미국에 진출하고 싶은 욕망이 크긴 크나 보구나.'

참 여러모로 귀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어차피 비즈니스 관계이니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아, 북경 가는 김에 지 실장님이나 한번 볼까?'

PJY에서 나와 합류한 지경철 실장. 박재영 대표를 떠올리니 그가 보고 싶어졌다.

* * *

"오우, 공기 맑다."

"하늘도 푸르러. 이게 뭔 일이래?"

"연석이 형이 날짜 제대로 잡았네."

공항을 빠져나오며 베이징의 맑은 하늘을 본 사람들은 살짝 놀라 야했다. 그건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베이징=대기 오염이라는 선입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 달에 며칠 안 되는 맑은 날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당국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대화에 끼어드는 낭랑한 중국어에 사람들이 재빨리 한 곳을 보았다.

"왔어?"

진호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저우 양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어는 언제 공부한 거야?"

분명 이쪽 사람들은 한국어로 말했는데, 저우양이 알아들었다.

"형님의 모국어잖습니까. 그래서 배우고 있습니다."

"대회 때문에 바쁠 텐데……."

진호는 살짝 감동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같이 온 월터 등의 직원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기력은 좀 발전했어?"

"……크흠. 제 차로 가시죠. 촬영장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우양은 오늘 진호를 마중 나온 것도 있지만, 최은택과 스쳐 지나 가듯 서로를 인식하며 약간의 대립각을 세우는 중국 유명 바둑 기사 역할의 카메오로 출연하기로 되어 있다.

"촬영 끝나면 빡세게 몇 판 두자."

"아, 아니……."

"이번엔 마사토 이겨야지?"

"……까득! 예!"

전의를 다진 저우양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진호는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마, 말도 안돼요! 애를 어떻게 그런 곳에서 재워요! 방 바꿔달라고요!"

촌스런 단발에 칙칙한 톤의 화장을 한 김세연이 커다랗고 중국풍으로 꾸며진 호텔의 프런트 직원들을 보며 방방 뛰었다. 살짝 당황했던 직원들은 이내 표정을 수습하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请说英语或中文。(영어나 중국어로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오, 미치겠네! 한국어 몰라요? 한국어?"

숫제 삿대질까지 할 기세에 그녀의 뒤에 있던 중년인과 한 청년이 재빨리 다가왔다.

"그만해, 영선아. 이러는 거 안 좋아."

"그래. 네가 이럴수록 최은택 선생님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

"여기서 더 어떻게…… 히이잉."

눈물이 그렁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두 사람은 당황했고, 그들을 향한 카메라와 조명 밖에 있던 저우 양도 당황했다.

"저, 저 사람들 이상합니다, 형님. 저희 중국인은 절대 저렇지 않습니다."

"풉!"

주위에 있던 중국어를 아는 사람들도 웃음을 참았다.

진호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울상이 된 저우양을 다독였다.

"세연이가 ABCD도 모르는 빡대가리라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마. 뭐, 저 시대 때의 한국도 외국인에 제대로 응대하지 못했을 거야."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했던 1980년대. 저런 모습은 일상 다반사였을 것이다.

"야! 누가 빡대가리야!"

"컷! 야, 김세연!"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감독님! 진호 쟤가!"

"나? 아무 말 안했는데?"

"했잖아! 중국어로!"

"야! 사랑 싸움은 나중에 해!"

촬영장에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김세연은 진호를 죽일 듯 노려봤고, 진호는 혀를 내밀며 놀렸다.

"세, 세연 누님은 대단하시군요. 어떻게 입모양만으로 형님의 말을 읽는 겁니까? 그것도 중국어를."

"욕이라서 읽은 거겠지. 본능이 아주 짐승이야."

"오, 누님은 외모만큼이나 능력도 대단하시군요."

"……세연이한테 빠졌냐?"

"아름답잖습니까. 형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하세요?"

진호는 씩씩거리다 다시 감정을 잡는 김세연을 빤히 바라봤다.

"예쁘지."

진호 자신이 미남 배우 계보를 잇는다면, 김세연은 미녀 배우 계보를 잇고 있을 만큼 한국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미모를 지니고 있다.

'확실히 예쁘긴 예뻐.'

그래서 저 미모를 어떻게든 촌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분장팀은 매일매일 엄청난 노동을 하는 중이었다.

"그것 보십시오."

"……그래. 네 말이 맞다."

"흐. 그래서 아쉽습니다. 세연 누님의 저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말입니다. 오늘 한국에 방영 될 형님이 출연한 뮤직여행도 말이죠."

나이열, 김대원과 함께한 뮤직여행 예능의 첫 화가 오늘 방송된다. 베이징의 날씨가 오늘부터 며칠간 맑아질 거란 소식이 없었다면, 그래서 번갯불에 콩 볶듯 이렇게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방송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어쩔 수 있겠어? 제휴 사이트로 봐야지."

"……후. 그래도 맛이라는 게……."

옅게 웃은 진호는 카메라 너머를 보곤 저우양을 토닥였다.

"이제 준비하자. 내가 등장한 직 후에 너도 바로 등장해야 하니까. 긴장하지 말고, 형을 마사토라고 생각하고 걸어와."

"마사토……. 예……. 무슨 감정 인지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저우양이 아차하며 입을 열었다.

"형님."

"음?"

"저희 할아버지께서 내일 저녁 식사에 형님을 초대하셨는데……"

진호는 살짝 놀랐다.

"대체 날 얼마나 좋게 말한 거야?"

중국인이 집에 식사 초대를 한다는 건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하하."

"알았어. 갈게."

"……역시 형님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옅게 웃은 진호는 김세연의 연기를 빤히 바라보며 나갈 타이밍을 잡았다.

'지금.'

몸을 일으킨 진호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어깨를 늘어트리며 김세연을 향해 다가갔다.

대회가 코앞이라 바둑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최은택이 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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