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3화
짹짹짹
새는 울지 않지만, 쏟아지는 햇빛이 정신을 깨웠다.
"Water…… Mam……."
목이 아프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여기."
"Thank you?"
낯선 남자의 음성에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난 앨리는 옆에서 웃고 있는 진호를 보곤 경악했다.
"네, 네가 왜 여기 있어! 그리고 난 왜 벗고 있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녀는 광동어를 다다다 쏟아 냈다.
속옷만 입고 있는 알몸. 그녀는 재빨리 이불을 끌어 올렸다.
진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여기 내 방인데?"
"뭐?"
"기억 안 나? 네가 어제 찾아왔잖아."
그랬다.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술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가 깬 후 진호를 찾아왔다. 호텔 이름과 층수만 알아서 1호실부터 문을 두드렸던 기억이 있다.
"설마…… 우리 했어?"
진호는 피식 웃었다.
"할 뻔했지. 네가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지만 않았으면. 그리고 남자 미치게 옷도 다 벗어 버렸어."
"아……."
그녀는 안도하면서도 크게 아쉬워했다.
"뭘 아쉬워하세요. 씻고 오셔."
앨리는 너무도 평온한 진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눈이 충혈되어 있다.
'흐응?'
그녀는 피식 웃었다.
아무리 태연해하고 있어도 그 마음이 훤히 보였다.
"진, 아쉽지 않아? 지금이라도."
"입 냄새 나."
"야!"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는 이를 갈며 화장실로 향했고, 쿵 문이 닫히자 진호는 마른세수를 했다.
"사람 미치게 하는데는 일가견 있다, 진짜. 후우우."
들어오라 허락을 하자마자 덮쳐 왔던 입술.
그것은 이성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옷을 벗으며 침대로 향했다. 앨리도 옷을 벗었고, 서로의 입술과 혀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힌 순간 그녀는 '콘돔, 핸드백'을 말했다.
그 아찔한 목소리와 눈빛.
진호는 날 듯 그녀의 백에서 콘돔을 찾아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잠들어 버린 그녀를 말이다.
처음 겪는 상황이라서 콘돔을 몇 번 떨어트렸다지만, 이건 아니었다.
그때부터 두 명의 진호가 미친 듯 싸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날을 새 버렸다.
"하아아."
진호는 양쪽 허벅지를 주물렀다.
밤새 얼마나 때렸는지 1시간 전 씻을 때 보니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정말 지옥 같은 저녁이었다.
한편 샤워기를 켜고 세면대 앞에 선 그녀는 옅게 웃었다.
쏴아아아아!
"매너까지 있을 줄이야."
어제 다른 카지노 관계자가 말한 것처럼 정력이 대단했다.
남자라면 결코 참지 못할 상황이었을 텐데도, 혹여 했어도 충분히 넘어갔을 상황임에도 그는 앨리 자신을 지켜 주었다.
"이제 날 잊을 수 없겠지?"
해 버린 것과 하기 직전까지 간 상황, 둘 중 남자를 더 애태우는 게 어떤 상황인지 그녀는 안다.
'천천히.'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눈을 빛 낸 그녀는 스르륵 속옷을 벗곤 샤워기 앞에 섰다.
이후 둘은 아침식사 후 별다른 말 없이 헤어졌다.
* * *
아침부터 인터넷이 시끄럽다.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된 강경미는 클릭할 수밖에 없는 실시간 검색어에 재빨리 접속해 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졸 섹시."
배에 붕대를 감은 채 상반신을 드러낸 진호가 침대에 누워 괴로워하고 있다.
고통을 참는 신음에 무릎이 절로 풀렸다.
눈물이 왈칵 솟았다.
"오, 오빠……."
그러나 등에 새겨진 문신은 숨을 막히게 할 만큼 섹시했다.
그렇게 영상이 끝났다.
"다, 다시 보기."
그녀는 다시 보기 버튼을 눌렀다.
"아, 왜!"
영상이 삭제되었다는 문구가 떴다. 그녀는 재빨리 다른 곳에서 영상을 찾다가 하나의 뉴스를 발견 했다.
The J에 관한 뉴스였다.
급히 클릭해 보니 스태프의 실수로 영상이 유출되었고, 이를 수습 중이다, 지금부터 업로드하면 강경 대응하겠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그녀는 맥이 탁 풀렸다.
방금 본 영상이 한여름 밤의 꿈 처럼 느껴졌다.
"이러면 어떡해요, 오빠. 난 오늘 부터 어떻게 자라고."
그녀는 이 진심을 그대로 담아 댓글을 썼다.
기사가 올라온 지 단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댓글 수가 500개를 돌파했다.
"후, 그래도 아침부터 좋은 구경 했네. 하, 좋은 유출이었다."
오늘은 오후 수업만 있는데도 아침에 일어난 자신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네."
문이 열리며 그녀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어이구, 우리 가람대 딸. 오후 수업이라면서 왜 벌써 일어났어?"
"공부해야지!"
부모라면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이었다.
강경미의 어머니는 울컥했다.
어려서 만날 연예인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던 딸이 진호의 강의 영상을 보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국내 최상위 대학인 한국대, 가람대, 백호대중 가람대 경영학과에 떡하니 붙은 거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르쳐 주지 않은 요리는 물론이고, 기타도 칠 줄 안다. 이 때문에 한국 어머니들이 난리가 났다. 진호의 팬들 중 많은 숫자가 좋은 대학에 붙었기 때문이다.
"우리 딸은 누구 딸?"
"엄마 딸!"
'그리고 우리 진호 오빠 동생!'
딸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그녀의 입이 주욱 찢어졌다.
"용돈 줄까? 진호 굿즈 사야지?"
"그보다 내 아이디들 충전 좀 시켜 줘. 우리 오빠 영상 다시 보기 해야 한단 말이야. 그리고 곧 드라마도 나올 테고."
"어머며. 내가 그걸 잊고 있었네. 엄마도 같이 충전하자."
충전을 해 봐야 다 합쳐 5만 원. 포털사이트에 가입하고 탈퇴하는 게 좀 귀찮기는 하지만 그 돈이면 한 달이 행복하다.
돈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강씨 가문의 하루는 즐겁게 시작되었다.
* * *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앞으론 우리에게 맡겨.
"흐흐. 네. 수고하세요."
단 10초짜리라도, 폰으로 찍은 거라도 좋으니 제발 영상을 더 달라는 말들이 기사의 댓글들을 점령했다.
그에 장영진과 방송사는 결단을 내렸다.
전화를 끊은 진호는 옅게 웃었다.
'이슈는 만드는 거지.'
우연히 걸려서 만들어지는 것만이 이슈가 아니다.
이제 대중들은 The J에 대해 궁금해할 것이다.
그들의 이목이 흐트러지지 않을 영상들은 넘치도록 많았다.
'오늘 바로 총격 신과 레펠 신을 올린다고 했지?'
기존 드라마와 궤를 달리하는 스펙터클한 총격 신.
망설임 없이 30층 빌딩에서 뛰어 내리는 레펠 신.
이목이 몰리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했다.
"아, 왔네."
열리는 공항의 입국 게이트로 거구의 사내가 걸어나온다.
"한국에 온 걸 환영해요, 월터."
월터는 결국 진호의 경호원이 되기로 했다.
다른 스태프들은 그대로 훈련소에 남기로 했다.
"딸이 이번에 대학에 입학해서 말이야."
"아, 그럼 세후 10만 달러로 맞춰 드려야겠네요."
"고맙다, 지노."
"뭘요. 당연한 일이죠."
아버지는 사람을 얻으려면 아끼지 말라고 했다.
리셋라이프에서도 그랬다.
"그럼 이동하죠."
신장 190cm의 커다란 백인은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이쪽을 보며 웅성거리는 공항 안 사람들의 시선에 진호는 회사로 향했다.
팀 이진호의 직원들은 정말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특히나 정 대리가 크게 반겨 주었다.
그동안 해외 스케줄을 감행하는데도 변변한 경호원 한 명 없이 돌아다닌 진호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진호는 이후 부모님께도 그를 소개시켜 드렸다.
부모님은 그의 손을 잡고 잘 부탁한다고 했고, 월터는 안절부절못했다.
오너의 부모님이 너무 과하게 반겨 줘서다.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힘들어하던 그는 저녁 식사까지 하고 나서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의 숙소는 진호가 사는 아파트단지 내에 있었다.
"여기가 내 집이라고?"
20평대의 아파트다.
"네. 마음에 안 들면 더 큰 곳으로 옮겨 드릴게요."
"왜 이렇게 잘해 주는 거지?"
"앞으로 내 신변을 책임져 줄 사람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그리고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놀러 왔을 때, 재울 수 있는 공간은 있어야 하잖아요."
"Fuck."
월터는 이를 악물었다.
이 먼 한국에 오기까지 수많은 갈등과 걱정이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그런데 겨우 몇 달 본 것이 전부인 고용주가 너무도 큰 선물을 해 주고 있었다.
진호는 울 듯한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이 집은 힘든 결정을 한 그에 대한 선물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자신의 명의다.
통장에서 썩기만 하는 돈, 이런 투자도 나쁘지 않았다.
'엄마는 여길 떠날 생각을 안 하니까…….'
가까운 시일 내에 이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넓고 좋은 집으로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부탁해요."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노 널 지키겠어."
진호는 너무 과한 그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지내다 보면 약발이 좀 떨어지겠지.'
너무 딱딱해도 좋지 않았다.
"자, 그럼 근무복을 사러 가죠!"
"근무복이라니? 슈트면 되지 않아?"
움찔!
"진심이에요?"
"하, 한국 경호원들은 슈트를 입지 않는 건가? 그럼 총은 어떻게 감추지?"
진호는 이마를 잡았다.
신장 2미터의 거구가 검은색 슈트까지 입고 있다.
오려는 사람도 돌아갈 게 뻔했다. 거기다 총.
'지금 누굴 잡으려고!'
아무래도 월터는 많은 착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하아. 그냥 잔말 말고 따라와요. 축하 맥주도 마실 겸 한국에 대해 알려 줄 테니까."
"으, 응."
그렇게 이태원으로 간 진호는 바로 하나의 셔츠를 보여 주었다.
"이거 어때요?"
월터는 셔츠를 보곤 눈을 파르르 떨었다.
"지, 진심이야?"
"네."
진호의 눈빛은 너무도 맑았고, 이번엔 월터가 이마를 잡았다.
"Fuck."
* * *
1 분짜리의 총격 신과 레펠 신은 이슈를 끌었다.
기사들이 생산되니 대중들로서는 클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드라마라고 했는데?
-돈이 갈리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이거 언제 방송되나요?
-저거 진짜 총 같은데?
-ㅇㅇ. 진짜 총. 반동이 다름.
-도랏!
-CG 아닌 진짜 빌딩에서 뛰어내리는데 망설임 없어. ㅎㄷㄷ;;
-ㅅㅂ! 깜짝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이렇게 겁이 없어!
-아니 '네.'는 너무 해맑잖아! 진호야, 겁 좀 내라!
'역시 인터넷엔 능력자들이 많아.'
진짜 총을 이용했다는 것과 진짜 빌딩에서 레펠 강하를 한 것 때문에 다시 기사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매일스포츠는 그보다 빨리 단독 기사를 냈다.
씩 웃은 진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해맑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왔…… 어흠!"
"크흠흠!"
김수혜와 김세연의 포스에 눌려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사람들은 진호의 뒤를 따르는 인상이 험악한 거구의 백인을 보곤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터질 듯한 핑크빛의 셔츠와 붉게 달아오른 얼굴 때문이다. 거기다 머리에는 토끼 모자까지 쓰고 있다.
그들은 웃음을 참기 위해 미친 듯 노력해야 했다.
'반응 좋고! 계약서에 명시하길 잘했지!'
의상 스타일링은 무조건 고용주에게 맡긴다는 항목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꽉 막히고 털 많은 퇴역 용병을 설득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장영진 감독이 재빨리 다가왔다.
그 뒤를 김수혜와 김세연이 따랐다.
"지금 스태프와 배우들 웃겨 죽이려는 거야?"
질책을 하고 있지만, 웃음을 참는 게 여실히 보였다.
"흐응. 우리 진호 이 이모를 웃겨 죽이려는 걸까?"
"이 씨, 몰입 안 되잖아. 혼날래!"
앨리와의 일을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때만 잠깐 그랬는지, 이후 김세연은 평소처럼 대해줬다.
진호는 씩 웃으며 월터를 양손으로 가리켰다.
"앞으로 팀 이진호의 마스코트가 될 월터예요. 귀엽죠?"
"푸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사람들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고, 월터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촬영장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고, 미튜브에 올릴 다음 홍보 영상이 정해졌다.