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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78화 (178/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3화

부우우웅!

한 대의 승합차가 드넓은 벌판 위에 놓인 고속도로를 달렸다. 저물어가는 태양이 만드는 황혼이 봄의 생기로 가득한 벌판을 물들였지만, 운전자를 제외하면 차 안에 있는 그 누구도 그걸 보지 못하고 있었다.

"드르렁, 피유……."

"크르렁!"

운전대를 잡은 진호는 피식 웃었다.

'피곤할 만하지.'

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17일 째다.

웬만한 20대라도 버티지 못할 강행군이었다.

진호 자신도 [스킬 :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와 다른 육체 관련 스킬, 그리고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이 없었다면 김대원과 나이열처럼 퍼져 버렸을지도 몰랐다.

진호는 옆을 보았다.

보조석에 앉은 박준연이 감기려는 눈꺼풀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에휴.'

그렇지 않아도 빡빡했던 예산이 더 줄어들었지만, 밉지는 않았다. 박준연이 의도적으로 식사량을 줄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먹방 예능 촬영 때만 많이 먹는다'라고 말했지만, 눈치를 보며 안 먹는 게 훤히 보였다.

그래서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나연석이 더 얄미웠다.

조회수 당 2원만 줬어도 이렇게 까지 쪼들리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나연석은 미션 같은 걸로 조회수당 정산액수 비율 상승이라든지 상금 같은 걸 절대 상품으로 걸지 않았다.

여태까지 한 미션 중 가장 큰 상품은 체코 프라하에서 유명한 식당의 무제한 식사권이었다. 나연석은 항상 돈이 아니라 식사권 같은 것만 상품으로 걸었다.

'식사권도 도시 두 개 당 한 번 씩.'

그 외에는 안 그래도 없는 예산을 어떻게든 소비시키려고 수를 썼다. 유료 입장을 해야 하는 랜드 마크에 양해를 구했다며 어떻게든 끌고 들어가려는 등의 얄미운 수법들을 썼다.

그런 건 구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로 받아치면서 되려 나연석을 곤경에 빠트렸지만 말이다.

아주 방심을 할 수가 없었다.

"주무세요."

"아, 아냐. 스읍! 미안."

"괜찮으니까 주무세요."

"보조석에 앉았는데 그럴 수는 없지."

박준연이 그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짓자 진호도 웃고 말았다.

"진호 넌 안 피곤해? 계속 운전 했잖아. 좀 있다가 바꿔줄까?"

"괜찮아요. 전 20대잖아요."

박준연의 얼굴에 부러움이란 감정이 생겨났다.

"하지만, 요리 솜씨는 20대가 아니잖아. 아이구, 그냥."

박준연은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나연석이 연출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언제나 출연자들이 배고픔에 허덕이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우려라는 듯 입이 호강했다. 제작진의 미션을 통과한 상품으로 간 식당의 요리를 그대로 베껴 내는, 정확히는 그 나라의 맛을 그대로 표현하다 못 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는 진호의 요리 솜씨 때문이었다.

"흐흐흐,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르시죠?"

"그러게."

참 많은 뜻이 들어간 말이었다.

"그래도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여행해 보겠어? 어후, 풍경 좋다. 나중에 아내랑 같이 오고 싶네. 물론 힘들겠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개그맨 중 한 명으로서 일 년 삼백육십오일이 바쁜 박준연이다. 여행 같은 사치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그러게요. 저도 나중에 부모님과 함께 오고 싶네요."

"여자 친구가 아니라?"

"여자 친구가 있는지부터 물어보시면 안 될까요."

"없어?"

박준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 없어요……."

띵! 띵! 띵!

"음? ……기름 넣어야겠네."

난처해졌다.

이곳은 조금만 가면 주유소나 스케줄이 나오는 한국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어? 주유소다."

진호는 재빨리 주유소 안으로 들어갔다.

좌륵 차가 서자 뒷좌석에서 꿀잠을 자던 김대원과 나이열이 일어났다.

"어우, 벌써 도착했어?"

"주유소예요. 화장실들 다녀오세요. 음료수는 하나씩만 드시고요."

차에서 내린 진호는 무인 주유기를 통해 기름을 넣으며 기지개를 켰다. 다른 사람들도 어기적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뒤이 어제작진이 탄 차량들이 주유소 겸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어그그!"

"어후우!"

진호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호 자신을 비롯한 출연진들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바로 제작진이었다.

그들 중 카메라 스태프 몇 명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호를 찍기 시작했다.

"어우, 죽겠다."

눈에 피로가 가득한 나연석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다가왔다.

"다른 분들은?"

"화장실 가셨어요. 괜찮으세요?"

"안 괜찮지. 그래도 사고 같은 게 없으니까 심적으로는 편해."

"사고요?"

"있어, 사람이 터트리는 사고."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진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연석이 싱긋 웃었다.

"어떻게 할 거야? 빈으로 바로 갈 거야?"

오스트리아의 빈.

다음 목적지이자 박준연을 떠나 보내는 곳이다.

"그래야겠죠."

빈에 가기 전 쉬고 싶어도 예산이 없다.

한 계정으로 올라가는 영상의 편수가 많아지자, 조회수도 덩달아 오르며 소문이 더 퍼지고 있지만, 아직은 여유를 부릴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도 댓글들을 읽어 보면 제목이 안티라고 말할 만큼 호평을 받고 있었다. 박준연도 뛰어난 성량과 감성으로 호평을 받았다.

박준연이 노래하는 80년대 90년 대 대중 가요와 가곡은 그가 왜 성악가나 가수가 아닌 건지 의심을 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 정도로 실력이 좋지 않았다면 원래대로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자 마자 헤어졌을 거야.'

나연석은 출연자들 간의 케미가 좋다고 해서 출연 분량을 더 줄 만큼 무른 PD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의심을 하기 시작했어.'

공연 영상을 보는 네티즌들을 말하는 것이다.

넷 모두 보이스가 독특했지만, 김대원은 그중에서도 압도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영상을 본 사람들이 김대원이 아니냐고, 인천공항에서의 촬영처럼 나연석이 찍는 예능이 아니냐고 의심을 하고 있었다.

'지니어스는 말할 것도 없지.'

진호 자신의 보이스를 찾아낸 지니어스가 영상의 댓글지분을 슬금 슬금 높여 가고 있었다.

이제 조회수가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봐야 했다.

그 시간도 이젠 8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말이다.

'준연 삼촌에게는 좀 미안하네.'

여유를 누릴 때 함께하고 싶지만, 박준연은 이제 곧 떠난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 반응도….'

어쩌면 박준연은 예산만 축내다 떠났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마.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지마."

"……아니, 피디가 왜 좋은 그림을 만들지 않으려는 거예요?"

"네가 그냥 그림만 만들면 괜찮지. 아니, 좋지. 하지만 넌 꼭 대형 사고를 치잖아."

"제가 언제……."

억울함을 역설하던 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참 사고를 많이 쳤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삐쳤다는 듯 입술을 내민 진호는 고개를 돌리며 눈을 빛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수많은 음악가들이 활동한, 또 활동하고 있는 나라였다.

* * *

숙소는 이번에도 에어비앤비로 구했다.

디링. 디리링.

기다란 소파에 누워 봄날 아침의 쏟아지는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타 줄을 훑던 김대원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젯밤 미리 한 송별회로 인해 얼굴이 퉁퉁 부은 박준연은 일인용 소파에 앉아 부엌을 응시하고 있었고, 나이열은 개운한 얼굴로 화장실을 나오며 수건으로 젖은 머리칼을 털었다.

"식사하세요."

후다닥 가장 먼저 일어난 박준연이 음식이 담긴 접시를 식탁으로 옮겼고, 김대원과 나이열도 재빨리 다가왔다.

그들은 오늘도 입안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리를 먹으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진호야, 지금 우리 예산 얼마나 남았어?"

"지갑에는 5유로요."

"뭐?"

"헉!"

사람들은 놀랐고, 박준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체코 브르노에서 찍어 올린 영상 조회수와 이전 조회수까지 합하면 아마 2백 유로 정도 나올 거 예요."

"오, 여유 있네…… 아니지?"

나이열은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와, 나 방금 2백 유로가 엄청 큰돈처럼 느껴졌어. 빈곤하게 사니까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2백 유로면 한화로 약 26만 원. 해외에서 남자 네 명이 쓰기에는 너무도 작은 돈이었다. 장정 네 명이 좋은 식당에서 두 끼 먹으면 사라질 돈. 사람들도 씁쓸히 웃었다.

"그래도 조회수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졌네."

김대원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연 삼촌이 합류해 주신 덕분이죠."

"……어휴, 그러지마. 나 진짜인 줄 알아."

박준연의 너스레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는 단숨에 밝아졌고, 사람들은 즐겁게 포크를 들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빈을 구경한 후 박준연과 함께하는 마지막 길 거리 공연을 준비했다.

"이래서 유럽이 좋아. 사람들이 참 여유가 있어."

작은 공원, 평일임에도 편한 옷차림으로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길거리 예술가들의 공연을 구경하거나 따뜻한 햇살에 미소를 지으며 산책을 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부터 쭉 봐 온 조용하면서도 따뜻한 광경.

"대신 불편하지. 인터넷도 느리고, 편의점도 찾기 힘들고."

"그건 인정. 살기는 한국이 제일 좋아."

"한국만큼 배달 문화가 발달한 곳도 없죠. 푸하하!"

"준연이 넌 역시 음식이구나……."

"지금 배달 음식 무시합니까! 자기들은 배달 음식 한번 안 시켜 먹어 본 것처럼 말하네! 누굴 진짜 돼지로 아나!"

진호는 이상한 곳에서 불붙은 세 명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일행이 아닌 척 두 발 앞 서 걸었다.

'사람들이 많네.'

촬영 준비를 하는 모습이 신기한 건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주고 있었다. 한국인도 몇 명 보였다.

"……역시 예술의 도시답네요."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뿐만 아니라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등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를 든 연주가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그러게…… 뭐야 이건."

한국대 작곡과를 전공하며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은 나이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귀에 들리는 소리 모두 제법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공연하는 젊은 청년의 경쾌한 전자 바이올린 연주도 꽤 수준급이었다.

대학생 수준은 넘어섰다고 말할 수 있는 실력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런 청년도 사람들의 발길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 오늘 쉽지 않을 것 같네."

이래서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것 같았다.

"나 피디, 너 일부러 이런 곳 골랐지!"

"저도 몰랐습니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나연석이 사색이 되었다.

김대원과 박준연, 제작진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하지만, 진호는 아니었다.

"흐음."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진호는 옅게 웃었다.

"쉽지 않을 것 같으면, 쉽게 되도록 만들면 되죠."

"응?"

씩 웃은 진호는 카메라 앞에 놓인 악기들 중 전자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모드를 바꾼 후 건반에 손을 얹었다.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 클래식의 도시다.

그렇다면 클래식을 연주해 주는 게 맞았다.

"일단 여기 사람들에게 익숙한 클래식으로 귀와 발을 붙잡도록 하죠."

"어?"

깜짝 놀랐던 사람들은 이내 환하게 웃었다.

그랬다. 진호는 기타와 노래, 작곡 작사뿐만 아니라, 유키 구라모토가 인정할 만큼 천재적으로 피아노를 잘 치는 피아니스트다. 그들은 재빨리 다른 악기들 앞에 앉았고, 진호는 건반을 눌렀다.

* * *

마른 몸매의 노인이 공원에 울려 퍼지는 연주 소리들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여긴 언제와도 좋은 소리만 나는군."

"시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곳 중 하나잖습니까."

"저 아름다운 천사들을 위해서?"

뒤를 돌아본 노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10대 초반, 그리고 그보다 어린 십여 명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놀라 '빈 합창단?'이란 말을 했다.

"특별한 천사들이죠."

미성을 지닌 안경을 쓴 20대의 청년이 따뜻하게 웃었다.

"모든 것이 특별하지. 그렇기에 잔혹하고."

저렇게 어린아이들이 기숙 생활을 명목으로 갇혀 지내야 한다는 게 노인으로서는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런 외출도 한 달에 단 한 번, 그것도 이런 곳만을 수 있어서 더 안타까웠다.

"……그래도 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힘들었지만, 웃을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었으니까요."

"아, 미안하구나. 너를 생각 못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해. 오직 클래식만 연주 할 수 있는 공원이라니."

"쿡쿡. 그렇기는 하지만, 지키지는 않잖아요. 법으로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보세요. 저기에선 팝을 연주하잖아요. 저 아이들은 관심없지만."

"흥. 그 의도가 불순…… 음?"

노인이 한 곳을 보았다.

청년도 마찬가지였고, 정신없이 구경하던 십여 명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노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음에 닮긴 소리가 이렇게 젊은데도 귀를 붙들다니……."

"천재네요. 피아노 선생님들도 이 정도는 아닌데……."

"확실히 그렇구나."

천사의 목소리라 부르는 합창단 아이들의 음악적 소양을 길러 주기 위해 초청하는 피아니스트들.

'그들이 아무리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아니라고 해도…….'

노인은 툭툭 당겨지는 소매에 고개를 돌렸다.

한 소년이 수줍게 말했다.

"저 연주 가까이서 들어도 될까요?"

남자아이라기 보다는 여자아이에 가까운 미성.

노인은 이쪽을 간절히 쳐다보는 소년들의 모습에 크게 웃고 말았다.

"그래. 보러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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