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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61화 (161/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11화

4. 명절날

이후 영국에서의 촬영을 무사히 마친 진호와 곽종훈, 세 아이들, 제작진은 한국으로 복귀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모두 즐겁고 행복하게 영국을 여행하다가 돌아왔다.

첫 화는 새해 1월 첫째 주 금요일에 방송된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진호는 스케줄을 소화했다.

케이블의 특성상 The J는 연말에 상을 받지 못했다.

케이블 드라마에 신기록을 썼지만, 케이블에선 자체적으로 시상식을 열지 않았다.

AAA,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드에 초청받긴 했지만, 초청된 아티스트 중 95퍼센트가 가수였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중국에서 초청을 받아 그 시상식에 다녀왔다.

해외 드라마 부문, 인기 부문에서 상을 탔다.

그러는 사이 영국에서 양국 천재들 간의 대결이 방송되며 한국의 인터넷도 약간의 영향을 주었다.

* * *

새해가 밝았다.

'힐링 요리: 제과제빵 편'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여태까지의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일반인이 메인 출연자였지만,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했다.

"하아."

뽀얀 입김이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진호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을 보며 옅게 웃었다. 언제와도 시끄럽지 않은 골목. 그래도 사람의 온기는 가득한 골목이다.

진호는 발을 성큼 내디렸다.

"춘자 할머니!"

"아이고, 내 새끼!"

눈이 내린 마당을 쓸던 춘자가 빗자루를 내팽개치며 달려왔다.

"잘 지내셨어요? 어디 아픈 곳은 없었고?"

"그럼. 누가 걱정해 주는데 아프믄 안 되제. 내 새끼는 아픈 데 없었고?"

"그럼- 내가 또 건강 빼면 시체잖아요."

춘자 할머니가 하얀 치아를 드러 내며 웃었다.

이번에 새로 맞춰 드린 틀니였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진호의 등을 밀며 안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저도 왔어요!"

"오메, 세연아!"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김윤식입니다."

"오메! 오메!"

김윤식뿐만 아니다.

김애숙, 장영진, 최동진, 이재정, 김수혜, 곽종훈 등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춘자 할머니 집의 작은 마당이 사람들로 꽉 찼다.

"오, 집 좋다."

"수육 끓일 가마솥이 어디 있나."

춘자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자식들도 찾아오지 않는 조용하고도 쓸쓸한 명절.

그랬던 명절이 떠들썩해져 버렸다.

그것도 TV에서나 보던 연예인들로. 또 그것도 손자처럼 생각하는 진호의 지인들로 말이다.

모두 진호와 함께 TV에 나온 사람들이었다.

"뭐, 뭘 이렇게 많이 왔데."

진호는 옅게 웃었다.

"모레면 설이잖아요. 세배하러 왔죠.

"다, 다들 바쁠 텐디……."

"저희도 설은 휴가예요."

"이, 이럴 시간에 자기들 시골 내려가제……."

"내일 내려가면 돼요."

"이이엉."

끝내 춘자 할머니는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은 놀라 당황했지만, 진호는 그녀를 안아주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머니."

춘자 할머니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치이이이익!

이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인 회관 안. 넓은 전기 팬 위에서 계란 물을 입은 전들이 노릇노릇 익어 간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 커다란 통에선 떡국의 베이스가 될 육수가 끓는다.

와글와글. 시끌벅적.

밖에선 어른들이 명절 음식을 안주로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진호야, 전이 부족하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이재정이 접시를 내밀었다.

"여기요."

"오! 역시 손 빨라."

"진호야, 난 수육 좀."

김수혜가 기름이 하얗게 뭉친 접시 두 개를 내밀었다.

"수육은 세연이요. 세연아, 수육!"

"응! 저에게 주세요, 선배님."

"재정아! 빨리 안 가져오냐! 술을 못 마시잖아!"

"……아, 진짜 저 형님이! 가요,가!"

툴툴거린 이재정은 접시에 오른 전을 하나 입에 물며 걸음을 성큼 옮겼다. 그건 김수혜도 마찬가지였다.

진호는 그런 둘을 고맙다는 듯 보았다.

촬영장에 가면 인사하는 것보다 인사를 받는 게 훨씬 더 많은 대 배우들이다.

그런 그들이 눈살하나 찌푸리지 않고 이 동네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있다.

'참 좋은 분들이야.'

원래는 진호 자신과 세연만 오려고 했다. 춘자 할머니들과 다시만 나게된 이후부터 계속 그래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명절 음식 준비를 위한 장을 보던 중 김윤식에게 술이나 한잔 하자고 연락이 왔고, 사정을 설명하니 '그래?'하더니 자신도 같이 가자고 했다.

김윤식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씨프' 단톡방에 이 일을 알렸고, 놀랍게도 모두가 자신들도 가겠다며 선뜻 나서면서 이렇게 오게 된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곽종훈도 망설임 없이 콜을 외쳤다.

"진호야, 여기 육수 다 끓은 것 같은데?"

"……오, 김세연. 이제 요리 좀 할 줄 알아?"

"원래 할 줄 알거든?"

"라면 말고."

"……."

피식 웃은 진호는 몸을 일으켜 본격적인 떡국 준비에 들어갔다.

* *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언제나 건강하세요."

"그래. 진호 너도 언제나 몸 건강하고, 좋은 작품 찍고. ……커흠, 그런데 다음 작품은 골랐어?"

친할아버지의 은근한 물음에 진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안 골랐다.

춘자 할머니와 동네 어르신들을 모셔다 명절을 쇤 진호는 다음 날이 되자 시골로 내려왔다.

"하하."

"진호가 어련히 알아서 잘 고를까. 자기가 뭐라고 참견질이데?"

"자식들 앞이라니까!"

"그래서! 영감한테만 자식이야! 나한테도 자식이야!"

"……끄응."

세배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촌들과 친척들이 모두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할머니는 얼굴이 시뻘게진 할아버지는 보며 코웃음을 쳤다. 시골집의 서열 1위는 할머니셨다.

15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오셔서 온갖 고생을 하시다 보니 지금은 관계가 역전이 되어 버렸다.

"그보다 진호야, 네가 알려 준 콤퓨타 화투 있잖아."

"네, 할머니. 그게 왜요?"

날이 지면 할 것이 없어지는 시골이다 보니 재미 삼아 해 보시라고 컴퓨터를 사드리며 알려 드린 인터넷 고스톱.

컴퓨터를 두 대 사드리면서 할아버지도 같이 치신다.

두 분이서 나란히 앉아 고스톱을 치시는 모습을 근처에 사는 셋째 작은 아버지가 찍어서 보내 주셨는데, 너무도 귀여우셨다.

"걔들 참 이상하다. 짜고 치는 것 같아. 만날 이 할미만 잃는다."

진호는 순간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친척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요? 정말 나쁜 사람들이네요."

"그러니까! 네 할아버지도 그놈들 한테 걸려서 다 털려 버렸…… 잠깐. 영감, 내 돈 10억은 어떻게 할 거예요?"

움찔! 순간 모두가 놀랐다.

소박하게 살아오신 두 분에게 10 억이라는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뭐, 뭔 10억."

"오링난 당신이 나 몰래 내 걸로 쳐서 홀랑 날려 버린 10억! 내가 그걸 으뜨케 알뜰살뜰 모았는데!"

"아, 아니. 그게 언제적 일이라고 지금 이야기해!"

"생각 났으니까 해야지!"

진호는 할머니가 삿대질하려 하자 얼른 말렸다.

"작은 아버지, 세배 안 받으실 거 예요?"

"……그렇지. 그건 조금 있다가 이야기합시다. 도망만 쳐 봐라, 아주 그냥."

화들짝 놀란 할아버지는 구원의 눈빛을 보내셨고, 진호는 할머니몰래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방법이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그만하면 안 될까?"

"안돼, 오빠."

"때려도 되냐?"

"때릴 꼬야?"

순간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눈을 겁먹은 듯 뜨는 사촌 여동생들의 모습에 진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입고 있던 여성 한복을 벗어 버렸다.

"아앙! 오빠-!"

"조금만! 진짜 몇 장만 더!"

"시끄러워. 여기까지야."

명절 때마다 매번 여장하는 것도 이젠 질렸다.

여동생만 아니었으면, 절대 들어 주지 않았을 요구였다.

여동생들이 아쉬워하며 물러나자 진호는 시골집을 나섰다.

높은 건물이 없어 탁 트인 풍광.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대학교가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대학생들이 다니긴 하나?'

전문대라면 모를까, 일반대학교다.

지방대중 지방대였다.

저벅저벅.

그렇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천천히 걷던 진호는 작은 텃밭을 발견하고는 옅게 웃었다. 작물이라고는 하나 없이 거친 흙만 드러내고 있는 작은 텃밭이지만, 진호에게는 추억이 서린 곳이다.

"할아버지 따라 고구마 줄기도 자르고, 고구마도 캐고."

"고구마도 쪄 먹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아버지."

어느새 다가온 아버지 이형만도 아련한 눈빛을 짓고 있다.

"나도 그랬다. 네 할아버지 손잡고 여기 와서 옥수수도 심고, 고추도 심고. 또 어쩔 때는 감자나 고구마도 따고."

진호는 눈을 크게 뜨며 텃밭을 보았다.

"이 쪼그만 땅이 별걸 다 키웠네요."

"이 아버지와 삼촌들, 네 고모들이 한 해 동안 먹을 간식은 다 이텃밭에서 키웠지. 그래서 가끔 서리를 당하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랬어요?"

"그럼- 네 막내 고모는 어떻게든 범인을 잡겠다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지키기도 했다."

"푸하핫!"

"그때 열 살이었던 네 막내 고모가 말도 안 하고 나가서 집안이 뒤집힌 것만 생각하면…… 어휴."

"엄청 맞으셨겠네요."

"맞기만 했을까. 발가벗겨져서 내 쫓기기까지 했지. 그런데도 자기는 잘못한 거 없다고 도끼눈을 뜬 채 버티는데…… 결국 모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막내 고모."

고모들 가운데 가장 괄괄하신 분이 막내고모다.

그러면서 진호 자신에게 줄 세뱃 돈을 가장 먼저 줄인 사람도 막내 고모였다.

그때 어린 마음에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어렸을 적엔 이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크크크, 정말 잘 어울리네요."

"네 막내 고모한테 맞았다고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데…… 어휴휴."

"푸하하하하핫!"

아버지 이형만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땐 참 골치 아팠지만, 지금은 추억이었다.

"음, 진호야."

"예, 아버지."

"……내년에 퇴직할까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진호는 눈을 부릅떴다.

"압박 들어오세요? 제가 아버지 다니시는 기업 CF 찍을까요?"

"내가 나이가 나이잖아."

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 연세도 이제 50대 중반이다.

퇴직에 대한 압박이 들어올 시기다.

"엄마와는 상의하셨어요?"

"네 엄마야 그만둘 거면 당장 그만두고 같이 여행이나 다니자고 하지."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지 않을 건 또 뭐겠냐."

그렇게 말하지만, 섭섭해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버지 이형만이 다니는 회사는 그냥 회사가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들을 비롯해 진호 자신과 어머니 나진희까지 모두 먹여 살리고 이렇게 잘 키우게 만들어 준 소중한 곳이다.

제2의 고향이자 집 같은 곳.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퇴직하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퇴직 이후의 삶이 문제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힘들게 출근 해서 치열하게 일하고 저녁에 돌아오며 자식들을 위해 봉지 가득 과자를 사 오던 삶이 끝나면 대부분 무기력증이 찾아온다.

그동안 촬영도 하고 스케줄 소화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온 진호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지금 아버지 이형만의 눈에도 그런 걱정이 서려 있다.

"그러세요. 제가 전에 말했잖아요. 아들 돈 가지고 여행도 다니시고, 골프도 치시라고요."

"……흐흐,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 둘까?"

"인수인계는 하셔야죠.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그게 또 이 아빠 특기지."

"푸흐흐."

"으흐흐흐흐."

"그리고."

"음?"

"한 일 년 그렇게 쉬시고, 빵집 하나 여세요."

"빵집?"

아들의 뜬금없는 말에 놀랐던 이형만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우리 아들이 빵을 또 기똥 차게 만들었지? 응? 이 아빠도 모르게 말이야."

"레시피도 많이 있으니까 소일거리 삼아서 해 보세요."

"흠,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하니 이 아버지 회사 앞에 차릴까?"

"와,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역시 영업부장님!"

"원래 이 아빠 머리는 똑똑해. 그러니까 스무 살 대학생이었던 네 엄마를 낚아했지."

"엄마는 엄청 들이대셨다고 했는데……."

"그것도 전략이다, 아들아."

둘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진호는 걱정이 사라진 아버지의 눈을 보며 더 크게 웃었다.

그렇게 부자간의 따뜻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진호는 할머니의 10억을 복구시켰다.

방법은 쉬웠다.

인터넷 고스톱에는 아바타 꾸미기라는 게 있었다.

신문물을 알게 된 조부모님은 이런 게 있었냐며 혀를 내두르셨고, 할아버지는 할머니 몰래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오셨다.

그렇게 설날을 조부모님 집에서 지낸 진호는 외가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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