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13화
문제점이 드러나자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양진혁이 한국에서 최고로 좋은 음향 설비를 갖춘 녹음 스튜디오를 섭외했고, 진호와 네드, 레오와 나이열, 김대원이 매달려 곡을 수정했다.
"이 부분은 네드가 부르기 편하게……."
"와, 이런 코드로도 진행시킬 수 있구나. 진, 넌 정말 천재야."
"음. 이거 좋다. 좋은데, 이런 건 어때?"
셋은 프린트를 한 악보를 검게 더럽혀 가며 빠르게 수정해 갔고, 매니저 존은 그 모습을 보며 전율 했다.
'히어로 드림팀인가?'
지금 매니저 존에게 이들의 모습은 어벤져스, 저스티스 리그 등 세상을 구원하는 히어로들의 연합체와 다를 게 없었다.
이들은 네드 시런을 구원해 주는 히어로들이었다.
'이 작은 나라에 이런 뮤지션들이 있다니…….'
존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동방의 작은 나라일 뿐이라는 편견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렇게 흥이 많으니 이런 뮤지션들도 탄생하는 거겠지.'
콘서트를 위해 한국을 찾은 빌보드의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한국은 즐길 줄 아는 대단한 나라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래서 존은 한 번 그 영상을 찾아본 적 있는데, 그때 전율하고야 말았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 한, 그것도 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국민들이 빌보드의 나라인 미국인 들도 잘 모르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가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크게.
숭고하기까지 한 그 떼창은 정말 미쳤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저 대단한 뮤지션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건…….'
놀랍게도 진호였다.
키를 잡으려는 수많은 선장들을 어르고 달래며 목표한 곳을 향해 최단 시간으로 달리게끔 만들고 있었다.
"잠깐만요. 여기 반음 낮추는 게 어때요?"
"…….아."
"오!"
'이 곡의 원작자 중 한 명이기에 가능할 일일 테지만, 이 무슨…….'
탁!
모두가 한뜻으로 연필을 내리자 존은 숨소리조차 줄였다.
"……맞춰졌네."
네드 시런은 너덜너덜해진 악보를 얼떨떨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진호의 호언장담처럼 정말 자신의 몸에 딱 맞게 수선이 된 곡이었다. 음표 하나, 코드 하나가 만들어 내는 파도의 흐름은 지칠 때 까지 빠져들고 싶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거봐요. 내가 맞출 수 있다고 했잖아요."
네드 시런은 경이롭다는 듯 진호를 보았다가 다시 악보를 응시했다.
"그러게……."
'얼른 불러 보고 싶어.'
지난 3개월의 고생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자 네드 시런은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짝짝짝짝짝!
사람들은 새까만 악보를 보며 눈물을 그렁거리는 네드 시런과 그의 등을 두드리는 매니저 존을 향해 박수를 쳤고, 네드는 허리를 푹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아니, 표하려고 했다. 진호가 그의 어깨를 잡아 세우지 않았다면 말이다.
"아직 감사하긴 일러요. 녹음이 남아 있잖아요."
"……아."
감동에 젖어가던 사람들도 번뜩 정신을 차렸다.
진호는 싱긋 웃으며 일어섰다.
"자, 이동하시죠!"
그들은 양진혁이 섭외한 녹음 스튜디오로 향했다.
마이크에 붙어 있던 입이 다물어지고,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일류 재단사들이 만든 옷을 입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니면 일류 수선사들이 수선한 옷을 입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악보를 보았을 때도 만족했던 노래의 한 구절의 가사, 한 템포의 음률 모두가 직접 불러 보니 온몸을 찌릿찌릿 울렸다.
네드 시런은 단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런 곡은 나오기 힘들 거야.'
그래서 그는 조금 더 이 여운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그는 눈을 떠 녹음 부스 밖을 보았다.
'진.'
은인인 진호가 이쪽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헤드셋을 벗은 그는 녹음 부스를 나서자마자 진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 진!"
매니저 존도 진호를 와락 끌어안 았다.
살짝 놀랐던 진호는 이내 푸근히 웃으며 그들의 등을 두드렸다.
"내가 한 게 있나요. 다 바탕이 좋고, 여기 일류들이 잘 다듬어 준 덕분이죠."
이건 진심이었다.
어차피 몇 군데만 쳐 내고 추가 하면 됐던 곡이었고, 프로듀싱은 레오와 양진혁이 맡았다.
진호 자신이 한 일은 의견 몇 마디 내뱉은 게 다였다.
'프로듀싱 관련 스킬을 얻었다면 달라졌을 테지만…….'
아마 그땐 아예 선장이 되어 키를 잡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곡의 방향성은 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이런 진호의 설명에 네드 시런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진, 너는 정말……."
"진호야, 사회 선배로서 말하는데 그렇게 착한 것도 안 좋아."
"저 안 착한데요? 작곡가랑 프로듀서 목록에 저희 모두를 넣어 달라고 요구할 건데요? 돈도 요구할 거고."
"거봐! 안 착하긴!"
"맞아. 그건 당연한 거야, 진. 넌 더 대범해질 필요가 있어."
나이열의 말에 김대원과 매니저 존도 한마디씩 보랬고, 진호는 속으로 가슴을 치다가 포기했다.
'오해해 주면 나야 좋지, 뭐.'
말 몇 마디 한 것 가지고 공동 작곡가도 모자라 프로듀서로서도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세계적인 빌보드 스타 네드 시런의 타이틀곡에 말이다. 안 그래도 날로 먹는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돈까지 받을 수 있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야.'
"음?"
더 잘하자고 생각하던 진호는 입을 꾹 다문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양진혁과 레오를 보곤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사장님."
"왜, 뭐!"
"……뭘 그렇게 놀라세요? 마치 제 흉 본 사람처럼."
"누, 누가 흉을 봤다고 그래?"
'봤구나.'
진호의 눈이 가늘게 떠지자 양진혁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왜? 무슨 일이야?"
"여기 스튜디오 대여 시간 얼마나 남았냐고요."
"……아."
손목에 찬 시계를 본 양진혁은 깜짝 놀랐다.
"다섯 시간 남았는데?"
그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여섯 시간 빌렸잖아요."
"그러니까."
애초부터 약간의 수정만 하면 됐던 곡이기에 녹음이 빨리 끝날 것을 생각하고 대여 시간을 짧게 잡았다.
그런데 고작 1시간 만에 모든 녹음이 끝나 버렸다.
"……워후."
"와우."
네드 시런도 어이없어했다.
이 일이 해결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하며 3개월 동안의 스케줄을 모두 캔슬시키고 온 그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진호는 존경과 경의, 감사함을 가득 담아 이쪽을 보는 네드 시런의 눈빛을 슬쩍 무시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이제 뭐하죠?"
"그러게. 뭐하지?"
사람들 모두 고민에 빠졌다.
현재 시각은 오후 3시다. 어딘가로 놀러 가기도 애매하고, 본격적으로 술을 먹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음…… 여기 기기들 가지고 놀면서 맥주나 한잔할까요?"
"오! 그거 좋다! 난 찬성!"
"나도 찬성!"
네드 시런도 눈을 빛냈다.
이런 음향기기는 가수와 작곡가에게 밥벌이 수단임과 동시에 아주 비싼 놀이기구다. 수천수만가지의 소리가 저장되어 있고, 어떤 악기든 연주 할 수 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녹음 용도로밖에 쓰지 못하는 놀이기구.
"진호야!"
"넵! 다녀오겠습니다!"
지갑을 챙겨 든 진호는 재빨리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둔둔따다, 둔둔따다.
"빰빠! 빰빠!"
김대원이 음향기기로 드럼 비트를 내고, 레오가 피아노 연주를 하고, 나이열이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진호의 입이 열리며 레전드 오브 팝, 마이클 잰슨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She was more like a beauty queen."
"휘우!"
"마이클! 날 가져요! 엉엉!"
열광의 도가니였다.
코앞에서 듣는 레전드 오브 팝의 라이브에 매니저 존도 넥타이를 풀며 바운스를 탔다. 그의 문워크는 여느 댄스 가수 못지않게 매끄러웠다.
진호의 뒤를 이어받은 건네드 시 런이었다.
그는 그 몽환적인 목소리를 내뱉는 목을 긁으며 메탈리카의 록을 불렀고, 공기는 더욱 후끈 달아올랐다.
"사장님, 그만 찍고 오세요."
"그럴까?"
양진혁은 이 광란의 파티가 시작 되자마자 차로 달려가 가져온 캠 코더를 카메라 거치대에 올려놓으며 다가왔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혀를 내 둘렀다.
"너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도 이러고 놀았냐?"
"거의? 아, 사람들이 많아서 이보다 더 신나게 놀았죠."
"……무조건 본방 사수를 해야겠네."
그 네드 시런이 라이브 카페의 가수처럼 코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자신은 그걸 맥주를 마시며 감상하고 있었다.
마치 꿈만 같았다.
'크. 잘했다, 과거의 나! 진호 이 놈은 절대 놓아선 안 될 끈이야!'
"……큭!"
"왜 그러세요?"
"박 대표 이놈 지금쯤 무슨 심정 일까 싶어서. 미국 가려고 너랑 전략적 협의를 맺었는데…… 어이쿠야. 빌보드의 스타가 여기 있네? 하우스 파티를 하는 것처럼 같이 술 마시면서 놀고 있네? 난 개인 전화번호까지 땄네?"
양진혁은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 핸드폰의 전원을 아예 꺼 버렸다.
"짓궂으세요."
"이놈은 이래도 돼. 내가 옛날에 이놈한테 뒤통수 맞은 것만 생각 하면, 어후."
"그랬어요?"
"어떤 일이 있었냐면……."
"어으, 죽겠다! 나이가 드니 노는것도 힘드네."
나이열이 다가와 털썩 주저앉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김대원과 레오도 음향기기에서 손을 떼며 축 늘어졌다.
네드 시런도 몸을 앞으로 숙이며 땀을 후두둑 쏟아 냈다.
진호는 그런 그들을 보며 어이없어 했다.
"운동 좀 하세요. 겨우 3시간 놀았다고 퍼지면 어떡해요."
"……와, 이렇게 땀범벅이 되도록 놀았는데 겨우 3시간?"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미지근해진 맥주를 들이켰고, 기분 좋은 침묵이 스튜디오 안을 가득 채웠다.
진호는 모두의 입가에 걸린 만족스런 미소에 옅게 웃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아, OST는 어때?"
양진혁의 질문에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준비는 모두 끝났고, 이제 3일 뒤에 녹음만 하면 돼요."
"오! 프로듀싱은 누가 맡기로 했는데?"
"그 스튜디오 사장님이 맡아주기로 했어요. 어차피 곡은 완성되어 있으니까."
네드 시런과 함께 만들고 한국에 와서 여러 스킬들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다시 다듬은 곡이었다. 악기, 코드 등 빈틈은 없었다.
이런 진호의 자신감에 네드 시런이 눈을 빛냈다.
"진, 그렇게 기다릴 필요 있어?"
"음?"
"네 말처럼 여기엔 일류 수선사들이 이렇게나 많잖아. 그리고 나도 있어."
진호는 화들짝 놀랐다.
"자, 잠깐. 앨범이 아니라 OST예요. 한국 드라마의 OST."
이미 네드 시런과의 공동작곡이라는 것 때문에 엄청난 이슈 몰이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프로듀싱까지 네드 시런이 함께한다?
단순한 이슈몰이로 끝나지 않을 확률이 컸다.
"내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 진. 물론 이것 가지고는 턱없이 모자랄 테지만."
"맞아, 진. 네드가 은혜를 갚게 해 줘. 그렇지 않으면…… 음, 람보르기니 좋아해?"
네드 시런에게 다시 미소를 찾아주었다.
람보르기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네드 시런과 존의 진심은 진호에게 절절히 전해졌다.
"……에휴, 나 알죠? 이런 기회 안 놓쳐요."
선하게 웃은 네드 시런은 녹음 부스를 가리켰고, 진호는 OST 음원 파일이 담긴 핸드폰을 그에게 내밀었다.
사람들은 눈을 빛내며 집중했고, 양진혁과 나이열은 그 모습을 보며 부러움에 몸을 떨었다.
'어후, 내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라마에 이런 호재가 있어야 하는데!'
고요한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온 진호는 헤드셋을 쓰며 입을 열었다.
"목은 다 풀었으니까 바로 가요."
-오케이.
네드 시런이 버튼을 누르자 헤드셋에서 애절한 음률이 흘러나왔다. 진호는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고, 네드 시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여전히 반칙과 같은 목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왜 헤댔는지 이제야 알겠네. 난…… 진을 따라 하고 있었던 거야. 저 블랙홀 같은 목소리를 무의식 속에서.'
"역시 무섭다니까."
'빌보드에는 정말 늦게 와야 할 텐데…….'
횡단 열차 안에서 진호의 노래를 듣고 말한 건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응? 뭐라고?"
"쉿. 진이 노래 중이잖아, 레오."
"아니, 네가……."
어이없어한 레오가 입을 다물자 네드 시런은 다시 버튼을 눌렀다. 그의 눈이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대충 알았으니까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바라던 바예요. 따라 올 수 있죠?
진호는 환하게 웃었고, 네드 시런도 입술을 비틀었다.
그렇게 두 천재의 음악 가치관 대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