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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60화 (160/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10화

* * *

해가 저문 저녁, 아무도 없는 커다란 사무실에 아직 채 앳된 티를 벗지 못한 금발의 여성이 컴퓨터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다가 눈가를 매만졌다.

혹여 회사 제품이 좋지 못한 사건에 연루됐을까 뉴스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그러나 팀의 가장 막내이자 학생 인턴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아."

아버지와 동생에게 저녁 약속을 어겨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핸드폰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슬프게 느껴졌다.

"이게 직장인의 울리지 않는 핸드폰이라는 걸까?"

-언제부턴가 영국에서 사라져 버린 이웃과의 나눔.

"어?"

여성은 낯익은 목소리에 얼른 모니터를 보았다.

채널 파이브의 기자이자 요새 제법 핫한 미튜브 크리에이터인 아일라 포터가 나오고 있었다.

"케이티와 메건이 좋아하는 기자다."

딸과 요리도 하고 소풍도 가는 아일라 포터는 아이가 있는 영국의 젊은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로 꼽힌다.

그녀가 강렬한 사건 사고가 아니라 재난이나 모금, 고아원 등의 현장을 찾으며 영국의 소외받는 어두운 면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은 푸근하게 웃으며 편한 마음으로 뉴스를 시청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흡?"

'론 히들스턴. 휴 그랜드, 레디 에드메인?'

아니다. 그 어떤 배우와 비교를 해도 압도적인 미모다.

"분명 어디서 봤는데……."

너무도 강렬한 미모기에 스쳐 지나가듯 봤어도 기억이 나야 하지만, 계속된 야근으로 굳어 버린 머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 순간이었다.

"미남 배우를 보며 피로를 푸는 겁니까, 앨리스?"

귓가를 때리는 늙은 음성에 고개를 돌린 여성은 벌떡 일어났다. 후덕한 덩치를 지닌 백발의 노인.

"CEO!"

"여기 앨리스가 간식으로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입니다."

"……감사히 받겠지만, 다시는 이러지 마세요. 이런 관심은……."

"모두 퇴근한 걸 확인했기에 이렇게 온 겁니다, 앨리스."

"……후우."

한숨을 내쉰 여성은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으으음."

아삭 씹힌 크런키 초콜릿이 침에 녹으며 입 안 가득 퍼지자 그녀는 눈을 감으며 몸을 떨었다.

그녀의 양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하핫, 어디 앨리스가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인지 볼까요……?"

노인은 모니터를 보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지니?"

"아는 배우인가요?"

"……모를 수가 없죠."

노인은 푸근하게 웃었다.

"한국에서 저희 모피리처드가 한국 수입 가전 브랜드 순위 1위인 테팔을 누르게 만든 장본인이니까요."

모피리처드, 명실상부 영국 가전 브랜드 1위인 회사다.

진호와는 그가 처음으로 예능에 출연했던 '도전, 셰프의 아바타'를 통해 협찬 계약을 맺었다.

지금은 계약 기간이 끝났다. 가전제품이라는 게 한 번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면 끝이기 때문에 재계약하지 않았는데, 테팔의 집중 마케팅으로 인해 모피리처드의 한국 점유율은 다시 떨어졌다. 앨리스는 경악하며 모니터를 보았다.

"진호 리! LVMH의 뮤즈!"

"정확합니다. 참 재주가 많은 친구지요. 허헛, 영국에 왔으면 왔다고 연락을 해 줄 것이지."

'그랬다면 무슨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다시 계약을…….'

"호오?"

노인은 진호가 만든 초콜릿을 먹고 황홀해하는 어느 동네의 주민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꿀꺽!

옆을 본 노인은 풋 웃고 말았다.

'정말 초콜릿을 사랑하는군.'

얼마나 맛있을까, 먹어 보고 싶은 욕망으로 활활 타오르는 눈빛. 앨리스의 초콜릿 사랑, 정확히 디저트 사랑은 정말 유별나다.

노인의 웃음소릴 들은 여성은 다시 한 번 양 볼을 붉혔다.

노인은 모른 척 화제를 돌렸다.

"흠흠, 에드워드님은 잘 계십니까?"

노인의 목소리에 존경이 가득 담겨 있다.

에드워드. 영국인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이름이다.

흠칫! 반사적으로 놀란 여성은 씁쓸히 웃었다.

"……5일째 얼굴을 못 봐서요. 저택에 도착하면 너무 힘들어서 자기 바쁘더라고요."

"이런.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러면 다시 평온한 대학생활로."

띠리리리리!

화들짝 놀란 여성은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네. 모피리처드 홍보부의 앨리스 루이스입니다. 네. 방송에 대한 협찬 제공이라면 언제든지 상담 가능합니다. 네? 누구와요?"

경악한 여성은 이제 다른 뉴스로 넘어간 모니터 속 화면을 멍하니 보며 네, 네 대답만 했다.

"네. 알겠습니다. 내일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달칵!

"무슨 전화기에 그렇게 놀라시는 겁니까?"

"채, 채널 파이브에서 방금 나온 어린 천재들과 영국의 어린 천재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프로그램을 특집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호오오, 그래요?"

노인은 눈을 빛냈다.

진호와 접촉하기에 너무도 좋은 조건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왜인지 여성, 앨리스가 살짝 흥분 하고 간절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니 그게……."

'흐음?'

노인은 곧 허헛 웃었다.

"그렇군요. 인턴이라도 출장을 겪어 보는 게 좋죠. 그 현장에 한번 가 보시겠습니까?"

"어? 그, 그게……."

"아쉽군요. 천재들의 디저트는 저 혼자 먹어야 할 듯싶습니다."

"지, 직접 가시려고요?"

"LVMH의 뮤즈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어떻게 하겠냐는 노인의 눈빛에 여성을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허허헛!"

노인은 정말 즐겁다는 듯 웃었고, 여성은 한껏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였다.

* * *

어느덧 녹화 날짜가 되었다. 촬영장소는 채널 파이브의 스튜디오였다.

채널 파이브에서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붙여 주었다.

방송을 많이 한 곽종훈은 어느 부분을 감추고, 어느 부분을 드러내 달라 능숙하게 주문했지만, 세 아이들은 화장한다는 것부터 어색 해했다. 그래서 진호가 대신 포인트를 집어 줬다.

"모피리처드의 제품이 보이기에 대충 예상은 했지만, CEO가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진호 리입니다. CEO 홀트."

"뮤즈라면 당연히 제가 와야죠. 이렇게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뮤즈."

모피리처드 CEO의 푸근한 웃음에 진호도 마주 웃어 주었다. 노인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당신과 나누고픈 이야기가 아주 많은데, 제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군요."

진호는 그의 눈을 보며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허허헛! 역시 화끈하십니다. 곧 관계자를 한국에 파견하겠으니 좋은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회사의 직원을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한 모피리처드의 CEO가 자리를 뜨자 진호는 심사 위원석 겸 토크 테이블에 앉은 금발의 앳된 여성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대체 정체가 뭐지?'

스튜디오에 아주 이질적인 존재들이 있다.

마치 모피리처드 관계자인 것처럼 차분한 색상의 슈트를 입고 안경을 꼈지만, 그들은 일반 회사원이 아니었다.

"킹스맨이 실제로 존재하다니. 오 마이 갓, 지노, 저들에게 사인을 받아도 될까?"

월터는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긴장하고 있었다.

'최소 보디가드야. 그것도 월터처럼 전장을 겪은…… 설마 귀족인가?'

영국은 계층이 인정되는 나라다.

중산층 출신이자 한국에는 킹스맨으로 유명한 어느 중년 배우가 왕족을 연기했다고 난리가 났을 만큼 계급과 계층을 인정하는 나라가 영국이다.

"코가 없는 옥스퍼드가 아니기 때문에 킹스맨은 아니에요."

"그런…… 아쉽군."

혀를 찬 월터는 재빨리 진호만 알도록 수신호를 주었다.

여차하면 인질을 잡으라는 뜻.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은 진호는 몸을 돌렸다.

촬영 컨셉은 3:3 대결로 3판 2승 제였다.

세 아이들과 영국 제빵 대회에서 우승한 10대의 천재 셋.

녹화에서 중심을 잡을 MC는 진호 자신과 곽종훈, 그리고 영국 출신의 방송인 한 명과 귀족으로 보이는 모피리처드의 직원, 영국에서 유명한 제빵사 한 명이었다.

이 다섯 명이 투표해 다수결로 승자를 뽑는다.

채널 파이브의 의도가 훤히 보였지만, 진호와 곽종훈은 걱정 없었다.

둘의 표정이 평온하자 나연석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잘 부탁드릴게요. 서로 페어플레이해요."

"네, 네."

"예."

'흐음?'

녹화 시작 전 이쪽을 보며 넋을 놓은 영국 측 천재 세 명과 악수로 인사와 격려를 해 준 진호는 돌아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오븐이나 식재료, 조리도구들 앞을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는 세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대회에 익숙한 세 명이라지만, 국내를 대표해 해외의 천재들과 대결한다는 것이 긴장을 불러 온 듯 싶었다.

그렇게 진호가 몇 마디 말을 건네자 아이들의 얼굴이 확 폈다.

"……정말요?"

"아 씁, 뭐 만들지? 기교의 끝판 왕을 한번 보여 줘?"

"과자 집을 만들어 볼까?"

아이들의 눈이 타오르고, 뻣뻣하게 굳어 있던 어깨들이 풀렸다.

"파이팅."

"파이팅-!"

세 아이의 외침이 베이커리를 쩌렁쩌렁 울렸다.

진호는 다시 웃으며 돌아섰고, 나연석과 곽종훈이 급히 다가왔다.

"뭐여, 무슨 말을 했기에 저렇게 힘차?"

"글쎄요…… 뭐. 지켜보시면 알 거예요."

곽종훈은 미간을 찌푸렸고, 나연석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녹화가 시작되었다.

오프닝은 참 화기애애했다.

양국 천재들의 프로필과 경력이 소개되고, MC들의 경력도 소개됐다. 신변잡기도 하며 30분의 시간을 보낸 이후 첫 번째 대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대결 과제는 식빵이었다. 그중 '팜 하우스 로프'라고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빵으로 농가에서 만들어 먹었던 식빵이다. 과거에는 갈색의 밀가루를 사용하였으며 통통한 모습이 특징이다.

"오! 두 천재가 바로 밀가루를 살피기 시작합니다! 그렇죠, 영국 천재! 팜 하우스 로프는 영양분이 많은 갈색 밀을 골라야죠! 음? 한국 천재는…… 연질밀과 경질밀을 동시에 골랐습니다!"

점성이 약한 연질밀과 점성이 강한 경질밀. MC인 방송인은 의아 해했지만, 진호와 곽종훈, 영국 제빵사는 아니었다.

"정태가 선택이 잘 했네요."

"그렇지. 퍽퍽한 연질밀이 들어가면 식빵이 더 고소해지지."

진호와 곽종훈 둘이 영어로 말하자 제빵사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견을 덧붙였다.

"대신 성질이 다른 두 밀을 한꺼번에 반죽하는 거라 엄청난 테크닉을 요합니다. 부디 자신감에 행동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앨리스와 방송인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양국 천재들 모두 반죽에 들어갑니다! 오! 한국 천재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반죽 합니다!"

방송인이어서 이유를 말해 달라는 듯 전문가인 셋을 보았다.

"째깐한 반죽은 손으로 치대야 더 맛있는 법이죠."

"반죽의 크기가 작기에 손의 모든 감각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방금 파티셰분이 말한 테크닉을 확실히 발휘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감탄을 터트렸다 조곤조곤 말하는 진호는 너무도 지적으로 보였다.

"오오오오오! 한국 천재! 제빵계의 테크니션인가요! 모피리처드 관계자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얼른 먹어 보고 싶네요."

"와우! 눈이 불타오르는데요? 모 피리처드가 확실한 적임자를 심사 위원으로 꽂았습니다!"

한국의 어느 결벽증 방송인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떠들썩한 진행이었다. 덕분에 모두 즐겁게 토크를 할 수 있었다.

이 좋은 그림에 혹여 영국인이라고 인종 차별을 하지 않을까 걱정 했던 나연석은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분명 사전에 상의하고 요구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흐른 후 식빵이 나왔다.

노릇하게 구워진 한 조각의 식빵이 담긴 접시엔 버터와 잼, 치즈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식빵을 만든 양국 천재들이 나란히 서서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부디 공정한 판결을 부탁드립니다."

영국 MC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정태의 식빵을 쭉 찢어 입 안에 넣었다.

약간은 퍽퍽하고 딱딱하지만 고소하고 새콤달콤하기 그지없는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영국인들에게는 너무 익숙하면서도 여태껏 맛 보지 못한 최고의 맛이었다. 아니 최고의 레이즌 브레드였다. 마른과일을 넣어 만드는 레이즌 브레드.

"흐와아!"

엄지를 치켜세우려던 모두가 깜짝 놀라 앨리스를 보았다. 마찬가지로 놀란 앨리스는 얼굴을 사과처럼 붉히고 고개를 푹 숙였다. 스튜디오 안에 있는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모피리처드. 심사 위원이 아니라 미식가를 데려다 놓으면 어떡합니까?"

영국 측 방송인의 말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이후 영국 천재의 빵을 맛보고 심사가 시작되었다.

한영 양국 간의 3:3 대결. 결과는 2:1로써 한국의 아슬아슬한 승리로 끝을 맺었다.

모두가 이견이 없는 결과였지만, 나연석은 놀라고 있었다. 한국 천재들은 마치 숙소에서 빵을 만드는 것처럼 여유롭고 자신 있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안 그랬는데…… 그래, 분명 진호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한 이후부터 저렇게 여유로워 졌어!'

나연석은 아이들의 머리를 헝클이고 있는 진호를 보았다.

"아까 뭐라고 했기에 얘들이 이렇게 제 실력을 발휘한 거야?"

진호는 피식 웃었다.

"별말 안 했어요. 영국 애들 모두 악력이 부족하고, 몸에서 빵 냄새가 안 난다고만 했을 뿐이에요."

한국 측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곽종훈은 허허롭게 웃으며 영국 천재들을 보았다.

"아따, 역시 천재는 무섭네. 냄새가 배기 전까지 주방에 있지 않았는데, 이런 접전을 벌인 거잖여. 진호, 네가 아니었으면 졌겠다."

"그럴 리가요. 저희 애들도 천재잖아요."

진호의 칭찬에 세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고, 나연석도 환하게 웃었다.

'역시 진호를 멘토로 뽑은 보람이 있네!'

요리 연구가이자 요식업 기업의 대표 곽종훈과 세 아이들을 이어 주는 가교이자, 방송이 처음인 아이들의 멘탈을 달래 주고 이끌어 줄 멘토 역할. 그게 나연석이 바라던 진호의 역할이었다.

곽종훈의 역할은 리더 겸 아버지 겸 지식 백과사전이었다.

"그럼 번외전은 누가 나갈까나……."

3:3 대결말고도 영국 제빵사와의 번외 경기가 있다.

진호와 곽종훈, 세 아이들은 영국에 빵을 배우러 왔다.

그런 프로그램의 취지를 들은 채널 파이브는 그럼 진짜 영국 빵을 가르쳐 주겠다는 의미로 번외 경기를 따로 기획했다.

나연석과 출연자 모두 찬성했다.

"진호, 네가 나갈래? 아무리 번외 경기라도 나가서 지는 건 좀 그러네.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인가?"

"에이, 제가 어떻게…… 대표님이 나가세요."

"봤다, 진호야. 새벽에 그 과자 집 만드는 거."

사람들이 깜짝 놀라 진호를 보았다.

"헐, 그거 사 온 거 아니었어요?"

"그런 걸 만들 거면 말을 해야지! 에이, 고정 카메라로만 찍혔겠네!"

진호는 머리를 긁었다. 곽종훈이 푸근히 웃었다.

"한번 경험 삼아서 해 봐."

"……흠, 그럴까요?"

진호는 행복함에 힘이 빠진 듯한 앨리스를 보며 눈을 빛냈다.

'CEO 홀트가 직접 데려온 사람.'

귀족일 확률이 너무 높다. 모피리 처드에 영향을 끼칠 만큼 고위귀족일 수도 있다.

'계약은 좋을수록 좋은 거지. 과자로 만든 집이라는 작품을 만들며 스킬도 습득했으니…….'

모든 스킬을 동원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 봐야 할 듯싶었다.

'그런데 좀 미안하네.'

진호는 영국에서 유명하다는 제빵사를 보며 속으로 사과를 했다.

"……."

사람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조각 케이크를 보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이걸 과연 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치 체스 판처럼 나뉜 보라색과 바닐라색의 스펀지 빵.

그것을 코팅하듯 감싸 얼굴마저 비추는 영롱하고도 매끄러운 보랏 빛의 크림과 초콜릿으로 만든 푸른색의 장미.

영국 파티세가 만든, 슈를 탑처럼 쌓고 초콜릿을 화이트 초콜릿을 뿌려 겨울의 소나무를 표현한 크로캉 부슈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분명 감탄이 나오지만, 초라 했다.

사람들은 진호의 케이크를 포크로 뭉개 입 안으로 가져갔다.

포크로 둥개야 한다는 것이 죄악 처럼 느껴졌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진호의 작품을 보고 본능적으로 패배를 인정한 파티셰도 자신의 몫의 케이크를 포크로 뭉겠다.

그 순간.

"허억! 이, 이건!"

시큼한 포도가 입 안에서 강렬하게 폭발하며 온몸을 마비시킨다. 그 뒤를 부드러운 바닐라와 생크림이 감싸며 포근한 햇살처럼 마비된 몸을 녹인다.

그러면서 어디선가 희미한 장미향이 풍겨 온다.

"……마치 장미 들밭 옆 한 그루의 포도나무 같아요."

맛의 감격에 감동한 앨리스가 눈물을 그렁거린다.

사람들 모두 그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셰 존슨에겐 미안하지만…… 레벨 차이가 압도적이야.'

진호의 조각 케이크는 그냥 빵이 아니라 빵의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남자…….'

가지고 싶었다. 옆에 두고 평생토록 디저트만 만들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너무 안타까웠다.

'지니라고 했지?'

진호는 복잡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계약 좋게 되겠네.'

그렇게 녹화는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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