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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40화 (140/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15화

어두운 공간, 사이킥 조명이 강렬한 비트에 맞춰 현란하게 춤을 춘다. 스테이지에 빽빽하게 올라선 사람들이 옆 사람과 몸을 비비고, 자신의 매력을 뽐낸다.

"와후!"

해맑게 웃는 제니퍼 로제가 머리를 흔들며 팔을 휘젓는다. 식사 후 파리 구경을 하던 그녀가 가자고 조른 클럽이다.

진호도 가볍게 몸을 흔들며 비트와 분위기에 취해 갔다.

훅 그녀의 입에 귓가로 다가왔다.

"여기 너무 좋다!"

"당연하지! 모델들이 뒤풀이하는 곳이야! 배우들도 많이 와!"

파리에서 최고로 물이 좋은 클럽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 주인이 마약 근절을 외치고 있어서 유명인들이 안심하고 찾아온다.

"그랬어? 이야아!"

흥을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른 그녀가 짧게 자른 금발을 위로 쓸어 올리며 엉덩이를 밀착해 비벼 온다.

진호도 그녀의 허리를 휘감으며 몸을 흔든다.

패션위크 경력 3년=클럽경력.

20살 숙맥이었던 이진호는 더 이상 없었다.

그들은 보드카를 마시며 취해 갔다.

'신나게 마시더라니.'

택시 안, 진호는 옆자리에 누워 잠든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신나게 마시고 즐기다 갑자기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던 그녀.

패션위크다 보니 클럽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 뒷문으로 택시를 불러야 했다.

첩보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차는 제니퍼 로제가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도착했습니다."

택시가 선 곳은 호텔의 지하 주차장이었다.

"수고하셨어요."

팁을 준 진호는 제니퍼 로제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일어나."

"으응."

어렵사리 떠지는 눈엔 초점이 흐릿하다.

진호는 어리광 부리듯 안겨 오는 그녀를 부축해 내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띵! 스르릉!

문이 닫히자 진호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자기 힘으로서야지?"

"으으응."

"계속 속일 거면 나 가고."

"칫."

떠진 그녀의 눈은 제법 초점이 잡혀 있었다.

"언제부터 안 거야?"

"네가 취한 척 연기할 때부터."

처음부터라는 소리다.

볼이 더 달아오른 그녀는 진호의 복부에 주먹을 찔러 넣었다.

"억!"

그러더니 얼굴을 잡아 왔다.

"그런 건 끝까지 모른 척하는 거야, 지노."

달뜬 숨결과 함께 그녀의 얼굴이 다가왔다.

역시나였다.

진호는 피하지 않고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둘의 입술이 포개지고, 혀가 얽혀 갔다.

* * *

스륵!

품을 빠져나가는 온기에 진호는 눈을 떴다.

"씻게?"

"일어났어?"

근육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아름다운 나신을 감출 생각이 없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이 없어서."

"노인 같아."

'절대 노인이라고 부를 수 없지만.'

어젯밤 진호는 지칠 줄을 몰랐다.

'버진이 맞나?'

처음엔 분명 맞았다.

하지만 나중엔 그녀 자신이 뭘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을 놓게 만들었다. 기억나는 건 이렇게 목이 쉴 만큼 소리를 질렀다는 거다.

너무도 뜨겁고 농밀했다.

진호는 눈물과 땀으로 젖었다 마른 그녀의 볼이 다시 달아오르자 아쉬움을 드러냈다.

"벌써 돌아가는 거야?"

"응. 일탈은 여기까지. 이제 촬영장에 복귀해야지."

그녀가 아쉬워하며 웃자 진호도 안타까워했다.

첫 경험. 첫 여자.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거세게 띈다.

어젯밤의 격렬했던 몸의 대화가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인생이 있고, 그녀가 사는 곳은 지구 반대편이었다.

진호는 애써 아쉬움을 삼켰다.

"그런데 괜찮겠어?"

그녀의 허리가 풀려 있다.

"아니."

"씻겨 줄게."

이불에 덮인 진호의 하복부를 본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넌 정말 대단해."

진호는 싱긋 웃으며 침대를 빠져 나왔다.

둘은 서로 씻겨 주며 다시 한바탕 몸의 대화를 나눴다.

부우웅!

멀어지는 택시를 가만히 응시하던 진호는 입술을 매만지며 몸을 돌렸다.

피식.

그는 살짝 놀랐다.

이유 없이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제니퍼 로제의 얼굴이, 가슴이, 그리고 감촉이 눈과 전신에 어른 거렸다. 어젯밤과 방금 전의 격렬하고도 끈적끈적하게 부딪쳤던 모든 감촉이 살아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스킬의 주인공이 왜 밤의 황제가 됐는지 알겠네.'

[스킬: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외모를 바꾸고 고정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엄청난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더 씨프 촬영 때,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관계를 맺다 보니 어디를 어떻게 자극해야 제니퍼 로제를 만족시킬 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덕분에 그녀가 숨겨 두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제발이라고 외치던 그녀의 간절한 목소리와 눈빛.

"어디서든 써먹어 봤다면 처음부터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래서 사람은 많은 경험을 해 보라는 것 같다.

작은 후회가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몸도 풀 겸 호텔까지 천천히 뛰어갔다.

로비 안으로 들어선 진호는 깜짝 놀랐다.

로비 한편 카페에서 다미앙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 오셨네요?"

움찔놀라 고개를 든 다미앙은 진호를 보곤 낯빛을 굳혔다.

"일반적인 친구 관계가 아니었군요."

진호는 경악했다.

"티, 티 나요?"

"경험이 있는 남자와 없는 남자는 기질부터 달라지니까요."

'……난리 났군.'

진호를 본 순간 심장이 크게 박 동했다.

무분별하게 뿌려지는 페로몬이 더욱 짙어졌다.

이젠 연기를 하지 않아도 섹시했다.

거의 만날 보는 다미앙 자신이 이렇게 느낄 정도니, 대중들은 난리가 날 터였다.

'위험해.'

아주 좋은 쪽으로 위험했다.

"그렇구나……."

그런 것은 몰랐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연인이 되신 겁니까?"

다미앙은 긴장하며 물었다.

"음……."

고민하던 진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분명 그녀가 첫 여자임이 맞지만, 애틋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다.

호감 있고 좋아하는, 딱 그 정도의 단계.

헤어질 때까지 서로는 서로를 그렇게 바라봤다.

그녀는 조금 더 짙은 듯했지만 말이다.

"아뇨."

다미앙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가 이내 흐릿해졌다.

진호는 피식 웃었다.

"아쉬워 마시고요. 그보다 HU와의 만남은 언제죠?"

"내일 점심입니다."

"알았어요. 그럼 전 옷 갈아입고 올게요."

1시간 뒤 리허설 시작이다.

이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 * *

저녁이 되자 진호는 크리스찬 디올의 CEO 피에트로가 보내 준 차량에 탑승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교외의 커다란 저택이었다.

'엄청 좋은 곳에 사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생김새다. 멈춰 선 차에서 내리니 기다리고 있던 피에트로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다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남자가 되셨군요. 그것도 매우 위험한 남자가 되셨습니다."

진심이다. 그간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겪은 피에트로도 순간 호흡과 시선을 뺏겼다.

"하하."

만나는 사람마다 알아차리니 이젠 영혼 없는 웃음만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진."

"축하를 받을 정도는 아닌데요……."

"포브스를 말한 것입니다만?"

"더 놀리면 돌아갈 겁니다."

"하하핫! 미안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저택 내부는 외부만큼 화려했다. 수많은 그림과 미술품들. 높은 천장엔 웅장한 그림마저 있었다.

'죄다 진품이네.'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스킬: 괴도 루팡]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여긴 어떤 분의 집이죠?"

움찔!

진호는 걸음을 멈춘 그를 보며 옅게 웃었다.

"따로 놀아요. 피에트로와 이 저택이."

"휴. 정말 속일 수가 없군요."

"서프라이즈를 당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하는 건 좋아한다는 뜻이군요."

"으흐흐."

피식 웃은 피에트로가 곧 낯빛을 굳혔다.

"아마 진도 아시는 분일 겁니다."

진호는 '분'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아, 설마?'

"예, 그분입니다."

아르노 베르베우. LVMH의 주인이다.

상황이 재밌게 됐다.

피에트로는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평소처럼 여유롭게 웃는 진호를 보며 경의를 느꼈다.

'내가 아르노를 처음 뵈었을 때 어땠더라…….'

거세게 뛰던 심장 박동 소리만 기억이 난다.

'후후후. 역시.'

"이쪽입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이 역시도 영화에서 볼 법한 기다란 식탁과 은 촛대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백발의 거인 아르노 베르베우가 옆모습을 보이며 앉아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아르노."

고개가 돌려지며 눈이 마주치자 진호는 지그시 이를 물었다.

'음.'

영혼마저 발가벗겨지는 듯한 눈이다.

진호는 싱긋 웃으며 정중히, 그러나 비굴하지 않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랑크루아 베르베우. 이진호입니다."

그랑크루아. 대십자라는 뜻으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1등급을 지칭하는 단어다.

레지옹 도뇌르는 프랑스의 정치, 경제·문화 등의 발전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명예로운 훈장이다.

본디 대장군을 뜻하는 그랑도피시에가 최고 등급이었지만, 나폴레옹 보나따르가 개정했다.

2아1년 그랑도피시에 훈장을 받은 그는 지금 그랑크루아, 프랑스에서 제일가는 명예를 가진 인물이 되었다.

아르노 베르베우는 자신의 눈빛에 기가 죽기는 커녕 웃는 진호에 살짝 놀랐다.

'과연..

"내 저택에 온 걸 환영하네, 뮤즈."

디올의 뮤즈가 아니라 뮤즈다.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시작부터 잘 풀리고 있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베르베우."

"앉지."

진호와 피에트로는 아르노와 마주 보듯 앉았다.

'이것도 재밌고.'

"가리는 음식이 있나?"

"딱히…… 아, 전통 영국 요리는 좀 가립니다."

"하하하하핫!"

피에트로도 배를 잡고 웃었다.

프랑스의 개그 코드다.

"영국 요리는 어디서나 싫어하는군."

"자국민도 싫어하는 게 영국 요리잖습니까, 아르노."

빵 사이에 빵을 낀다는 괴악한 발상력.

그게 영국인의 요리다.

아르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리는 음식이 없다니 다행이야."

박수를 치니 바로 음식이 나왔다.

식사는 프렌치 오트 퀴진, 프랑스 식 정찬 코스 요리로 진행됐다. 피에트로와 아르노는 살짝 놀랐다.

진호의 식사 예절이 제법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상류층이 아닌 한국인이 말이다.

"한국은 보통 부모들이 자식들을 레스토랑에 데려가 식사 예절을 가르칩니다. 상류층부터 일반인까지. 돈이 없다 해도 내 자식 어디 가서 기죽지 말라고 말입니다."

"자식 사랑법이 훌륭하군."

"가끔 너무 과해서 문제가 되긴하지만 말입니다. 아, 그리고 겐조를 비롯한 브랜드 세 개를 더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르노가 놀라 피에트로를 봤다. 그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타이밍이 이상해서 추측했던 것 뿐입니다."

"그리고 이 식사 초대로 확신했겠군."

"정답이십니다. The J 앞으로도 사랑해 주십시오."

"허허헛."

아르노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경악스러운 통찰력이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화법이 재밌군."

훅 치고 들어와 방금의 감사 인사를 통해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가 버렸다. 눈 뜬 채 코를 베인 것 같다.

약간의 불쾌함을 담은 눈빛이 얼굴을 찔러 왔지만, 진호는 웃을 뿐이었다.

"두 분 다 과묵하시니 손자처럼 어린 저라도 떠들어야죠."

"으하핫! 그래, 맞아. 사과하겠네."

"전혀요. 이 정도까지 정성 들인 음식을 대접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와인까지 하나인 세팅.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그러며 줄줄이 늘어선 와인 중 하나를 한 모금 마신 진호는 몸을 떨었다. 황홀 그 자체였다.

"정말 자주 초대받고 싶네요."

아르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자리에 불려온 사람은 수없이 많았지만, 이렇게 음식을 음식 답게 즐기는 이는 처음이었다.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건가 싶었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군. 많이 들게."

"예, 감사합니다."

이후 그들은 신변잡기 같은 가벼운 잡담을 하며 식사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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