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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66화 (166/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16화

슥슥슥슥슥!

진호의 손이 마치 바람에 빳빳한 오선지 위를 누볐다. 그려지는 경쾌한 음표들이 봄바람의 따뜻하고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혹여 진호에게 찾아온 악상이 날아갈까 봐 세상 그 무엇보다 빨리 본인의 차 안에서 오선지를 찾아 대령하였던 레오는 점점 완성되어가는 악보에 눈을 크게 떴다.

'신 내린 거 맞네.'

레오는 혀를 내둘렀다.

작곡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영감에 단시간 만에 하나의 곡을 완성시켜 버리는 그런 순간이 말이다. 작곡가들은 이런 것을 신이 내렸다, 혹은 대박곡 썼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중 가요 역사를 뒤져 보면 1시간 안에 완성시킨 날림으로 쓴 것 같은 곡이 공전의 히트를 친 적이 많다.

레오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고, 그렇게 뽑힌 곡들은 대부분 중박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당연히 대박곡도 있다.

그런데 지금 진호는 곡 하나만 완성시킨 게 아니다.

벌써 10곡째 악보를 완성시켜가고 있다.

그것도 가사까지 말이다.

'김광재 선배님이라도 빙의한 거야, 뭐야?'

진호가 그의 유품을 쥐자마자 이렇게 미친 듯 작곡과 작사를 해 버리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레오는 잔뜩 기대감을 품은 눈으로 진호를 응시했다.

……탁!

"오케이, 완성!"

'스킬도 습득!'

"형, 한번 봐요."

"이리 줘."

뺏듯 악보를 가져온 레오는 보자 마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진호는 굳은 표정으로 악보를 살피는 레오를 보며 초조해 하지 않았다.

툭툭 레오의 발이 자동차 바닥을 두드리고, 그의 코가 희미하게 허밍을 한다.

진호 자신의 곡에 빠져 버렸다는 뜻이다.

피식!

레오가 실소를 터트렸다.

"회사로 가자. 이거 녹음해야지."

진호는 활활 타오르는 그의 눈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 * *

진호와 레오가 제 1 녹음실을 차지했다는 소리에 뭔가를 느끼고 달려온 양진혁은 녹음실 안을 울리는 봄 냄새 가득한 노래에 경악 하고 말았다.

'이, 이거?'

양진혁 자신이 손수 선별해 진호에게 준 곡이 아니다.

-형, 이 부분 다시 가요.

"왜, 좋은데?"

-박자가 조금 밀렸……아, 오셨어요?

그제야 레오도 몸을 돌릴 수 있었다.

"오셨어요?"

양진혁은 그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실망한 눈으로 진호를 노려 봤다.

그는 기기로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진호야, 내가 준 곡들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니?"

-……풋.

"푸하핫!"

양진혁의 마음을 알아차린 둘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양진혁은 가끔 이렇게 귀여울 때가 있었다.

"웃지 마, 이놈들아. 레오, 넌 특히 웃으면 안 되지! 차라리 네가 만든 곡을 주지, 어떻게 다른 작곡가 노래 가져오냐? 어?"

레오는 음표가 빼곡하게 적힌 악보를 내밀었다.

"얼씨구? 악보까지 가져왔……."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에 시선을 빼앗긴 양진혁은 이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광재 형? ……아니, 광재 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밝아. 이건 버스커네. 인준이한테 곡 받았냐?"

"인준이가 아니라, 진호가 직접 쓴 거예요."

"……뭐?"

환청을 들었다는 듯 귀를 후비던 양진혁은 이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악했다.

"뭐어어'?!"

-넵. 제가 썼습니다!

"제가 지켜봐서 알아요."

딱딱하게 굳은 양진혁은 진호와 레오, 악보를 번갈아 보다가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헐."

제1 녹음실의 의자에 앉은 양진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악보를 살폈다.

이 믿기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이해해 버린 지금부터 그가 할 일은 진호가 작곡한 10개의 곡이 상업성을 가지고 있냐를 판단하는 거다.

그렇게 10개의 곡을 모두 살핀 양진혁은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진호야."

"넵?"

"JH랑 전속 계약 맺을래? 최고로 대우해 줄게."

"으흐흐. 좋다는 소리네요."

국내에서 세손가락 안에 들 만큼 성공한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칭찬은 온몸을 간지럽게 할 만큼 좋았다.

"좋다 뿐일까…… 아니지. 너 이 쉬키! 이런 재주가 있으면 말을 해야지! 그랬으면 지난 보름 동안 지원해줬을 거 아냐!"

"보름이 아니라 오늘 하루, 정확히는 3시간 만에 쓴 거예요."

"……엥?"

양진혁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듯 말을 한 레오를 보았고, 레오는 오늘 자신이 목격한 일을 그대로 말해 주었다.

하얗게 질린 양진혁이 진호를 보았다.

"광재 형 지금도 옆에 계시냐? 형, 저 보이십니까?"

"안 계십니다. 귀신에 씐 거 아니에요."

"광재 형 유품을 만지자마자 영감이 폭발했다며."

"그건 그렇지만, 아니에요."

"아니야. 그건 모르는 거야. 그래, 진호야. 지금 나랑 어디 좀 가자. 정말 용한 무당을 한 분 아는데……. 아니, 아니지. 이런 재주라면 계속 옆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니라니까요!"

이후 양진혁을 진정시키고 이해 시키는데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흠, 잠깐만 있어 봐. 다른 곡들은 모르겠는데, 이 곡은 인준이에게 연락해 봐야겠다. 버스커 색채가 너무 많이 나."

양진혁은 전에 진호에게 괜히 버스커 이야기를 했나 자책하며 버스커의 리더 인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인준아. 살아 있냐? 그래. 살아 있으면 됐다. 아, 다름이 아니라 우리 쪽으로 들어온 곡 중 네 색채가 많이 나는 곡이 있어서 말이야. 혹시 네가 분실했나 싶어서. 어, 들어 봐?"

양진혁은 음향기기를 조작해 방금 전 녹음했던 곡을 들려줬다. 진호와 레오는 입을 꾹 다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 비슷한 곡이 있긴 해요.

"끙. 그래?"

-그런데 제건 뼈대만 있는 미완성이고, 그건 완성이네요. 코드도 많이 다르고. 김광재 선배님 향기가 느껴지는데…… 누가 만든 거 예요?

"미완성? 왜?"

-아마 아내와 싸웠을걸요?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자랑이다. 아무튼,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그 미완성 곡 팔아라."

-됐어요. 폐기하면 돼요.

"내가 신경 쓰여서 싫어. 그냥 팔아. 잘 쳐줄게. 유부남이라면 아내 모르는 비상금 통장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지."

-……알았어요. 악보는 찾아서 보내드릴게요.

"흠,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거 아냐?"

-저라면 코드를 다르게 배치할 테지만, 지금 들은 것보다 더 잘 만들 자신 없어서요. 누군지 몰라도 좋은 작곡가 되겠네요.

"그러게 음악 활동 좀 열심히 하라니까."

-배부르고 등 따신데 무슨……수고하세요.

"그래. 조만간 술 한잔하자. 연락 할게."

전화를 끊은 양진혁은 혀를 찼다.

"이놈 밴드 해체하더니 완전히 망가졌네. 그놈의 돈이 뭔지……."

세간에 밝혀진 건 멤버 간의 의견 충돌이었지만, 결국 이유는 돈과 질투 때문이었다.

장인준은 보컬이자 작곡가로서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연히 벌어들이는 수익이나 명성도 다른 두 멤버보다 더 많았고, 다른 두 멤버는 그걸 견디지 못했다.

그렇게 버스커라는 걸출한 밴드는 사라지게 되었다.

버스커가 인기를 얻게 된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었던 양진혁으로서는 게으름뱅이가 된 장인준의 모습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통화 녹음은 했고…… 응? 왜 그렇게 쳐다봐?"

진호와 레오가 양진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진호는 혀를 내둘렀다.

"기획사 대표가 맞으시네요."

"뭐, 인마?"

진호는 장난이었다는 듯 얼른 양 손을 들어 항복했다.

콧방귀를 뀐 양진혁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콘셉트는 뭐로 할건데?"

진호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봄이요."

[스킬: 위대한 언어]를 1차 해금하며 아직 피지 못한 봉우리를 봤을 때, 얼른 봄이 왔으면 싶었다. 그 순간 '봄'이란 단어에 꽂혀 버렸다.

"좋네."

"어? 정말요?"

"아티스트가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데, 초를 칠 수 있겠냐. 타이틀은 이걸로 할 거지? 뭐, 이거밖에 없네."

진호는 깜짝 놀랐다.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는 진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랐다.

"사장님, 방금 진호를 아티스트라고 하신 거예요?"

양진혁은 소속 가수들에게 아티스트가 되라고 강요하지만, 정작 양진혁에게 아티스트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더 원'의 멤버들 중에서도 레오 자신과 딱 한 명만 아티스트 소리를 들었다.

양진혁은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를까? 엎어치나 메치나. 됐고. 일단 원음부터 내놔. 나머지 곡들도 저작권 사이트에 등록된 노래들과 비교해 봐야 하니까."

"아직 악기도 제대로 입히지 못했는데요?"

"……그럼 지금 해. 악기는 진호가 할 거지? 오랜만에 귀 호강 좀 하자."

"옙!"

귀 호강.

절로 신이 난 진호는 레오를 보았고, 그는 이리 오라며 손을 까딱였다.

양진혁은 레오에게 다가가는 진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 그런데 진짜 광재 형 옆에 없지?"

"안 계신다니까요!"

* * *

타이틀과 앨범 콘셉트가 정해지자 앨범 제작 속도는 탄력을 받았다.

보름 동안 인트로 트랙조차 정하지 못했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단 2주 만에 앨범이 제작되어 버렸다.

날씨도 점점 따뜻해져서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우리 애들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사장님이 앨범을 안내주시는 거잖아요. 걸 그룹만 편애하고."

"……그래서 장 실장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계속 그 가격을 고수할 생각입니까?"

진호는 말을 돌리는 양진혁을 보며 피식 웃었다.

목을 가다듬은 장경아 실장이 입을 열었다.

"예. 저희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S타입 만팔천 원."

웬만한 여성 잡지에 뒤지지 않을 만큼 두꺼운 앨범 크기.

S타입은 15곡의 정규 트랙과 앨범 제작을 할 당시의 모습을 찍은 메이킹 필름 CD, 진호가 직접 작곡하고 연주한 기타와 피아노 연주곡을 담은 CD, 합이 총 3장의 CD가 들어 있다.

이뿐만 아니다.

상의 탈의 샷이 포함된 총 50여 장에 이르는 화보와 디올의 향수 까지 있다.

내용 구성물이 알차다 못해 과하게 구성됐는데, 고작 만팔천 원이다.

진호의 정규 1집 앨범은 S타입, A타입, B타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물이 가장 부실한 B타입은 만이천 원이다.

양진혁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때도 말했지만, 우리 진짜 상 도의는 지킵시다. 이 정도면 최소 5만 원은 받아야 해요."

그들이 있는 JH 엔터테인먼트의 회의실에 앉은 다른 관계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팀 이진호의 사람들은 태연했다.

"진호 씨의 의견입니다."

"야 이 씨!"

진호는 싱긋 웃었다.

"박리다매. 좋은 게 좋은 거죠."

"안 좋아, 인마! 다 죽일래! 그래, 양보해서 3만 원에 하자. 택이야 다시 찍으면 되잖아. 수고비는 내가 줄게!"

양진혁은 다급했다. 당장 일주일 후면 앨범 정식 판매다.

이건 무조건 막아야 했다.

"5천 원 깎을까요? 그러면 딱 순 이익이 제로인데."

"네 몸값을 생각해야지!"

"가수로서는 신인입니다. 중고 신인?"

"나도 앨범 팔아서 돈 벌어야 한다고! 비즈니스, 아니 소울 메이트에게 이러기냐!"

"……쳇. 그럼 2만 원. 그 이상은 안돼요."

"그것도 너무…… 끙. 그래, S타입 2만 원. 오케이."

"20억 더 벌었군요. 저로서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장경아 실장은 입꼬리를 비틀었고, 양진혁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백만 장이 기준입니까?"

"팬 사이트를 통한 예약이 벌써 120만입니다. 그 숫자는 지금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도 물량을 150만 장으로 잡았습니다."

판매와 유통은 팀 이진호에서 맡아서 한다기에 이것까지는 몰랐던 양진혁은 낯빛을 굳혔다.

"무섭군요, 지니어스."

백만 장 판매.

모두 옛일이다.

지금은 간혹, 정말 어쩌다가 한 번 나올 기록이다.

팬 사인회 추첨권이나 쇼케이스 추첨권을 넣는다고 해도 30만 장이면 대박 중 대박이라고 말한다. 모든 기획사, 모든 가수 통틀어서 말이다.

JH에서는 현재도 '더 원'만 세우는 대기록이었다.

"제 팬들이 좀…… 으흐흐."

한중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팬 클럽왈, 닥치고 어서 내 돈 가져가 였다.

한 사람당 두 장 이하로 구매를 제한하지 않았다면 150만 장이 아니라 300만 장을 초도 물량으로 잡았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지니어스는 열광하고 있었다.

"끙, 더럽게 부럽네."

양진혁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당연한 현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진호는 팬들을 아꼈다. 그러다 보니 팬들의 주머니도 자연스럽게 무거워졌다.

즉, 이 현상은 모두 진호가 팬들에게 퍼줬기 때문이었다.

"아, 30초 후면 음원 판매 시작이군요."

장경아 실장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앞에 놓인 노트북을 닫았다.

음원 등록 후 30분 동안은 음원 순위를 확인하지 않는 게 그들의 방침이었다. 일종의 미신이나 징크스 같은 것이지만 말이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커피 드실 분?"

"시끄러워."

"네."

입술을 삐죽 내민 진호는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켰다.

사람들은 그런 진호에게 눈총을 주면서 한쪽 벽에 걸린 시계를 응시했다.

그렇게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느린 30분이 지나자 모두 노트북을 열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음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응?"

갑자기 굳어 버린 사람들의 모습에 의아해 했던 진호는 이내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피식 웃었다.

'순위가 꽤 높나 보네. 한 15위쯤 되려나? 10위면 좋겠다.'

음원 등록 후 30분. 15위만으로도 대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주일 안에 1위도 노려볼 수 있는 성적이니 말이다.

아이돌이 아닌가수가 음원을 등록한 지 30분에 10위면 삼 일 안에 1위도 노려 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 삼 위……."

"……그렇지!"

"아자아!"

장경아 실장도 벌떡 일어나 양손을 번쩍 들며 기뻐했다.

진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우와."

그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실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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