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5화
진호는 프로젝트 L의 녹음을 위해 JH엔터테인먼트를 찾았다.
이젠 발표하면 무조건 음원 사이트 순위 30위안에 들어가는 프로젝트 L.
양측 팬클럽에 무한 스트리밍이나 무한 구매를 하지 말라 경고를 했기에 이 정도 성적으로 그친 거다.
그런데 레오에게 급한 스케줄이 생겨 2시간 뒤로 미뤄졌다.
다른 날로 미루기에는 애매한 시간.
진호는 결국 기다리기로 했다.
핸드폰을 켜 포털사이트에 접속한 그는 하나의 기사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The J,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있을까?
어그로성 제목이 아니라 기사 내용도 그랬다.
과거 수백억의 자금을 투자하고 도망해 버린 작품을 예로 들며 The J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에휴. 왜 이렇게 배 아픈 사람이 많은 건지."
The J의 첫 방 방영일이 다가올 수록 이런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다.
어떻게든 실패하게 만들려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인지 예상도 갔다.
확률은 거의 90퍼센트다.
'확 사고 한번 쳐?'
갈등하던 진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생에 첫 주연 작품이다.
순수하게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었다.
그는 시간을 때울 겸 제자들을 보기 위해 JH엔터테인먼트의 모델 파트로 향했다.
그가 등장하자 모델 파트의 모든 이들이 긴장했다.
직원들마저도 말이다.
'아하하…… 돌아갈까?'
"쌤!"
탈락자였지만, 뉴욕패션위크의 쇼에 섰던 2인 중 한 명이다.
"은지……."
환한 미소를 지었던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야, 자세."
"힉!"
식겁한 여성 모델은 몸을 미세하게 곧추세웠고, 진호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애들은?"
"다 일하러 갔죠. 저는 잠시 식사 하려고 들른 거예요."
"다행히 일감이 계속 생기나 보네. 거봐. 내가 말했지? 서울패션위크 정도는 씹어 먹을 거라고?"
여성 모델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정말 그랬다.
체감상 4대 패션위크가 아이돌 콘서트라면, 서울패션위크는 학예회수준이었다.
그리고 '모델, 뉴욕에 도전하다'를 찍은 후 일감이 10배 이상 늘었다. 최소 이틀에 한 개. 해외 스케줄도 있다.
모두 진호 덕분이었다.
"영어 공부는 계속하고 있어?"
"그럼요. 얼마 전부터는 회사에서 지원해 줘서 일대일로 배워요."
"오, 그래?"
좀 의외였다. 그가 알기로 JH는 십 대 연습생들의 학교 성적은 신경 써도 이렇게 따로 지원은 하지 않는다.
"그보다 쌤, 저희 말고 제자들 키운다면서요?"
'마이 솔로 라이프'가 방송됐다.
여성 모델의 눈에 질투심이 서렸다.
"너희가 1기. 걔들이 2기."
"역시 쌤은 사람을 다룰 줄 알아."
"시끄러워. 밥 먹으러 가기나 해. 난 먹고 왔다."
"넵! 그?럼 다음에 돼요."
진호는 이쪽을 신경 쓰는 직원들에게 인사한 후 전에 봤던 연습생들을 보러 갔다. 책임질 사람들도 늘었으니 JH의 연습생 시스템에서 차용할게 있을까 해서다.
문틈 사이로 음악이 흘러나오는 복도를 걷던 진호는 순간 멈춰 서 옆의 문을 보았다.
"잉?"
그는 잠시 눈을 비볐다.
줄줄이 늘어선 책상에 앉아 있는 소년, 소녀들과 화이트보드로 과학을 가르치는 강사.
"뭘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 언제 왔어?"
저 멀리서 양진혁이 다가왔다.
진호는 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왜, 인마."
"제게 이걸 보여 주기 위해서 레오 형 빼돌렸죠?"
양진혁은 경악했다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씁. 언제 들킨 거지?"
"사장님 보고요."
양진혁은 머리를 긁었다.
"일단 내 사무실로 가자."
둘은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회사를 믿고 들어온 사람들인데, 혹여 길이 맞지 않아 떠나더라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 때문이에요?"
"따지자면 그렇지."
원래부터 내부에서 나오던 말이긴 했다.
"그리고 지금 제 드라마에 수작을 부리고 있는 다른 기획사들 때문이기도 할 테고요. 정확히는 제가 굴복해 그들과 제휴를 맺지 않을지에 대해."
'모델, 뉴욕에 도전하다' 이후 많은 기획사들이 제휴를 권해 왔다. 다미앙과 진호는 그걸 단칼에 거절했고, 앙심을 품은 많은 기획사들은 The J에 흠집을 내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주연급 배우들을 걸고 넘어지기에는 몸집이 너무 컸다.
배우 개인이나 그들의 소속사나 모두.
진호 자신도 HU와 JH의 비호를 받는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들 기획사의 해외 활동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공격을 해도 피해를 보지 않는 적당한 선인 작품을 깎아내리는 거다.
"넌 뭐, 어떻게 속일 수가 없냐."
"걱정 마세요. 괘씸해서라도 안 할 테니까."
"그럼 다행이고. 휴우……."
"아니 천하의 양진혁 사장님 담이 왜 이렇게 작아요?"
'안 작겠냐! 너한테만 작아, 너한테만!'
저 작은 머리통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를 진호다.
단 한 번의 기획으로 한 파트의 매출을 50배 이상 성장시켰다. 뺏기는 순간 앞날이 끔찍해진다.
"그래서 소감이 어때?"
"시간 낭비?"
"왜!"
비싼 값을 들여 데려온 강사들이다.
"쓸데없는 거 가르치니까요. 이과는 왜 가르쳐요? 그런다고 걔들이 이해할 것도 아닌데."
"어…… 듣고 보니 그러네."
"저도 언어 위주로만 가르쳐요. 그것만 해도 일거리는 많으니까."
양진혁의 눈이 빛났다.
"이를테면?"
"이쪽 일을 예로 들면 해외 스카우터, 캐스팅 디렉터 등이 있죠. 성적이 나빠도 언어가 되면 중소 기업에 입사할 수 있고요. 원래 끼들이 넘치니까 영업직은 기가 막히게 할걸요?"
"계속 말해 줄 수 있지?"
스카우터나 캐스팅 디렉터는 그도 생각한 범주 내의 직업이었다.
"통역사도 있고, 가이드도 있고, 여행 블로거, 스트리머 등 언어적 능력만 좋아도 할 수 있는 직업은 수없이 많죠."
"이쪽 일을 가르쳐도 되고……."
"그렇죠. 충성도를 원하시면 분기 평가에서 성적 좋은 애들 장학금 지원해도 되고요. 일반 학생도."
"장학금?"
"대기업만 누구 차일드할 필요 있어요? JH가 지원하면 JH, 아니 양진혁 차일드지. 사장님께 빚 있는 머리 좋은 애들이 이 바닥 외에도 사회 각계각층에 스며든다고 생각해 봐요."
오싹!
'거봐, 쨔샤!'
이래서 진호가 떠나는 게 두려운 거다.
어떤 문제점이 생기면 바로 답을 내 버리면서도 그 이상을 보는 저 두뇌가 무섭다.
"설마 너희도 그러냐?"
"아직은 수익 모델이 저와 재준이뿐이라서…… 아, 개인적으로 지원하는 단체나 애들은 몇 명 있어요."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음?"
"네가 이런 걸 공짜로 해 줄 리는 없잖아."
진호는 언제나 그랬다.
선의로 베푸는 듯하지만 자신의 이득은 꼭 챙겼다.
진호는 씩 웃었다.
"JH의 연습생 시스템요."
"내 20년 노하우를 달라고?"
"대신 저는 사장님께 미래를 제시했죠.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테 고요. 이 장사, 10년하고 말 거 아니잖아요."
"진짜 한국대 경영학과 애들만 뽑든가 해야지, 원."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선배 후배들에게 낯 세울 수 있겠다."
"시끄러워, 인마. 알았어, 정리해서 일주일 내로 보내 줄게."
"캄사합니돠!"
둘은 그제야 앞에 놓인 녹차를 마셨다.
"그보다 괜찮아? The J."
진호는 피식 웃었다.
"영상을 못 보셨으니까 할 수 있는 질문이세요."
편당 5억 플러스알파가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이번에 편집으로 최동진 감독님이 붙으셨고요."
영상을 본 최동진 감독이 장영진 감독을 졸랐다고 한다.
양진혁은 뜨악했다.
"허어. 우리 애들도 꽂을 수 있냐?"
"자리 다 찼습니다."
"에이."
이후 양진혁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진호는 레오가 도착하자 녹음실로 향했다.
* * *
The J의 첫 화 방송일이 됐다.
진호의 팬들은 모두 본방 사수를 위해 TV 앞에 앉았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과일이나 간식을 가져와 딸과 아들의 옆에 앉았다.
진호 때문에 자식들 성적이 올랐다.
진호 때문에 이렇게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진호 때문에. 진호 때문에. 진호 때문에.
"그런데 재밌을까 모르겠네."
"엄마!"
"뉴스에 그런 말들 많잖니. 소문난 잔치라고."
그랬다.
뉴스는 The J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어딜 봐도 부정적인 의견들.
"그래도 엄마가 그런 말하면 안 되지."
미영은 딸 지영의 말에 옅게 웃었다.
"그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진호는 자신의 가정에도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딸 지영은 가람대 백호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 바로 아래 대학의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엄마의 뒤를 잇겠다며 말이다.
고1 철부지 여고생이 어느새 세련된 여대생이 됐다.
"그런데 우리 딸, 진호는 포기한 거야?"
"움?"
곡물 쿠키를 씹던 지영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너 진호 좋아했잖아."
"내가?"
"아, 아니었어?"
지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줌마. 딸한테 관심 좀 가지세요. 사장 될 생각만 하지 말고."
"……."
"난 진호 오빠를 오빠로서 좋아한 거지, 이성으로서 좋아한 게 아니에요. 알았어요, 아줌마?"
"하, 하지만 너 진호가 과외한 이후부터 연애 안 했잖아."
"생각해 봐. 그 얼굴에 그 성격, 그 학벌을 보고 또래 애들이 눈에 들어오겠어?"
맞는 말이다.
"TV나 보세요. 엄마 회사 광고 나와."
"으응."
디올 향수의 광고가 끝나자 드라마가 시작됐다.
검었던 화면이 끝나자 둘은 화들짝 놀랐다.
피에 물든 붕대를 배에 감은 진호가 침대 위에서 신음을 하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근육질 전신에 송골송골 맺힌 땀.
오빠고 아들인데, 눈이 뺏겨 버렸다.
1화가 모두 끝났다.
"드라마라며."
"그랬지……."
미영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영상은 제작비를 많이 투자한 영화 같고, 액션은 본 시리즈와 존 윅을 보는 듯하다. 영상미도 그와 비슷하다.
특수 효과는 웬만한 전쟁 영화에 버금간다.
이 모든 걸 합치면 뒷내용이 미치도록 궁금한 한 편의 시리즈 영화다.
그 순간 미영의 핸드폰이 울었다.
비서였다.
"응."
-부, 부사장님. 느, 늦은 밤 죄송 하지만 출근하셔야겠습니다.
"왜?"
말은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벌써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슨 사태 인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서가 그 말을 외쳤다.
-호,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됐습니다! 전화 문의도 폭주하고 있습니다!
"알았어, 바로 출근할게. 최 비서도 회사로 출근해."
-네!
"지영아."
"다녀와. 내일 봐요."
"딸, 미안! 사랑해!"
지영은 다급히 드레스룸으로 달려가는 엄마를 외면하며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흥. 그럼 그렇지."
The J를 깎아내리던 기사가 단 한 줄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극찬을 하는 기사들만 가득했다.
"어디서 내 오빠를…… 쯧."
그녀는 이번엔 지니어스에 접속 해 로그인했다.
그녀의 등급은 마스터, 간부였다.
"우리지니들 반응은 어떤지 볼까?"
그녀는 자유게시판을 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