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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84화 (184/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9화

모두 연기파 배우이다 보니 연기에 빈틈이 없었다.

나연석이 메가폰을 잡자 성동인과 김정균의 애드리브가 폭발했고, 젊은 배우들도 편한 현장의 분위기에 부담감 없이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형님!"

"형!"

컷이 크게 외쳐지자 카메라 밖에서 눈을 빛내고 있던 저우양과 마사토가 다가왔다. 연기에 빠져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던 진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연습은?"

"매일 바둑판만 보는 것도 좋지 않다며 티앙우밍 6단께서 잠시 머리를 식히고 오라 말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아, 그래? 다른 사람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저녁 8시까지 기원으로 복귀하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진호는 이쪽을 의아해하며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둘을 소개시켰다.

"오, 나 바둑 기사 처음 봤어."

"이렇게 젊은 사람도 바둑 기사가 되는구나."

진호가 실시간으로 통역해 주자 저우양와 마사토는 쑥스러워했다. 나연석과 연출진은 그런 둘을 보며 눈을 빛냈다.

"젊은 바둑 기사……."

"외모도 좋고."

서로를 본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함께한 사이다 보니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나연석이 대표로 진호에게 다가갔다.

"진호야."

"네?"

"이분들에게 이 드라마에 출연해 볼 생각 있냐고 물어봐 줄 수 있을까?"

"……아, 그 삼국 대결 에피소드 때문에요?"

진호가 맡은 배역인 최은택은 한국을 대표하는 바둑 기사이기에 국제 바둑 대회에도 출전하는 상황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연석은 그때 상대편으로 나올 바둑 기사를 말하는 것 같았다. 맞다는 듯 나연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호는 잠시 고민했다.

"얘들 몸값 비쌀 텐데……."

흠칫!

"비싸?"

"얘들이 현재 젊은 세대를 대표 하는 기사들이라서요. 이렇게 외모도 출중하다 보니까 중국과 일본에서 꽤 대우를 받고 있죠."

나연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낯빛을 굳혔다.

"그래도 어설픈 사람을 데려다앉혀 놓는 것보다는 낫겠지."

"오-."

"네가 바둑 두는 모습을 보니까 진짜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확실하게 보이더라."

며칠 전 1987년도를 표현하기 위해 어느 허름한 기원에서 진호가 바둑을 두는 신을 찍은 적이 있었다.

많은 엑스트라가 동원됐는데, 그들이 어설프게 바둑을 두는 모습때문에 수많은 NG가 나야 했다. 겨우 오케이를 한 분량도 나연석과 신연호를 90퍼센트 정도밖에 만족시키지 못했다.

나연석은 그때 드라마에서 쓰이는 병풍엔 좋은 병풍이 있고, 나쁜 병풍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모두 너 때문이라는 듯 장난스럽게 원망을 담아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진호는 히죽 웃었다.

"흐흐흐. 알겠습니다."

진호는 나연석와 나눈 이야기를 저우양과 마사토에게 설명했다.

"카메오 출연 말입니까?"

"생각 있어?"

"음……."

저우양이 고민을 시작하자 마사토가 눈을 빛냈다.

"형님과 함께 출연하는 거라면 전 언제든 괜찮습니다! 하루 전에만 연락 주십시오!"

경악한 저우양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저는 12시간 전에만 연락 주시면 됩니다!"

"그럼 난 10시간!"

"8시간!"

"야!"

"뭐!"

진호는 둘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힘을 주었다.

"아악!"

"혀, 형님!"

"너희들은 언제 철들래."

"이놈이 먼저 시비를 거는 겁니다, 형님!"

"누가 할 소리!"

"씁!"

둘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고, 사람들은 실소를 터트렸다.

진호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빛내는 둘의 모습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신기해?"

"예, 좀……. 드라마 촬영장은 처음입니다. 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많이 출연해 봤습니다."

"저 역시도요. 드라마 촬영장은 이런 모습이군요."

마치 놀이공원에 온 아이들처럼 흥분한 모습이었다.

'놀이공원이라…… 흠?'

진호의 눈에 장난기가 서렸다.

"너희들, 분장 한번 받아 볼래? 티비 프로그램에 나올 때 하는 화장이 아니라, 그때 그 시간에 있게 만드는, 그런 분장."

잠시 이해를 못했던 둘은 이내 깜짝 놀랐다.

"그, 그래도 됩니까?"

"폐가 되지 않을지……."

말은 사양을 하면서도 눈빛은 하고 싶다며 외치고 있었다.

"내일은 내가 약속이 있어서 오늘 좀 촬영을 많이 해야 하거든. 아마 6시까지는 시간을 낼 수 없을 거야."

"아……."

"그렇다면야……."

진호는 아쉬워했다가 눈이 더 빛나는 둘의 모습에 나연석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는 방해만 하지 않으면 상관없다며 허락을 했다. 아니, 예능 피디로서의 감각 때문인지 이 돌발적인 상황을 좋아했다. 여성들로만 꾸며진 분장팀이 눈을 빛내며 저우양과 마사토를 끌고 갔다.

"진호의 외국 동생들도 왔으니 30분만 더 쉬겠습니다!"

"오오오! 진호야 고맙다!"

"크. 한숨 때려 볼까?"

"으아-! 더워라! 날이 왜 이렇게 더워져? 누구하드 드실 분?"

"나-!"

어느덧 여름이었다.

'시간 참 빨리 가네.'

그늘을 찾아 움직이던 진호를 향해 정 실장이 다가왔다.

"둘을 데려와 줘서 고마…… 응? 왜 그러세요?"

정 실장의 표정이 오묘했다.

"음. 일단 받아 봐."

"누군데요?"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은 진호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더 의아해했다.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는 내일 만나기로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팀?"

-오, 진!

"무슨 일……아, 설마 못 오는 거예요?"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 팀 존스는 6월에 열린 맨즈패션위크를 성공리에 마친 기념으로 한국에 관광을 오기로 했다.

-아닙니다! 지금 한국입니다!

"……네?"

-제 비서가 시간을 잘못 예약해서 말입니다. 하하.

진호는 이게 진실이냐며 정 실장을 보았고,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 * *

전화를 끊은 팀 존스는 차가운 눈으로 비서를 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됐습니다."

그는 옆에서 하품을 하는 60대 금발 여성을 보았다.

"진짜 당신은 왜 따라온 겁니까, 마리나!"

마리나 그라치아 치우리. 크리스 챤 디올의 첫 여성 수석 디자이너 이자, 지금까지 수많은 컬렉션을 성공시킨 대단한 인물이다.

"아, 이젠 이런 장거리 여행도 힘드네."

"9월 패션위크 때문에 한창 바쁠 텐데요? 아, 설마 막힌 겁니까?"

"정답. 친절히 나 찾지 말라고 포스트잇도 붙여 놓고 왔지."

팀 존스는 이마를 붙잡았다. 지금 쯤 뒤집어져 파리 전체를 뒤지고 다닐 크리스찬 디올의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그 자신도 디자이너지만, 디자이너라는 족속은 정말 제멋대로였다.

"머리도 식힐 겸 내 뮤즈도 좀 보고."

"내 뮤즈입니다!"

"정확히는 LVMH 모두의 뮤즈지. 그래서 뮤즈가 뭐래?"

"촬영 중이라서 당장은 만나기 힘들다고 합니다. 대신 차량을 보내 준다고 하더군요."

"맞아. 뮤즈는 배우이기도 했지. 무슨 드라마를 찍는 거야? 이번에도 액션인가?"

"……잠시만요."

팀 존스는 메신저를 열어 진호와 나눈 대화를 살폈다.

"흠. 이번에 찍는 드라마의 시대상이 1980년도라고 하는군요. 당시 서민들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호오. 한국의 1980년도라."

마리나의 눈이 빛났다.

그건 팀 존스도 마찬가지였다.

"보러 가야겠지?"

"당연한 말을 하는군요."

한국의 1980년도도 보고 싶지만, 1980년도에 있는 진호가 더 보고 싶었다. 아니,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들은 초조히 진호가 보내올 차량을 기다렸다.

* * *

"어, 어때요?"

진호는 어색해하는 마사토를 보며 웃음을 삼켰다. 저우양은 불만 스런 얼굴이었다. 무스로 넘긴 머리까지 모두 그때 그 시대의 사람들처럼 촌스러웠다.

'와, 이게 이렇게 잘 어울리나?'

마치 타임워프를 한 것 같았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복고 패션이 아니라 패션 테러리스트지만 말이다. 진호는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는 분장팀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고, 사람들은 끝내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푸하하하핫!"

"크크크크크!"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둘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옷을 벗었다. 진호는 재빨리 말렸다.

"너무 잘 어울려서 그래. 그래도 품이 좀 넓네. 최 실장님, 저 옷핀 좀 주시고, 박 대리님은 분장실에서 7번과 9번 상자에 있는 시계와 스카프 좀 가져다주세요."

"응! 여기!"

"알겠습니다!"

"가만히 있어 봐."

최 실장이 주머니에서 꺼낸 옷핀을 받은 진호는 그들의 뒤로 돌아가 옷핀으로 품을 줄였다.

얘가 뭘 하는가 싶었던 사람들은 점점 예뻐져 가는 둘의 옷차림에 깜짝 놀랐다.

"아니, 진호야. 너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대충요."

[스킬: 우리 동네 패셔니스타] 덕분이었다.

드라이빙 매니저인 박 대리가 가져온 시계와 스카프마저 채우자 사람들은 감탄했다.

"오, 좋은데?"

"넌 대체 못하는 게 뭐냐?"

어느 시골 촌 동네의 청년들이 순식간에 강남을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패셔너를한 청년들로 바뀌었다.

진호는 핸드폰으로 둘의 모습을 찍어 보여줬고, 둘은 깜짝 놀랐다. 저우양은 이내 곧 만족했지만, 마사토는 얼떨떨해했다.

'이게 나?'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교복 아니면 정장, 혹은 매니저가 챙겨 주는 정중한 캐주얼 스타일의 옷만 입어온 마사토는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보며 신기 해했다.

'언뜻 양키 같지만, 그렇지 않아.'

언젠가 부모님이 자신들 세대 때는 이런 게 유행했다면서 보여준 비디오 속의 연예인 같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세련됐다.

진호는 만족스러워 하는 둘의 모습에 흐뭇해하다가 옆에서 이쪽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나연석을 보았다.

"엑스트라로 써 보시게요?"

"괜찮을 것 같지 않아?"

돌발적인 상황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카메라로 남기고 싶은 것은 예능 피디로서의 본능이었다. 출연료는 나중 문제였다. 어차피 카메오 출연이라 비싸지도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둘 때문이라도…… 물론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혹시…….'

진호는 나연석의 눈에 어리는 작은 욕심의 의미를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했다.

"저야 찬성이죠."

진호는 마사토와 저우양에게 의견을 물었고, 둘은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각자의 매니저에게 달려갔다.

진호는 멀리 떨어져 있던 매니저들이 둘의 모습을 훑어보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곤 옅게 웃었다.

'허락하겠네.'

근엄하기 짝이 없는 바둑계도 점점 변하고 있다. 아니, 점점 젊어 지고 있었다.

이는 관념이나 생각, 기보뿐만이 아니라 패션까지도 그렇다. 대회에선 언제나 정장을 입었던 바둑 기사들이 청바지에 셔츠처럼 편한 옷차림을 입은 채 대국을 두고, 처음엔 그 모습을 보며 강하게 질책했던 3국 바둑계 원로들도 이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은근히 권장했다.

바둑이 인터넷과 핸드폰 게임에 밀려 점점 쇠퇴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돌 선생님이 말하길 그럼에도 파격적인 패션은 용납하지 못한다고 했지.'

바둑이라는 스포츠가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한 기조와 인식,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세련된 복고 정장 패션을 입는다면?'

기조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미마저 잡을 수 있다.

저우양과 마사토라는 두 청년 기사의 라이벌 관계를 만들 수도 있고, 이후 패션에 더욱 신경을 써서 패셔너블한 천재 바둑 기사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마케팅도 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든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캬. 내가 젊었을 적에 저렇게 입고 다녔으면…… 어후!"

"아주 그냥!"

주위를 둘러본 진호는 피식 웃었다.

나이 든 남녀 스태프들 모두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음?'

"그럼 지금 입어 보면 되죠."

"응?"

"오랜만에 기분도 내실 겸 추억도 만들고……."

진호는 나연석을 보았다.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홍보도 하고?"

"이런 추억 있으면 좋잖아요."

나연석은 이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스태프들을 둘러봤다. 그들 모두 흥미로워하고 있었다.

"암튼 진짜……."

"흐흐흐."

나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촬영도 막바지였고, 따로 만든 분장실엔 복고풍 옷이 백여 벌 있었다.

"자, 모두 옷 갈아입고 진호 말대로 추억 한번 남겨 봅시다."

"……어흐. 그래 볼까나?"

"아, 나 이 촬영장 마음에 들어. 너무 재밌어."

사람들은 분장실로 향했고, 진호는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저우양과 마사토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 허락했나 보네."

둘도 추억 하나 제대로 남길 듯 했다.

둘이 나온 분량은 아주 짧았다.

스쳐 지나가는 행인 1과 2였기에 3초 정도의 분량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둘은 모니터 속에 비치는 자신들의 모습에 신기해하고, 또 만족했다.

"이 분량만 커트해서 너희 핸드폰으로 보내 줄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쑥스러워 하는 둘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은 진호는 나연석에게 부탁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어?"

주위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당황했다.

나이 든 백인 남녀 두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진호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여기까진 어떻게 온 거…… 응?"

팀 존스와 마리나가 이쪽을 보며 경악하였다. 정확히는 진호 자신과 저우양, 마사토를 보며 말이다.

"왜 그러세요…… 엥?"

걸음을 멈춘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둘이 갑자기 디자인 노트를 꺼내 들더니 스케치를 시작 했기 때문이었다.

"……왜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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