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11화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일이시죠?"
"아,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내민 명함에는 그의 약력이 소개 되어 있었다.
제법 유명한 대학 음대의 전 교수였다.
그는 진태의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 제게 진태를 맡겨 주십시오. 제가 키워 보겠습니다."
"예에?"
진태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 당황 했다.
진태는 아무 생각이 없다.
"진태의 연주를 듣고 비로소 이 아이다, 이 아이를 가르치자……."
진호는 냉소를 지었다.
온화한 표정과 부드럽고도 강인한 목소리.
첫인상이 참 호감형이다.
하지만 보인다.
"사기를 치려면 다른 데 가서 치세요, 아저씨."
"이보게. 자네가 잘나가는 배우임은 알고 있지만."
"충혈된 눈, 떨리는 손끝. 노란 백태에 썩은 입 냄새."
흠칫 놀란 중년인이 다급히 손을 뒤로 감췄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누굴 가르친다고?"
모두가 놀라 중년인을 보았다.
그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배우 앞에서 연기를 해?'
눈 속에 서린 욕심이 얼마나 짙은지 토악질이 나올 정도다.
"진태를 누군가에게 맡길 거였으면, 벌써 인성 좋은 음악계 거장에게 맡겼어. 당신의 그 추악한 욕심으로 진태의 인생을 망치려 들지 마."
"이…… 이!"
"그 이상 입을 열면 내 모든 걸 다해 당신을 무너트리죠. 각오는 됐습니까?"
중년인은 사나운 진호의 눈동자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진호 형, 화낸다!"
진호는 속으로 혀를 차며 부드럽게 웃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시면 비켜 주시겠습니까? 바빠서."
중년인은 슬그머니 비켜섰고, 그들은 걸음을 옮겼다.
진호는 하얗게 질려 있는 진태의 어머니를 보았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진태가 웃을 수 있다면 전 그걸로 족해요."
이런 사람이야말로 천사가 아닐까 싶었다.
진태도 천사였지만, 그의 어머니도 천사였다.
"앞으로 이런 일이 좀 생길 거예요. 그러나 방금 말했듯 진태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울 거였다면, 전 제 모든 인맥을 동원해 최고의 거장에게 맡겼을 겁니다."
진태의 어머니가 부드러이 웃었다.
"알고 있어요. 진호 씨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저도 진태가 스스로 원할 때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만족해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였다 편 진호는 진태를 보았다.
"얀마, 이제 화 안내. 고기 먹으러 안 갈 거야?"
"꼬기 맛있어요!"
그들이 향한 곳은 제법 규모가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3시간 정도 빌린 것이다.
호기심이 많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진태다 보니 불판에 고기를 굽는 식당은 데려갈 수가 없다.
그런 곳에서 잠깐 한눈을 팔았다 가는 달궈진 불판에 손을 댄 채 어쩔 줄 몰라하며 울고 있는 진태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진태의 어머니도 진태에게 고기를 먹일 땐 꼭 프라이팬에 다 구워서 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유, 그럼요. 예약하신 대로 조리하겠습니다."
고기는 얇게. 노인도 씹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진호가 요구한 건 딱 그뿐이었다. 잘 씹히지 않으면 짜증을 낼 진태를 위해서다.
그러나 진태의 시선은 오직 한 곳에만 쏠려 있다.
한구석 무대에 놓인 피아노다.
'여길 고른 보람이 있네.'
"야, 너무 피아노만 보는 거 아냐? 짜식이 형이 보러 왔는데."
"네!"
대충 대답하고 일어선 진태가 피아노로 다가가 앉는다.
콩쿠르에서 두 곡을 치며 많은 걸 쏟아 냈을 텐데도 아직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더 활기가 돈다.
딩딩 건반을 두드리더니 이윽고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울려 퍼진다.
그 경쾌하고 아름다운 선율에 모두가 미소를 짓는다.
직원 중 누군가는 이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오늘 진태의 콩쿠르를 위해 챙겨 온 카메라를 든다. 웨이터와 쉐프들도 나와 감상을 한다.
진호는 그들을 향해 눈치를 주지 않았다.
예쁘고 아름다운 걸 발견하면 신경이 쏠리는 건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태가 곡을 마무리했을 때, 한 명이라도 더 박수를 쳐 주기를 원해서다. 방금 전 콩쿠르 때 누구보다 잘 쳤지만, 장애를 가졌단 이유로 외면 받은 진태를 위한 선물이다.
명. 짝! 짝! 짝!
곡을 끝낸 진태가 자기 손등을 치며 기뻐했다.
완벽하게 쳐 냈다는 걸 자기도 아는 거다.
휘이익!
"브라보!"
"우리 진태 잘한다!"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환하게 웃은 진태가 다시 건반에 손을 얹었다.
자신을 칭찬해 주는 사람들을 위한 보답이라는 걸 진호는 눈치챘다.
이윽고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5번이 울려 퍼졌다.
제법 유명한 곡이라 진호도 귀에 익었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경쾌하면서도 박력 있는 선율이 울렸다.
진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춘자 할머니들에게 소개시켜 주면 좋아하겠다.'
어쩌면 손자 1위가 바뀔지 모른다.
1위는 진호 자신이고, 손녀 1위가 세연이다.
'우리 부모님도. 어서 2차를 해금 해야겠네.'
그렇다면 진태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하다.
스킬을 1차 해금한 후 연주를 들으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피아노로 많은 말을 하는 아이인 진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말이다.
기타가 기타만의 언어가 있다면 피아노는 피아노만의 언어가 있었다.
2차 조건은 어려운 게 아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스킬: 오만한 천재]가 습득된다.
너무 쉬운 조건임에도 엄청난 능력을 가진 스킬.
이 스킬을 지닌 주인공은 세계적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친다.
피아노에 관한 모든 것이 너무도 쉬운 천재.
이 스토리는 스토리를 진행하는 게 욕이 나을 뿐이지, 스킬을 얻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브라보!"
"와아아!"
짝짝짝짝짝!
환호와 박수는 다시 쳐졌다.
진태도 제 손등이 터져라 힘차게 박수를 쳤다.
그러다 이쪽을 보았다.
"진호 형!"
"응?"
그의 얼굴에 서린 갈망을 읽어 낸 진호는 피식 웃었다.
"야, 지금 형한테 기타 없어!"
"진호 형!"
"씁!"
"으으응!"
진호는 좀 난처해졌다.
진태를 이용해 스킬을 얻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바닥에 드러 누워 땡깡을 부리려고 한다.
"에휴. 그래. 한다, 해."
고개를 저은 진호는 그에게로 걸어가 피아노 의자의 남은 부분에 앉았다.
"이이히."
"형을 놀리니까 좋아?"
"네!"
"너 엄마한테 아주 혼내 주라고 할 거다."
"네!"
당해 낼 수가 없다.
고개를 저은 진호는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방금 진태가 쳤던 그 곡을 그대로 쳤다.
딴 따라라 딴 따다다 단!
도가 어디인지 시가 어디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카피 콘서트에서 퀸의 노래인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를 때 피아노를 연습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미쳤다거나 오만하고, 경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호는 충분히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 모두 저장되어 있으니까.'
1차 해금된 [스킬: 오만한 천재]로 인해 더 진화된 절대 음감이 단 한 번만 들었는데도 그 모든 음을 외워 버렸다.
'같이 치자.'
진호는 그 마음을 담아 피아노로 표현했다.
이런 진호의 연주에 깜짝 놀랐던 진태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건반을 눌렀다.
띵 띠리리 띵 띠리리 띵!
진호가 친 음계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계.
협주곡이다.
진호는 다시 건반을 눌렀다.
이번엔 더 힘차게 눌렀다.
정말 할 수 있겠냐는 뜻을 담아서 말이다.
딴 따라라 딴 따다다 단!
띵 띠리리 띵 띠리리 띵!
사람들은 둘의 합주를 숨죽여 바라보았다.
"와아!"
환호와 박수가 쳐졌다.
진태의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하다.
아들 진태가 복지사 선생님 외에 다른 이와 협주를 하는 걸 처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호는 웃고 있는 진태를 보며 코를 씰룩였다.
"으히히!"
[스킬: 셜록의 후예]가 내가 더 잘 친다는 진태의 의기양양함을 읽어 냈다.
"너 계속 형을 무시해?"
"네!"
이건 진심이다.
울컥.
"야, 다시 쳐."
"네!"
스킬을 얻었다.
지금부터는 좀 다를 것이다.
진호는 다시 건반에 손을 얹었다.
* * *
새근새근.
진태가 진호의 등에 업혀 자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콩쿠르에서 많은 힘을 쏟은 것도 모자라 스킬을 얻은 진호와의 피아노 놀이에 모든 체력을 써 버린 진태는 밥을 다 먹자마자 기절하듯 쓰러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저녁의 서울 나들이를 준비했던 진호로서는 약간 허탈했다.
그래서 작은 얄미움을 담아 던지 듯 예약한 호텔의 침대 위에 눕혔다.
"이런 것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
"제 동생 좋은 곳에서 재워야죠. 그럼 편히 쉬세요."
시체처럼 누워 자는 진태의 볼을 쓰다듬은 진호는 호텔 방을 나섰고, 진태의 어머니는 그런 진호의 등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쿵, 등 뒤로 문이 닫히자 진호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기사가 써졌다고요?"
함께 왔던 직원들 모두 낯빛을 굳혔다.
마케팅 강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태가 아니라 진호 씨의 남모를 선행에 포커스가 맞춰졌어요."
그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의 삶에 왜 이리 관심이 많은지. 쯧.'
"레스토랑 스태프들이 찍은 영상은 모두 지웠죠?"
"네. 클라우드까지 확인해서 지웠어요."
역시 팀 이진호의 직원다웠다.
철두철미했다.
"진태가 입상을 하지 못한 게 어찌 보면 다행이군요. 흠."
진호는 생각에 잠겼다.
직원들은 그런 진호를 보며 의문 가득한 눈빛을 지었다.
장경아 실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피아노는 언제부터 그렇게 잘 치시게 된 겁니까."
그녀가 아이돌 기획사의 기획부서 소속이었다고 해도 음악을 듣는 귀가 없는 건 아니다.
"몇 번 치니까 이렇게 쳐지더라고요."
직원들의 눈빛이 짜게 식었다.
굉장히 재수 없는 발언이었다. 진호는 장경아 실장이 더 물어보기 전에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생각도 모두 정리되었다.
"오늘 안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식당을 수배할 수 있을까요?"
마케팅 강 실장과 장경아 실장의 눈이 번쩍 떠졌다.
"진태를 묻으려는 거군요."
"대중의 관심은 진태에게 독이 되니까요. 그리고 오늘 일본에 발매할 리메이크 음원도 하나 발표 하죠."
화제를 돌리려면 확실히 돌려야했다.
진호는 씩 웃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가능할까요?"
"3분만 주시면 됩니다."
마케팅 강 실장이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정확히 3분 만에 전화를 끊었다.
"수배됐습니다. 가시죠."
그들은 약간은 허름한 펍 분위기의 술집으로 향했다.
술자리가 세팅되어 있었다.
마케팅 강 실장은 사장에게 다가갔다.
둘은 친한 사이인 듯했다.
다미앙과 재준, 12명의 연습생들도 도착해 있었다.
"또 사고 쳤다며?"
"제발 미리 말해 달라고 했지 않습니까, 진호 씨."
앓는 소리를 내지만, 그의 입은 미소가 한 가득이다.
기타와 피아노는 인식되는 이미지가 다르다.
이로써 진호는 더욱 고급스런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하하. 본의 아니게 회식 자리가 만들어졌네요. 모두 제 억지에 따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신 오늘 회식은 제 사비로 계산할 테니까 모두 마음껏 드세요."
"우와아!"
경리실장이 양팔을 번쩍 들자 놀랐던 사람들은 이내 와하하 웃었다.
"자, 다들 자리에 앉으시죠!"
사람들이 우르르 앉자 재준이 다가왔다.
"그래서 난 뭘 하면 되는데?"
"방송. 준비해 왔지?"
"날 뭘로 보고. 대충 소주 한 병 마신 후부터 방송 틀면 되겠네."
"올."
"시끄러워."
피식 웃은 진호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7시. 대충 1시간 후부터 인터넷 생방을 켜면 될 듯했다.
활짝 웃은 진호가 잔을 들었다.
"자, 모두 술잔들 채우세요!"
그렇게 마케팅 요소가 가득 포함 된 회식 자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