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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33화 (133/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8화

우우웅.

먼저 떠나 버린 택시 때문에 꽤 걸어 내려와야 했던 진호는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미영이다.

'사람을 붙였구나.'

진호 자신이 아니라 타오 사장에게 사람이 붙은 거다.

그녀가 디올 코리아의 사장이 된다면, 다음 목표는 디올 차이나일 수밖에 없다.

명품 브랜드의 거대 시장 중국. 이곳을 거쳐 본사 임원이 된다면, 일반적인 임원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궁금해서 어떻게 참았대? 그렇게 사장이 되고 싶어요? 지영이는 어쩌고?"

-이제 지영이도 어른인데 자기 살길 알아서 찾아야지.

"또 마음에 없는 말한다."

-그래. 디올이 아니라 LVMH를 노리는 거다. 왜?

진호는 걸음을 멈췄다.

"호오. 가능하겠어요?"

자회사도 아닌 하청 기업이 본사 임원 자리를 노리는 거다.

불가능에 가깝다.

-아들이 도와준다면?

"알았어요."

-뭐가 이렇게 빨라? 아들, 이런 일은 심사숙고해서…….

"이모가 LVMH 임원직을 노린다면 나야 편하니까. 피에트로와 싸우지 않잖아요."

피에트로 CEO와 미영. 둘 중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미영이겠지만, 마음이 무척 불편할 것이다.

-난 이제 아들 머리가 무서워진다.

"흐흐. 더 무서우라고 좋은 소식 알려 드려요?"

- 뭔데?

"앞으로 디올 중국 화보 안 찍을 거예요."

디올 코리아 대신 디올 차이나 사장직에 도전하라는 소리.

-……정말 무섭잖니!

"나머진 알아서 하세요."

-하아. 그러면 이 이모도 어쩔 수 없잖아. 바로 연락처 하나 보내 줄 테니까 되도록 빨리 그 사람을 만나 봐. 아들에게 무척 도움이 될 거야.

딱히 필요 없다. 더 높은 꽌시를 형성하려면, 앨리를 이용하는 게 빠르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지.'

"알았어요."

진호는 여기서 거부하면 미영이 어떤 선물을 준비할지 모르기에 승낙하였다.

-음.

"왜요?"

-훗, 아냐. 이만 끊을게. 누구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야 해서.

"흐음. 네,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은 진호는 멀뚱히 이쪽을 향한 월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어 공부."

"안 할 거야."

"네."

혀를 찬 진호는 다시 발을 됐다.

아침의 따뜻한 공기가 차게 식었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절로 미소가 번졌다.

"장칭 할아버지가 윤식 아저씨를 좋아하면 좋을 텐데."

어디까지 먹힐까를 촬영할 때 인연을 맺은 중국의 대배우 장칭. 간간이 메일이나 메신저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다.

어젯밤 윤식에게 말한 지인이 바로 이 사람이다.

"윤식 아저씨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라면 그 누구와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배우 김윤식이라면 충분히 좋아할 터였다.

우우웅!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울었다.

'이 사람은 나중에.'

꽌시건 뭐건 지금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아, 택시다. 택시!"

* * *

스케줄은 아침 방송 출연이었다. 모두가 출근하고 주부와 노인의 시간이 시작되는 아침 시간대. 스케줄을 마치자 같이 왔던 배우들은 모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후. 더 씨프 이후 다시 공부해서 다행이지."

김윤식은 진저리를 쳤다.

하마터면 벙어리처럼 입만 다물다가 갈 뻔했다.

"아저씨도 참 신기해요."

"뭐가?"

"보통 외국 연예인들은 통역사들을 대동하잖아요."

더욱이 김윤식은 쉰을 훌쩍 넘겼다.

"어이구, 네가 할 말이냐?"

"저야 이유가 있잖아요."

레시피를 묻기 위해서다.

"똑같아. 머리에 든 게 없는데 어떻게 연기해?"

꽤 파문을 일으키는 말이었다.

'아직도 도전하시는구나.'

김윤식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나 어떠냐. 괜찮아?"

진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의 눈이 아이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그렇게 빼입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야, 인마. 그 장칭이야. 대배우 장칭. 내가 응애응애 울 때부터 중국과 홍콩 영화계를 주름잡으셨던."

'정말 가끔씩 애 같다니까.'

"최고예요."

"어흠. 그래서 그분을 어떻게 알게 됐다고?"

진호는 다시 설명해 주었다.

장칭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 가장 먼저 물었던 질문이었다. 어디까지 먹힐까 촬영 중 그를 노숙자로 오해함으로써 생긴 인연.

"하. 다시 들어도 영화다, 영화. 너도 정말 인생이 영화구나. 천생 배우야."

"하하핫! 아, 저기 음식 괜찮아요. 저기서 식사하고 가시죠."

허름한 식당이지만, 그 정성이 어마어마하다.

"쯧. 그런 분을 만날 때는 하루 금식에 목욕재계를 하고, 어? 거기다 이 앞이 그분이 계시는 극장이잖아."

"배가 차야 머리가 굴러가죠."

"역시 똑똑해."

'아저씨가 좀 이상해지신 거예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어후, 내가 상해 사투리를 알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장칭과는 공연을 관람한 이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식당 안으로 들어가던 진호는 깜짝 놀랐다.

"어? 할아버지!"

조금 이따가 만나기로 한 장칭이 있었다.

주위에 앉은 그때 본 극단원들도 놀라 이쪽을 보았다.

청경채를 입에 가져가던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너와는 언제나 영화처럼 만나는 구나."

"하핫! 그러네요. 아, 이분이 어제 연락 드린 윤식 아저씨예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윤식 입니다."

김윤식이 바지에 손을 슥슥 문지르고 내밀자 장칭이 웃으며 받아주었다.

"영화 다 봤습니다. 중국에 김윤식 씨 같은 배우가 없다는 게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김윤식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저도 장칭 선배님 작품은 다 봤습니다."

"오, 하하. 김윤식 씨 같은 후배 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이제 먹으러 왔습니다. 말씀 편히 하십시오."

"하하하. 그럼 같이 합석하시죠. 이쪽으로."

소외된 진호는 입술을 씰룩였다.

'내가 소개한 건데 말이야, 어?'

"진호도 여기 오고."

장칭이 옆자리를 툭툭 쳤다.

그제야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넵!"

냉큼 앉아 주문을 하니 장칭이 대견하다는 미소를 짓는다.

"작품은 잘 보고 있다. 연기가 좋더구나."

"흐흐. 아직 멀었죠."

한참 멀었다.

이제 주연을 맡아 소기의 성과를 냈을 뿐이다.

이런 진호의 갈망을 읽은 건지 그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래. 배우라면 그런 욕심이 있어야지."

"으흐흐."

고개를 끄덕인 장칭은 김윤식을 보며 말을 건넸고, 곧 둘은 십 년을 만난 지우처럼 웃음꽃을 피웠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그들은 장칭이 공연을 하는 극장으로 향했다. 소극장의 대기실을 둘러보고 그들이 분장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김윤식이 꽤 아련한 눈빛을 지었다. 둘은 더 이상 방해하지 않도록 객석으로 나왔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그래요?"

"그럼. 그때 학전의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릴 땐 내 외모에 얼마나 자신이 있었는지…… 인마."

김윤식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호가 무대만 보고 있는 탓이다. 일부러 만든 쓰레기 더미, 벤치, 건물이 있는 무대.

"흐음."

"왜?"

"저 무대를 누가 설치했는지 몰라도 참 센스 없고, 책임감 없는 사람 같아서요."

[스킬: 유리가면]의 1차 해금을 하며 얻은 무대 연출의 재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소품 몇 개 빼곤 다 쓰레기예요. 때문에 동선도 쓰레기예요."

그 정도까진 아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라 부르는 장칭의 극장이고 극단이며, 무대다. 머리가 뜨거웠다.

"보통 이런 무대나 소품은 극단원들이 만든다, 진호야."

"아……."

김윤식이 진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돈이 없으니까 나무거리에서 판자 사 오고, 만들며 남은 자투리도 알뜰살뜰 모아서 소품 만들고."

극단에 입단하면 제일 처음 배우는 게 청소와 요리, 소도구 만드는 법이다.

"음."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마침 분장을 마친 장칭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 저 무대는 극단원이 만든 건가요?"

"소품은 단원들이 만들지만, 배치는 무대 연출가에게 맡기지."

"돈을 주고요?"

"그렇지."

'역시.'

대배우 장칭이다. 극단원은 돈이 없다 해도 그는 돈이 있다.

김윤식의 표정도 굳었다.

"할아버지와 관계는요? 친하세요?"

"음, 아니란다. 왜 그러니?"

"그럼 그 사람하고 더 이상 일하지 마세요."

진호는 그 이유를 말해 주었고, 장칭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니? 아직 연극을 보지 않았잖아."

진호는 냉소를 지었다.

"보지 않아도 저런 배치면 동선이 더러울 수밖에 없어요. 관객을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연출이에요. 그러니 이런 낮에도 공연을 하시는 거겠죠. 그렇죠?"

보통 연극은 늦은 오후나 저녁에 한다.

금요일, 주말이라면 낮에도 하지만 지금은 주중이다.

"그래, 진호 네 말이 맞다."

장칭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여태껏 자신들의 연기가 잘못된 줄로만 알았다. 대중이 이제 연극을 좋아하지 않게 된 줄로만 알았다.

무대 연출가가 명성 있는이라고 너무 맹신했다.

장칭 그 자신의 눈에도 무대가 더럽다는 게 보였는데, 다른 곳에서 성적 부진의 이유를 찾고 있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그의 표정 변화를 살핀 진호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직 실망하시긴 일러요. 저기, 저기, 저기 소품을 만든 사람 좀 불러 주세요. 1시간이면 다시 배치할 수 있어요."

"그, 그렇게나 빨리?"

"임시방편이죠. 얼른요. 옮기려면 일손도 필요해요."

"아, 알았다. 류웨이! 아니, 모두 오너라!"

곧 미청년이 달려왔다. 그 뒤를 극단원들이 따랐다.

"헉헉! 네! 대사부님!"

"류웨이. 네가 날, 아니 우리 극단을 도와야겠다."

"제, 제가요?"

그는 하얗게 질렸다.

이 극단에 입단한 지 이제 2개월이기 때문이다.

"모두 따라오세요. 무대를 다 갈아엎어야 하니까."

"무슨!"

그들은 기겁하며 장칭을 보았고, 장칭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얼떨떨해하며 무대에 오르는 진호를 따랐다.

"일단 첫 신부터 빠르게 대사 읊어 주세요. 그에 따라서 소품을 배치해야 하니까. 류웨이 씨와 나머지 분들은 저를 돕고요."

배우들은 당혹스러웠지만, 장칭이 허락했기에 빠르게 대사를 읊었다. 대사가 만들어 내는 상황이 진호의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벤치 45도 방향으로 1미터 뒤! 건물은 75도로 틀어요! 류웨이 씨는 거기 쓰레기를 두 개로 나눠서 저쪽과 저기! 그래요, 거기! 딱이에요!"

류웨이는 역시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연극은 동선마저도 감정 표현의 일환으로 삼는 연기다.

"배우들! 대사만을지 말고 공간 확보되면 각자 동선 따라 연기해요!"

진호는 무대 연출과 리허설을 동시에 진행했다.

"스톱! 목소리 조금만 높여요. 솔이 아니라 솔 샵! 좋아요!"

[스킬: 유리가면]에 [스킬: 연신 연왕], [스킬: 마음을 울리는 노래] 등 소유한 스킬이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장칭과 김윤식이 입을 떡 벌렸다.

* * *

짝짝짝짝짝!

"와, 재밌다."

"그러게. 이걸 왜 재미없다고 한 거지?"

"눈과 귀에 쏙쏙 들어와. 나 아까 울었잖아."

배우들과 사진을 찍고 나가는 관객들 모두 얼굴에 만족이 서려 있다.

배우들과 장칭은 이쪽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다가오는 진호를 경이롭다는 듯 쳐다봤다. 관객들의 칭찬은 뒤로하더라도 그들은 오늘 아주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됐다. 걸어가 앉으면 벤치가 엉덩이를 단단히 받혔고, 바지 지퍼를 내리면 건물 벽이 있었다.

마치 무대와 하나가 된 감각이었다.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고맙구나."

"뭘요. 그때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큰 선물을 주셨는데요."

어디까지 먹힐까는 장칭이 성공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SNS에 극찬을 했기에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허허헛."

그 생기 넘쳤던 청년이 어느덧 이렇게 커 버렸다.

그때도 커 보였던 그릇이 이젠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식사 대신 술은 어떠니."

"좋죠!"

그들은 장칭이 잘 아는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 겸 술집. 이곳도 허름하지만 맛있었다.

진호를 인정하다 못해 선망의 대상으로 보게 된 배우들은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진호도 기꺼이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서로가 익힌 연기 노하우가 서로를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었다.

장칭과 김윤식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직 은퇴하시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류웨이와 진호가 무대 연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저런 아이가 내게도 있었구나. 아니, 모두 오늘은 무대에서 빛났지. 내겐 저 아이들을…….'

진호에게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이 깊어졌다.

'과연 너는 언제…….'

"저, 진호 연주해 줄 수 있어?"

한 여자 배우가 기타를 내밀었다. 진호는 주위를 둘러봤다. 극단 배우나 다른 손님들이 이쪽을 향해 핸드폰을 들이밀고 있다.

'여기서 나머지 떡밥을 뿌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중국을 신경 쓸수록 일본은 더 안달 날 것이다.

진호는 씩 웃으며 기타를 받아 들었다.

"듣고 싶은 곡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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