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37화 (137/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12화

일본 도쿄, OL(Office Lady) 하시모토 히요리는 7시 전에 끝나 버린 업무에 누가 잡을까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잡힐까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다.

한참을 회사에서 멀어지다 멈춘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

뛰뛰빵빵! 와글와글.

사람들로 가득한 도쿄의 거리.

"맞아. 7시 전의 도쿄는 이런 모습이었지."

9시 이전에 퇴근한 날이 언제인 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저녁도 시켜 먹는 도시락이 전부였다.

짙은 여유와 해방감이 그녀를 감쌌다.

"후하! 이제…… 뭐 하지?"

그녀는 순간 멍해졌다.

빨리 끝나긴 했지만, 뭘 해야 할 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니지. 놀아야지. 어떻게든 놀아야지."

그렇다고 집에 들어가 언제나처럼 맥주를 마시다 자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여유고, 내일은 휴일이다.

그녀는 일단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봤다.

그러나 모두 회사였다.

그녀의 낯빛이 흐려졌다.

"놀아야 하는데……."

놀고 싶은 게 아니라 놀아야 했다.

'그냥 집에 갈까?'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 맛있는 거라도 먹자. 오늘은 날 위한 선물도 주는 거야."

그녀는 재빨리 지하철로 달려가 시부야로 향했다.

명품 브랜드 매장에 들러 향수도 사고, 지갑도 산 그녀는 사람이 아주 많은 술집으로 향했다.

"한 명요."

"예! 여기 손님 한 분!"

주방 바로 앞 작은 테이블로 안내된 그녀는 안주를 세 개나 시키고, 사케를 무려 병으로 시켰다. 그녀는 오늘 택시를 탈 각오를 하고 있었다.

꿀꺽꿀꺽!

"카!"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선지 술을 한 잔 마셨는데도 속이 뼝 뚫렸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약간 씁쓸히 웃었다.

자신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많았다.

'……안돼. 안돼.'

우울할 시간조차 아깝다.

그녀는 냉큼 사케를 따랐다. 이윽고 안주가 하나씩 나오고, 술도 세 잔이나 마시게 되자 몸이 나른하게 풀렸다.

히요리는 정신을 잡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어?"

인터넷 방송 즐겨찾기 알람이었다.

'lucky.'

만화를 보는 것보다는 훨씬 좋을 듯했다.

그녀는 얼른 방송을 켰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lucky!"

주위에서 시선이 몰렸지만, 그녀는 무시했다.

자신의 연예인이 핸드폰 속에서 나오고 있는 게 중요했다.

"역시 우리 진호 님은 화장을 안 해도 똑같이 멋있어."

그녀는 진호의 팬이었다.

그녀는 얼른 볼륨을 키웠다.

"회식인가 보구나."

한국어 능력자인 히요리는 재빨리 잔을 채웠다.

비록 핸드폰 화면 속이지만, 자신의 연예인이 자신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 너무도 기뻤다.

-자, 위하여!

-위하여!

"히히. 건배."

꿀꺽꿀꺽!

"키야!"

그녀의 텐션이 방금 전보다 올라갔다.

-어이, 친구.

-……또 노래하라고 하면 죽인다. 벌써 다섯 곡 불렀다. 그것도 댄스곡으로.

어쩐지 분위기가 떠들썩하다 싶었다.

"노래도 불렀구나. 흐잉. 부럽다……."

자신도 팀 이진호의 직원이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듣지 못했지.

'재준, 나이스! 그렇지!'

-나, 나 방송 켰다. 지금 때리면 바로 증거 남아! 형님들, 캡처 준비!

-……방송 끄면 보자.

-자기 전까지 안 끌 건데!

혀를 찬 진호가 피아노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진호 씨는 무슨 곡을 부르실 건가요?

-발라드. 시청자분들 모두 나가라고 엄청 우울한 외국 노래 부를 거야. 선비처럼 엄격 근엄 진지하게 부를 거야.

-그냥 씹선비 엄근진이라고 해, 인마. 그런데 그런다고 이 형님들이 나갈까?

'안 나가지! 절대!'

진호가 부른다면 우울한 노래도 오케이다.

-그건 봐야 아는 거지.

그녀는 진호가 건반에 손을 가져가자 귀를 한껏 기울였다.

이윽고 소음이 줄어들며 피아노 선율이 울렸다.

"어? 이, 이 노래는?"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볼륨을 맥시멈으로 키웠다.

주위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윽고 눈을 감은 진호의 입이 열렸다.

-私(내가)…….

"흡!"

귓가에 박히는 담담하면서도 체념을 해 버린 목소리.

그 아득한 공허함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평이갈매기가 부두에서 울었기 때문이야.

파도에 밀리는 대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과거나 쪼아 먹다 날아가라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생일날에 살구꽃이 피었기 때문이야

죽으려고 생각한 것에는 큰 이유가 없다는 뜻을 담은 노래, 일본의 대가수 나키시마 유카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다.

그리고 이건 그녀 히요리의 마음이고, 만날 잠들기 전 하는 생각이었다.

피아노 소리가 격정적으로 가슴을 두드릴수록 진호의 목소리는 처절해져 갔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마음이 텅 비어 버렸기 때문이야

채워지지 않는다며 울고 있는 것은

분명 채워지고 싶다고 바라기 때문이야.

"크흡! 흑!"

'맞아. 맞다고!'

이렇게 일만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꾸미고 싶고, 연인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고, 겨울날 가족들과 코타츠 안에 둘러앉아 귤을 까 먹고 싶었다.

노래가 끝났다.

"으흐흑! 흐으윽!"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주위 누구도 그녀에게 눈치를 주지 못했다.

그들 역시도 희미하게 들린 노래에 눈물을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씨! 그렇게 심하게 부를 필요는 없잖아!

재준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진호도 눈물을 한 방울 도르륵 흘리고 있었다.

-엄근진으로 부른다고 했잖아. 알았어. 그럼…….

진호의 손이 다시 움직이며, 건반을 두드렸다.

무척이나 신 나는 음률이었다.

이것도 그녀가 아는 노래였다.

꽤 오래전 어느 고교 여자 댄스부가 불러 일본을 흔들었다가 한 국에선 개그우먼들이 리메이크해서 폭풍 웃음을 일으켰던 그 곡.

-아리안나 그로데처럼

셀럽이 되고 싶어

그녀는 끝내 목 놓아 울어 버리고 말았다.

* * *

일본 인터넷 세상이 뒤집어졌다.

너무도 처절했던 노래와 가슴을 때리고 후벼 파던 피아노 선율로 시작한 2시간의 콘서트 술 방송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으며 부른 노래 가운데 70퍼센트 이상이 일본과 빌보드 노래였다.

일본에 있는 진호의 팬들은 발을 동동굴렀다.

이런 진호의 콘서트를 중국 애들만 즐기게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회인이나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인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에 미쳐 버리려고 했다. 피아노 연주곡도 있었다.

유키 구라모토, 이루마 등의 뉴에이지 곡들과 쇼팽, 라흐마니노프 등의 클래식.

이 모든 건 풀 버전으로 미튜브에 올라왔다.

콘서트에 울고 웃던 사람들은 진호의 피아노 연주실력에 경악했다.

그리고 찬사를 금치 않았다.

예대생, 피아노 학원 선생, 대학 조교 등 음악계 관련 사람들이 오랜만에 좋은 연주들을 들었다며 좋아했다.

나중에는 대학교수까지 나서서 칭찬했다.

'즐기는 천재의 아름다운 연주를 들어서 참 좋았습니다.'

한국대학교 음대 교수라 밝힌 이의 댓글은 댓글창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후 몇몇 피아니스트들도 댓글을 달았다.

자칭 전문가들이 저건 클래식에 대한 모욕, 혹은 아무나 치는 수준이라고 슬그미니 분란을 일으키려고 했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휘유."

양진혁이 노트북에서 재생되는 진태의 연주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태가 콩쿠르에서 자유곡을 연주하는 영상이다.

"얘 이름이 진태라고?"

"욕심내지 마세요."

"좋은 건 공유하자. 피아노 녹음을 얘한테 맡기려는 거잖아. 너한테 주의를 돌린 데에는 그 이유도 있잖아."

역시 양진혁은 날카로웠다.

진태의 어머니는 올해 55세다. 아직 늙었다 할 수 없지만, 언제 까지 진태를 봐줄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도 없다.

"소일거리 정도로만 시키려고요."

"네 음원의 피아노 세션이라…… 대기업 사원 월급 수준은 나오겠네. 그보다 넌 언제부터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게 된 거야? 내가 방송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가 뒤로 넘어져 버렸다.

"음. 몇 번 치니까 되던걸요?"

진호는 며칠 전 했던 변명을 다시 해야 했다.

양진혁의 표정이 썩었다.

"아, 재수 없어. 솔직히 말해 봐. 그때 얼마 벌었냐?"

"음…… 억 단위로 벌었죠."

일본 시청자와 지니어스, 중국 시청자와 지니어스 사이에 후원금 쏘기 싸움이 붙었다. 그러지 말래도 말을 듣지 않았다.

승자는 중국이었다.

양진혁은 입맛이 썼다. 그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진태를 콘서트에도 데려 가려고?"

"콘서트는 좀 힘들죠."

진태는 귀가 너무 예민하다.

콘서트장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 할 확률이 크다.

"맞아. 그렇지. 흠……."

양진혁은 영상과 진호를 번갈아 보았다.

"솔직하게 말해 봐. 이런 천재를 몇 명이나 알아?"

눈을 빛낸 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사장님."

"시끄럽고."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진호는 자신에게 모든 주의를 돌리면서 '진태라는 개인'을 묻어 버림과 동시에 '천사'라는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굳혔다.

그러며 노래와 피아노 실력도 뽐냈다.

이젠 탈세나 음주 운전 사고, 살인 같은 범죄가 아닌 이상 진호를 무너트릴 수 없다.

그렇다면 양진혁 자신도, JH엔터테인먼트도 그럴 수 있다.

예전에 진호가 말했던 양진혁 차일드, JH 차일드.

그들 중 예술 분야에 재능 있는 이들을 지원해소기의 성과라도 거둔다면, 자신과 JH는 이미지 마케팅에도 성공하고 그들도 품에 안는 일석이조 아니 일석 몇 조일 지 모르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이걸 묻기 위해서 진호를 부른 것이다.

"음, 전 몇 명 알지 못하지만……."

진호는 잠시 고민했다.

"아마 많겠죠. 그건 사장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JH의 문을 두드리는 끼 있는 애들 중 연습생으로 받아들이는 숫자가 한 해에 무려 100명이 넘는다.

"알지. 하지만 이 바닥 외의 천재들은 모르지. 지금 당장 이미지 마케팅에 써먹을 수 있는 클래식이라든가 미술이라든가, 체육."

"너무하시네. 피가 얼음이세요?"

"니가 할 말이냐?"

냉정할 때는 양진혁 자신마저도 섬뜩한 사람이 진호다. 그렇기에 진태가 드러난 그날, 쏠리려고 했던 이목을 모두 자신에게로 돌리는 기획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아주 깔끔하고 완벽하게 말이다.

'무서운 놈.'

노래 실력도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듯하다.

방송 알람이 와서 클릭했던 재준의 방송.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을 들었을 때,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내달리는 걸 느껴야 했다.

"흐흐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팬 사이트 자유게시판을 뒤져 보세요."

"뭐?"

"저도 진태를 그렇게 알게 됐으니까."

양진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기!"

"네. 혹여 내 오빠, 누나들이 봐 줄까 구구절절 써 놓은."

"와, 이 미친 또라이 같은."

"만날 만화만 그린다는 애, 음악만 듣는다는 애, 글을 쓴다는 애, 조금 아픈 애, 공부 잘하는 애, 운동 잘하는 애 등등. 그 일기 속에서 잠깐 언급되고 마는 엑스트라들."

"넌 정말 미친놈이야."

"효율적인 거죠."

양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우우웅!

"아, 잠시만요."

진호는 핸드폰을 들었다.

장영진이었다.

"네, 감독님."

- 진호야!

목소리가 기쁨에 차 있다.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본에서 접촉해 왔다─! 잘했어! 정말 고맙다! 으아아아!

'그렇지!'

진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일본도 품 안에 들어왔다.

양진혁은 그런 진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 진짜 그때 어떻게든 계약 하는 건데!'

9.9 대 0.1 이라도 계약을 했어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