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9화
술자리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새벽 촬영을 위해 진호와 김윤식이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장칭이 공항까지배응을 했다. 말렸지만, 그는 기어코 따라왔다.
김윤식이 직접 커피를 사 주고 싶다며, 공항 내 카페로 향했다.
장칭이 진호의 손을 잡고 쓸어내렸다.
방금 전과 달리 그의 눈에 걱정이 서려 있다.
"오늘 무슨 일 있었니?"
흠칫. 진호는 자신의 얼굴을 쓸어 내렸다.
"티 났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머릿속 한구석으로 치워 버렸기 때문이다.
진호는 입맛을 다셨다.
'이래서 따라오셨던 거구나.'
"무슨 일인지 들어도 될까?"
'음?'
뭔가 기대하는 눈빛이다.
"아뇨."
진호는 싱긋 웃었다.
"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
정말 별일이 아니다.
'나도 움직인다면 길어야 일 년이지.'
그 안에 타오 사장은 실각한다. 그를 위한 계획은 이미 뼈대를 세워 두었다.
"흐음."
"정말 괜찮다니까요. 신경 쓰실 만한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그럼요."
장칭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어?'
진호는 크게 흔들렸다.
방금 장칭이 자신을 온전히 받아 들였다는 게 느껴졌다.
'뭐지? 내가 뭘 했기에?'
너무 기쁜 일이긴 하지만 얼떨떨했다.
진호의 손을 툭툭 두드린 장칭이 일어났다.
"가시려고요?"
"네가 내게 너무 많은 걸 던져 주었구나. 가서 무대에 익숙해져야지. 다음부터는 이 번호로 연락하렴."
장칭이 명함 한 장을 쥐여 주었다.
"흐흐흐. 연극, 꼭 찍어서 보내 주세요."
"그럼. 누가 무대 연출한 건데, 당연히 그래야지. 윤식 씨에겐 미안하다 전해 주고."
일어선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장칭은 몸을 돌려 공항 밖으로 걸어나갔다.
명함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든 진호는 부재중 메시지를 보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라?"
그는 명함과 메시지를 번갈아 봤다.
그와 동시에 살짝 망설였던 미영이 웃음을 참는 듯했던 게 이해되었다.
"뭐, 이런……."
너무 놀라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연결되어 버리나?"
김윤식이 빠르게 다가왔다.
"왜? 무슨 일이야?"
"오늘 변한 무대에 익숙해지셔야겠대요."
"어이구. 배우가 연기에 몰입한다는데 방해할 수도 없고. 쩝."
들고 온 커피를 본 김윤식은 진하게 아쉬워했다.
"우리 둘이 같이 마시면 되죠. 오늘은 새벽 내내 촬영하잖아요."
"그럴까? 아, 맞아. 다음에 장칭 씨 만나러 올 땐 꼭 이 아저씨도 불러야 한다."
진호가 눈을 빛냈다.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할아버지를 한국에 초대하는 건 어때요?"
"그거 좋다! 아우, 나도 역시 늙었나 봐."
"그런 것치고는 들려오는 소문이."
"어허. 꼬맹이가 아저씨를 놀리는 거 아냐."
둘은 투닥거리며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내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지?'
미영이 준 번호와 장칭이 준 명함.
그 두 개의 번호는 똑같았다.
먼저 알았다 하더라도 부탁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들었다.
'그보다 이모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알게 된 거야?'
한편, 공항을 나선 장칭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다 성장한 손자를 보는 듯 한 눈빛이다.
"끝까지 부탁을 하지 않았구나. 그래, 넌 그런 아이지."
노숙자에게 방금 만든 음식을 주면서도 그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예쁜 말만 했던 천사 같은 마음씨를 지닌 아이.
어려운 상황일 텐데도, 전혀 내색 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부탁'이란 두 글자를 마음에 담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런 큰 선물들을 주었다.
"허허헛."
그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전화해 온 자신의 오랜 인연인 미영을 떠올렸다.
20년 전 지인에게 소개받은 무척이나 당찼던 아가씨.
그녀는 자신의 딸 결혼식 때, 당시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에게 부탁해 세상에 단 한 벌만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져다주었다.
그로 인해 딸은 매우 특별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 선물을 준 그녀가 전화해와 진호의 중국 활동에 장애물이 생겼다 말했다.
"네가 날 할아비처럼 생각하니, 나도 널 손자로 생각하마."
장칭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你好 (여보세요?)?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날세. 별건 아니고, 미디어 모두 디올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게 해 줄 수 있겠나?"
진호가 들었다면 경악했을 말.
"그래. 중국은 물론이고, 홍콩, 대만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게야."
-허헛. 디올이 자네의 심기라도 거스른 건가?
"내 손자에게 장애물이 된다는군. 사장이란 놈을 치워야겠네."
-그렇다면 들어줘야지. 흐허헛. 드디어 이 묵은 빚을 청산하는군.
"자네 결혼식에 참석한 거 가지고 무슨 빚, 친구끼리. 쯧."
-그 결혼식 때문에 당에 서열조차 없던 내가 여기까지 올라왔어. 내가 지금 누리는 모든 부귀영화가 자네 덕분이야.
"자넨 그 과하게 생각하는 게 단점이야."
-킁. 보이콧 선언이면 되나? 그 사장이란 놈이 당 서열 107위와 접촉했다는 보고가 있어. 문화예술에 한 발 걸친 놈이지.
"그거면 돼. 언제 한번 놀러 와. 연극이 아주 재밌어졌으니까."
-재미없잖아. 난잡하기만 하고.
"그때와는 달라."
그러고 보니 그 무대 연출가를 잊고 있었다.
"부인과 함께 오게."
-호오, 알았네. 끊지.
전화가 끊기자 장칭은 밤하늘을 보며 옅게 웃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게다, 진호야."
그는 어젯밤 웨이브를 뜨겁게 달군 진호의 투어 콘서트를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
* * *
중국 투어 콘서트 발언과 중국에서의 스케줄, 술집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한 영상은 굉장한 이슈가 됐다.
고양이 조련사 이진호, 알고 보니 팬 조련사?
배우 이진호의 한마디에 조용해 지는 중국 공항.
기다려 준 팬들을 위해 준비했다.
민폐 끼치지 말라는 참된 인성.
여심을 흔든 '고양이 송'!
중국과 한국 양측에서 기사가 쏟아졌다.
중국 팬들은 난리가 났고, 일본 팬들도 난리가 났다.
의미는 달랐다.
-우리는 왜 안 와?
-중국이 부러울 줄이야…….
┗잠깐, 나 코피. 고양이 송을 견딜 수 없다!
┗팬 사이트에 입장 떴어. 당분간 일본 스케줄 없대!
┗뭣! 왜!
┗왜긴. 일본에서 The J를 방영하지 않는데 올 필요가 없잖아.
┗중국 팬 숫자 60만 이상. 일본 팬 숫자 30만. 이 30만도 다 코어 팬도 아니고, 투어는 못하지.
┗아냐! 내 진 님은 그런 속물이 아냐!
-해도 도쿄만 할 듯.
-지금 이럴 때가 아냐. 프랑스 애들 난리 났어! 방송국에 The J 사 오라고 시위 계획하고 있어!
┗시, 시위?
┗이 미친 파시즘 새끼들! 뭐만 하면 시위해!
┗파시즘이 이런 상황에서 쓰이는 단어야?
┗우리도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하지 않아? 이러다 진호 님이 일본 말고 파리에 가면…….
┗잠깐! 이탈리아 애들도 투서 날린대!
일본 지니어스 팬 사이트가 뒤집 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중국의 모든 미디어가 디올과의 계약을 파기했다.
이에 연예인들마저 눈치를 보듯 SNS에 디올 관련 게시물을 내리며 다른 브랜드를 칭송했다.
이 엄청난 사태는 아르노에게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 쪽 매출이 급락하겠군."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로워.'
진호가 중국을 다녀온 이후 이 사태가 일어났다.
정확히는 타오 사장과 진호가 만남을 가진 이후다.
"자네의 뮤즈가 광전총국과 인연이 있었던가?"
중국의 모든 미디어를 관리 검열 하는 광전총국의 높은 이가 움직였다.
-아마 아닐 겁니다. 그 욕심 많은 타오 렁이 타 브랜드와 연관이 있는 누군가를 잘못 건드렸을 겁니다.
"그렇겠군."
진호가 광전총국의 높은 이와 관계가 있다면, 그는 지금쯤 중국의 모든 방송국을 돌고 있어야 한다.
"타오 렁. 계속 끌어안고 갈 텐 가?"
-한국의 이미영 부사장을 후보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안젤라 리…… 나쁘지 않군."
지사의 부사장으로 썩기엔 너무 아까운 여성이다.
"하지만 사심이 섞여 있어."
진호를 더 키워 주겠다는 속셈이 보인다.
-능력으로만 따질 겁니다, 아르노.
디올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피에트로의 작은 반항심이 전해져 왔다.
그는 옅게 웃었다.
"그래. 내가 자네를 무시했군. 미안하네."
-아닙니다.
아니라지만, 목소리에 불쾌함이 서려 있다.
혀를 찬 아르노가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자네의 뮤즈는 이번에도 해내겠군."
흘러가는 추세가 그렇다.
이제 일본은 The J를 수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과정도 재밌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렇지. 자네의 뮤즈와 시간을 상의해 봐."
-알겠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이만 끊겠습니다.
"그래."
전화가 끊기자 아르노는 생각에 잠겼다.
'시위를 계획한다고?'
진호의 팬들이 시위를 준비 중이다.
이 역시도 재밌는 일이다.
아무리 시위나 데모, 파업을 자주 하는 프랑스라지만, 드라마를 수입 하라고 시위하는 건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재밌기는 하지."
그걸 인터넷 해적판의 저화질이 아니라 고화질로 본다.
고민을 하던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France2에 연락을 넣어 봐. 드라마 하나 수입할 수 있냐고."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옅게 웃었다. 진호에게 자신을 만족시킨 것에 대한 작은 선물을 줄 참이었다.
* * *
The J 제작진이 뒤집어졌다. 파리에서 날아든 소식 때문이다.
"……."
"……."
세트 촬영장, 모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가늠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쏟아부으면 드라마도 프랑스에 팔리는구나."
프랑스로 팔린 국내 영화는 많지만, 드라마는 국내 최초다. 아니, '방영 중' 판권이 팔리는 건 The J가 최초다.
공영방송국이 직접 딜을 해 왔다.
그것도 황금 시간대에 틀어 주겠다고 한다.
저벅저벅.
사람들은 다가오는 진호를 보았다.
프랑스에 줄이 있는 사람은 진호 뿐이다.
그래서 진호가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하러 갔었다.
진호는 모이는 시선에 고개를 저었다.
"제 지인은 아니래요. 그런데……."
"그런데? 뭔데?"
"LVMH 그룹 임원 중 한 분이 The J 팬이래요."
피에트로 CEO가 말하길 LVMH 광고가 The J 앞뒤로 붙는다고 했다.
"대체 LVMH 그룹이 뭐길래?"
"재계 서열 100위안의 그룹인가?"
진호는 한숨을 내뱉었다.
"디올 같은 회사를 50여 개 소유한 초거대 명품 브랜드 그룹요. 거기 주인이 2012년 포브스 선정 유럽 최고 부자예요. 당시 세계에서 4위."
"프, 프랑스가 아니라 유럽?"
사람들은 경악했다. 갑자기 스케일이 커졌다.
그들은 볼을 꼬집었다.
"실화네?"
"허허허허허."
진호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방금 전 자신도 그랬으니 말이다.
'이거 일이 이상한 곳으로 튀어 버렸네.'
일본을 건드렸는데, 애먼 프랑스가 발끈했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얼떨떨한 것은 사실이었다.
'일본 팬들도 이것 때문에 투서를 날리기 시작했다고 하니…….'
이제 일본이 접촉해 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리메이크 앨범, 제작해야겠네.'
일본 팬들의 애간장을 태웠으니, 아주 풍성하게 준비해야 할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