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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55화 (155/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5화

"으허헛."

왔다. 런던에 도착했다.

오긴 왔는데, 가슴속에서 울화가 치 밀었다.

"여러분께 드릴 첫 미션은 저희 제작진이 잡은 숙소까지 가는 겁니다. 돈은 출발하기 전에 드렸죠? 주소는 여기 있습니다."

실실 웃으며 종이 쪼가리를 건네는 나연석과 바깥에서 쏟아지는 비 때문에 더 그랬다.

숙소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저 멱살을 잡았을지도 몰랐다.

진호는 세 아이를 보았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힘들어하는 낯빛이지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공항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모습이 참 귀엽다.

진호는 힐끔 공항 밖을 보았다. 검정색 택시 한 대가 횡 지나갔다.

소름이 쫙 끼쳤다.

영국은 교통비도 살인적이기로 유명했다.

"꼴랑 천 파운드로 교통비까지 해결해야 하는 건가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천 파운드면 한화로 150만 원정도야."

"저희 다섯 명이면 아끼고, 아껴야 일주일을 살겠죠."

"안 그래. 여유로워."

그렇게 말했지만, 나연석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겜블러 스킬이라도 얻어야하나?'

게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모든 놀이에 천부적 재능을 보이는 겜블러 스킬.

길거리에서 야바위판이라도 벌여야 할 듯싶었다.

"후원을 받아도 되나요?"

런던에도 HU가 있고, 디올이 있고, LVMH가 있다.

"안돼. 그러면 힐링 앤 스터디 라이프가 아니잖아."

"어딜 봐서 힐링입니까!"

"자, 이제 저희 제작진은 한발 물러나 있겠습니다. 시간 안에 도착하시면 제작진이 준비한 소정의 선물이 증정될 겁니다."

진호는 입을 뻐끔거렸다.

곽종훈은 나연석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야 이 사기꾼아!"

'으허허허허허.'

사람이 정말 어이가 없으면, 이렇게 웃음만 나오나 싶었다.

진호는 의아해하며 이쪽을 보는 세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150만 원은 큰돈이지?"

"네."

"엄청 큰돈이죠."

"집도 있는데, 일주일에 각자 30만 원씩이면 정말 큰돈 아닐까요?"

런던에서 체류하는 기간은 일주일이다.

"응. 한국이라면 큰돈이지. 그런데 영국은 안 그래. 일단 버스비가 일인당 4천 원정도야."

"……네에?"

"헐!"

"거기다 존이라는 구역을 넘어가면 추가요금을 내야 해."

이게 가장 문제다.

이 점을 알고 있을 제작진은 숙소를 런던 외각에 얻었을 확률이 컸다.

그제야 런던의 물가를 알아차린 아이들이 경악하며 나연석을 쳐다 보았다.

찔끔한 나연석이 급히 작가를 불러 무언가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기꾼."

"응. 저 사람이 피디계의 사기꾼이라고 불려. 예능 보면 출연자들 골탕 먹이는 피디들 있잖아? 다 저 사람한테 배웠다고 보면 돼."

"와, 나쁘다."

"욕해도 돼요?"

"응. 해. 삐 처리 해 줄 거야."

다시 허탈하게 웃은 진호는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게?"

"렌트해야죠."

다섯 명이라면 그 편이 더 쌌다.

"렌트?"

놀랐던 곽종훈이 이내 엄지를 치켜세웠다.

제작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굿 초이스! 그런데 운전할 줄 알아? 영국은 차선이 반대잖아. 국제 면허증은?"

"혹시 몰라서 한국에 있을 때 발급해 뒀죠. 그리고 차선 문제는 안전운전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아."

진호는 나연석을 힐끔거렸다.

혀로 입술을 핥으며 눈을 가늘게 떴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편하기는 하겠는데, 재미없겠다.'

디올, HU 에이전시, LVMH. 이들을 통해 저가의 렌트카 업체를 알아내거나 차량을 공짜로 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저렴한 승용차부터 최고급 중형 세단까지.

하지만 그래서는 재미가 없다.

그렇기에 곽종훈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 터였다.

진호는 공항 안에 있는 렌트카 업체들을 주욱 둘러보다가 눈을 빛냈다.

'아, 저기가 괜찮겠다.'

진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거침없는 그의 행동에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진호야, 아는 곳이야?"

"아뇨. 그냥 촉이 온 달까요?"

"촉?"

실패하면 그런 개쪽도 없기에 진호는 말을 아낀 진호는 렌트카 업체 부스 앞에 섰다. 카메라가 등장 하자 깜짝 놀랐던 다른 부스의 렌트카 업체 직원들이 아쉬워했다.

"안녕하세요."

진호는 인사를 하며 존재감을 모두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손……."

카메라가 다가온 줄도 모른 채 일을 하던 30대 여직원은 고개를 든 모습 그대로 얼어 버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미남이 코앞에서 빛을 뿜고 있었다. 진호는 속으로 씩 웃으며 겉으론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여성의 두 볼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그제야 진호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 알아차린 나연석이 입을 떡 벌렸다.

"큼, 어서 오세요, 손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여직원의 목소리는 굉장히 나긋나긋했다.

진호도 활짝 웃었다.

"네. 안녕하세요. 저희가 한국에서 영국을 촬영하고자 왔는데, 이렇게 다섯 명이 탈 차를 일주일 동안 빌리고 싶어서요."

나연석은 경악했다.

그는 급히 작가를 보았다.

'쟤 왜 저렇게 영국식 영어를 잘 해?'

'그, 글쎄요?'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는 꽤 차이를 보이기에 그로 인해 생길 자그마한 에피소드를 기대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진호는 뒤에서 생겨나는 웅성거림을 무시하며 말을 이어 갔다.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차량이 있을까요? 예산은 120파운드예요. 꼭 그 안에서 빌리고 싶어요. 그럴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안 됩……."

"정말요? 진짜요?"

진호의 얼굴이 울 듯 일그러졌다.

"아, 아니 그게…… 음……."

여직원은 갈등했다.

120파운드. 한화로 약 17만 원밖에 안 되는 액수였다.

진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끌어왔다.

순간 그녀의 손이 물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퍼드득 흔들렸지만, 진호는 절대 놓지 않았다.

"허름한 승합차라도 괜찮아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딱 500파운드로 저희 다섯 명이 일주일 동안 생활해야 해서 그래요."

"어, 그게 음……."

"제가 여기 홍보도 많이 할게요. 어떻게 안 될까요?"

진호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결정타였다.

순간 그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호는 혹시 몰라 발만 움직여 뒤에 선 소년의 발끝을 툭툭 두드렸다. 신호를 받은 세 아이가 급히 울상을 지었다.

서양인에게는 언제나 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동양인, 그리고 홍보.

"……120파운드라고 했죠?"

"여기요!"

진호는 혹여 마음이 바뀔까 얼른 지폐를 빼서 넘겨주었다.

"잠시만요."

타다다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린 그녀는 곧 영수증을 출력해 무언가를 적어 진호에게 건넸다.

진호는 영수증에 적힌 숫자를 보곤 배시시 웃었고, 여직원도 싱긋 웃었다.

"즐거운 런던 여행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론! 9번 차예요!"

"알았어!"

"저분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손가락 하트를 보여준 진호는 남자 직원을 따라나섰고, 사람들도 다급히 그 뒤를 따랐다.

남자 직원이 보여준 차는 새것처럼 보이는 9인승 승합차였다.

주의 사항을 알려 준 남자 직원마저 떠나자 곽종훈이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진호는 그 손바닥에 하이파이브를 했다.

짝!

진호는 눈치껏 사정을 짐작하고 흥분한 아이들과도 하이파이브를 했다.

"아니, 와! 이게? 허어……."

나연석은 도저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진호야! 그 외모와 연기력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거야?"

"네? 뭐가요?"

"아무리 그래도 사기는 치면 안 되지."

"사기요? 제가 사기를 쳤던가요, 대표님?"

"사기라니! 진호, 너 사기 쳤어?"

"그럴 리가요."

"와……."

나연석을 그 천연덕스런 표정에 말을 잃었다.

다른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500파운드며, 방금 한 하이파이브며,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며,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뭐부터 말을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냥 헛웃음만 나왔다.

"……카메라팀, 차량에 카메라 설치하세요."

진호는 나연석을 향해 씩 웃어 주었다.

부우웅!

승합차를 운전하는 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와!"

"우와!"

생전 처음 보는 런던의 풍광에 감탄을 터트리는 아이들 때문이다. [스킬 : 지성이면 감천이다]를 얻은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에 도착 했을 때, 자신의 모습과 똑같았다. 이국의 풍경에 피로를 잊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절로 아빠 미소가 그려졌다.

"이야, 대체 얼마를 아낀 거야?"

"12만 원이요. 진짜 엄청나게 세이브했죠."

아이들도 놀라 이쪽을 봤다.

12만 원이면 그들의 석 달치 용돈보다 많았다.

"크으, 앞으로 이런 방송 찍을 땐 무조건 진호를 데려와야겠네. 나 피디, 보고 있어?"

나연석과 제작진은 미리 렌트한 차량을 탄 채 쫓아오고 있었다. 진호는 백미러로 아이들을 보았다.

"너희도 성인 되면 바로 운전 면허부터 따. 나중에 국제 대회에 나가거나 너희가 번 돈으로 부모님 모시고 해외 여행 갈 때, 면허가 있으면 이렇게 교통비를 아낄 수 있거든. 지금이야 우버가 활성화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대로 움직이려면 차량을 렌트하는 게 좋아."

"……국제 대회."

순간 아이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네!"

"좋은 팁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

"물론 이렇게 싸게 빌리려면 형 처럼 잘생겨야 하겠지만."

"……그런 팩폭은 하지 않는 거 예요."

"팩폭 금지!"

"말도 폭력입니다!"

"왜? 형은 학창 시절에 너희보다 두 배는 더 쪘어. 너흰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야."

"헐, 진짜요?"

"응. 물론 긁지 않아도 결과를 알 수 있는 복권도 있긴 하지만."

"아, 형!"

숙소로 향하는 승합차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곽종훈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곽종훈의 표정도 썩 좋지 못하다.

차가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빌딩이나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의 층수가 점점 낮아지고, 또 서로 간격도 멀어졌다.

아직 이 의미를 모를 아이들만 질리지도 않는지 바깥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장을 봐 오길 잘했네요."

"그러게."

혹시 몰라서 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그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아, 도착했다."

미리 도착한 몇 명의 제작진이 마중 나와 있는 숙소는 2층 주택이었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주택.

마당 한구석에 거슬리는 게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내부도 일반 가정집과 다를 게 없었다.

"와!"

"우와!"

아이들이 감탄해 집 이곳저곳을 둘러볼 때, 진호와 곽종훈은 안으로 들어오는 나연석을 보았다.

나연석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결국, 제시간 안에 오셨네요."

"……그거 알아? 당신 참 나쁜 사람이야."

나연석이 제한한 시간까지 딱 20 분 남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절대 도착하지 못했을 거리.

아니, 어떻게 도착했더라도 장은 못 봤을 터였다.

즉,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은 쫄졸 굶어야 한다는 말이다.

곽종훈은 그걸 꼬집었지만, 이런 말을 많이 들어온 나연석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선물이나 줘."

"뭐가 그렇게 급하세요. 일단 짐 푸시고, 식사도 하신 다음에 보면 되잖아요."

"시끄러워! 그사이에 또 무슨 수작을 부릴 줄 알고!"

"저희가 이렇게 신뢰를 받지 못 할 줄은 몰랐네요."

"신뢰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줬어야 신뢰를 하지, 이 사람아! 헛소리 말고 얼른 내놔."

"흠, 어쩔 수가 없네요."

"진작에 그럴 것이지."

"후후, 그럼 잠시 밖으로 나와 주세요."

순간 진호는 불길해졌다.

"잠시만요."

"네?"

"설마 그 선물이란 게 밖에 놓인 그건 아니죠? 부직포로 덮어 놓은."

나연석과 제작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이구, 봤어?"

"……멱살 잡아도 되나요?"

"지금부터 절대 카메라 끄지 마!"

"뭐야? 뭔데? 저 인간이 또 뭔 짓을 한 건데?"

"……보시면 알 거예요. 전 차마 볼 수가 없을 것 같네요."

"……나 피디! 또 뭔 짓을 한겨!"

"억울합니다, 대표님. 전 정말 억울해요. 저희 제작진은 정말 정성을 다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곽종훈은 나연석과 진호를 번갈아 봤다.

"……선물 아니기만 해 봐라."

곽종훈은 현관을 나섰고, 진호의 손짓에 세 아이도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게 저희 제작진이 준비한 선물! 밀가루입니다. 내일부터 여러분은 런던에 체류하는 동안 이 밀가루를 모두 소모하셔야 합니다."

"……에엑!"

"끄허헉?"

파란 부직포에 덮여 있었지만, 높이가 허리까지 왔던 그것.

처음엔 시멘트라고 오해를 했었던 그것.

못해도 20포대는 되어 보였던 그것.

그것은 밀가루였다.

그것도 20킬로그램짜리 포대로 말이다.

"이게 어떻게 선물이야! 이 양반아!"

곽종훈의 외침이 진호 자신의 생각이었다.

진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그래도 스킬 해금은 제대로 하겠네.'

파티시에 관련 스킬을 해금하려면 밀가루가 무척이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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