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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47화 (147/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22화

8. 일본에서

사람들이 가득 모인 홍커우스타디움.

줄을 선 사람들이 한곳을 힐끔힐끔 본다.

칠십 대의 백인 노인이다.

오늘 콘서트를 찾은 사람 중 외국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단연코 이질적인 존재였다.

당사자인 노인은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지 눈을 빛낼 뿐이다.

"LVMH의 뮤즈가 이 늙은이에게 어떤 즐거움을 안겨 줄지……."

상해 HU 에이전시 아카데미에 뿌려진 티켓을 강탈해 온 노인의 정체는 HU 에이전시의 이사다.

"아, 차례군."

그는 멍해 있는 스태프에게 표를 내밀며 웃옷을 벗었다.

입구에는 금속 탐지기가 있었다.

"야광 봉 사세요!"

"수건 사세요!"

"오늘만 파는 한정판 스냅백 사세요!"

"더우시죠? 시원한 얼음물 가져 가세요!"

'호오. 이게 그 굿즈라는 건가?'

호기심이 든 노인은 판매하는 굿즈를 모두 샀다.

그렇게 콘서트를 즐기러 온 노인 팬이 만들어졌다.

자리를 찾은 노인은 먼저 와 앉아 있다가 자신을 보곤 경악하는 패션 관련자들을 보며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텅! 텅! 텅!

관객이 모두 입장한 듯 불이 꺼져 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만 들릴 때, 서글픈 기타 선율이 흘러나왔다.

"호?"

명색이 브릿팝의 고향인 영국 출신이다.

연주에 담긴 내공이 어느 정도인 지는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었다. 그러며 들리는 노래.

-그녀가 떠나가요.

"음."

알 수 없는 중국어가 순간 호흡을 빼앗았다.

'이건 대체…….'

텅! 저 멀리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췄다.

"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악!"

함성이 온몸을 찢어 버릴 것 같다.

다급히 귀를 막았지만, 계속되는 함성이 피를 조금씩 달구고 있었다. 콘서트의 마력이다.

'허헛. 나도 아직 젊다는 건가?'

그보다 놀라운 점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사랑이 떠나가요

나는 바보처럼 멍하니 서 있네요.

이 커다란 함성을 뚫고 귀에 꽂히는 노랫소리.

함성을 강제적으로 잠재워 버리는 이 경이로운 성량에 노인은 진호가 왜 뮤즈라 불리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잔잔한 비트는 곡이 넘어갈수록 빨라져 갔다.

사람들의 몸짓은 자연스럽게 커져만 갔고, 콘서트장을 감싼 흥도 더욱 커졌다.

이젠 음악만 나와도 사람들이 방방 뛴다.

T자형 무대 양옆, 스탠딩석에 빼곡하게 선 팬들은 미치려고 한다.

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아, 좋다.'

온몸이 터져 버릴 듯하다.

진호는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환하게 웃었고, 비명 같은 함성은 더욱 커졌다.

"덥죠?"

네!

아니-!

"난 더워요. 아, 에어컨 달자니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나한테 너무 웃음 헤프지 마요. 나 스스로 정말 웃긴 줄 안단 말 이에요."

꺄아아아아아아!

"아, 진짜 쓰러지겠다. 그러나 여기서 끝낼 수 없겠죠?"

순간 그의 입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 콘서트의 백미가 코앞에 있다.

"네!"

진호는 VIP들만 모인 R석에 모인 사람들을 일견했다.

장칭과 웨이양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정력도 좋으셔.'

"나도 그래요. 그런데 이 열기를 좀 식힐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말만 들어 보면 쉬자는 뜻이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객석까지 닿은 고자형 무대 끝에서 있던 진호는 몸을 돌려 다시 스테이지를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좇았다. 누군가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서고, 누군가는 몸을 뒤로 젖히며 숨을 골랐다.

그 순간 진호는 입고 있던 땀에 흠뻑 젖은 상의를 찢듯 벗었다.

"헉!"

"으악!"

갑작스레 드러낸 알몸은 스크린을 통해 송출됐고, 모든 이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때, 뛰어 들어온 스태프가 들고 온 옷을 내밀었다.

슈트 상의다.

웅성웅성.

"모두 의자 아래를 살펴봐요."

의아해하며 의자 아래를 살핀 관객들은 곧 포장된 어떤 옷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음악이 흘러나왔다.

둠! 둠둠둠 둠둠둠 둠!

경쾌한 비트. 그들도 아는 노래였다.

브루노마스가 피쳐링한 마크 롭손의 uptown funk.

"뜯어 봐요."

그 말에 따른 사람들은 동요했다.

"헉?"

"이건 우비?"

"서, 설마?"

객석 입구들에서 호스를 든 사람들이 뛰어 들어왔다.

"입어요. 안 그러면 흠뻑 젖을 걸?"

싱긋 웃은 진호는 입을 크게 벌리며 악을 질렀다.

"다시 신나게 달려 봅시다! 으아아아아아!"

강제적으로 끌어 올리는 흥. 사람들은 급히 우비를 걸쳤다.

그 순간 무대 위, 조명 옆에 설치된 장치에서 물이 뿜어졌다.

파바바바바바!

순간 온몸의 열기를 적시는 시원한 물.

객석 게이트로 뛰어 들어온 스태프들도 객석을 향해 물을 쏘았다.

"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흥분이 급격히 고조되었다.

광란이었다. 모두 미쳐 날뛰고 있다.

진호는 천천히 걸으며 입을 열었다.

"This hit That ice cold! 아마 이걸 콘서트에 접목시킨 건 제가 처음이 아닐까 하네요. 이 중국엔 신세진 분이 너무 많아서 이런 작은 선물을 준비했으니, 모두 즐겁게 관람해 주세요! 우리 애들 데뷔합니다!"

씩 웃은 진호의 발이 크게 내디뎌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예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입고 무대 뒤에서 걸어나왔다.

노랫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HU 에이전시의 이사이자 전설적인 캐스팅 디렉터 노인 윌리엄 우드스미스는 T자형 무대를 보며 말을 잃었다.

지방시, 겐조, 펜디 등 명품 브랜드 옷을 입은 모델들이 무대를 워 킹하고 있다.

존재감을 죽인 진호가 그 선두에서 노래를 부르며 워킹하고 있다.

"런 웨이……."

쇼다. 패션쇼다.

세계적 명품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의 연말 빅토리아 시크릿 쇼의 하이패션 브랜드 버전이 지금 이 콘서트에서 벌어지고 있다.

맞다.

콘서트와 패션쇼의 접목은 오늘이 처음이다.

"미쳤군."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이 단숨에 식어 버렸다.

오싹할 만큼 추워졌다.

5만여 명이라는 관객에게 LVMH의 패션 브랜드를 각인시켜 버리는 기획.

내일 밤, 이 콘서트를 시청할 수 십 수백만 명에게 LVMH의 패션 브랜드를 각인시켜 버리는 기획.

"호오."

"어허헛!"

패션 관계자들이 허탈한, 놀라운, 식겁한, 경이로운 그리고 흡족한 표정들을 짓는다.

'그런데…….'

"디올이 안 보이는군."

디올의 뮤즈인 진호조차 디올의 옷을 입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낯빛이 검게 죽은 디올 차이나의 타오 사장과 LVMH 차이나의 임원에게로 향한다.

분명 신세진 사람이 많다고 했다.

"확인사살이군."

피식 웃은 그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호와 깊은 연관이 있는 중국의 대배우 장칭.

"그리고…… 광전총국 기관장 웨이양……."

'뮤즈가 웨이양과도 꽌시를 형성 했다니!'

그는 전율했다.

그는 웃고 있는 웨이양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허헛. 계속 면이 세워지는군."

정성이 듬뿍 든 선물에 최초의 콘서트. 그리고 최초의 콘서트 패션쇼다. 그 최초들을 중국에서, 그것도 자신이 찾아온 자리에서 해줬다. 그것도 신세진 분이 많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만큼 체면을 세워 주는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걸 자신과 꽌시가 형성 되지 않은, 아니 자신의 정체조차 제대로 모를 진호가 해 주었다.

웨이양은 타오 사장의 왼쪽에 앉아 있는 당 서열 107위의 중년인을 보았다. 자신과는 파벌이 다른이다.

그는 무척이나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모든 매체에서 디올을 제외 시켜 버린 웨이양 자신의 꼬투리, 혹은 진호의 꼬투리를 잡을까 왔다가 제대로 당해 버렸다.

'꽌시는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지.'

이렇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으니 타오는 이제 곱게 중국을 떠나지 못할 거다.

"자네 손자는 이런 인물이었나?"

"넘보지 마시게. 내 손자야."

"흐허헛!"

웨이양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전국 투어를 할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중국은 외국인에게 일정 숫자 이상의 투어 콘서트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서열이 높은 자신이라도 고칠 수가 없다.

"자네 손자와 가까운 시일 내에 식사하러 와."

"가려고?"

멈칫! 쏴아아아아!

비처럼 쏟아지는 물줄기와 광란을 일으키는 무대.

고민하던 웨이양은 완전히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엉덩이를 붙였다.

"그럴 리가."

정말 오랜만에 체면을 생각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자리다. 늙은 자신에게는 너무도 빠른 박자와 비트지만, 그 목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다못해 흡입시킨다.

음향이나 조명, 밴드 연주도 흡족 하다.

아랫사람을 시켜 경고를 준 보람이 있었다.

웨이양은 흐뭇하게 웃으며 손에 쥔 야광 봉을 흔들었다. 피식 웃은 장칭도 야광 봉을 흔들었다.

* * *

콘서트가 끝났다.

앙코르에 앙코르, 또 앙코르. 장장 3시간이나 되는 콘서트가 끝나자 오늘 홍커우 스타디움을 찾은 모두는 아쉬워하면서도 만족하며 떠났다.

지니어스는 남아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웠다. 이는 바로 기사로 써지면서 웨이양의 체면을 한 번 더 세웠다.

대외적으로 중국인은 더럽고 어디에 가서든 어지럽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걸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생겼다.

착한 진호에게 감화된 지니어스가 당연한 행동을 한 것뿐이지만, 디올을 위해 힘쓴 웨이양의 공이 되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공일 테지만 말이다.

이걸 모르는 진호는 대기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몸을 늘어트렸다.

"후아!"

'이게 콘서트구나.'

심장의 떨림이 멈추지를 않는다. 진호는 런웨이가 끝난 지 한참이 됐는데도 아직도 멍한 12명의 연습생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정말 멋지게, 예상보다 훨씬 더 훌륭한 워킹을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가온 다미앙이 박수를 쳤다. 그냥 수고한 게 아니다.

완벽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다.

곡이다.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아야 하나.'

"얼른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켜고 푹 자고 싶네요."

체력 소모가 엄청났다.

"음. 그건 좀 미뤄야겠군요."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HU 에이전시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하아."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통보를 한 임원의 행동이 불쾌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잔뜩 긴장한 다미앙의 모습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미앙 씨가 긴장을 할 만큼 위험한 사람인가?'

폭군 기질이 있는 타입이라면 굉장히 골치 아파질 수 있다.

'그럼 뭐…… 독립하든가 옮겨야지. 다미앙 씨도 얼른 치프 디렉터가 되도록 이런 기획도 꾸민 거니까.'

12인의 연습생을 데뷔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이런 목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HU 에이전시 상층부를 향한 압박은 다른 에이전시와의 교섭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소재가 될 듯했다.

"지금 오신 건가요?"

"예, 지금 밖에 계십니다."

"나가죠."

긴장을 끌어 올린 진호는 머리를 덮은 수건을 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을 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양볼이 발갛게 상기된 후덕한 백인 노인이 한 손엔 야광봉, 목에는 수건을 두른 채 하얀 우비를 입고 있어서 놀란 게 아니다.

그의 정체 때문이다.

"레전드."

지셀 번천을 비롯해 80년대, 90 년대를 주름잡은 수많은 톱 모델들을 캐스팅한 전설적인 디렉터. 세계 모든 모델들이 간택 받고 싶어 하는 부동의 순위 1위인 캐스팅 디렉터.

그게 눈앞의 노인, 윌리엄 우드스미스다.

"허헛. LVMH의 뮤즈가 은퇴한 늙은이를 알아볼 줄은 몰랐군요."

진호는 침을 삼켰다.

긴장이 칼날처럼 예민하게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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