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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71화 (171/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21화

부스럭.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자 제니퍼 로제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몇 시야?"

"아침 9시."

"난 좀 더 잘게. 누가 어제 너무 괴롭혀서 피곤해."

"그래. 1시, 시사회 때 보자."

제니퍼 로제는 눈을 번쩍 떴다.

근육질로 꽉 찬 진호의 상체가 그녀의 눈에 투영되었다.

"가려는 거야?"

"부모님이 더 걱정하시기 전에 안심시켜 드려야지."

'이미 오해는 할 만큼 하셨겠지만.'

제니퍼 로제와의 길거리 데이트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 위에 랭크되었다.

제니퍼 로제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아직도 독립을 못한 거야?"

"안 한 거야. 내가 독립해 버리면, 두 분이 너무 쓸쓸해 하시거든."

"……역시 자상해."

만약 진호가 일반적인 남자였다면, 다르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빠지지는 말고."

"흐응, 뭐, 그래. Bye, bye."

'거봐.'

제니퍼 로제도 진호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다.

아마 지금 당장 이별을 고해도 그녀는 쿨하게 '그래. 이제부터 우린 친구야.'라고 말할 것이다.

습득한 스킬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흔히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고 한다.

SNS와 메일, 문자, 통화, 전화가 그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두 시간 일찍 일어나서 얼굴 붓기 빼고. 예쁘게 보여야지."

"여자라서?"

"배우라서."

"쳇, 내 매니저와 똑같은 소리 해."

"큭큭큭, 좀 있다 가 봐."

문을 열고 나가자 월터와 제니퍼 로제의 매니저가 대기하고 있었다. 월터는 깨어나자마자 문자를 보내서 그렇다고 치지만, 그녀의 매니저는 예상 밖이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잠자리가 바뀌면 잘못 자거든요. 로제는요?"

"11시에 깨우면 될 거예요."

"……하암, 그럼 난 다시 자야겠네요. 아, 당신 노래 들었어요. 한국에도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보이스가 있을 줄 몰랐어요."

"찾아보면 많아요. 영어가 한국인의 감성을 다 담아내지 못할 뿐이지."

"그건 맞는 말이죠. 그 나라의 감성은 그 나라의 언어만이 담아낼 수 있으니까요. 빌보드에 도전할 생각이 있으면 제게 연락해 주세요. 커미션 좀 챙기게. 유부남이다 보니 돈 들어갈 곳이 많네요."

"하하, 네."

다시 하품을 한 그는 몸을 돌렸고, 진호는 역시 쿨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지노는 남자가 맞았군."

음흉한 미소를 짓는 월터에 진호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계단으로 향했다.

이제 아무도 모르게 호텔을 빠져 나가는 일만 남았다.

오늘 새벽에 들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는 네 명이었지만, 지금은 둘 뿐이었다.

탈출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 어떤 시선도, CCTV도 진호의 감각을 피할 순 없었다.

* * *

어머니는 의외로 별말을 안 하셨다.

대신 음흉하고도 대견해 하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진호는 그게 더 신경 쓰였다. 그리고 다시 열애설이 불거졌다. 파리에서 제니퍼 로제와 만난 이후 두 번째 열애설이었다.

"역시 전처럼 온갖 망상이 들어 간 소설 같은 기사는 쓰지 못하네."

툭 핸드폰을 내려놓은 진호는 입술을 비틀었다.

열애설에 관련된 모든 기사가 팩트만 나열하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데이트를 즐겼는 지만 써 놓았다.

귓속말을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같은 것에는 과연 무슨 말을 하는 지 궁금하다는 사족만 달았을 뿐, 추측성 내용은 단 한 단어도 들어 있지 않다.

그 클린한 기사 내용에 대중들은 놀라워하면서도 이게 기사라며 칭찬했다.

다미앙이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허위로 밝혀지면, 감당해야 할 돈이 어마어마하니까요."

1위 가수가 되면서 몸값이 다시 한번 상승했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기획부 직원이 들어 왔다.

"PJY 박 대표님 전화입니다."

"……호?"

진호는 받으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다미앙은 소파 앞 커피 테이블에 놓여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네. 다미앙 토마소입니다."

진호는 다미앙이 통화를 시작하자 다리를 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통화는 의외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긍정적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곧 날짜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달칵.

다미앙이 전화를 끊자 진호는 다시 입꼬리를 비틀었다.

"뭐라던가요?"

"계약을 맺자는군요."

"그것참…… 타이밍이 참 공교롭네요."

제니퍼 로제와 열애설이 터지자 마자 연락을 해 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박 대표는 아직도 빌보드를 포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욕심은 부리지 말지……."

진호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 쉬었다.

제니퍼 로제와 진호 자신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대중이 생각하는 관계와 다르다.

우리나라 연예인이 미국에 가서 미국 스타들과 사진을 찍으며 친분을 과시하는 일방적인 허세 같은 관계가 아니라 진짜 친구였다. 거기다 제니퍼 로제는 명실상부 할리우드 여성 배우 수익 1위. 그녀가 소유한 인맥은 박 대표가 여태껏 미국에 쌓은 인맥보다 더 넓을 것이다.

아니, 훨씬 넓고 알차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표가 이렇게 여유를 가장한 초조함을 드러낸 것일 터였다.

후룩.

"3대 기획사 중 PJY의 직원 대우가 가장 짜다고 했나요?"

차디찬 말에 다미앙도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짠 정도가 아니죠."

PJY의 직원 대우는 연예계에서 박하기로 유명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 봐도 나온다.

그렇기에 장경아 실장 같은 인재가 넘어온 것이 아닌가.

"알짜배기들만 스카우트해 주세요. 어차피 이번 프로젝트 때문이라도 직원을 더 늘려야 하잖아요. 한 스무 명?"

"흠, 그 정도면 아슬아슬하겠군요."

각기 중국과 일본에 파견하려면 그 숫자도 적다고 할 수 있었다.

"PJY도 직원은 있어야죠."

"풋, 알겠습니다. 설계해 보겠습니다. 그래도 파트너인 PJY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직원들 스스로가 간절히 이직을 바라도록 말입니다."

"그럼 전 이만 일어날게요."

제니퍼 로제의 시사회에 가야 할 시간이다.

"아, 오늘도 외박하십니까?"

진호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사무실을 나갔다.

'아마 오늘은 외박 안 할 거예요. 그랬다간 상견례 날짜를 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머니 나진희의 추진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 * *

영화는 왜 할리우드고, 제니퍼 로제가 왜 할리우드 여배우 수익 1 위인지 알게 했다.

쏟아지는 총탄과 포탄 속에서 피어나는 끈끈하고 전우애와 그녀의 처절하기까지 한 연기는 영화를 보내는 내내 감탄만 나오게 했다.

짝짝짝짝짝!

영화가 끝나자 진호는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박수를 쳤다.

다른 관객들, 기자들, 평론가들도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윽고 제니퍼 로제는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수많은 나라 중 한국을 처음으로 오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음……."

고개를 돌리던 그녀가 진호를 보았다.

"제 귀여운 동생이 있는 나라라서? 지노, 내 영화 어땠어?"

사람들의 시선이 진호에게로 향했다.

"휘익!"

"꺄악!"

흥분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하하, 농담이고요. 세계 영화 시장에서 한국의 티켓 파워는……."

그녀의 인터뷰는 짧게 끝났다.

진호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제 안심돼?"

그녀의 미소는 안심한 사람의 그것이었다.

진호가 내민 꽃다발을 받아든 그녀가 씁쓸히 웃었다.

"솔직히 반반이었거든."

미국내에서도 개봉하기 전까지 말이 많았다.

데비 무어의 지 아이 제인이 그 만큼 뛰어났던 탓이다.

개봉 후에도 호불호가 갈렸다.

"넌 어땠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

"응?"

진호는 방금 전까지 영화가 투영된 스크린을 보았다.

"거대한 자본에서 나오는 강렬한 임팩트……."

배우의 시선으로서 본 할리우드 영화는 피를 끓게 만들었다.

배우가 하고 싶은 연기를 돈으로 서포트하고 있었다.

돈질의 급수가 달랐다. 한국 영화의 제작비가 이젠 기본 100억이 됐다지만, 그래도 할리우드에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 자본과 자신의 스킬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가 궁금 해졌다.

"그리고 배우라면 누구든 할리우드를 꿈꿀 수밖에 없잖아."

진호의 눈을 본 제니퍼 로제는 배시시 웃었다.

"이런, 할리우드에 매료된 바보가 여기 또 생겼네."

"그 바보가 여기 미모의 신이라면 난 투자자들을 설득시키겠습니다."

선한 인상의 후덕한 거구 중년인이 다가와 손을 내밀자 진호는 그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조나단 파블로입니다."

"이진호입니다, 감독님. 아메리칸 셰프를 보고 찾아가 요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내분에게도 그렇게 요리를 해 주는지도 궁금했고요."

조나단 파블로.

전 세계가 아는 영화 아이언 맨의 감독이자 배우. 마블 히어로 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다.

지 아이 제인 : 리메이크의 메가폰을 잡은 그는 어제 저녁 늦게 한국에 도착했다.

상영관 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이 둘의 만남에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오! LVMH의 뮤즈,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경호원 제이가 요리에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The J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미국에도 방영되었다.

그 옛날의 영화 보디가드를 연상 시킨다는 평을 받을 만큼 젊은 층 사이에서 제법 인기를 끌었다.

"제가 욕심이 좀 많습니다."

"하하하하하."

진호도 마주 웃어 주었다.

조나단은 순간 발광하는 듯한 주변 분위기에 눈을 가늘게 떴다.

'외모가 정말 엄청나군.'

절로 시선을 뺏어 버리는 외모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인이라는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되어 버리는 몽환적인 외모. 아니 정말 동양인인지, 사람인지 의심이 가는 외모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뷰파인더 안에 담고 싶지만, 문제는 인종차별이 심한 할리우드의 기조였다.

'아쉬워. 그의 필모그래피만 풍부 했다면…… 아니 어필할 만한 작품이 몇 개만 더 있다면…….'

The J 하나만으로는 콧대 높은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출연 씬이 많지 않은 더 씨프는 애초에 논외였다.

"그렇게 뜨겁게 쳐다보시면 전 오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하하하하!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제 섭외를 거절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요."

그는 다시 손을 내밀었고, 진호도 그 손을 다시 잡았다.

"할리우드가 저를 전용기로 픽업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 기대하죠. 그럼 이 눈치 없는 사람은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진호의 어깨를 툭툭 친 조나단은 자리를 떴고, 진호는 흥분한 제니퍼 로제를 보았다.

"넌 정말……."

조나단 파블로는 전 세계가 인정 하는 최고의 감독 중 하나다.

그런데도 진호는 너무 당당했다.

"한국 감독이나 할리우드 감독이나 감독이라는 건 똑같잖아. 존경 할지라도 비굴해지는 건 내 성격이 아니야."

……피식.

"그게 네 매력이긴 하지. 오늘 어떻게 할 거야? 난 인터뷰 두 개 빼고는 프리야."

"손님인 네가 한국의 뭘 보고 싶냐에 따라 동선이 달라지겠지?"

"……클럽?"

"그렇게 클럽만 밝히면 피부 뒤집어진다. 주름도 늘어. 이제 그럴 나이잖아?"

"야!"

제니퍼 로제가 손을 들자 진호는 재빨리 도망쳤다.

그녀는 정말 죽일 듯 진호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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