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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52화 (152/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2화

그때도 저렇게 서 계셨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젊음의 열기를 느끼며.

'우연 참, 난 진짜로 배우인가?'

이번에도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만나게 되었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의 옆에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앉아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꼬리를 맹렬히 흔들고 있다는 것.

'안길까? 말까? 나 좀 봐줘.'

참 골든 리트리버다운 생각이었다.

진호는 유키 구라모토도 이쪽을 바라보곤 놀라자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했다.

당황했던 유키 구라모토가 이내 푸근히 웃었다.

"어멋?"

"헛!"

우에토 유리와 마츠다 히로 부부도 진호가 응시하는 곳을 보곤 깜짝 놀랐다. PD와 제작진도 마찬가지다.

"잠시만요."

양해를 구한 진호는 그에게 다가갔다.

촬영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분분히 비켜섰다.

"잘 계셨어요, 선생님? 그렇지 않아도 휴일에 찾아뵈려고 했어요."

"나야 언제나 똑같지. 이 아이가 생겼다는 것만 빼고."

"실제로 보니까 더 귀여운 아이네요."

"그렇지? 네 덕분에 삶에 활력이 생겼어."

강아지를 키워 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제안한 건 진호였다.

씩 웃은 진호는 쪼그려 앉아 강아지 타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꼬리가 방금 전보다 두 배는 빨리 움직였다.

"안녕? 타로, 손."

"월!"

"아니, 오른손."

턱!

오른발이 진호의 손 위에 얹어졌다.

"왼손, 엎드려, 빵! 잘했어."

진호는 배를 드러낸 타로의 배를 강하게 문질렀다.

"헥헥헥! 월!"

"동물마저 홀릴 줄은 몰랐군."

"제 매력이 동물이라고 가리겠어요?"

"하하하핫!"

"흐흐흐, 그런데 자주 나오시나 봐요?"

몰린 사람들 모두 유키 구라모토를 보며 놀라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곳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그는 다시 푸근히 웃었다.

"좋잖아."

짧은 한마디는 참 많은 뜻을 담고 있었다.

"좋죠."

"그런데 방송이야? 배우분도 계시는군."

"네, 잉꼬부부와 삼각 데이트예요."

"호, 그래?"

"원래는 저 피아노를 친 후에 마츠다 씨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계시니까 포기하려고요."

진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유키 구라모토를 보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안 본 사이에 아주 못되졌어."

"하핫."

"내 몸값이 꽤 비쌀 텐데, 감당할 지 모르겠군."

"괜찮아요. 우에토 씨도 비싸고, 마츠다 씨도 비싸고, 저도 비싼 걸요."

"……암튼 그놈의 넉살은."

"하하핫!"

진호는 우에토 부부와 제작진을 향해 손짓을 했다.

깜짝 놀란 그들이 다급히 다가왔다.

"마츠다 히로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키 구라모토는 세계적인 거장이다.

세계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인물을 말할 때 무조건 언급되는 이름이었다.

마츠다 히로도 그의 앞에선 거만함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에토 유리예요. 정말 팬이에요!"

PD와 다른 연출진도 정말 정중히 인사를 했다.

PD는 당장이라도 진호를 보며 끌어안을 듯 눈물을 글썽였다.

진호는 팔을 두드리는 유키 구라모토를 보았다.

"날 끌어들인 값을 해 봐. 못하면 출연 안 할 거야."

그의 눈이 장난기를 머금고 있다.

"이런, 최선을 다 해야겠네요. 기타를 칠까요, 피아노를 칠까요?"

"피아니스트에게 뭘 물어?"

그는 구에서 가져다 놓은 공용 피아노를 턱으로 가리켰다.

"당연히 피아노지. 어디 그 실력 한번 실제로 들어 보자고."

"선곡은 제 마음대로 할게요."

"그럼 당연하지. 원래 선곡은 공연자 마음이야."

정말 웃을 수밖에 없는이었다.

진호는 몰리는 카메라와 시선에 어느새 비어 버린 피아노에 앉았다.

띵! 띵!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업라이트네.'

그때는 몰랐다.

업라이트가 무엇인지, 그랜드가 무엇인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뭘 칠까?'

전신에 꽂히는 시선들이 따갑다. 등 뒤에서 흥미 가득 쳐다보는 시선들이 장난기를 톡톡 자극했다.

……히죽.

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걸 쳐 볼까?'

그는 건반 위에 열 손가락을 모두 얹으며 가볍게 눌렀다.

♩♪♬♬♩

사람들은 살짝 놀랐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 때문이다.

무더운 어린 날의 여름 방학, 창 문을 모두 열어 놓은 거실에 속옷만 입고 누워 선풍기 바람을 쐬며 보았던 그 영화.

볼 것이 없어 틀어 놓았다가 어느새 제대로 앉아서 뚫어지게 쳐다봤던 그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게 된 그 영화의 OST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오랜만에 어릴 적으로 돌아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순수한 관객들은 그랬지만, 뮤지션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진호의 연주는 중간중간이 비어 있다.

마치 피아노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 겉멋에 빠져 연주하는 것처럼.

우에토 유리도 그렇게 느꼈다.

명색이 가수로 데뷔했고, 남편이 뮤지션이다.

음악을 듣는 귀는 있었다.

"이상하네…… 진호 씨의 연주는 이렇지 않은데?"

The J 때문에 일일 데이트 섭외를 허락한 그녀는 진호에 대해 제법 많은 걸 조사했다.

피아노 연주와 기타 연주는 너무 대단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일본에서 뮤지션이라고 방송에 나와 떠들어 대는 그 어떤 가수들보다 대단했다. 아니, 차원이 달랐다.

"허헛."

"……히짱?"

우에토 유리는 어이없다는 듯 웃는 자신의 남편을 보며 의아해 했다.

'일부러 비워 놓다니…….'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유키 구라모토가 연주하라고 말했고, 진호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장난을 치고 있다.

"헉! 설마!"

그는 다급히 진호를 보았다.

진호는 긴 피아노 의자의 반절에 해당하는 공간에만 앉아 있었다.

"진짜로?"

마츠다 히로는 유키 구라모토를 보았다.

그도 어이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방금 전히로 자신이 깨달은 것을 이미 깨달았다는 눈빛이다. 마츠다 히로는 진호를 향해 공손이 손을 내밀었고, 졌다는 듯 고개를 저은 유키 구라모토가 발을 뗐다.

사람들은 다시 숨을 죽였다.

털썩!

"암튼 그놈의 장난기하고는……."

"여름의 밤이잖아요. 모두가 웃고 즐기는. 흐흐흐."

"흥. 따라와 봐."

콧방귀를 뀌었지만, 유키 구라모토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이 음율의 빈자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진호가 연주하는 OST와는 전혀 다른 음표였다. 따라와 봐의 뜻을 알아차린 진호는 환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서 곡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스킬 : 옥탑방 스타]와 [스킬 : 마음을 울리는 노래], [스킬 : 오만한 천재]가 그걸 가능케 했다.

원형만 놔둔 채 청년과 노인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뮤지션들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

따당당!

"……휘이이이익!"

"브라보!"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둘은 서로를 보았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웠다.

눈빛으로 통한 순간 진호는 건반을 빠르게 두드렸다.

순간적으로 듣는 이의 숨을 틀어 막아 버리는 속주.

왕벌의 비행.

하지만, 단 3초뿐이었다. 3초만 친 진호가 유키 구라모토를 보았다.

사람들이 놀라 다시 숨을 죽일 때, '참 늙은이를 고생시킨다'며 흘겨 본 유키 구라모토가 건반을 빠르게 두드렸다.

그도 3초였다.

진호보다 약간 느린 연주.

그런데 청중은 연주가 빠르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히죽 웃은 진호는 건반에 손을 얹었고, 유키 구라모토도 건반에 손을 얹었다.

빠른 연주에 공기가 뜨겁게 달아 올랐다.

느린 연주에 공기가 차갑게 식었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빠져들었다.

스윽!

우에토 유리는 마츠다 히로의 허리를 감쌌다.

"히 짱, 오늘 아기 가질까?"

"안돼. 힘들어."

"히 짱이?"

"네가."

역시 귀여운 남편이다.

우에토 유리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고, 마츠다 히로는 콧방귀를 뀌며 둘의 연주를 바라봤다.

이 모든 걸 찍고 있는 PD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방방 뛰었다.

그 누구라도 섭외할 수 없는 조합, PD 인생 최고의 장면이 지금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 * *

연주회는 많이 하지만, 방송에 잘 나오지 않고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는 편이라 은둔자라고도 불리는 유키 구라모토가 한국에서 온 배우와 합주를 했다.

일단 유키 구라모토라는 이름 때문에 기사를 클릭해, 영상을 찾아 본 사람들은 경악과 찬사를 보냈다.

-오늘 우린 완성된 젊은 천재를 보았다.

-말이 안 된다. 20대 초반은 그 어떤 천재라도 심상을 만들어 가는 시기다.

-구라모토도 속주를 할 수 있구나.

-저게 대단한가?

┗대단하냐고? 지금 당장 세계 콩쿨 대회에 나가도 우승이야! 왜 배우 따위를 하는 거지?

┗안 들려? 그 유키 씨와 대등한 연주를 하고 있잖아! 그것도 뉴에이지로!

┗실시간으로 편곡해서 리드하고 있어. 유키 씨를!

-난 왜 저 자리에 없었던 거지?

-나는 오늘 만화주인공을 보았다.

┗저건 소설 주인공이지. 선이 없는 3류 막장소설.

┗eeeeee

┗eeeeeeeee

-히로 씨가 인터뷰 했어! 완숙한 천재를 봤다고!

일본의 인터넷이 삽시간에 뜨거워졌다.

자칭 타칭 음악 전문가들이 나선 것도 모자라 아침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평론가들을 데려다 이 일을 심도 있게 다루며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유키 구라모토라는 이름은 그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섭외 요청이 미친 듯 쏟아졌지만, 진호는 그 모든 걸 고사하며 묵묵히 스케줄을 진행했다. 뮤직스테이션에서도, 또 우에토 유리와 함께 출연한 토크쇼에서도 그 부분만 중점적으로 물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약간은 직설적인 화법들.

궁금한 점을 묻는 게 아니라 자칫 기분이 상할 만큼 경우 없이 물어 오는 MC들의 성향이 살짝 언짢았다.

어느 한 곳 가리지 않고 다 그렇게 물어 오니 조금은 짜증도 났다. 유키 구라모토가 다음 날 바로 해외로 출국한 이유가 있었다.

-꼭 연락하는 거야? 자주 연락해야 해?

"그럼요."

-……아, 진 짱과 연기하고 싶다. 연인으로!

"음. 히로 씨가 허락해 주실까요?"

-우리 히짱은 마음이 참 넓어서…….

-안돼. 절대 안돼.

-히 짱, 일어났어요?

-하기만 해. 집에서 내쫓을……!

-나중에 연락할게!

뚝 끊긴 전화에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참 재밌는 부부가 아닐 수 없었다.

진호는 핸드폰으로 하시마 료를 검색했다.

"에휴."

유키 구라모토과의 재회 이후,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하시마 료는 두 사람을 언급하며 친한 사이라고 했다.

그 음악 공원 근처에 하시마 료의 그룹의 숙소가 있으니 대중들은 굉장히 신빙성 있게 받아들였다.

"차라리 비즈니스 관계라고 하지."

"그랬으면 혹여 도와줬을지도 모를 텐데요."

진호가 택한 방법은 철저한 무시였다.

다미앙이 티켓을 흔들며 다가왔다.

"뭐, 됐어요. 어차피 손절했으니까. 그보다 한국은 좀 어때요?"

대중들 반응이 아니라 방송국의 반응을 묻는 거다.

유키 구라모토와의 길거리 합주 이후 한 달이 지났다.

"한 곳에서만 계속 콜을 해 오는 군요."

"……많이 줄었네요."

정말 다행이었다.

"어딘데요?"

이슈몰이만 생각하는 곳이 아니니, 영 아닌 프로그램만 아니라면 출연할 의향이 있었다.

그간 너무 오래 해외를 돌아다녔으니 이제 한국에서도 활동을 할 차례였다.

"나연석 PD입니다."

"……네?"

잠시 이해를 못했던 진호는 이내 입을 떡 벌렸다.

나연석 PD, 명실상부 한국에서 최고를 다투는 P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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