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24화
여가위. 누구나 인정하는 대감독이다.
그는 빛을 뿜으며 등장하는 진호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
독특한 아우라다.
'순수한 듯 보이면서도 사내답고, 사나운 듯하면서도 냉철하군.'
그런데 잠시 눈을 뗐다가 다시 보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굉장히 재밌다.
그런데 그렇게 느끼는 건 자신뿐 만이 아닌 듯했다.
오늘 초대를 받고 찾아온 사람들 모두 재밌다는 듯 웃으며 진호를 본다.
마작 테이블에 앉은 여가위는 옆에 앉아 마작패를 뚫어져라 쳐다 보는 장칭을 툭 쳤다.
"저 젊은 친구가 오늘 온다던 형님들의 손자입니까?"
"음?"
고개를 든 장칭이 진호를 보곤 환하게 웃었다.
"왔니?"
정신을 차린 진호도 환하게 웃었다.
"네, 할아버지."
진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진호입니다."
마작패를 만지던 육십 대 이상의 노인들이 미소로 반겨 주었다.
"여기 장칭 형님을 통해 보내 준선물은 잘 받았네, 소형제."
"아,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감독님."
"들다마다."
여가위뿐만 아니라 모두 고맙다는 듯 호의 어린 시선을 보내온다. 소형제, 진호는 이들과 미약한 끈이 이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워후.'
다들 은연중 풍기는 아우라가 만만치 않다.
눈빛도 나이에 맞지 않게 형형하다.
눈만 보면 이십 대의 청년 같다.
'거의 장칭 할아버지나 웨이양 할아버지처럼 성공을 하신 분들 같은데?'
성공한 사람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말투, 행동, 몸짓.
거침없고, 당당하다.
그러자 장칭과 웨이양이 왜 이들을 소개시키는지 알 수 있었다.
'꽌시를 만들어 주려는 거야. 안 그래도 되는데…….'
진호는 여가위 감독을 힐끔 보았다.
'아비정전과 중경삼림, 화양연화.'
그 외 작품은 그렇게 재밌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뚫어지게 쳐다 보시는지?'
너무 잘생겨도 문제였다.
그러나 영화 한 편 찍는데 몇 년이 걸리는 그와는 작업을 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진호와 여가위의 눈빛을 본 장칭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했다. 둘을 만나게 한 보람이 있었다.
"진호야, 마작은 할 줄 아니?"
사람들의 눈이 빛난다.
마작은 중국인 에겐 없어선 안 될 놀이다.
그리고 꽌시에서도 꼭 필요한 놀이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한 진호는 이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냥 모두 할아버지처럼 생각하자.'
진호는 관시보다는 그냥 좋은 분들을 소개받는 자리로 생각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온전히 살 것도 아니기에 딱히 필요 없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장칭과 웨이양을 꽌시의 상대로 보기 싫었다.
"음. 할 줄은 모르는데, 가르쳐 주시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음? 왜?"
"제가 숙달된 순간부터 여기 계신 어떤 분도 절 이기지 못할 테니까요."
이는 진심이자 진실이지만, 노인들에겐 귀여운 도발이었다.
잠시 침묵했던 노인들은 이내 재밌다는 듯 웃었다.
"호오. 소형제가 아주 당돌하구만."
"젊은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전! 이기시는 분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핫!"
"흐하핫!"
흐흐, 웃은 진호는 냉큼 장칭의 옆자리에 앉아 그의 어깨를 주물렸다. 모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웨이양과 그의 부인도 흐뭇하게 웃었다.
이 넓기만한 조용한 저택에 귀여운 손자가 생겨났다.
진호는 노인들을 정말 자신의 친 조부모님처럼 대했다.
노인들은 친손자 손녀보다 더 귀엽고 살갑게 구는 진호를 퍽 마음에 들어 했다.
주량이 좀 약한 게 흠이었지만 말이다.
"이건 할아버지들이 센... 끄응."
혀가 절로 꼬인다.
노인들은 독한 술을 큰 잔에 물 처럼 마셨다.
"그만 올라가렴."
진호는 장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더 마실 수 있지만, 어른들만의 대화를 나누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일 될게요.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꾸벅 허리를 숙인 진호는 비틀거리며 먼저 자리를 떴고, 노인들은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보았다.
"술버릇도 깔끔하군."
"예절도 우리 중화 인식이 아니라 꼿꼿이 한국식을 지켰어."
진호는 이게 한국식이라며 나온 음식을 맛있고 깔끔하게 다 먹었다. 이 자리가 꽌시를 위함임을 알았을 텐데도 말이다.
줏대와 소신이 제대로 박혀 있었다.
거기다 세상을 보는 식견마저 좋다.
"이렇게 순수한 의도로 어깨 안마를 받아 본 게 얼마 만인지."
노인들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돈과 권력은 자식의 효도마저도 불순한 의도를 가지게 만든다. 그러나 진호는 아니었다. 정말 순수했다.
진호 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여가위도 마찬가지다.
배우나 가수 중 영화의 '영' 자도 내색하지 않은 사람은 진호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둘 모두 좋은 손자를 얻었어. 축하하네."
"안 줘."
"끄응. 너무하는군."
콧방귀를 뀐 장칭이 여가위를 보았다.
"가위,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장칭과 웨이양이 가장 눈을 빛낸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둘을 이어 주기 위함이다.
"흠. 영감이 떠오르긴 하지만 저 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군요. 제가 소형제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순간 자존심이 상할 뻔했던 장칭과 웨이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네가 좀 느리긴 하지. 작품 하나 만드는데 몇 년. 쯧."
"그래서 왕우삼 형님이나 위강, 걸륜에게 맡겨 볼까 합니다."
영웅본색의 왕우삼, 무간도의 위위강. 배우이자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감독 자걸륜.
모두 국제적 명성이 대단한 감독들이다.
장칭과 웨이양이 흡족하다는 뜻 고개를 끄덕였다.
웨이양은 노인들을 보았다.
"그럼 외국 연예인에 대한 제제를 완화시키는 것에 동의하나?"
"저 아이와 저 아이의 팬클럽 몸 집을 더 키우기 위해서라면."
국제적인 뉴스로도 거론된 콘서트 후 깔끔한 뒤처리.
국격을 높인 행위이니 명분도 있었다.
"다른 배우와 가수 놈들과 그 팬 클럽도 배우는 게 있겠지."
자존심하면 중국이다. 누구와 비교당하는 걸 못 참는다. 그 성격이 이번엔 선순환이 되어 작용할 것이다.
"해외에 나가 나라 망신시키는 졸부 놈들도 배우면 좋을 테고."
노인들은 한마디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웨이양이 눈빛을 굳혔다.
"그럼 당 서기께는 내가 보고하지."
"음, 이 일로 문화 개방이 더 활발해지면 좋겠군."
언제까지고 뒤처질 수 없다. 받아 들일 건 받아들여야 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걸 까마득히 모르는 진호는 술기운에 곯아떨어져 코를 골 뿐이었다.
* * *
다음 날, 머리를 붙잡고 일어난 진호는 아침식사를 거하게 대접 받은 후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스케줄을 위해 떠났다.
장칭과 웨이양, 노인들 모두 아쉬워하며 배웅했다.
그렇게 또 3주가 흐른 뒤, 진호는 마지막 콘서트를 마치고 일본으로 향했다.
HU 에이전시 아시아 총괄지사 로비.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은 로비 안으로 들어서는 두 남성을 보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진호……."
"다미앙 캐스팅 디렉터."
마치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한 그들의 등장에 사람들은 다급히 길을 터야 했다.
누군가는 급히 몸을 숨기기도 했다.
진호는 로비를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도쿄의 시부야, 총 15층의 거대한 빌딩이 HU 에이전시 아시아 총괄지사의 소유다.
아시아 총괄지사는 이 15층의 건물 전체를 쓰고 있다.
"어떠십니까?"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허름한 사무실에서 시작해 빌딩의 한 층 전체를 빌리면서 다음엔 JH의 구사옥 같은 빌딩을 사무실로 사겠다고 다짐했다.
중국 투어를 하면서 그 목표에 한발 다가섰다.
"하핫. 저도 열심히 서포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이곳에 직원이 한 분 계시다고 했죠?"
"예, 최철규 씨라고 오늘 미팅 이후 만나게 되실 겁니다."
모두가 떠날 때 유일하게 남아서 다미앙을 보좌한 사람이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가족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기대되네요."
"이쪽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향한 그들은 아시아 총괄지사장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식은 땀을 흘리는 후덕한 덩치를 지닌 오십 대 백인 중년인과 프로모션 관계자가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환영합니다, 뮤즈. 아시아 총괄 지사장 빌 잭슨입니다."
"이진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진호 씨."
"일찍 오셨네요, 슈이치 씨."
프로모션 관계자는 일본 내 스케줄을 진행해 줄 사람이다.
HU 에이전시 아시아 총괄지사에서 고른 게 아니라 팀 이진호가 직접 고른 프로모션 업체의 대표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모이게 된 건 아시아 총괄지사장이 꼭 자신과 함께 스케줄 최종 점검을 해 달라고 사정을 해서 그렇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미앙이 예정 된 치프 디렉터 승진 후에야 그를 보게 됐을 것이다.
"스케줄은 전에 조율한 것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악수회, 허그회, 팬 사인회……."
프로모션 관계자가 스케줄을 줄줄 읊었다.
"뮤직 스테이션에서 현재 리메이크 앨범 중 가장 인기 있는 곡인 '내가 죽으려고 하는 것은'을 부르시고, 예능 3개에 출연하시면 됩니다."
"역시 일본은 신기하네요."
악수회와 허그회.
마치 기네스북 레코드를 갱신하듯 사담 없이 악수나 허그를 하는 걸로 끝인 행사다.
그런데 이게 엄청난 소득을 올린다.
추첨 방식이기 때문이다.
팬 사인회도 추첨 방식이다.
"겨우 이 정도로 만족을 할 수 있나요?"
한국에서 하는 팬 사인회는 기본이 20초 이상이다.
팬들과 악수나 허그도 하고 선물도 받고, 사담을 주고받다 보면 2 분을 넘길 때도 있다.
프로모션 관계자는 씁쓸하게 웃었다.
"혹시 더 추가하실 스케줄이 있습니까?"
"아,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요. 다미앙 씨는요?"
이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는데만도 약 한 달이 걸릴 예정이다.
9월 패션위크에도 참가해야 하고, 파리에서도 스케줄을 진행해야 한다.
"이견 없습니다."
다미앙은 아시아 총괄지사를 보았다.
입을 오물거리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터치도 안 하겠다는 소리다.
"이대로 진행하시죠."
프로모션 관계자의 눈에 아쉬움에 스친다.
중국에서처럼 콘서트를 해 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진호와 다미앙은 무시했다.
애초부터 The J 시청률 공약에서 출발한 스케줄이다.
형평성을 맞춰야 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이런 대형 수주를 맡겨 주셨으니 대접할 자리를 마련해야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앞으로 약한 달 동안 빼곡하게 잡힌 스케줄 중 여유롭게 시간을 낼 수 있는 시간은 오늘밖에 없는데, 오늘은 최철규와 인사를 한 후 곽주부, 곽종현 대표와 저녁 약속이 있다.
대접이라는 것도 딱히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일어서 악수를 하였고, 프로모션 관계자는 사무실을 나섰다.
"덕분에 편안 자리에서 스케줄을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뮤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보다…… 음. 아닙니다. 부디 몸 건강히 스케줄을 마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총괄지사장님. 저 먼저 내려갈게요, 다미앙 씨."
"예. 로비에 계시면 제가 최철규 씨와 함께 가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지사장실을 나섰고, 다미앙은 아시아 총괄 지사장을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진호와 계약을 하기 전 많은 걱정을 해 주었던 그다. 강하게 몰아칠 생각은 없었다.
"일단 치프 디렉터 진급 후 인사 이동에 관하여 이야기 나눠 볼까요? 다나카, 아구에로, 헨리……."
다미앙 자신이 진호를 선택하면서 엘리트 코스를 내려오자 배신을 한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앞을 가로막았던 옛 부하 직원들이자 캐스팅 디렉터들.
"그들을 라오스 지사로 파견했으면 좋겠습니다."
HU 에이전시 내에서는 무덤이라 불리는 라오스 지사.
다미앙이 그동안 남 몰래 닦아 놓았던 단죄의 철퇴를 꺼내 들었다.
아시아 총괄지사에 단둘만 있는 자리인 치프 디렉터는 이런 인사 이동을 요구할 권한이 있었다.
* * *
"철규 씨, 참 우직한 분이시네요."
진지한 정 대리와 비슷했다. 은혜를 아는 사람.
그와의 짧은 만남은 다음 만남을 기대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센스도 있고."
그는 다미앙이 일본에서 모은 2 기 연습생을 관리하는 한편 자신만의 모델들도 모집하고 관리했다. 그들 역시도 일본에선 충분히 먹힐 커머셜 모델들이었다.
혼혈이 많은 일본이다 보니 잘만 다듬으면 백인 모델 천지인 중국에서도 먹힐 것 같았다.
중국은 같은 급수의 모델이라도 동양인보다는 백인을 훨씬 더 선호한다. 실제로 그게 더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마냥 우직한 건 아니라는 소리다.
"제 후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훗날 제가 본사에 들어갔을 때 아시아나 남미를 컨트롤할."
"흐흐, 이럴 때 보면 다미앙 씨도 참 욕심 많다니까."
"하핫!"
"아, 여기 같네요."
진호는 일본식 포장마차의 천막을 걷으며 들어갔다.
오뎅에 튀김, 구이. 완벽한 일본 포장마차였다.
'와, 냄새.'
미치도록 좋았다.
일본 포장마차 특유의 인테리어가 냄새를 더욱 감미롭게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요식업자인 곽종훈이 미팅을 이런 곳으로 잡은 이유가 있었다.
"어! 여기야, 여기."
진호는 특유의 선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그를 보며 활짝 웃었다.
'과연 어떤 프로그램을 같이하려는 걸까?'
심장이 기분 좋게 박동하기 시작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