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86화 (186/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11화

4. OST

'우리들의 1987' 세트 촬영장에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겼다.

사람들은 그 고소한 냄새에 군침을 꼴깍 삼켰다.

"오늘은 지짐이인가? 불고기 냄새도 나는데?"

"아까 보니까 감자전이더라."

"오늘 동인네는 감자전부치고, 정균네는 불고기인가? 아, 미치겠네. 벌써부터 배고프면 안 되는데."

사람들은 눈을 빛내며 세트 한구석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제대로 만들어진 주방이 있었는데, 소품팀이 오늘 찍을 식사 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진호가 그들 사이를 기웃 거렸다.

"진호야, 이거 맛 좀 봐 봐."

"넵!"

얼굴이 환해진 진호는 프라이팬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던 감자전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미간을 좁히며 최대한 느리게 씹었다.

꿀꺽!

삼킨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쓰- 뭔가 애매한데요. 하나만 더 주세요."

"그래? 여기."

다시 받아먹은 진호는 다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흠. 소금 간이 좀 부족하네요. 반죽에 소금 10그램과……"

진호는 말을 다하지 못했다. 갑자기 귀가 잡혔기 때문이다.

"아악!"

기겁하며 몸을 돌린 진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서늘히 웃는 최은수 작가가 진호 자신의 귀를 잡은 범인이었기 때문이다.

"간 보는 척하면서 식사하는 것 있기? 없기?"

"어, 없기."

'감자전을 한 번 더 먹는 게 아니었어!'

"따라와."

"아악! 자, 잠깐만요!"

"……푸하핫!"

"호호호호호!"

그렇게 끌려간 진호는 대기실에 던져졌고, 최은수 작가는 콧방귀를 뀌고는 돌아섰다.

"……크흑! 들키지 않을 수 있었는데!"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은 한심하다는 듯 진호를 보았다.

"너도 참 근성이다. 어떻게 만날 그렇게 걸리면서도 소품팀 주방 근처를 기웃거리냐?"

"배고프니까요."

만날 풀 때기만 씹으니 걸어 다닐 힘조차 나질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맛있게 드시잖아요!"

"……그건 인정."

식사 신을 위해 쓰이는 예쁘게 만들어진 음식들은 그날 점심이나 저녁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반찬으로 쓰였다.

"내가 요새 이거 때문에 식사 신 찍는 날에는 촬영장에 일찍 오잖아."

"난 입맛이 바뀌어서 아내한테 많이 혼나고 있어요. 투덜거리려면 직접 차려 먹으라고."

남자 배우들이 살짝 원망을 담아 진호를 보았다.

그러자 여자 배우들이 진호를 감쌌다.

"사람들이 그러면 못써."

"난 진호가 요리 가르쳐 줘서 고맙던데? 애들이 일찍 들어와서."

"그것뿐이야? 이 촬영장에서 진호가 끼지 않은 곳이 있기나 해? 사람들 진짜 못됐다, 그치?"

살짝 억울할 뻔했던 진호는 여배우들의 비호에 베시시 웃었다.

젊은 배우들은 밥만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었기에 아무 말도 안 했다.

몸매 때문에 언제나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그들은 식사 신이 있는 날만이 입과 배가 호강하는 날인데, 혹여 진호의 마음이 상했다가는 불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똑똑똑!

"네!"

문이 열리며 나연석이 들어왔다.

그는 대기실 안을 둘러보다가 바닥에 앉아 있는 진호를 발견하고는 어이없어했다.

"거기서 뭐해?"

"배고파서 잠시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방금 전에 소품팀 주방에서 식사하지 않았어?"

"……보셨어요?"

"봤지. 하여튼 진호 넌 방심할 수가 없네."

"누가 할 소린데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 맞아. 진호, 너 이야기 좀 하자."

"네? 아, 네."

진호는 의아해하며 나연석을 따라나섰다.

둘은 세트 촬영장을 나서다 못해 나연석의 차로 향했다.

그의 차 안에는 음향 감독과 신연호 피디도 있었다.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심상치 않다 느낀 진호는 긴장을 했다.

"이것 좀 들어 봐."

나연석은 그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mp3 파일을 재생했다.

"음?"

진호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잔잔한 도입부가 단숨에 귀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파일은 곧 끝났다.

"어때?"

"좋은데요? OST예요?"

진심 어린 진호의 표정에 나연석과 나머지 두 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호는 그런 그들을 어이없다는 듯 보다가 이내 이해했다.

'나 피디님에게는 새로운 도전일 테니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하시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드라마를 많이 찍어 본 신연호 피디와 그의 아래서 그 작품들을 함께한 음향 감독이 이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거 한 곡뿐이에요?"

"아니? 더 들어 볼래?"

"네!"

나연석이 다른 파일을 재생시키자 진호는 눈을 감았다.

'아, 좋다.'

엇나감을 말하는 듯 슬픈 선율도, 짝사랑을 말하는 듯 애절한 선율도, 나연석이 처음 들려준 음원까지 해서 세 곡의 음원 모두 좋았다.

음원 재생은 모두 끝났지만, 여운이 진호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아, 모두 내가 부르고 싶다."

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지만, 그 말을 들은 나연석과 신연호 피디, 음향 감독은 눈을 번쩍 떴다. 그들이 원하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본 셋은 의미심장하게 웃었고, 그사이 정신을 차린 진호는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 OST 부를 가수들은 누구예요? 이 곡들 어떤 작곡가에게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한 감성 가지고는 힘들 거예요. 아니, 그 전에 겨우 세 곡뿐이에요?"

보통 드라마에 쓰이는 OST는 못해도 다섯 곡 이상이었다.

"확정된 건 이 세 곡뿐이야. 그래서 그런데……."

"저야 좋죠. 부를게요."

"……크! 역시 우리 진호! 시원시원하다."

환하게 웃은 나연석은 진호의 손을 잡으며 은근히 말했다.

"생각 있으면 OST도 한 곡 만들어 볼래?"

"어, 그래도 돼요?"

"못 할 건 또 뭐야?"

"하지만……."

"네드 시런과 작업까지 같이한 천재 작곡가에게 곡 의뢰를 맡기지 않으면 누구에게 맡겨? 괜찮아. 나는 신경 쓰지마."

실패해도 괜찮다는 듯 대범하게 웃는 나연석의 모습에 진호는 속으로 씩 웃었다.

OST를 듣는 순간 OST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그러나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나연석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능이 아닌 드라마라고 해도 먼저 욕심을 드러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즉, 방금 전 우려를 드러낸 것은 나연석으로 하여금 먼저 곡 작업을 의뢰하게 만들기 위한 함정이었다.

"흐흐. 그렇게 말해 주시면 감사 하죠. 그래도 곡 의뢰비는 넉넉하게 주실 거죠? 일단 한 곡당 음원 수익의 30퍼센트?"

"어?"

"왜 이러세요, 저희 사이에. 공은 공이고, 사는 사죠. 제작비도 넉넉 하잖아요."

나연석과 남은 둘은 입을 떡 벌렸다.

* * *

회의실 의자에 앉은 다미앙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일감을 물어 오실 줄은 몰랐군요."

드라마와 영화, 화보 촬영. 이 세 박자가 맞물려 돌아가다 보니 진호는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바쁘다고 해서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하핫. 맞는 말입니다."

좋은 작품의 OST는 대중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라는 게 일정 세대만 시청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통해 40대 이상의 대중들에게 작곡가 겸 가수 이진호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겠습니다. 우리들의 시리즈는 대중이 사랑하는 드라마니까요."

"50대 이상의 연령층에게도 어필 할 수 있을 겁니다. 1980년도라는 배경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니까요."

장경아 실장이 말하자 회의실에 앉은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알아서 일감을 가져온 진호를 사랑스럽다는 듯 보았다. 진호는 그동안 그들이 수없이 봤던 사고만 치는 연예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곡은 정하셨습니까?"

"네드와 작업한 곡이 있어요. 마침 젊은 등장인물, 즉 주연들의 사랑 이야기와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어후. 그놈의 썸. 그만하면 안 되나? 대체 썸이란 단어는 누가 만든 거야?"

"……푸하핫!"

"호호호."

'우리들의 1987'에서 등장하는 젊은 등장인물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또 후회한다. 치기 어린 마음에, 또 솔직하지 못해서 틱틱댔던 행동들이 좋아하는 사람 과 이어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극 후반부에 서로의 연인이 정해 지기까지 주연들은 이런 썸을 반복하는데, 진호도 자신이 누구와 이어질지 알지 못했다.

아직 거기까지 대본이 나오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 네드 시런과 함께 작업한 곡이라……. 진호 씨도 그렇지만, 우리들의 1987도 호재가 넘치는군요."

저우양과 마사토라는 바둑 기사들의 카메오 출연과 팀 존스, 마리나에게 영감을 주어 이번 패션위크의 테마를 정한 일 등 이외에도 촬영장에서 일어난 여러 에피소드들을 담은 기사들이 첫 화 방송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 네드 시런과 함께 작곡한 OST도 추가되었다.

이슈가 폭풍처럼 몰아칠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스케줄 조정에 각별히 주의를 기해야겠습니다."

다미앙의 말에 기획부 직원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케팅부는……"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최소 3개월 동안 진행해야 될 스케줄과 홍보,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똑똑똑!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직원이 들어 왔다.

"양진혁 사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손목시계를 본 다미앙은 아차 했다.

9월에 열리는 패션위크에 대해 양진혁과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회의는 내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기획부는 녹음 스튜디오 부터 잡아주세요."

회사에도 음향 시설이 있지만, 미튜브 업로드용이라서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예!"

몸을 일으킨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나갔고, 양진혁이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진호야! 너 설마 앨범 내냐!"

"……그걸 들으셨어요?"

"내 귀가 어떤…… 아니, 그보다! 진짜 앨범 내려고? 곡 정해졌어?"

"……아. 여름 시즌이죠, 참."

여름은 아이돌 그룹의 시즌 중 시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걸 그룹과 보이 그룹이 시원한 옷차림으로 경쾌한 노래를 부르며 팬들을 홀림으로써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대목이었다.

"아니에요. OST 때문이에요."

"……아, 그래?"

그 짧은 사이에 식은 땀을 흘린 양진혁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음? 그런데 드라마 OST는 지정된 스튜디오가 있잖아?"

주로 외주 업체들을 상대로 운영 되는 스튜디오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전에 가서 보니까 연식이 좀 오래됐더라고요."

"……하긴. 그곳들 모두 벌써 15 년 넘게 기기를 바꾸지 않기는 했지."

그렇다고 한들 거의 방송사와 협약 및 밀약을 맺어서 OST를 제작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곳들을 이용을 해야 하지만, 진호에겐 그런 것 따윈 통하지 않았다.

'작은 이익을 위해서 진호를 강제 한다? 어휴.'

자칫 잘못하면 관계자 한두 명 목이 날아가는 걸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진호야, 섭섭하다. 녹음은 우리 회사에서…… 끙."

"흐흐. 거봐요. 바쁘시잖아요."

JH 엔터테인먼트는 현재 무척이나 바빴다.

여름 시즌이라서가 아니라 소위 양진혁의 보석함이라 불리는 가수들 대다수가 음반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한 팀이 활동을 접을 때 즈음에 다른 한 팀이 음반을 발표하는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다른 기획사들이 죽어나고 있었다.

마노나 YS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실력 있는 실무자들이 대거 빠져나간 PJY는 직원들이 퇴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너 때문이잖아, 짜샤!"

"헐? 제가 뭘요?"

"노래를 끝장나게 잘하는 배우가 작곡까지 미치도록 하는데, 아티스트를 꿈꾸는 우리 애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 승부욕이 제대로 붙었잖아!"

"푸하핫! 그래요? 잘됐네요."

"잘됐지……. 그런데 너무 잘돼서 탈이랄까?"

히죽 웃었던 양진혁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아, 업무가 너무 많아서 직원들이 힘드시는구나."

"오늘 아침에도 사표를 10장이나 받았다. 이렇게 일하다가는 과로사 할 것 같다고. 빌어먹을. 나도 사 표 쓰고 싶다……."

"푸하하하하핫!"

다미앙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그런데 네 직원들을 좀 파견……."

"안돼요. 저 서포트해 주시기도 바빠요."

"……에이. 그래서 OST 발표일은 언제야?"

"모르죠. 첫 방 날짜도 안 잡혔는데요."

"잉? 왜?"

"방송국 사정이라는데 저야 알 수 있나요. 덕분에 분량은 확실히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최종화까지 사전 제작하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고요……."

우우웅!

"응?"

발신자를 확인한 진호는 살짝 놀랐다.

"잠시만요."

"별일 아니면 여기서 받아. 나 늦게 들어갈 거야."

땡땡이를 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전해져 왔다.

다시 웃은 진호는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에요, 네드. 무슨 일이 세요?"

네드 시런이었다.

양진혁은 네드란 단어와 영어에 깜짝 놀랐다.

-전에 말했잖아. 와 줘. 네가 필요해.

"……막힌 거예요?"

-애매해. 그래서 더 미치겠어.

"음……."

-설마 바쁜 거야?

"……네."

진호는 사정을 설명했다.

-그래? 그럼 내가 갈게. 아쉬운 사람이 가야지.

"미안해요. 한국에 오기 전에 연락 주세요. 마중 나갈게요."

-알았어. 며칠 안 걸릴 거야. 전화를 끊은 진호는 양진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호야."

"네?"

"그 사람 설마 네드 시런이냐?"

"어떻게 아셨……. 아, 예고편이 방송됐지."

김대원 나이열과 함께 찍은 힐링 뮤직 예능의 예고편이 어제 방송 되었다. 그 예고편 말미엔 '횡단 열차 안에서 빌보드 스타와 만나다?' 라는 자막이 넣어지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어제 오늘 회사의 전화기가 불나도록 울렸다.

"그, 그러니까 그 네드 시런이 널 만나러 한국에 온다고? 너랑 같이 작업하기 위해서?"

"그렇죠?"

순간 볼이 파르르 떨린 양진혁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OST 발매일이 언제라고?"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그 날짜는 피해야 했다.

꺼내 놓은 보석함의 보석을 다시 집어넣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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