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54화 (154/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4화

2. 빵의 나라

촬영 시작은 10월이었다.

2학기 중이라서 학생들이 걱정되었지만, 오히려 그들과 학교에서 적극 찬성했다고 한다.

참가자는 고르고 골라 총 세 명을 추렸다고 들었다.

"냐아앙."

커다란 털 뭉치 하나가 집안을 굴러다녔다.

"……야, 돼냥이."

"냥?"

"그 말을 알아들으면 안 되지, 인마."

진호는 한숨을 내뱉었다.

새끼일 적 그 귀엽던 하양이는 어디 가고, 집안을 굴러다니며 먼지를 청소하는 잉여 돼지 고양이만 있었다.

"우리 운동할까?"

"하악─!"

펄쩍 뛴 하양이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이럴 때만 재빨랐다.

뒷목을 잡은 진호는 옆에 앉아 거실 TV를 시청하는 어머니 나진희를 보았다.

"뭐? 왜?"

돌아보지도 않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아닙니다."

무려 세 달을 해외에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최소한 달을 해외에 있어야 한다.

그 탓에 어머니의 신경은 한껏 예민해진 상태.

"흥."

그래도 잔소리는 안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일본에서 스케줄을 마친 이후부터 지금까지 기본적인 스케줄을 제외한 모든 섭외를 거부하며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고, 애교도 피우며 아들 노릇을 톡톡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힘을 뺀 진호는 소파에 누웠다.

머리는 어머니 쪽을 향해 두었다.

귀에 들어오지 않는 TV 소리가 넓은 거실을 울렸다.

피곤하지도 않은데 자꾸 눈꺼풀이 감겨 왔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고?"

"빵이라니까 프랑스나 이탈리아 정도겠죠."

나연석은 그답게 끝까지 목적지를 말해 주지 않았다.

"……오늘 언제 가는데?"

출발이 오늘이었기 때문에 억지로 집에 있었다.

"두 시간 뒤에 나가면 돼요."

"조심히 다녀와."

"네, 걱정 마세요."

대화는 다시 끊겼다.

진호는 감겨 오는 눈꺼풀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며 어머니의 다리에 손을 얹었다.

스윽!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머리를 어루만지는 게 느껴졌다.

편안한 미소를 지은 진호는 잠시 어머니의 온기 속에서 잠시 잠을 청했다.

* * *

나연석은 카메라 앞에 멀뚱히 서 있는 세 명의 학생들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이럴 줄은 알았지만…….'

오디오가 너무 비었다.

'차라리 핸드폰이라도 만지고 있지.'

그랬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윽박을 지르거나 어떻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다. 그건 나연석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나연석은 몇 번이나 시계를 쳐다 보았다.

"피디님, 진호 씨 왔어요."

고개를 번쩍 든 그는 오늘도 자체 발광 미모를 뽐내는 진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오디오가 차게 생겼다. 그의 두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소집 장소는 서울역.

지방에서 올라오는 두 학생을 위한 배려였다.

두 학생뿐만 아니라, 나머지 학생도 먼저 도착해 있었다.

카메라 때문인지 잔뜩 얼어 있는 세 명의 학생들은 모두 남자였고, 셋 다 인상이 동글동글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형제라고 오해할 것 같았다.

'귀여워라.'

"어서와요, 진호 씨!"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감상을 떠올리던 진호는 조연출의 격한 인사에 눈동자를 굴렸다.

"왜 이렇게 반겨 주세요?"

그 나연석 사단이다.

좋은 감정보다는 의심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보니 반가워서 그렇죠."

'아닌 것 같은데…….'

"여권하고, 지갑 주세요."

"벌써 가져가세요?"

"카메라 돌고 있잖아요."

입을 삐죽거린 진호는 지갑하고 여권을 내밀었다.

"숨긴 돈은 없죠?"

"없습니다."

"……나중에 발각되면 정말 혼날 거예요."

진호는 조연출을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얼마나 속이는 사람이 많았으면…….'

물론 자업자득이었지만 말이다.

"어흠, 가져갈 짐은 그게 전부인 가요?"

조연출의 눈이 의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설마 제가 이상한 걸 가져왔을까 봐요."

"절차예요, 절차. 어차피 숙소에서 확인할 거니까 지금 보여 주진 않으셔도 되요."

그건 다행이었다.

속옷 같은 민감한 내용물이 담긴 캐리어를 이 사람 많은 서울역에서 오픈할 순 없었다.

몇 차례 규칙을 들은 뒤에야 진호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호?'

"안녕?"

"아, 안녕하세요."

"헐, 이진호다."

"형이라고 해야지, 인마. 아무튼 반가워. 난 이진호라고 해."

화들짝 놀란 아이가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이 너무 순수해 보여 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소년의 머리를 헝클이고 말았다.

"에헤헤. 죄송합니다."

'애들은 착해 보이네.'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두 남학생은 마치 강아지 같았다.

"죄송하긴,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다들 이름이 어떻게 돼? 아, 반말해도 되지?"

고개를 끄덕인 셋은 소심하게 자신들의 이름을 밝혔다.

씩 웃은 진호는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너희 진짜 빵을 좋아 하는구나?"

"……네?"

셋 모두 희미하게 빵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아침나절 동네 빵집 앞을 지날 때 나는 그 냄새.

빵이 만들어지는 공간에 오래 머물렀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아이들과 가까이 섰을 때 놀랐던 것이다.

십 대에 이런 냄새가 몸에 배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으니까.

이런 진호의 설명에 그들은 깜짝 놀라거나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건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세 학생은 이내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기쁘면서도 슬퍼하는 그런 미소였다.

진호는 그 의미를 알아차렸지만, 외면해 주었다.

"그리고 빵이 주식이지? 간식으로도 빵 먹지? 빵이 질리지가 않지?"

셋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음, 이 형의 별명이 뭔지 알아?"

십 대 아이들에게는 조금 예민한 문제였기에 진호는 일부러 말을 돌렸다.

"코난이요, 연예계 코난."

"그래서 그런 거야."

"네?"

"더 이상 묻지 마. 다쳐."

아이들은 어이없다는 듯 보았지만, 진호는 무시했다.

'어떻게 뽑았는지 모르지만, 제대로 뽑으셨네.'

학생 선발은 극비리에 치러졌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작진 전체가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배경이 없는 저소득층에 대회 입상 경력이 있는 아이들.

이것이 선발의 기본 조건이라고 했다.

'사생활은 차차 알아 가면 되는 거고.'

"아침은 먹었어?"

시간이 벌써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머뭇거린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먹었어? 피디님이 뭐 사 주셨어?"

"지, 집에서 먹고 왔어요."

나머지 두 명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여기 근처에 육회비빔밥 잘하는 곳 있는데. 거기서 먹지. 저기 피디님이 사 주셨을 텐데."

셋은 전혀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호야, 그런 나쁜 짓은 가르치는 거 아냐."

첫 미팅 때, 나연석은 말을 편하게 놓기로 했다.

"헐, 그럼 이렇게 귀여운 애들을 안 사 주시려고 했어요? 그 멀리서 아침부터 힘들게 왔는데? 와, 진짜 나쁜 분이시네. 이럴 거면 지갑을 빼앗지 말든가. 그치?"

세 학생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연석은 당황했다.

"어?"

갑자기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 너무 바쁘셔서 까먹으셨구나! 그렇죠? 얘들아, 피디님이 맛있는 거 사 주신대! 자, 박수!"

아이들은 얼른 박수를 쳤고, 나연석은 입을 쩍 벌렸다.

분명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는데, 코를 베여 버렸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을 보니 못 사 준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그는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뭐가 먹고 싶은데?"

이번엔 진호가 놀랐다.

아무리 의도 했다지만, 출연자를 골탕 먹이는데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나연석 피디가 이렇게 순순히 사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뿐,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너희들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무거나와 빵만 빼고 말해."

당황한 셋은 서로를 보았다.

그러나 입을 열진 못했다.

진호는 자꾸 눈치를 보는 아이들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카메라 앞이라서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은 거다.

그게 훤히 보였지만, 진호는 재촉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기다렸다.

결국 셋은 합의를 보았다.

"그…… 아이스크림 먹어도 될까요?"

진호는 환하게 웃었다.

"오케이, 아이스크림! 아, 저기 가게 있네. 가자."

"네?"

진호가 가리킨 아이스크림 체인점의 상표를 본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괜찮아. 저기도 맛있어."

그렇게 일축한 진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머뭇거리던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뒤를 따랐다.

"싫어하는 맛있어? 없으면 내 마음대로 시킨다?"

가게 내부를 신기하다는 듯 둘러 보던 아이들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 있어."

진호는 주문대로 향했고, 나연석이 따라왔다.

"잘했어."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뜬금없는 말이 아니었다.

진호는 배시시 웃었다.

"피디님도 나이스. 방금 전은 정말 쿵짝이 잘 맞았죠?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연석은 피식 웃었다.

아니다. 오히려 나연석 자신이 할 말이었다.

진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세 아이들은 서로 데면데면했다.

서로 말도 섞지 않았고, 어른들 눈치만 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진호가 등장해 단숨에 분량을 뽑아 냈다.

아이들은 다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오프닝으로 써도 손색이 없는 자연스러운 그림이었기에 너무도 고마웠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아이들이 살아야 저도 살잖아요."

프로그램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예능이다. 출연자 모두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핵심인 아이들이 얼어 있어서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애는 애처럼 해맑아야죠. 뭐 사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힘들다고 징징거리기도 하고."

"오, 프로 방송인인데?"

"칭찬해 주셔도 안 속습니다."

"속이긴 내가 뭘 속여?"

"그래서 목적지가 어디라고요?"

"……어흠흠."

나연석이 슬그미니 물러나자 진호는 눈썹을 찡그렸다.

지이잉.

곽종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대표님. 도착하셨어요?"

-어디여? 왜 아무도 없어?

"안쪽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어요. 나 피디님이 사시는 거예요."

-아, 그래? 그럼 난 체리체리쥬 빌레! 작은 걸로.

"옙!"

진호는 얼른 추가 주문했다.

잠시 후, 가게로 들어온 곽종훈이 세 아이들의 동글동글한 인상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아빠와 아들 셋 같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모두 비운 그들은 공항 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 * *

비행기표를 손에 쥔 진호는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나연석을 노려봤다. 곽종훈과 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빵의 나라라면서요."

"거기도 빵 유명해."

"전혀 안 유명한데요."

"검색해 봐. 진짜 유명해. 종류도 많아."

"유명하긴!"

곽종훈이 뒷목을 잡으며 외쳤다.

"주거 공간 위주로 발전되었던 그 나라에서 애들이 무슨 빵을 배우겠어. 아니, 어떻게 골라도 이런 곳을 고르냐. 차라리 인도가 낫지!"

아이들도 이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연석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인도가 후보에 오르긴 했습니다만, 치안 문제가 있어서 제외시켰습니다."

진호는 지금 그게 할 말인가 싶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라면서요."

"요즘 미세 먼지 많은 한국에 비하면 웬만한 곳은 다 공기 깨끗하잖아. 아, 중국과 일본은 빼야겠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이쪽을 찍고 있는 카메라의 배터리를 다 뽑아 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나 피디! 정말 이럴 거여! 그냥 여기 말고……. 그래, 차라리 일본 가자. 일본도 빵 괜찮아. 아님 우리나라에서 찍어! 우리나라에 잘 하는 빵집이 얼마나 많은디!"

곽종훈이 방방 뛰었다.

진호도 격하게 동감했다.

'그래, 한국인에게 제일 잘 맞는 빵은 누가 뭐래도 한국 빵이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라는 아니었다.

진호는 다시 티켓을 바라보았다.

"하아,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하필이면……."

"그려! 밀가루가 주식인 그 많은 나라 중 하필이면 요리 빈국인 영국이 웬 말이여─!"

그랬다.

그들이 향할 곳은 요리의 불모지 영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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