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17 화
6. 생태계 교란종
대한민국 3대 기획사 중 하나라 불리는 PJY의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다.
"……."
30분에 3위는 시작에 불과했다.
PJY 박 대표는 정면의 스크린에 투영되는 음원 사이트 순위를 보며 미간을 꾹꾹 눌렀다.
이진호, 그 세 글자가 1위에 떡 하니 박혀 있다.
"이걸 믿어야 하는 건가."
음원 발매 일주일 만에 이 성적을 거뒀다면 이렇게 긴급 회의를 소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3일 만이었다면 경악했을망정 이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단 3시간이다.
진호는 단 3시간 만에 1위를 차지해 버렸다.
그뿐만 아니다. 음원 순위 1위부터 10위안에 진호의 앨범에 수록 된 곡이 5개나 있다.
11위부터 50위안에 나머지 9곡이 랭크되어 있다.
15곡 모두 랭크시켰다는 것이다.
그게 긴급 회의를 가지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였다.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기획 1팀의 실장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구매력을 갖춘 팬의 숫자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즉, 언젠가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니, 팬의 숫자가 48만 명이나 되는데 앨범을 내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 48만 명도 굿즈 하나는 사야만이 얻을 수 있는 계급, 브론즈 이상들만 집계한 숫자니까요."
"문제는 그게 겨우 한국 팬의 숫자일 뿐이라는 거죠."
사람들은 다시 침묵했다.
한국 중국 일본에 있는 진호의 팬을 합하면 150만 명이 넘는다.
"가장 큰 문제는……."
박 대표가 한숨을 내쉬며 검지로 스크린을 가리켰다.
"저 노래를 이진호가 작사 작곡 했다는 겁니다. 앨범에 수록된 15 곡 중 10곡을 작사 작곡 했답니다. 양진혁 대표가 말해 준 피셜입니다."
"……."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 1 위곡을 작사 작곡을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티스트입니다. 팬이 아니라면 음원이나 앨범은 쳐다보지도 않는 아이돌 비쥬얼 가수가 아니라 일반인도 앨범이나 음원을 구매하게 만드는 아티스트라는 말입니다. 그 얼굴, 그 연기력으로 아티스트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곧!"
쾅!
박 대표는 책상을 쳤다.
"트랜드라는 소리예요!"
연예계에 관심 있는 사람만 아는 이슈가 아니라 30대, 40대, 50대, 대한민국 국민이 아는 트랜드가 된다.
진호의 외모가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트랜드.
한 번 떴다 하면 주위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태풍이다.
휘몰아치는 기간 내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 버리는 태풍.
즉, 진호는 한 번 왔다가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라 매해 매계절 마다 찾아오는, 찾아올 자연재해가 되었다.
한번 생겼다 하면 숨을 죽이고 방안에 꽁꽁 틀어박혀야 하는 그런 자연재해.
가수들로 돈을 버는 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 그보다 끔찍한 소리는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할 겁니까? 막을 수는 있습니까?"
"……."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노래라도 별 볼 일 없으면 괜찮겠는데, 노래가 너무 좋다.
봄을 제대로 저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호를 비방하면, 오히려 진호를 띄워 주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진호의 뒤에는 JH가 있기 때문이다.
각 기획사에서 알짜배기였던 직원들도 진호를 서포트한다.
지독한 외통수였다.
"2집 징크스가 있습니다."
"장난해요?"
겨우 말을 꺼냈던 직원이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진호가 가수입니까? 노래 부르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1위곡을 만드는 작곡가예요. 작사가입니다."
현재 가장 무서운 점이 이 부분이다.
다른 가수에게도 1위곡을 줄 수 있다는 것.
물론 진호가 만든 곡이 언제나 뜬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열 곡 중 한 곡이라도 1 위를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건드리기 힘든 진호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애초부터 진호의 가요계 진출을 막았어야 했다.
프로젝트 L이 나왔을 때부터 어떻게든 찍어 눌렀어야 했다.
"마녀, 아니 장경아 실장과 연락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기획 1팀 실장의 말에 박 대표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숙이자는 겁니까?"
그냥 숙이는 게 아니다.
이런저런 기간만은 피해 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거다.
국내 3대 기획사 중 한 곳이 말이다.
아니, 국내 모든 기획사가 그렇게 매달려야 한다.
"그것 말고 방법이 있습니까?"
없다.
'빌어먹을.'
"……후, 내가 연락해 보죠."
한숨을 쉬는 건 비단 박 대표뿐 만이 아니었다.
다급히 긴급 회의를 소집한 모든 기획사들 대표의 입에서 한숨을 흘러나왔다.
* * *
아침부터 팀 이진호의 회사가 부산스럽다.
음악 방송 출연 때문이다.
"친구야!"
"꺼져."
"형님아!"
"누구세요?"
"어이구, 우리 진호 형 어깨가 왜 이렇게 뭉쳤어?"
진호는 어깨를 주무르는 친구 재준을 어이없다는 듯 보았다.
그러나 재준은 꿋꿋이 성심성의를 다하여 진호의 어깨를 주무를 뿐이었다.
"……아오, 이 진상. 알았다, 알았어. 방송국에 데려갈게. 됐지?"
"아싸, 걸 그룹! 사랑해, 형!"
"다리도 주물러."
"네! 어디요? 여기요?"
"그래, 거기. 어, 시원하다."
직원들은 아침부터 콩트를 하는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호는 자신에게 기초 화장을 시켜 주는 스타일리스트 최 실장을 보았다.
"원래 이렇게 일찍 가요?"
이제 아침 10시다.
녹화 시작은 오후 6시부터라고 했다.
"리허설을 해야 하니까."
"아, 그렇구나."
리허설,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다 됐다."
거울을 본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기초 화장만 하셨네요?"
"무대화장은 대기실 가서 해도 되니까. 아니, 그런 꼴로 돌아다니면 좋은 소리 못 들어."
"아, 조명."
듣기로 음악 방송 무대의 조명은 너무 밝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화장이 그렇게 진했던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가시죠."
HU에서 보내 준 벤, 차 내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대형 벤을 타고 방송국 공개홀 입구에 도착한 진호는 살짝 놀랐다.
"시상식이야?"
벤과 승합차들이 줄줄이 서 있다.
그리고 입구 안쪽엔 수많은 기자와 수많은 팬들이 서 있다.
꺄아악, 와아악!
타 가수의 팬들이 지르는 환호성에 귀가 아플 정도다.
"날도 추운데……."
여의도 곳곳에 벚꽃이 피며 완연한 봄을 알렸지만, 그래도 추운 날씨다.
기자들과 팬들을 보던 진호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암튼 말은 죽어라 안 듣지."
타 가수 팬들 사이에 지니어스가 있었다.
벤에 타 있던 사람들이 진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진호야, 음악 방송 관람은 선착순이야. 좌석 예약 프로그램 돌려서 좌석 모두를 차지하는 것보다는 낫거든."
"그래요?"
진호와 재준은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예약제로 바뀌었을 때 벌어질 상황들을 생각하면 선착순이 낫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정 대리님."
"그래, 알았어."
"……제가 뭘 부탁할 줄 알고요?"
"팬들에게 먹을 것 좀 가져다주라는 거잖아. 내가 널 몰라?"
진호는 슬그미니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차례가 됐다. 드르륵!
"꺄아아악! 빅스비 파이팅!"
"세진 오빠-!"
문을 열었던 진호는 재빨리 귀를 막았다.
스킬들 덕분에 귀가 한껏 예민해져서 고통마저 느낄 정도였다.
옆을 보니 재준도 귀를 막고 있었다.
"……후우. 저 어때요?"
"뭘 물어."
최실장을 비롯한 스타일리스트들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노래가 훈훈한 봄바람을 연상시키기에 드레스 코드를 캐주얼로 잡았는데, 외모가 되니 그냥 빛이 났다.
"암튼 팔불출이라니까."
"시끄럽고, 들어가기나 해."
"옙! 안에서 봬요."
진호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이었다.
'응? 뭐, 뭐지?'
조용했다.
환호성은 커녕 플래시조차 터지지 않았다.
뾰족한 환호성과 눈을 후려치는 카메라 플래시에 당황하는 등 못 난 모습은 보이지 않기로 각오를 했던 진호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나란 놈.'
마음속으로 콧대를 세운 진호는 기자들을 향해 슬쩍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진호입니다."
그건 모두를 얼어붙게 한 마법을 해제하는 단어였다.
촤라라라라라!
"진호 씨, 여기요!"
"여깁니다! 여기 좀 봐주십시오!"
"이진호 배우!"
'와우.'
눈이 시리도록 아픈 플래시 세례였다.
진호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모든 카메라를 한 번씩 응시했다. 그리고 환호성 대신 이쪽을 향해 엄지를 치켜드는 지니어스를 보며 눈웃음을 지어 주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이쯤이면 됐다 싶은 진호는 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
"진호 씨, 몇 장만 더요!"
"이진호 배우!"
기자들은 다급히 외쳤지만, 진호는 공개홀 안으로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순간 닭 쫓던 개가 된 기자들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워, 이건 뭐……."
"CG야, 뭐야?"
기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자신들이 찍은 모든 남자 아이돌 가수들이 오징어처럼 느껴졌다. 외모로 수만 십수만 수십만의 팬을 거느린 그런 남자 아이돌 가수들이 말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여자 아이돌 보다 아름다웠다.
"역시 배우는 수준이 다르네."
"그냥 배우야? 미남 배우 계보를 잇는 배우지? 아, 그놈들 부럽네."
그런 배우가 노래를 발매하다 못 해 음원 사이트 1위를 한 것도 모자라 작사 작곡까지 했다.
그것도 10곡이나 말이다. 당연히 연예계는 뒤집어졌고, 모든 언론에서 진호에게 인터뷰를 신청했다. 그러나 진호가 인터뷰를 한 곳은 스포츠 매일이라는 신문사 하나뿐이었다. 언제나 진호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쓰는 전담 신문사.
그래서 수많은 기자가 낙담하고, 스포츠 매일 기자들을 부러워했다. 특종 중 특종이었으니 말이다.
"저 외모에 그런 노래 실력, 작사 작곡. 이건 뭐 그냥 생태계 교란종이네."
"그래, 그거다. 생태계 교란종!"
"내가 먼저 말했어! 그 기사 제목 내 거야!"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다음 가수는 왜 이렇게 안 들어와?"
"이진호 배우 다음으로 들어오고 싶겠습니까? 바로 오징어 확정인데?"
맞는 말이다.
그걸 알기에 뒤에 있는 팬들도 조용히 있는 것 같았다.
"아, 저기 매니저들끼리 너희가 먼저 가라고 싸우네요."
기자들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 * *
'오? 오오!'
지정된 대기실로 향하는 진호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TV에서만 보던 걸 그룹이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오? 오오! 헉! 라라랜드다! 헐, 와이즈. 야, 야. 와이즈다, 와이즈."
진호는 자신의 팔을 치는 재준을 한심하다는 듯 보았다.
"아휴, 촌놈. 내가 다 부끄러우니까 그만 좀 하지?"
"지랄. 네 눈깔이 내 눈보다 더바쁘게 움직이거든? 헉! 와이즈가 이쪽으로 온다."
PJY 소속 국민 걸 그룹 와이즈. 까르르 소녀 웃음을 터트리며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와이즈 멤버들이 이쪽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뜨며 굳었다.
"어? 어? 어?"
"이, 이진호 배우님?"
'헉! 와이즈가 나를 알고 있어!'
감격 또 감격이었다.
너무 고마워 절을 하고 싶었지만, 뒤에서 도끼눈을 뜬 채 감시하는 최 실장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진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이진호입니다."
"……까아악!"
"아, 안녕하세요!"
"이, 이진호 배우님이 이 누추한 곳까지 어떻게…….아, 아니지. 얘들아, 둘셋!"
"안녕하세요! 와이즈입니다!"
11명 멤버들의 떼 인사에 진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크! 내가 걸 그룹의 인사를 코앞에서 보는구나!'
"네, 안녕하세요. 신인 가수 이진호입니다."
와이즈는 뭐가 웃긴지 웃음을 꺄르르 크게 터트렸다.
진호는 그 이유를 알지만, 모른 척 손을 내밀었다.
사람은 잘생기면 장땡이었다.
"오늘 잘 부탁드려요."
"헉! 네. 네!"
"저, 저희가 더 잘 부탁드려요."
'역시 보드랍구나!'
걸 그룹이라서 그런지 다른 여자들보다 더 손이 말랑말랑한 것 같았다. 물론 걸 그룹을 사랑하는 20대 남자로서의 착각이었다.
"사인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된다면 사진도."
"……그럼요. 아무렴요. 매니저 오빠! 우리 앨범-!"
"내 화보집도─!"
진호는 옆에서 '나도 소개해 줘! 나도 손잡고 싶어!' 뚫어질 듯 노려보는 재준의 눈빛을 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