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21화
이곳에 온 천 명의 팬 중 누구 한 명 방송에 대해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자신들은 진호와 함께 숨 쉬고 만질 수 있지만, 방송을 보는 팬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40만 명이 함께한다는 것에 더 강한 소속감을 가지게 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다음 날도 별 사고 없이 지나갔다.
거의 여자뿐이지만, 그 숫자가 천 명이나 되다 보니 혈기 어린 마음에 해변을 찾은 남자들은 접근을 하지 못했다.
어느 용자가 접근을 하긴 했지만, 주위 모든 여자들과 대상이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자 도망쳐 버렸다.
쿵쿵쿵쿵쿵!
저녁이 되자 운동장에 지어진 무대에 불이 켜지고, 천 명 모두 몸이 터져 버릴 만큼 크고 격렬한 비트가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아!"
"우리 예쁘조 파이팅!"
"잘한다!"
사람들은 장기자랑으로 힙합 댄스를 추는 세 명의 여자들을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따로 만들어진 심사위원석에 앉은 진호는 미간을 좁히고 있다.
이윽고 음악이 끝났다.
"네. 잘 봤고요."
양진혁 사장의 성대모사다.
"푸하하하하!"
"잘 추기는 했는데, 춤에 비트 반 공기반이 없네요."
팬들은 아예 뒤집어졌다.
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모두 즐거워해 줘서 다행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래서 제 점수는……."
채팅에서도 점수가 미친 듯 올라 오고 있다.
"8점 드리겠습니다."
"꺄아아!"
"우우우!"
다른 심사위원인 회장과 최고 간부 세 명도 점수를 줬다.
"다음 팀 준비해 주세요."
무대가 살짝 어수선해지자 진호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팬들을 둘러봤다. 한 손에 맥주 캔을 든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흠."
'흐음.'
진호는 이번엔 학교를 보았다.
'그냥 사 버릴까?'
폐교라 값도 싸다.
9월 패션위크에서 런웨이만 걸어도 이런 폐교 몇 개 살 돈을 번다.
"왜?"
"아뇨, 그냥 여기를 사 버릴까 해서요. 이렇게 쓸 수도 있고, 또 휴가철에, 휴가철이 아니라도 팬들에게 빌려 줄 수도 있고. 회장 누나 생각은 어때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부 공사만 제대로 하면 관리비정도는 벌 수 있을 듯했다.
회장과 최고 간부들이 눈을 부를 떴다.
갑작스런 공격에 그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냐."
"네?"
"우릴 위한 건데 우리가 사야지. 40만 명이 5천 원씩만 모아도."
진호는 싱긋 웃었다.
"그럼 부지와 건물은 제가 살 테니까 회장님은 내부 공사 비용을 보태세요. 물론 건물은 제 명의입니다."
"당연하지!"
"그럼!"
역시 마음들이 다 착했다.
코를 문지른 진호는 무대를 보곤 눈을 빛냈다.
"아, 시작하네요."
모두 무대를 바라봤다.
그렇게 장기 자랑이 끝나자 진호의 콘서트가 시작됐다.
* * *
이진호, 팬들을 위해 폐교를 인수 하다!
이진호 팬클럽 지니어스! 전국 폐교들을 찾아!
이진호 팬클럽 지니어스! 국내 팬 45만 명 돌파!
아이돌보다 이진호!
그의 선행은 어디까지인가!
자비로 천 명의 팬들을 데리고 여행을 간 지 5일 만에 또 다시 사고를 쳤다.
이 미쳐 버린 행동에 기획사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돈을 벌었으면 모으든가 재테크 해서 건물주가 될 생각을 해야지! 뭐 하는 짓이야!"
팬들이 이탈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들은 부라부랴 팬들을 위한 여러 계획들을 발표했지만, 그래도 진호보다 못했다.
겨우겨우 진화를 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들보다 한발 빨리 움직인 JH는 아예 폐교와 폐쇄된 연수원을 사서 팬들을 위한 장소로 개조하겠다 발표했다. 이번에도 혼나면 안 되기에 진호가 폐교 인수를 양진혁에게 말한 것이다.
"보이십니까?"
온갖 도표가 투사되는 스크린, 모인 이사들과 주주들이 미간을 좁힌다.
양진혁은 다른 화면을 투사시켰다. 기사였다.
"JH엔터테인먼트, 팬들에게 돌려주겠다. JH 엔터테인먼트와 배우 이진호의 합작, 팬을 사랑하는 법."
물을 마신 그는 말을 이어 갔다.
"우호적인 언론은 물론이고, 팬들이 유입되고 있고, 굿즈 판매량이 15퍼센트 상승했습니다. 비활동기인 애들 것까지 모두."
양진혁은 침묵하는 그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의는 이제 없으실 거라 생각 합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기적으로, 또 단기적으로 봤을 때도 이익이다.
"그러면 현 시간부로 굿즈부터 갈아엎는 이진호 카피 프로젝트를 발족하겠습니다. 모두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이의 없습니다."
안건은 이걸로 끝이었다.
이사들과 주주들은 만족해하며 일어섰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중점인 이진호는 지금 어디에 있소?"
나가려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양진혁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쯤 중국에 도착했을 겁니다. The J 시청률 공약인 투어 콘서트 입니다."
"허헛."
"앨범 한 장 안 낸 배우가 콘서트라니……."
그들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진호와 JH가 전략적 제휴를 맺은 건 정말 신의 한수였다. 그들은 양진혁을 대견하다는 듯 보았다.
"그런데 거기서도 사고를 치는 거 아니겠지요?"
움찔!
"에이."
그들은 설마 했다. 하지만 양진혁은 달랐다.
'그럴지도.'
The J라는 시간적 고삐가 풀렸다.
많은 시간은 곧 진호에게 생각할 시간과 같은 소리다.
'쳐도 적당히 쳐, 인마. 내가 너 따라가다가 숨넘어가겠다.'
그는 간절히 바랐다.
* * *
"할아버지!"
상해, 진호는 공항에 마중 나온 장칭을 힘주어 껴안았다.
"잘 왔다. 한국 소식은 들었다. 기특한 생각을 했더구나."
"통장에 쌓아 두기만 하는 돈, 이럴 때 쓰는 거죠."
"허허허허헛!"
장칭은 대견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옆에 계신분은……."
"아, 이쪽은 내 친구인 웨이양이다. 공무원인데, 농땡이 칠 명분을 찾다 나를 따라왔다."
'오.'
비록 허름한 옷을 입고 있지만, 서 있는 자세부터 고위직이라는 태가 났다.
정중히 인사한 진호는 환하게 웃었다.
"잘됐네요. 안 그래도 할아버지께 친구분들도 나눠 드리라고 선물 넉넉히 사 왔는데."
"선물?"
"나가요. 밖에 있어요."
양도 양이지만, 수하물로 들고 올수 없는 물품이 있어서 팬클럽 상해 지부장에게 택배로 붙였다. 먼저 온 스태프가 찾아왔다.
주차된 벤의 트렁크에는 아이스 박스가 가득 있었다.
"뭘 이렇게 많이 샀어?"
"든 건 몇 개 안돼요."
"그래도……."
"가족분들과 친구분들께 한 박스 씩 드리면 되세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은 장칭은 하나의 박스를 웨이양에게 넘겨주었다.
"자, 내 손자가 주는 선물이야."
진호는 깜짝 놀랐다.
손자.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뭐, 뭐지?'
너무 얼떨떨했다.
"어디."
그는 바로 뚜껑을 열었다.
'……역시 중국.'
그리고 깜짝 놀라 진호를 보았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 옹기는 재배부터 구증구포까지 수작업으로만한다는 그 명가의 홍삼 진액 아니오? 그리고 이건 한국 남쪽의 명인이 1년에 딱 50킬로그램만 만든다는 어란이고. 그 외에도…… 허허."
이번엔 진호가 놀랐다.
"어라? 아시네요?"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명품이다. 안다고 해도 비싸고 예약이 많아서 선뜻 구매하기가 힘들다.
JH에 이진호 카피 프로젝트를 허락하면서 그 인맥을 빌려 겨우 구한 거다.
웨이양의 눈이 빛났다.
홍삼 진액과 어란 말고도 돈이 있다고 쉽게 살 수 없는 보물이다.
"아니, 이런 비싼 걸 왜 사 와."
장칭이 걱정스런 표정을 짓자 진호는 활짝 웃었다.
"오래 사셔야죠, 할아버지. 제 친 조부모, 외할아버지께도 보냈으니까 부담 가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뜻 장칭과 만난 후 광전총국이 움직였다. 물론 장칭은 연관이 없을 테지만, 그 우연을 위한 선물이었다.
"허허헛."
장칭은 웨이양을 보았다.
"그렇다는군. 먹고 늦둥이 보시게."
"으허헛. 면이 이렇게 서 버리나?"
'응?'
체면을 세우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잘 먹겠네. 장칭 손자."
"네,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네요."
'부하 직원들에게 자랑하시려나 보네.'
남에게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중국인에게 아주 큰 자랑 거리다.
일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기 상해에서부터 콘서트를 시작한다고?"
"네. The J를 사 준 곳이 상해에 있는 방송국이잖아요. 표 보내 드릴 테니 가족, 지인분들과 놀러 오세요. 정말 재밌을 거예요."
"호오, 그래?"
"제 첫 콘서트다 보니 많이 고민 했거든요."
"그래, 맞아. 이 투어 콘서트가 네 생애 첫 정식 콘서트구나."
두 노인의 눈이 빛났다.
진호는 터질 뻔한 웃음을 겨우 참았다.
정말 중국은 최초란 단어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 * *
콘서트를 할 곳은 홍커우 스타디움이라는 축구경기장이었다. 약 5만 3천 명의 관객이 입장할 수 있는 곳인데, 콘서트 표 발매 시작 2시간 만에 모두 매진되어 버렸다.
"아, 아."
객석까지 닿도록 지어진 T형 무대에 선 진호는 음향을 점검하며 리허설을 진행해 갔다.
"거기 끝에 들려요?"
객석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 머리 위로 크게 원을 그렸다.
소리가 잘 퍼지지 않는 낮 시간 대에 이렇게 작은 목소리로도 끝 까지 들린다면 음향은 만족이다.
등 뒤 대형 스크린들도 영상을 아주 잘 송출하고 있었다.
"휘유, 덮네."
7월의 한여름이다.
정말 쪄 죽을 만큼 더웠다.
원래는 햇볕이 직빵으로 내려쬐는 홍커우 스타디움이 아니라 시원한 실내 경기장에서 하려고 했다. 약 2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실내 경기장 말이다.
그런데 지니어스 상해 지부에서 연락이 왔다.
최소 홍커우 스타디움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바꾼 거였는데 다행히 매진됐다.
'2만 명 오면 정말 많이 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진호는 구슬땀을 흘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현지 스태프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나 성실함 모두 최고였다. 밴드나 댄서팀 모두 말이다.
"근데 왜 저렇게 바짝 쫄아 있지?"
프로 정신이 발휘된 것 같지 않다.
마치 군대의 훈련병들 같다.
"처음엔 안 저됐는데……."
어제 마지막 미팅을 할 때까지도 참 자유분방했다.
현지 공연 스태프들도 호기가 넘쳤다.
"대체 뭐가 뭔지."
그래도 긴장하고 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
틀리는 곳도 없다.
어깨를 으쓱인 진호는 축구장 곳곳에 설치된 장치들을 보곤 씩 웃었다.
'저게…….'
"으흐흐."
그는 대기실로 향했다. 그러며 앞으로의 스케줄을 생각했다.
중국 투어 콘서트가 끝나면 일본이다.
'곽 주부님이 일본에서 보자고 했지?'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그때 설명 해 준다고 했다.
꽤 기대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대기실에는 한국에서 넘어온 사람들로 북적북적 했다.
'최 실장님.'
진호의 스타일을 책임지는 최 실장이 젊고 매력적이게 생긴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누비고 있다. 진호는 가까이 있는 청년의 어깨를 툭 치며 일본어로 말했다.
"뭘 그렇게 얼어 있어."
"혀, 형."
마찬가지로 일본어다.
잔뜩 긴장해 있던 12명의 남녀들이 다급히 진호를 보았다.
그랬다.
이들은 현재 한국에서 열공중이어야 할 2기 연습생들이다. 한국 팬들과 피서를 즐기던 중 HU 에이전시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데뷔시키자.'
그렇지 않아도 The J를 사 간 방송국에서 오늘 할 콘서트를 녹화해 방송으로 내보낸다고 했다.
아직 조금 모자랐지만, 너무도 좋은 기회였다. 최소한 지니어스에게는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 그래서 데려온 것이다.
HU 에이전시 임원은 내일 만나기로 했다.
"이래서 세계를 씹어 먹을 수 있겠어?"
세계.
12명은 억지로 웃었다.
"할 거야?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진호는 입을 꾹 다문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눈동자 속에서 불이 지펴졌다.
"그래도 간다는 소리는 안 하네. 청심환 줘?"
"부, 부디."
큭큭, 웃은 진호는 혹시 몰라 챙겨 온 청심환들을 나눠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 근데 형은 왜 이렇게 침착해요?"
"긴장할 건 또 뭔데? 오늘 온 팬들이 날 잡아 먹기를 해, 패션쇼처럼 품평하기를 해? 그냥 한바탕 즐기고 내려오면 되는 걸 가지고 긴장은 무슨."
"아."
사람들은 감탄했다.
진호는 청년의 양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윽!"
"즐기자. 즐기는 놈이 성공하는 거야."
"네."
"예!"
눈동자들 속 불이 더 거세게 타오르자 진호는 만족스러워했다. 벌컥!
"관객들 입장합니다!"
드디어 콘서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