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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79화 (179/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4화

한 명, 두 명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발목을 붙잡은 듯 멈춰 서는 사람들이 늘어 갔다.

딩딩─ 딩─!

"와우!"

"브라보!"

어느새 쉰 명으로 불어난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에 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서커스의 광대처럼 익살맞게 인사를 했다.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한 김대원과 나이열도 장난스런 몸짓으로 인사를 했고, 오솔레미오를 열창한 박준연도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좋은 공연을 봐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런 모습마저도 좋아해 주었다.

진호는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 황홀한 공연을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우셨나요? 뭐, 당연히 즐거우섰겠지만 예의상 물어보는 거예요."

"하하하하하!"

"네-!"

진호의 능청스런 멘트가 개그 코드를 건드렸는지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 중 몇 명이 다가와 뚜껑이 열린 기타 케이스에 돈을 내려놓았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시나요? 방금 열창을 하신 분은 성악 가가 아니라 저희 조국에서 개그맨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이란 걸요."

"호?"

"오오!"

놀란 관객들이 박준연을 향해 다시 박수를 쳐 줬고, 물을 마시던 박준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어벙한 모습이 사람들을 다시금 웃기게 했다.

박준연이 무슨 일이냐는 듯 진호를 보았지만, 그는 모른 척 관객들을 보았다.

"그럼 다음 곡 가겠습니다. 쉬어가는 시간으로 무거운 클래식을 연주할 생각이니 화장실 다녀오실 분은 다녀오셔도 돼요."

"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

옅게 웃은 진호는 일행들을 보았다.

김대원과 나이열, 박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한국에서부터 지금까지 매일, 매 시간 합을 맞추었다.

이젠 척하면 착이었다.

김대원과 나이열이 화장실로가고, 박준연이 향초를 나눠 주기 시작하자 진호도 건반에 손을 얹었다.

딩-

어떤 이는 눈을 감은 채 은은한 미소를 지었고, 어떤 이는 연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행복해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더 진심을 담아 연주하던 진호는 약간은 이질적인 존재들을 발견하고는 살짝 놀랐다.

'……귀여워라!'

교복을 입은 십여 명의 아이들이 이쪽을 보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여운데, 그 아이들 중 연상으로 보이는 몇 명이 주위 어른들처럼 눈을 감은 채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어서 더 귀엽게 느껴졌다.

'풋. 제법?'

무작정 피아노 연주가 멋져 보여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정말 이 곡을 즐기고 있었다.

"영재들인가?"

예술의 도시 빈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살짝 거슬리는 점은 아이들이 서 있는 자세가 너무 꼿꼿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러워. 마치 어려서 부터 저렇게 서라고 교육을 받은 것처럼.'

진호는 그들의 인솔자로 보이는 노인을 보았다.

'음악계 쪽 사람인가?'

살짝살짝 흔들리는 턱 끝이 박자를 제대로 타고 있고, 허리 아래로 내려진 손이 어떤 규칙을 가진 채 흔들리고 있었다.

'지휘자인가 보네…… 아.'

진호는 저들이 누군지 깨닫게 되었다.

음악적 감성이 뛰어난 듯 보이는 교복을 입은 어린아이들과 지휘자.

'빈 소년 합창단!'

세계 3대 소년 합창단 중 하나이자 천사의 목소리라 부르는 아이들. 미튜브를 통해 그들의 성가를 들어 본 적 있는 진호로서는 엉덩이를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딩딩딩- 띵!

"……와아아아!"

"브라보!"

다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앉아 있던 사람들도 일어나 박수를 쳤다.

아이들도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쳤다.

싱긋 웃은 진호는 미안하다는 듯 박준연을 보고는 다시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쪽 성가와 이쪽 성가는 좀 다르지만…….'

귀여운 어린 관객들을 위해 선물을 주고 싶었다.

아직 연주가 주었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 이 곡은?"

"시스터 액터?"

우피 실버버그 주연의 영화, 시스터 액터의 대표 OST였다.

"호오?"

노인은 그 경쾌한 연주에 눈을 빛냈다.

멀리서 들은 것처럼 음표로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단숨에 몰입된 주위 관객들이 즐거워하며 따라 부르고 있었다.

"젊은 사람이 대단하군."

'거기다 자유로워.'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공연을 좋아해서 즐기면서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그러니 이렇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일 터였다.

"그러게요."

청년이 환하게 웃었다.

"딱 제 취향이에요."

노인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찬송가라서 그런 게 아니고?"

빈 소년 합창단은 7살 때부터, 아니 그전부터 합창단에 들어오기 위해 성가를 들어야 하다 보니 취향이라는 게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만날 부르고 배우고, 또 강요받는 곡이 궁정 예배에 쓰이는 무거운 옛 가톨릭 성가다 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합창단원들은 어른들 몰래 이런 식의 퓨전 찬송가를 부르며 일탈 아닌 일탈을 하는데, 그들을 가르치는 어른들도 성가라는 것 때문에 모른 척 눈감아주는 편이다.

합창단 규칙대로라면, 그런 성가 조차 불러선 안 된다.

즉, 이런 경쾌한 찬송가는 청년에게 있어 어린 날의 작은 일탈 같은 추억이었다.

"저, 저도 팝이나 힙합 좋아해요!"

"하핫. 그래."

청년을 발을 동동굴렀지만, 노인의 능글맞은 눈빛을 지우지는 못했다.

"I will follow you."

"음?"

갑자기 들리는 미성에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

마치 자기 전 쉬는 시간 TV 만화에 빠진 것처럼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아이들이 작은 입을 오물 거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눈을 커다랗게 떴던 청년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씁!"

아이들은 사색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됐다. 놔두어라."

"하지만, 선생님."

지정된 장소와 지정된 공간에서 노래를 불러도 철저한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게 이 아이들의 목소리다.

아무리 공원이라지만, 대기에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과 온갖 먼지가 가득한 이런 야외에선 노래를 부르게 둘 수 없었다.

"괜찮아. 몇 곡 따라 부른다고 해서 목이 망가지진 않아. 그리고 한 달만의 외출이잖니."

'또 그리고…… 저 피아니스트의 선물을 외면할 수 없지.'

이쪽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보내는 선물이었다.

그 고마움을 모른 척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한 달 만에 자유 시간을 가진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촬영입니다."

"출연료로 우리 천사들에게 과자를 사 주면 되겠구나."

"……끄응."

청년이 물러서자 노인은 다시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의 눈이 이쪽을 보며 빛나고 있었다.

노인은 푸근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연석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귓속으로 이상한 노랫소리가 꽂히고 있다.

듣기 싫은 게 아니라 마치 시원한 물로 귀를 씻어 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미성이었다. 마침 노래가 찬송가라서 그런지 마음에 가득 낀 때가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관객들도 같은 마음인지 그 소리를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내 곧 미성의 주인을 발견한 나연석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비, 빈 소년 합창단?'

빈에 오며 많은 조사를 했던 나연석이다.

빈 소년 합창단의 합창단복을 모를 리 없었다.

'잠깐?'

그는 급히 진호를 보았다.

"……역시 알고서 한 거냐."

미성이, 아니 미성들이 점점 커져 가자 진호의 연주도 더 경쾌해져 가고 있었다. 대신 볼륨은 조금씩 줄어 갔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강조시키려는 듯 말이다.

덕분에 천상의 하모니 같은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진짜 못 말리겠네. 사고 치지 말라니까."

고개를 젓는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연석은 노인을 보며 발을 뗐다.

아니 떼려고 했다.

노인이 이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 이지 않았다면 말이다.

활짝 웃은 나연석은 무전기를 들었다.

"3번, 5번 카메라, 관객들 사이에 있는 아이들을 잡고, 6번 카메라는 진호 잡습니다. 그리고 대원이 형, 이열이 형 불러와요. 대작 만들어야 하니까, 얼른."

* * *

모두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끝나자 관객들은 만족하며 떠났다. 진호와 일행들은 한국인 관광객 마저 떠나자 분장을 지우기 시작 했다.

진호는 이 모습이 신기한 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쪽을 빤히 바라 보는 아이들에게 직접 만든 과자 들과 오늘 관객들이 준 돈 중 일부를 나눠 주었다.

깜짝 놀랐다가 우물쭈물하며 노인을 보는 아이들의 모습도, 노인이 허락하자 세상 다 가진 듯 웃는 모습도 너무 귀여웠다.

"감사합니다!"

"와-!"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은 진호는 출연진과 제작진에 감사 인사를 받으며 다가오는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그건 우리 천사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에헤헤."

아이들은 몸을 배배 꼬았고, 사람들은 아빠 미소를 지었다.

노인은 화장이 완전히 지워진 진호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군요. 이런 미남이라면 기억에 남았을 텐데요. 혹 콩쿠르에 출전하지 않은 겁니까?"

"아."

오스트리아는 세계 유명 콩쿠르들이 열리는 나라이기도 했다.

"글쎄요. 그렇게 됐네요."

"관심이 없는 겁니까?"

진호는 약간은 집요하게 물어 오는 노인의 모습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콩쿠르라…….'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스킬을 얻은 이상 집의 진열장에 콩쿠르 관련 트로피 하나 넣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노인은 갈등을 하는 진호의 모습에 한 발 물러섰다.

"콩쿠르에 관심이 생기면 이 번호로 연락을 주십시오. 당신을 위해 기꺼이 추천장을 써 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제가 또 이런건 거부하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하핫! 전화가 올 그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아, 우리 천사들과 사진 한 장 찍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당연하죠."

진호는 활짝 웃었고, 아이들도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다 같이 사진을 찍은 후 노인과 아이들이 떠나자 나연석이 다가왔다.

"진호야……."

"네. 평생 가요."

"……그렇지! 이래야 우리 진호지! 내년엔 어디 갈까? 동남아 갈까? 미국 갈래? 아니, 우리 진호가 가자는 곳이면 남극도 간다!"

이렇게 말해도 그때 가면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를 나연석이다. 고개를 저은 진호는 걸음을 옮겼다.

공연이 끝났으니, 이제 다음 도시로 움직여야 했다.

* * *

아쉬워 하는 박준연을 공항에서 떠나보낸 진호와 김대원, 나이열은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게스트가 합류하며 이 힐링 뮤직여행을 더 즐겁고 풍성하게 만들었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SNS에 올린 영상의 조회수가 빈 소년 합창단과의 공연 영상을 기점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횡단 열차에서 찍어 올린 공연 영상의 조회수가 가장 적었는데, 그조차도 오백만을 돌파했다.

지니어스가 드디어 진호의 목소리를 캐치해 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작진은 뒤집어졌고, 진호와 일행들은 그 모습을 고소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아주 십 년 묵은 체증이 그대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이후 진호와 김대원, 나이열은 럭셔리 여행이 뭔지를 보여 주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제작진은 울상이 되어 갔다.

"으아아아아아!"

김대원이 하얀 건물들로 가득한 동네를 보며 함성을 질렀다.

진호와 나이열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최종 목적지인 그리스의 산토리니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었다.

세 명이서, 무사히 말이다.

진호는 그제야 어깨에 올려놓았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아아."

"오케이, 컷-!"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뒤풀이 촬영이 남아 있지만, 사람들은 별 탈 없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기념으로 서로를 향해 인사를 했다.

"수고했어."

나연석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피디님도요."

"……어후. 어찌어찌 오긴 했지만, 정말 힘들었다. 그치?"

"피디님이 영상 제목만 제대로 지었어도 더 쉽게 왔을 거예요."

"그래선 재미없잖아."

'에라이.'

이걸 진심으로 말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사랑하는 거 알지?"

'암튼 눈치는 빨라요.'

진호는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피식 웃은 나연석은 스태프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자, 카메라 1팀은 산토리니 영상 따고! 2팀은……."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나연석을 일견한 진호는 산토리니 앞에 펼쳐진 푸르른 바다를 보며 푸근히 웃었다.

"좋네……."

이 풍경을 보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달려왔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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