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17화
"하, 알겠습니다. 일단 침묵하고 계세요. 예."
전화를 끊은 다미앙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건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뒤통수를 맞았다.
진호는 핸드폰을 켜 포털사이트 연예란에 접속해 하나의 기사를 클릭했다.
'이진호. 신인 아이돌이라고 무시 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 내용이나 증거라며 내놓은 신인 아이돌의 SNS도 엉망이었다. 프로그램 촬영 중 우연히 촬영장을 찾은 진호에게 사진과 사인을 요청했는데 무시받았다는 골조의 유언비어가 적힌 SNS.
글에 실망했다는 감정이 팍팍 들어가 있다.
얼굴을 보니 출연자와 제작진 중 유일하게 질시 가득한 눈빛을 보냈던 남자 아이돌이었다.
"재밌네요."
그리고 멍청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이 20명이고, 지니어스의 숫자가 한국, 중국, 일본 합쳐 백만이 넘는다.
지금 그 이름 모를 아이돌은 엄청난 숫자의 안티를 양산했다.
"전혀 재밌지 않습니다."
다미앙이 이를 드러냈지만,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노이즈 마케팅의 대상이 될 만큼 떴다는 거잖아요."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싱글싱글 웃는 진호의 모습에 맥이 빠져 버린 다미앙은 고개를 저었다.
"사진은 찍어 줬습니까?"
"그게 의미 있을까요?"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얼굴을 알리기 위해 이 정도의 각오를 했으니 도와줘야죠."
"그렇다면?"
진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거고, 도발은 도발이다.
멍청하다고 봐주는 건 없다.
"강경하게 대응하죠."
"호오."
다미앙의 입가가 만족스럽다는 듯 일그러졌다.
"일단 3시간 정도 기다려야겠군요."
"네. 그 정도면 되겠네요."
누가적인지 확실해질 때까지 말이다.
"아, 전 런웨이 걷고 올게요."
"다녀오십시오."
* * *
딩딩딩!
얼마 만에 가지는 달콤한 휴식 시간인지 모른다.
대표이사실, 3인용 소파에 누워 기타를 만지작거리던 양진혁은 벌컥 열리는 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노크 몰라……요?"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던 그는 하얗게 질린 비서의 얼굴에 낯빛을 굳혔다.
"지, 진호 씨가……."
눈을 부릅뜬 양진혁이 벌떡 몸을 세웠다.
"진호가 뭐! 왜! 연애 인정…… 아니지. 제니퍼 로제의 골수팬에게 테러당했대?"
"아, 아뇨. 진호 씨에게 인성 논란이 생겼습니다."
"그럴 리가."
양진혁은 손을 저었다.
굳은 얼굴의 비서는 다급히 걸어 와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양진혁의 낯빛이 다시 굳었다.
"이거 실화야?"
질 낮은 농담 같다.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게 사람인데."
별다른 트러블 없이 승승장구했던 진호다.
인성 논란이나 유언비어가 퍼져도 금세 진압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진호가 큰 인기를 얻지 못했을 때 이야기다. 지금은 그때와 위치가 다르다.
"이거 제대로 불붙겠는데?"
진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기획사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피셜 확인해 봤어?"
"이 기사를 쓴 기자는 피셜이라고 우기는 중입니다."
"그것도 역시나 그렇겠지. 진호는? 진호는 전화했었대?"
비서는 고개를 저었다.
"안 했다고?"
양진혁은 믿을 수 없었다.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헛소리. 지금 그쪽에 있는 마케팅 팀장이 누군지 알잖아."
비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보다 문제는 이 아이돌이 촬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이번에 데뷔시킨 영태 팀의……."
"컥!"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그 프로그램이 이 프로그램 이라고?"
"예."
흠칫! 순간 양진혁은 몸을 움츠렸다.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마치 목덜미에 칼이 드리워진 기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던 그는 설마하며 입을 열었다.
"진호한테 연락 왔어?"
"아직 안 왔습니다. 당황해서 그러는 게……."
오싹!
"저, 전화."
"예?"
"전화! 내 핸드폰!"
이유를 알게 된 양진혁은 날다시피 책상으로 향하여 핸드폰을 들어 전원을 켰다.
안 왔다.
부재중 전화건 메시지건, 코코아 톡이건. 하물며 SNS도 온 게 없다.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린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착신음은 꽤 길었다.
-네! 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언제나처럼 해맑은 목소리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방금 확인했다. 어떻게 된 거야?"
-네? 뭐가요?
"이 자식이……."
강한 배신감에 불같이 화를 내려고 했던 양진혁은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 비트에 미간을 좁혔다.
"지금 어디야?"
-방금 쇼 마쳤어요! 크! 드디어 해방이에요.
"아, 그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타이밍이 공교롭다면 참 공교롭다. 그리고 양진혁 자신에게는 천운이다.
-넵! 아,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 있어요?
"후. 일단 한국 포털사이트 확인 해."
-진호 씨.
-아, 오셨어요? 잠시만요, 다미앙 씨. 양 사장님과 통화 중이라서요.
-일이 터졌습니다.
-일이라뇨?
-이걸 봐 주십시오.
-……흐음.
섬뜩!
양진혁은 순간 온몸의 털이 서는 공포를 느꼈다.
-나도 뜨긴 떴구나…… 이거였어요, 사장님?
"일단 태경이 성격은 너도 알지?"
-그럼요. 걔가 이런 일에 찬동할 만큼 나쁜 애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사장님도 극구 막으셨을 테고.
'휴우.'
"그렇지. JH가 뭐가 아쉬워서 다른 놈 붙잡고 진흙탕을 굴러?"
-흐흐. 역시 우리 양 사장님!
"됐어, 인마.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음, 신인이 얼굴을 알리고 싶다는데 선배로서 도와줘야겠죠?
양진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목소리가 무척이나 서늘했다.
'강경 대응이군.'
그는 입술을 비틀었다.
JH의 입장으로서는 아주 좋은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도울 수 있을 만큼 도우마."
-아뇨, 괜찮아요. 이 정도 해프닝은 저희 손에서 해결해야죠.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그때 연락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마음 단단히 먹어. 흐지부지 할 거면 아예 대응조차 하지 마."
-걱정 마세요. 이렇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 가서 뵈요.
"그래. 얼른 들어와. 이런 일은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옙! 끊을게요.
전화가 끊기자 양진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애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만약 조금만 늦었더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이제 진호에게 JH란 우산이 그리 크게 필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흠."
생각에 잠겼던 양진혁은 라노의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박 대표. 오늘 사고 터진 거 알지? 품. 모른 척 연기하지 말고. 너 연기 구려. ……응. 그래, 그거. 아니, 충고지. 괜히 못 먹는 감 찔러 보겠단 수작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흠. 그래, 할 거면 맘 대로 해 봐. 난 분명히 충고했다. 나중에 욕하지 마라."
전화를 끊은 그는 다른 기획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지난 수십 년간 얼굴을 봐온 사람들.
괜한 횡액을 맞게 둘 순 없었다.
전화를 끊은 진호는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양 사장님은 이걸 빌미로 저를 쥐고 흔들지 않을 생각인가 보네요."
JH와 이진호.
영향력은 당연히 JH가 높다.
이번 일도 JH엔터테인먼트가 나서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간단하다.
지금 사고를 일으킨 그 남자 아이돌이 소속된 그룹을 보이콧하지 않으면, JH 소속 모든 가수를 보이콧시키겠다 말하면 된다. 그리고 방송국 기분 상하지 않게 당근 몇 개 던져 주면 된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거래를 성립시킬 수 있다.
그러면서 진호 자신에겐 빚이라는 족쇄를 채울 수 있다.
물론 사람 양진혁은 그러지 않을 인물이다.
그러나 JH엔터테인먼트는 투자자, 채권자 등 회사의 지분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다행히도 양진혁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정말 다행입니다."
"너무 고맙죠. 그 아이돌은 정정 했나요?"
다미앙은 고개를 저었다.
"그쪽 소속사에서도, 그리고 PD 도 연락을 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진호는 시간을 확인했다.
3시간이 넘었다.
적과 아군, 그리고 실수를 가릴 시간은 모두 지났다.
진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이제 불을 지피죠. 절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이도록."
불에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알겠습니다."
다미앙도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 * *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게이트가 열리니 몰려 있던 10여 명의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진호 씨, 인성 논란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후배를 쓰레기 보듯 개무시했다는데 사실입니까!"
"후배에게 꺼지라고 말했다는데 이 말이 사실입니까!"
"여러 연예인들이 이진호 씨를 지탄하고 있습니다!"
'휘유. 내가 완전 역적이네.'
제니퍼 로제와의 열애설이 가라 앉기도 전에 터진 인성논란이다.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거다.
진호는 그들을 향해 존재감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으음."
"음."
기자들의 입이 다물어지자 진호는 싱긋 웃었다.
"이제 막 귀국한지라 정확한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
담담하고도 낭랑한 목소리다.
"모, 모른다고 하면 답니까!"
"지금 자라나는 새싹이 연예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PD 역시 충격을 받았다 발언했습니다!"
PD도 계산을 끝낸 채 덤벼들고 있었다.
"그럼."
진호는 [스킬: 연신연왕]과 [스킬: 유리가면]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감에 맹수의 살의를 섞었다.
섬뜩 놀란 기자들이 걸음을 멈췄다.
"진호야, 이쪽!"
정 대리가 게이트 앞에 차를 정차시키고 있었다.
진호는 여유롭게 차에 올랐다.
"흠."
"잘했어."
"하하. 그래요?"
"네가 잘못한 게 없는데 굽힐 필요가 뭐 있어. 그런데……."
방금 전 대응으로 인해 싸가지없다는 말이 생길 수 있다. 진호를 시기하는 무리는 이것을 가지고 더 날될 터였다.
"그러라고 그런 거예요."
진호는 피식 웃었다.
정 대리가 기겁하며 뒤를 보았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켰다.
진호의 얼굴에선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날뛰라고. 가진 욕심, 악의 모두 드러내라고."
꿀꺽.
"정 대리님, 앞요."
"어? 어어."
진호는 앞을 보는 정 대리를 고맙다는 듯 보았다.
"정말 제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사정없이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겠죠."
불을 지폈다.
활활 타오르는 불에 홀려 버린 부나방들은 자신이 어떤 걸 흘리는지, 또 어떤 걸 놓치고 있는지, 또 옆에 있던 누가 사라지는지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불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한눈을 팔 수 없을 것이다.
"덮칠까 말까 고민하던 이들도 덩달아 달려들 거예요. 그게 무엇 인지도 모르고……."
꿀꺽! 뒷자리까지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런데 다미앙 팀장님은? 같이 안 왔어?"
"아, 거기서 할 일이 있으세요."
"할 일?"
"아주 중요한 일이죠. 제게도 중요한 일이 있고요."
진호는 싱긋 웃었다.
"아차차."
진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회장 누나."
팬클럽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