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44화 (144/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19화

7. 팬들을 위해

진호는 일이 자신의 손을 떠나자 바로 이사를 했다.

기존에 있던 가구는 모두 버렸다. 좁은 사글세에서부터 시작한 두 분이셨기에 혼수라 말할 것이라곤 은수저 세트 두 개가 전부였다. 이후 그 흔한 고급 접시 하나 사지 못하셨다.

어머니 나진희는 신이나 가구와 식기를 고르셨고, 아버지 이형만도 거실에 놓을 안마의자나 퍼팅 세트 등을 기쁘게 쇼핑하셨다.

진호도 조리 도구를 아주 신중히 골랐다.

화악! 촤악!

"으흠. 흥흥흥."

중화용 냄비 웍 안에서 매콤한 고추잡채가 볶아진다. 화력이 높은 가스레인지라서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모른다.

넓은 거실에 펴진 아홉 개의 기다란 상 위엔 음식이 한 가득이다. 집들이다.

"끝. 야! 박재준! 이거 가져가!"

"나도 손님이야, 인마!"

"어머니, 재준이 농땡이 쳐요!"

"아들, 죽을래?"

재준과 재준의 어머니가 도우러 왔다.

이모라 부르는 어머니의 친구분들도 마찬가지다.

띵동!

인터폰 앞에 다가선 진호는 환하게 웃었다.

장영진과 김윤식, 최동진이다. 이재정, 김수혜도 있었다.

진호는 재빨리 현관으로 달려갔다.

삐리릭!

"오셨어요."

"으흐, 덥다. 자, 이건 집들이 선물."

휴지, 화분이었다.

"뭘 이런 걸 다 사 오셨어요.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진호는 그들을 부모님께 안내했다.

"엄마, 아버지."

고개를 돌린 부모님이 깜짝 놀랐다.

재준의 어머님과 다른 이모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며! 어머머!"

"안녕하십니까, 장영진입니다. 정말 장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예. 이형만입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이구, 진호가 누굴 닮아 이렇게 잘생겼나 했더니 어머님을 닮으셨네요."

"호호호호호! 별말씀을요."

진호는 입을 가리며 웃는 어머니 나진희를 떨떠름하게 쳐다봤다.

"엄마, 평소처럼 해. 다 좋은 분들……."

훅 옆구리로 손끝이 파고들었다.

"억!"

웃음이 터졌다.

진정이 되자 진호는 집안을 안내 했다.

"여기가 안방이고, 여기가 드레스 룸이에요."

방은 총 다섯 개였다.

안방, 드레스 룸, 손님방, 진호방, 다용도실이었다.

단지 내 유일한 80평대라 방들이 모두 큼직큼직했다.

"가구들은 모두 엄마가 고른 거 예요."

"어머, 그래? 어머니 센스가 좋으시네."

김수혜가 가구들을 매만지며 눈을 빛낸다.

역시 어른들은 다른 것 같았다. 이들 다섯도 부모님처럼 화장실 이나 부엌의 수압을 확인하고, 햇 빛이 얼마나 들지 방위도 확인했다.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진호 방에 모인 그들이 눈을 빛냈다.

최소 차장검사급변호사들이 움직이니 검찰 송치부터 재판까지 번갯불에 콩 볶듯 진행되었다. 진호의 명예 훼손은 성립되었고, 수많은 이들이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지옥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민사소송이 걸리면서 수많은 이들의 눈에서 후회의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곧 마무리될 거예요. 항소하려는 이들도 있지만…… 뭐."

항소를 한다고 해도 무죄를 받을 거라 생각할 수 없다.

"너무 판을 크게 벌리는 거 아냐? 그러다 삐끗하면 역풍맞아."

"그래서 악플러들에게 받을 배상금은 모두 기부하기로 했어요. 아마 지금쯤 인터넷에 떴을 거예요."

눈을 동그랗게 뜬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영진이 피식 웃었다.

"이래서 정치권과 인권 단체에서 아무 말을 못하고 있는 거구만? 그런데 감당돼? 이런 좋은 집도 샀잖아."

변호인단 선임비를 말하는 거다.

"아."

진호는 머리를 긁었다.

변호인단 선임비는 디올, 지방시, LVMH 코리아 등에서 처리했다. 이런 설명에 사람들은 입을 벌렸다.

"팬클럽에 악플을 달라 지시한 기획사나 연예인들도 딱 파산하지 않을 만큼만 때리고 있고요."

이재정이 콧방귀를 뀌었다.

"파산하지 않을 만큼은 무슨. 파산이지."

나머지 네 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획사는 물론이고, 입을 함부로 놀린 연예인은 역으로 인성 파탄자라는 굴레가 씌워졌다. 연예인들은 이제 최소 3년 이상은 연예계에서 퇴출됐다고 봐야 했다. 소위 A급 이상의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그 이하에게 3년 이상 퇴출은 영원히 퇴출이라는 소리다.

기획사들도 이미지가 나빠져 소속 연예인들이 탈주하고 있다. 갑작스레 생성된 FA시장에 대한민국 연예기획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간 수고했다. 어른인 우리가 도움을 못 줘서 미안하고."

"아뇨. 저를 계속 예뻐해 주신 것 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됐어요."

사람들은 웃었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다. 우리 진호 덕분에 많이 깨끗해질 거야."

남을 괴롭히려면 그만한 각오를 해라.

이런 진호의 결단은 호의적인 여론을 형성했다.

사람들은 옛날처럼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말하지 않았다. 사이버 폭력은 해가 넘어갈수록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중들은 진호의 정의 구현을 칭찬했다.

언제나 악플에 시달리는 연예인들도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제시 해 버린 진호를 아주 좋게 봤다. 이제 함부로 유언비어를 살포했다가는 그 연예인에게 붙은 협찬 업체의 손해 배상도 감당해야 한다.

미움 받을 각오를 했던 진호로서는 조금 얼떨떨한 결과였다.

띵동.

"손님이 오셨나 보네요. 잠시만 계세요."

진호는 방을 나섰고, 사람들은 대견하다는 듯 보았다.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해요. 술 안 마셔요? 진호가 만든 안주가 식을 텐데?"

눈빛이 번뜩인 그들은 재빨리 일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코가 삐뚤어 지게 마실 요량으로 차도 놓고 왔다.

이후 손님들이 속속 도착했다.

부모님과 어머니의 친구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만날 TV 속에서 보던 연예인들, 쉐프들 때문이다.

특히 아줌마들의 워너비 곽주부, 곽종훈의 등장은 그들을 뒤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황재상 쉐프와 박코흐트 쉐프, 레이먼 최 쉐프의 권유로 온 것이라 했다.

띵동! 띠리릭!

"내가 많이 늦었지?"

문을 연 진호는 눈을 껌뻑였다.

"오늘 소개팅했냐?"

하늘색 민소매 원피스에 네츄럴 풀 메이크업.

"시끄럽고, 이거나 받아."

"오, 땡큐. 어서 들어와."

진호는 그녀, 김세연을 부모님께 소개시켰다.

"엄마, 아버지. 이쪽은 내 동료이자 친구. 김세연. 이쪽은 우리 부모님."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김세연이에요."

부모님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아, 오해한다.'

그럴 만도 했다.

The J에서 그렇게 달달한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거기다 동갑이다.

"아휴. 어서 와요. 이리 와요. 내가 집 안내해 줄게요. 괜찮죠?"

"네, 어머님."

진호는 순간 미간을 좁혔다.

'웬 내숭? 그것도 쌍으로?'

"진호야!"

"예, 아버지!"

"와서 손님들 술 따라 드려야지. 거기서 뭐 해?"

'아버지는 또 왜?'

아버지가 어머니를 서포트한다.

"옙!"

입맛을 다신 진호는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손님들을 향해 다가갔다.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은 아주 좋은 구경거리였다.

한편 나진희는 세연을 데리고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보여 주었다. 마지막 종착지는 진호 방이었다.

"와, 깔끔하네요."

"그렇죠? 진호가 좀 깔끔해요."

"말 편히 하세요, 어머님."

나진희의 눈이 빛났다.

"차차 그럴게요."

차차, 자주 만나자는 소리였다.

김세연이 볼을 살짝 붉혔다.

"그런데 진호와는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거예요? 리얼정가에서 만난거 맞죠?"

김세연은 깜짝 놀랐다.

"기, 기억하세요?"

"어휴.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모태솔로니 눈이 갈 수밖에 없었어요. 내 맘 이해하죠?"

"그, 그럼요. 그런데 정말 진호가 모태솔로였어요?"

김세연은 눈을 빛냈다.

나진희는 물었구나, 속으로 춤을 쳤다.

"그럼요. 얘가 어릴 때 참 예뻤는데…… 아, 진호 어릴 적 사진 볼 래요? 돌 사진도 있는데."

돌 사진=아래 훌러덩.

반사적으로 대답하려 했던 그녀는 이내 조신하게 대답했다.

그 마음 다 안다며 씩 웃은 나진희는 잠깐만 있으라고 말하고는 안방으로 향했다.

남겨진 세연은 진호의 방을 가만히 둘러봤다.

'진짜 깔끔하게 사는구나.'

냄새도 무척이나 좋았다.

가만히 맡고 있으면 온몸의 긴장과 피로가 스르륵 풀리는 듯했다. 진호의 몸에서나는 냄새다.

"공부도 하고."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한 책장엔 온갖 외국어 원서들이 있다.

그 책들 모두 새 것 같지만, 읽어 본 흔적이 가득했다.

예술, 독립, 상업 영화 DVD도 얼추 500장이 넘었다.

대본과 시나리오도 있었다.

"얘는 집에서도 쉬지 않는구나……."

징징징!

워후우!

이야아!

거실에서 진호의 재롱잔치가 시작된 것 같았다.

구슬픈 옛 가요였다.

"많이 기다렸죠?"

"아, 아뇨."

"이리 와요."

침대에 앉은 나진희는 옆자리를 팡팡 쳤고, 김세연은 침대라는 것에 살짝 갈등하다가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붙였다.

나진희는 앨범을 폈고, 김세연은 첫 장부터 나온 돌 사진에 깜짝 놀랐다.

"귀엽죠?"

"네."

김세연은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나진희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예비 며느리를 보듯 말이다.

재준이 발을 동동 구른다.

"아오, 이런 걸 찍어야 하는데. 그럼 무조건 300만인데."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이다.

스타 쉐프에 스타 작가, 스타 감독, 스타 대표도 있다.

연말 시상식에서도 볼 수 없는 구성이다.

"나 보내고 싶으면 그러든가."

사건이 사건이다.

지금 이런 일이 알려졌다가는 안 좋은 소릴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을 죽 둘러본 진호는 담근주 주전자를 들고 움직였다.

"입맛에는 맞으세요? 부족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세요."

"더 먹으면 배 터져유."

곽종훈이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비웠다.

"아따, 맛나다. 직접 담근거지 유?"

"딱 이거다 싶으면 바짓가랑이 잡고 빌었죠. 곽 주부님이 그렇게 하시는 걸 보고 따라 한 거예요."

"으하핫! 그래요?"

"말 편히 하세요."

"그를까아?"

역시 매체에서 보던 것처럼 넉살이 많으셨다.

"젊은 사람 손맛이 왜 이렇게 좋대? 이 세밀한 불 조절은 내가 다 배우고 싶네."

"다 스승 잘 만나 잘 배운기제. 종훈이 니 욕심내지 말 그래이. 쟈는 내 거다."

"왜 이래? 내 주방에 먼저 섰어."

"오더는 제 걸 먼저 받았죠."

"재상 오빠야는 와 그라는교? 최 쉪 닌 또 와!"

웃음이 터졌다.

곽종훈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는 진호를 기껍게 보았다.

'사람이 좋네.'

오는 동안 좋은 소리만 들어서 그런지 호감만 생겼다.

요리인으로서 맛도, 자세도 나무 랄 곳 없었다.

요사이 사회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곽종훈은 진호를 지지하는 쪽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그는 진호가 일어서자 따라 일어서 부엌으로 향했다.

"진호 씨."

"아, 네. 필요한 거 있으세요?"

"진호 씨가 필요혀."

"네?"

"나랑 프로그램 하나 합시다."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손님이 모두 떠났다. 만족스러워 한 그들의 얼굴은 곧 진호의 기쁨과 행복이었다.

설거지까지 모두 마친 진호는 베란다에 섰다.

새벽, 불이 모두 꺼진 아파트가 어둠에 삼켜져 있다.

곽종훈의 제의는 많은 갈등을 던져 주었다.

드르륵!

"안 자냐?"

"아버지는요?"

"자야지."

곁으로 다가온 아버지 이형만이 베란다의 난간을 손으로 쓸었다. 그의 두 눈이 복잡한 감정으로 얼룩져 있다.

떠듬거리던 그의 입이 열렸다.

"고생했다. 그리고 고맙다."

짧은 말이었지만 너무 많은 뜻을 품고 있었다.

툭 등에 닿는 손바닥이 너무도 뜨거웠다.

"아…… 니요. 아직 멀었죠."

"너무 급하게 가진 마."

"예."

"그래, 오늘 수고 많았다. 피곤할 텐데 얼른 자."

"아버지도 안녕히 주무세요."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 이형만은 안방으로 향했고, 진호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뜨거워진 등이 식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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