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7화
3. 빵의 혁명.
출연자들과 제작진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한 자리에 모인 그들은 동네 주민들이 던져 준 숙제에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진호는 그 사이에 껴서 아이들과 함께 빵을 먹다가 입을 열었다.
"그랬구나. 입맛이 다른 게 아니었구나."
"……풋!"
"푸하하하핫!"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세 아이들도 배를 잡고 굴렀다.
"진짜 신기해요. 영국 출신으로 유명한 쉐프들이 그렇게 많은데, 평균적인 맛은 왜 이렇게 괴악해요?"
대표적인 예가 제이미 올리버와 고든 렘지다.
정태의 말에 진호가 입을 열었다.
"중세시대 때부터 맛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네?"
"역사 이야기를 하자면 오늘 하루로도 모자라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이탈리아는 예술과 패션을 소중히 했고, 프랑스는 요리를, 영국은 주거 공간을 소중히 해서 그래. 즉,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 자존심을 표현하는 수단이 나라마다 달랐던 거야. 영국에 고성이나 대저택 같은 게 많은 이유도 그거지."
"아아."
제작진도 눈을 빛냈다.
바싹 구운 토스트를 때어 낸 곽종훈이 덧붙였다.
"다 알다시피 영국이 좀 전쟁을 했나? 거기다 18세기 들어서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영국 사람들의 식탁을 좀 더 빈약하게 만들었지."
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영향으로 인해 만들기 귀찮은 빵보다는 감자가 보급되면서 빵이 죽어 버렸죠. 아니, 영국의 음식 문화 전반이 맛보다는 양 위주로 발전되어 버린 거죠."
사람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그렇지. 진호가 잘 아네."
"대표님만 할까요."
곽종훈이 가진 요리에 대한 식견은 정말 감탄만 나올 정도다.
"그래서 나 피디, 어떻게 할겨?"
"음…… 파는 게 어때요, 대표 님?"
"진호 넌?"
"전 반대죠."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천사 연예인이라고 불리는 진호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진호의 냉철한 성격과 뛰어난 두뇌를 알고 있는 곽종훈은 달랐다.
"이유는?"
"법에 걸리니까요."
"에?"
나 피디와 제작진은 당황했고, 곽종훈은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 우리가 돈을 받고 빵을 파는 순간 그건 범죄지. 이야, 난 여기 왜 있는 거여?"
"배울게 많습니다. 특히 요리 노하우를…… 으흐흐."
"아니, 진호야. 정말 그 이유 때문에 반대 하는 거야?"
나연석이 급히 물었다.
"그럼요. 당연하죠. 어? 와, 피디 님. 설마 저희보고 범죄자가 되라는 건가요?"
"아니야! 그럴 리가!"
나연석은 펄쩍 뛰었다.
"그 뭐랄까. 그래. 그냥 나눠 주면 노동에 대한 대가가 없잖아."
"왜 없어요. 웃어 주는 게 최고의 대가지. 이렇게 물물교환을 해도 되고. 그치, 얘들아?"
세 아이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빵을 만드느라 진이 빠져도 환하게 웃는 친구들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빵집에 오는 손님들의 미소를 보면 모든 피로 풀리다 못해 하루 종일 힘이 났다.
거기다 물물 교환은 세 아이들에게 있어서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창구기도 하다.
"그리고 돈은 굳이 빵을 팔지 않아도 벌 수 있어요."
"엥?"
"잉?"
"……아아. 푸하핫."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린 곽종훈을 보았다.
그는 진호를 보았다.
"그거지?"
"네. 레시피요."
잠시 이해를 못했던 사람들은 이내 경악하며 진호와 곽종훈을 보았다.
곽종훈이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로 인해 이 일대의 입맛이 바뀔 테니까……."
"이 동네 빵집 사장님이든, 이 동네 주민이든 레시피를 살 수밖에 없죠. 빵 만드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한 번 고급스러워진 혀가 다시 저급해지는 것보다는 낫겠다 생각 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특별한 날 만들어도 되고. 진짜 난 여기 왜 있는 거여?"
"에이, 대표님이 계시니까 이런 것도 생각하는 거죠."
"그래, 내 노하우 다 가져가. 다 알려 줄게."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쿵짝이 너무 잘 맞는 둘을 멍하니 보았다.
그동안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연석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물물 교환 형식으로가 시죠. 그러는 편이 훨씬 더 그림이 좋겠네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한 100포대 가져다 놓는 건데."
출연자들은 입을 떡 벌렸다. 곽종훈이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왜요. 돈도 아낄 수 있고, 좋잖아요."
움찔!
경악한 진호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천 파운드라는 예산과 밀가루를 주셨기 때문에 이런 그림도 나올 수 있었던 거죠. 예산과 밀가루가 없으면, 정확히는 마음 편히 밀가루를 쓸 수 없으면 어떻게 이런 그림이 나왔겠어요?"
사람들은 갑자기 제작진을 칭찬 하는 진호의 행동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연석은 아니었다.
"……쳇."
곽종훈이 입을 떡 벌렸다. 그도 눈치를 챈 것이다.
오늘 일로 인해 나연석이 일주일 후 이동할 곳에서 쓸 예산을 더 줄이고, 밀가루도 곱게 넘겨주지 않을 마음을 먹었단 걸 말이다.
"야 이 사악한 인간아! 계속 그러면 정말 천벌 받아."
다른 제작진도 나연석을 떨떠름히 쳐다봤다.
다섯 명이서 딱 밥만 먹고, 대중 교통만 이용할 수 있도록 철저한 조사 끝에 책정한 액수가 천 파운드였다.
"야, 너희들이 날 그렇게 보면 안 되지."
"저리 가요."
"다가오지 마, 이 사탄아."
"아니, 사람이 어쩜 저렇게 사악 할 수 있지?"
일심동체라 믿었던 제작진의 손절에 나연석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 * *
다음 날, 진한 빵 냄새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을 깨웠다.
"먹다 남은 잼 반병도 좋고, 치즈 반 덩이라면 정말 감사합니다. 맛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집에 남는 식재료 중 아무거나 주시면 돼요."
"음. 마트 식재료 코너를 털어야 하는 건가……."
"하하하."
"내 금세 다녀오지."
"네. 정말 맛있는 걸로 빼놓을게요."
노인은 빠르게 걸었고, 그건 진호의 집 앞에 모여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동네 주민들은 한가득 식재료를 들고 왔다.
그렇게 아침에 만들었던 빵은 이 동네 주민들의 잉여 식재료와 바뀌었다.
"……."
"……이걸 오늘 안에 다 먹어야 한다는 거죠?"
식탁 위에 식재료가 산처럼 쌓여 있다.
그중 반 이상이 고기와 육가공품이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소시지, 베이컨 등.
남은 반 이하의 반절은 치즈고, 그 나머지가 채소.
출연자 다섯 명과 제작진 서른 명이 삼시 세끼를 배불리 먹어야 소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일단……."
넋을 놓은 사람들이 시선이 진호에게로 쏠렸다.
"밥부터 먹죠. 아침으로 얼큰한 고기 짬뽕탕 드실 분, 손!"
진호는 누군가 사 놓고 딱 한 번 쓴 듯한 통에 담긴 고춧가루를 흔들었다.
영국인이 왜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제작진들까지 모두 손을 들었다.
진호를 비롯한 다섯 출연자는 아침을 먹고 난 후 점심에 먹을 것을 준비해 어제처럼 런던 시내로 향하려고 했지만, 무산되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쏴아아아아아!
"뭐혀?"
할일이 없어서 모두가 잠들어 버린 집.
자연의 변덕으로 인한 강제적 휴가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빗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내일 물물 교환할 과자를 만들어두려고요. 아까 보니까 거의 다 떨어졌더라고요."
'딱 이 반죽만 완성시키면 2차 해금 완료!'
동네 주민과 물물 교환을 했던 게 스킬의 해금 조건을 해금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런던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끝났을 때도 2차 해금을 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반죽 50킬로그램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성실한 것도 좋은디, 쉬어가면서 혀."
"대표님은 안 주무세요?"
"원래 늙으면 잠이 없어. 저, 봐. 저 사악한 인간도 잠을 못 자고 있잖아. 나 피디, 할 거 없는디 커피나 마실까?"
"커피 좋죠!"
냉큼 일어난 나연석이 다가오자 진호는 반죽을 마무리했다.
"끝."
'음?'
진호는 갑자기 따뜻해지는 양손을 보았다.
2차 해금이 된 것이다.
'이게 태양의 손.'
명확하게 그 효능을 정의할 수 없지만, 굳이 정의하자면 빵의 맛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마법의 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3차, 4차, 5차 조건까지 해금을 하면 [스킬 : 태양여왕의 황금손]이 완성된다.
눈을 빛낸 진호는 다시 밀가루를 식탁 위에 부었다.
"또 빵을 만들게?"
"저녁에 간식으로 먹을 딸기빵을 만들려고요. 마침 딸기도 있으니까."
딸기빵은 리셋 라이프 속 [스킬: 태양여왕의 황금손]의 주인이 소유한 가게의 대표 메뉴 중 하나다.
"멜론빵 같은 걸 말하는 거여?"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딸기를 으깨서 딸기 즙을 만든다음 반죽을 준비했다. 중탕으로 녹인 버터와 설탕을 섞은 후 채를 친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를 넣었다.
"어? 베이킹파우더를 그만큼만 넣으려고?"
"3분의 2. 이 정도면 충분해요."
"……음, 뭐. 그래."
딸기즙도 넣어색을 1차 반죽을 만든 진호는 2?분간 실온에 방치 시킨 후 나머지 재료 중 물과 이스트를 제외한 우유, 계란, 설탕 등을 몽땅 넣었다.
"어, 어? 휴지는 30분 동안 해야 하잖아."
"괜찮아요."
입을 다문 곽종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러섰다.
믿기에 일단은 지켜보려는 것이다.
진호는 싱긋 웃었다.
'태양의 손만 있어도 반죽하는 시간이 짧아지지.'
그러면서도 완성 후 맛과 색, 식감 등 빵을 이루는 모든 것이 한 층 더 깊어진다.
'완벽한 딸기 모양을 만들려면 황금손이 필요하지만…….'
가볍게 먹을 간식이니 굳이 형태를 잡지 않아도 된다.
콱! 콱! 콱!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지켜보던 곽종훈은 점점 눈을 크게 떴다.
"어? 어? 어?"
물과 이스트, 버터를 넣고 만든 2차 반죽이 부풀고 있었다.
진호는 이스트를 평균 분량보다 적게 넣었는데도 반죽은 이스트를 정량 넣은 반죽보다 더 부풀었다.
"이래서 손으로 하는 반죽이 좋은 거죠."
아니다. 요새는 기계가 훨씬 좋다.
그 말이 목구멍까지 솟았던 곽종훈은 고개를 저었다.
"거참, 신통방통하네. 이게 왜 이렇게까지 부풀지?"
"반죽에 공기를 넣는 요령이 좋아서?"
씩 웃은 진호는 반죽에 랩을 씌운 후 자리를 떴고,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가만히 있던 나연석이 눈을 빛냈다.
"원래 저렇게 안 부풀어요?"
"당연하지. 들어갈 게 덜 들어갔는데 부푸는 게 말이 안 되지. 먹어 봐야 알겠지만, 내가 소비자라면 이 딸기빵 줄서더라도 먹는다."
"그 정도라고요?"
"좀 있다가 먹어 보면 알 거여."
나연석은 계단을 올라가는 진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바삭!
겉은 소보루처럼 쿠키같이 씹히면서 속은 케이크의 스펀지처럼 부드럽고 촉촉하다.
바삭하면서도 달콤한 딸기와 부드립고 촉촉한 딸기의 화려한 이중주.
나연석은 입을 떡 벌렸고, 곽종훈은 허허 웃었다.
"그동안 과자만 만든 이유가 있었네. 애들 긴장해야겠어. 대체 못하는 게 뭐여?"
"많죠."
아직도 80개가 넘는 스킬이 남아있다.
진호는 환하게 웃었다.
* * *
다음 날에도 물물 교환의 장을 연 그들은 어제 비가 내린 게 맞냐는 듯 화창한 날씨에 마음 가볍게 런던 시내로 향했다.
이 프로그램의 대명제는 어디까지나 빵이다.
맛있는 빵을 먹고 견식을 늘려야 한다.
그저께 실패했다고 해서 오늘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실패를 줄이기 위해 철저히 조사를 했다.
"……빵이다."
"응. 빵이야."
촉촉한 건포도 식빵이 달달하게 혀에서 녹아내렸다.
그 위에 얹어져 입안에서 녹는 치즈가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뤘다. 한 달 만에 라면을 먹는 것과 같은 감동이 휘몰아쳤다.
"그래, 이게 빵이지! 진호 형의 딸기빵보다 맛없지만!"
"이 진저 브레드 맛있는데요? 진호 형 딸기빵보다 맛없지만!"
"머핀도 맛있어! 달아! 진호 형 딸기빵보다 맛없지만!"
흥분해서 방방 뛰는 아이들을 어이없다는 듯 본 진호와 곽종훈은 이내 눈가를 매만졌다.
"블로그에 소개될 만큼 맛집이 아니면 이런 맛을 맛볼 수 없다니……."
그제는 영국 빵의 평균적인 맛을 보았다면, 오늘은 맛집이라고 소개 된 곳들만 찾았다.
기대를 하지 않아서 맛있는 게 아니다.
정말 맛이 있었다.
물론 입에 맞지 않는 빵도 있지만, 그건 문화가 달라서 생겨난 입 맛의 차이일 뿐이다.
"언제 와도 참 신기한 나라야."
"그냥 요리에 정성을 들이지 않는 거죠."
더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고,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 점심시간이네. 식사들 하시죠
"또 먹어?"
나연석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방금 전 빵도 많이 먹었잖아. 그것도 50파운드 어치나."
"빵은 간식이죠."
"그렇지. 진호가 잘 아네. 그래서 점심 메뉴는 뭡니까, 쉐프님."
"칼로리 폭탄 샌드위치입니다."
"……빵이네."
"네, 빵이죠."
"오늘 새벽에 만들었던 그거지?"
"넵."
따로 제작한 빵에 구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와 치즈, 피클 등을 넣고 호일로 감싼 다음, 무거운 돌을 올려놔 압축시킨 샌드위치.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어디 김치 파는 곳 없나."
"저희 예산으로는 사기 힘들어요."
곽종훈은 나연석을 노려봤고, 나연석은 슬그미니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저은 그들은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