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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75화 (175/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25화

공연은 장소부터 문제가 되었다. 주말이 아닌 평일, 그것도 낮 시간대였다. 서울 어디를 가도 공연을 관람할 만큼 여유로운 사람들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음, 어디서 하지."

"으음."

진호는 나연석을 보았다.

"공항에서 공연할 수 있어요?"

나연석과 제작진, 출연자들은 경악했다.

"며, 명동이나 홍대에서 안 하고?"

"괜히 교통비 낭비할 필요 없잖아요. 공연이 끝나자마자 힐링 여행 스타트 외칠 거면서."

"……."

사람들이 입을 꾹 다무는 나연석과 작가들을 보며 질겁했다.

아주 악마들이 따로 없었다.

"워후!"

"크크, 잘한다!"

두 출연자의 응원에 진호는 가슴을 쭉 폈다.

"에휴, 잠시만요."

제작진은 다시 회의를 가졌다. 어차피 공항 내부를 촬영하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공연을 벌인다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아니, 그런 건 또 어떻게 생각 한 거야? 그보다 인천 공항에서 공연도 할 수 있어?"

"네. 상시로 공연 할 수 있는 작은 무대가 있어요."

"그렇구나…… 난 그렇게 많이 이용했는데 왜 몰랐지?"

"좀 숨겨져 있어서요. 그리고……."

진호는 김대원과 나이열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공항에는 외화 가진 분들이 많잖아요. 이를테면 달러라든지?"

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리고 곧 혀를 내둘렀다.

"너 진짜 대단하구나?"

"허허, 거참."

둘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고,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곧 나연석이 다가왔다.

"정말 인천 공항에서 공연할 거 예요?"

서로를 본 진호, 김대원, 나이열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연석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조금만 더 쉬세요. 허가 맡아야 하니까."

잠시 후, 그들은 인천 공항으로 이동했다.

* * *

드르륵!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가던 한 남성이 돌연 멈춰 서며 기지개를 켰다.

"이게 해외여행이구나. 흐흐흐."

다시 목포로 내려가야 하지만, 웃음만 나왔다.

35살이라는 나이에서 처음 다녀 온 해외여행.

힐링 그 자체였다.

숙소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도, 낯선 땅의 랜드 마크를 찾아 다니는 것도, 의외로 입에 맞았던 이국 음식도, 모두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 주었다.

"다 쓰고 올걸."

남성은 제법 많이 남은 유로를 만지작거리며 아쉬워했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입국 게이트에서 헤어진 것도 아쉬웠다. 한숨을 내쉰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반사적으로 따라 부른 남성은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도 목포에 사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면 부르는 애창곡이다. 남성은 다시 멈춘 채 노래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아, 저기서 김대원이 노래 부…….'

"뭐? 김대원? 헉! 나이열! 흐억!"

남성은 작은 무대에서서 마이크를 쥐고 있는 김대원을 보곤 경악 했다. 커다란 방송용 카메라도 있었다.

'저 통기타 잡은 키 큰 남자는 세션인가?'

김대원이 다가오라는 듯 손짓을 하자 남성은 다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야, 너희들 어디야? 아니, 그냥 튀어 와. 김대원이 공항에서 공연한다. 나, 나연석도 있어! 안 볼 거면 말고!"

전화를 끊은 남성은 얼른 무대로 다가갔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멍해 있는 사람들 삼십여 명이 무대 앞에 모여 있었다. 소문을 들은 건지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 환호성을 질렸다.

-안녕하세요!

"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인사. 남성도 크게 외쳤다.

만족스런 여행을 방금 마치고 돌아왔는데, 이런 선물까지 생겼다. 김대원은 남성들에게는 인생 가수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였다.

-저희가 오늘부터 여행을 떠납니다. 러시아에서부터 시작해 그리스 까지 가는 힐링 뮤직 여행이죠.

"오오오!"

"좋겠다!"

-그런데 저희를 촬영하는 사람이 저기 나연석 피디입니다.

"아……."

사람들의 머릿속에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네. 예상하셨다시피 무전 여행입니다. 러시아에 가야 하는데, 이렇게 공연해서 번 돈으로 가라고 합니다. 비행기 표를 자비로 끊으라는 거죠.

남성도 혀를 내둘렀다.

"역시 나연석…… 사악해. 사람인가?"

활짝 열린 채 김대원 발치에 놓인 기타 케이스가 그 때문인가 싶었다.

-다행히 저희가 이렇게 공연한 영상을 SNS에 올릴 수 있고, 조회수당 1 원을 준다고 하는데……. 하아, 1원.

"사탄이냐!"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김대원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다음 곡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여기 저희와 함께 떠나는 젊은 뮤지션이 부를 겁니다. 실력은 여러분이 듣고 평가해 주세요.

뒤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있던 사내, 진호가 앞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고맙게도 환호를 해 주었다.

의자에 앉은 진호가 입을 열었다.

-와, 30대 남성분들이 많네요.

'오. 목소리 좋다.'

-내가 이 노래 안다 싶으면 같이 불러 주세요.

디리링!

서글픈 기타 소리가 울리자 '오, 제법'이라고 생각했던 남성은 통기타 소리의 뒤를 잇는 피아노 선율에 깜짝 놀랐다.

30대, 40대 남성이라면 모를 수 없는 곡이었다.

'어? 어?'

이윽고 진호의 입이 열렸다.

-이대로…….

순간 슬픔과 미련이 심장을 강타 했다.

첫 구절에서 게임이 끝나 버렸다.

피곤한 몸 때문에 감성이 예민해져선지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곡은 곧 절정으로 향해 갔다.

-천년이 가도-!

시원하다 못해소름이 끼칠 만큼 매끄럽고 파워풀하게 올라가는 고음.

"……미쳤다."

남성은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꺼내었다.

인터넷 방송 시청 5년.

좋은 노래를 들을 때 지갑을 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

무려 3시간의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대부분 흩어졌다.

퍽!

진호와 김대원, 나이열은 기타 케이스 안에 수북하게 쌓인 돈을 노려보며 서로 주먹을 부딪쳤다. 어두운 낯빛을 한 채 발을 동동 구르는 나연석과 제작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단 배 좀 채우면서 표부터 끊죠. 인터넷으로 끊는 게 훨씬 싸요."

"메뉴가 뭐야?"

나이열이 기대 가득한 눈으로 귀엽게 물어 오자 진호는 공항 내 편의점을 가리켰다.

"왜!"

"기내식 먹어야죠."

"……굿, 내가 사 올게."

"아뇨, 제가!"

"아냐. 이렇게 번 게 누구 때문인데. 돈이나 세고 있어."

나이열이 지갑을 든 채 달려갔고, 진호와 김대원은 기타 케이스 안에 있는 돈을 정리했다.

유로, 달러 등등 사람들은 여행에서 쓰고 남은, 또 여행에서 쓸 돈을 아낌없이 주었다.

"이 돈이면 횡단 열차 티켓 값도 되겠는데요?"

첫 여행지는 블라디보스토크.

그곳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간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러시아를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여기까지 총 10일이 소요될 예정이다.

총 촬영 기간 25일 중 절반 가까이 러시아에서 소모되는 것이다.

"그, 그 정도야?"

"3등석을 탄다면, 러시아 전통 음식도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워후."

간단한 먹거리를 사 온 나이열도 진호의 말을 듣더니 환하게 웃었다. 이후 셋은 바쁘게 움직였다. 비행기 예약도 하고,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새벽 비행기를 골랐다.

공항의 편의 시설에서 편하게 쉰 그들은 러시아로 향했다.

그사이 나이열의 계정에 올라간 공연 영상은 조회수를 빠르게 늘려 갔다.

* * *

"러시아!"

"러시아여! 내가 왔도다! 으하하하하!"

진호는 공항을 나서자마자 양팔을 번쩍 들며 외치는 김대원과 나이열을 슬그미니 외면했다.

하지만 결국 걸려서 함께 만세를 불러야 했다.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돈은 어떻게 할 거야?"

나연석이 묻자 이번 여행에서 총무를 맡게 된 진호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킵이요."

"응? 정산 안 하려고?"

"일단 가진 돈 다 쓰고 나서 정산 받을 게요."

"……쳇."

나연석은 못마땅해하며 물러났다.

영상 조회수가 너무 높다 보니 한꺼번에 정산했을 때, 목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보인다, 보여. 시꺼먼 속이 보여.'

순순히 물러나는 나연석을 보며 콧잔등을 씰룩인 진호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버벅거리는 모습을 얼른 보고 싶다는 거겠지?'

"움직이시죠."

"어, 그래!"

"오케이! 그런데 우리 몇 번 타야 해?"

진호는 바로 제복을 입은 노년의 러시아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오. 안녕하시오."

러시아 노인은 카메라가 있어도 놀라지 않고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저희가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에 가야 하는데, 혹시 몇 번이 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진호의 뒤를 졸졸 쫓아 온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러시아 노인도 깜짝 놀랐다.

"러시아에서 살았소?"

너무도 유창한 러시아어였다. 나연석은 질겁했다.

'아니, 쟤는 왜 러시아어도 잘 해?'

출연자 세 명의 당황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나연석은 잔뜩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쟤는 대체 몇 개 국어를 할 줄 아는 거야?'

진호는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돈을 아껴야 하는 여행이다 보니 관광객임을 드러냈다가는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킬 : 셜록의 후예]를 통해 파악한 노인의 반응을 보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될 테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았다.

"크렘린 궁을 보며 자랐어요."

"하하, 그랬군. 이 많은 인원이 갈 거라면 버스보다는 저기 승합차를 나눠 타는 게 이득이오. 흥정만 하면 싸게 갈 수 있거든."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아,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진호는 그의 손에 초콜릿을 쥐여 주었다.

"뭘 이런 걸.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빌겠소."

"감기 걸리지 마세요."

"하하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린 진호는 방금 노인에게 들은 정보를 알려 주었다. 사람들은 감탄했고, 나연석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진호야, 너 할 줄 아는 외국어가 몇 개야?"

"글쎄요…… 이젠 저도 잘……."

"많다는 소리구나."

"네."

일일이 세기가 귀찮을 정도로 많았다.

"역시 한국대! 내 후배!"

"너무 학연 따지지 맙시다. 이거 전문대도 제대로 안 나온 사람 서러워 살겠나."

"미안하지만, 어쩌겠니. 이게 현실인데."

"……아오! 엄마, 날 왜 이 형보다 일 년 늦게 낳았어!"

"대원이 어머님! 대원이를 저보다 일 년 늦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진짜!"

아저씨들의 유치한 말다툼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바탕 웃은 그들은 러시아 노인이 알려 준 미니 밴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기차역으로 향했다. 예약한 표를 끊은 그들은 기차역 근처에서 러시아 전통 음식인 '샤슬릭'과 맥주로 배를 채우고는 기차 안에서 먹을 음식들을 산 채 기차에 올랐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첫 여행지이기는 하지만, 공연은 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여행을 기분 좋게 시작 하라는 제작진의 배려였다.

대신 기차 안에서 공연 아닌 공연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와우."

"흠, 여긴가? 좀 좁네."

6명이 같이 써야 하는 3등석. 진호는 길게 늘어진 복도와 와글와글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앞으로 6박 7일!'

이 좁은 기차 안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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